'무빙 픽쳐'라는 말이 어울리는 일상성 영원성.
(스포성 글이 있습니다.)
아녜스 바르다와 J.R이 협엽해서 만든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고 왔습니다.
현존하는 누벨바그의 어머니이자
영화계의 어머니이기도 한 작가 '아녜스 바르다'는
여성감독을 거론할 때 대표되는 인물입니다.
J.R은 젊은 사진작가로서 특히, 노인들의 얼굴을
인상적으로 담는 유명 포토그래퍼이지요.
88세 여성감독과 33세 사진작가가 펼치는
이 희한한 여행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
놀라운 순간을 담아내고 흔들기도 합니다.
우연에 기대어 즉흥여행으로 출발하는
바르다와 J,R은 포토트럭으로
외진 시골이나 농부, 공장 인부들 등
사람들이 잘 찾지 않거나 마을에도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을 찾아 각각의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얼굴을 찍어 거대한 사진작업을 하며
이곳 저곳 곳곳을 누비기 시작합니다.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에서 거론되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라는 말이 항상 따라오는데,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바르다는
여성에 대한 시선을 져버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선은 단순히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조금 더 다른 시선으로도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흥적이고 이 우연적인 다큐멘터리는
하나 하나씩 뜯어보면 상당히 교묘하고 정교하기도 합니다.
우연이라는 재료는
예술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보여주기도 하는데,
마지막, 고다르를 찾아가는 이 여정 자체가
우연성을 포함하여 예술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놀라움이 무엇인지를 관객들 뿐만 아니라,
창작하는 바르다에게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건 제 추측인데 아마도 고다르는
일부러 그녀의 영화에 나오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나오지 않은 것도 아니죠 ㅎ)
고다르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오히려 바르다가 아니라,
젊었을 적 고다르처럼 선글라스를 낀
J.R이 더 잘 이해하는 듯 합니다.
사실 고다르의 글귀를 보고 아마도 바르다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야속한 그의 마음 또한 상당히 미웠을 겁니다.
(아마도 고다르의 이러한 행동은
예술가 입장에서는 비범하고,
한 인간으로서 친구로서는
정말 얄밉고 야속하게 느껴지겠지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영화 내내
마을 사람들의 얼굴을 찍고 담았던
이 영화가 끝에 가서 한 사람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은 얼굴이 흐릿하게)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습니다.
고다르와 안나, 자크 데미와 바르다가 같이 있었던
추억을 회상하며 안나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이야기 했었다고 전했는데 그 말을 그대로 이어 '무엇을 해야 될까요?'라고
맞받아치던 JR이 바르다를 위해 선글라스를 벗는 장면은
막판 유쾌한 웃음과 진한 페이소스를 남깁니다.
그 얼굴 또한 바르다 시점으로 초점을 흐리게
'포커스 아웃'시킨 부분은 한 번 더 크게 폭소를 낳게 합니다.
(흐릿해서 보이지 않아도 바르다 할머니는 무척 고마워 합니다.)
이 마지막은 영화적으로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J.R과 바르다의 이 여행은 영화 초창기에 쓰이던
'무빙 픽쳐'라는 말을 그대로 가져와도 손색이 없어 보이지요.
(무빙 픽쳐라는 뜻 보다는
단어 자체가 이 영화의 정서와
무척 잘 맞아 보입니다.)
언젠가 없어지고 사라질지라도,
그러한 '무빙 픽쳐'는 일상성과 영원성을 가지며
우리들 곁에 계속 머물겠지요.
인간과 삶 예술을 탐구하는
바르다 할머니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