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보다 끝이 좋은 것들
내 안에 불쑥 솟아나는 욕망은 대부분 소유와 관련 있지만, 그중에 외모와 관련된 것도 많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그럴싸하게 존재론적으로 아름다운 이가 되고 싶다고 포장할 수도 있지만 그저 눈에 보이는 외모도 아름답길 원한다. 외모를 가꾸기 위해 정기적으로 피부과에 갈 여유나 비싼 수업료를 내야 하는 고급 운동을 할 수는 없지만 자기 관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엄마로 살지만, 남편에게 여전히 여자로 아름답고 싶은 마음도 감추지 않는다. 거창한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스스로를 관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뛰어나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운동 신경을 타고난 탓에 웬만한 운동은 시작하면 잘하는 편이다. 이런저런 운동을 찔끔씩 공략하며 경험했지만 딱히 하나의 종목이 오래된 취미가 되진 못했다. 나의 성실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고 어떤 운동이든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금액을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도 크다.
코로나 시기를 맞으며 센터에서 하는 운동을 타의로 그만두면서 택한 것이 바로 달리기다. SNS에서 연을 맺은 지인들의 달리는 일상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소설가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달리기를 예찬한 두 작가님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러너의 삶을 동경하게 됐다. 두 작가분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10킬로 이상을 꾸준히 달리며 정기적으로 마라톤 대회도 나갈 정도로 러닝에 진심인 분들이다. 그들의 책에는 달리기가 곧 인생이며, 소설가로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마치 달리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달리기를 찬양한다.
지인에게 추천받은 앱으로 매일 5분 달리기부터 시작했다. 5분 달리기는 점차 시간이 늘어나면서 30일이 됐을 때는 쉬지 않고 30분 달리기까지 가능해졌다. 30분을 달릴 수 있게 된 후로는 거의 빠지지 않고 매일 30분 달리기를 했다. 요즘에는 매일 달리지는 못하고 적어도 일주일에 3회는 달린다. 달리기를 한다고 하면 지인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힘들지 않아? 난 5분도 못 달리겠던데…”
매일 30분을 달리면 어느 순간에는 힘들지 않은 날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매번 달릴 때마다 힘들다. 분명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능력은 길러졌다. 전에는 5분만 달려도 숨이 턱 밑까지 차서 더 이상 달리면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공포까지 느껴져서 멈추고 달리고를 반복했다면 이제 그런 고통은 없다. 그럼에도 10분을 넘기기 전에 어김없이 고뇌가 찾아온다.
‘달리고 싶지 않아. 굳이 달려야 할까?’라는 마음이 밀려오는 것이다. 신기하게 10분을 넘기기 전에 그런 마음이 매번 똑같이 든다. 그런데 그 10분을 넘기면 그 뒤로 10분은 달리는 것이 살짝 편안해진다. 그때는 ‘그래, 포기하지 않고 달려보는 거야! 할 수 있어!’라는 의욕이 다시 불끈 솟는다. 그런데 또 10분이 지나면 금세 마음이 바뀐다. ‘아휴, 도저히 안 되겠다. 오늘은 이 정도만 달려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딱 10분만 더 달리면 목표한 5킬로가 끝나는데 그쯤에서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강력한 마음이 들어온다.
그럴 때는 귀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집중한다. 달려야 한다는 행위 자체보다 귀에 들리는 음악과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드디어 30분을 채우고 나면 그때야 상쾌함을 넘어선 야릇한 쾌감마저 밀려온다.
시작할 때보다 끝나고서 좋은 것. 흡사 글쓰기와 비슷하다.
“달리기의 고통이란 앞면은 거울이고 뒷면은 유리로 된 이중창 같은 것이라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달릴 때는 정말이지 죽을 것 같았는데, 달리고 나면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 매번 그렇다. 그럴 때면 늘 고통의 순간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놀란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p.143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쓰는 행위는 늘 어렵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끝맺음은 어떻게 닫아야 하는지 매번 쓸 때마다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 누구도 나에게 쓰라고 채근하지 않는데 왜 혼자서 이 고통의 무게를 짊어지고 날마다 글을 쓰겠다고 험한 산을 오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현타가 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알고 있다. 나에게 쓰는 행위는 트랙 위를 달리는 러너처럼 도무지 멈출 수 없는 행위라는 것을. 달리고 있는 중에는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것이 끝나고 결승선을 통과할 때 얼마나 짜릿한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몸으로 체득한 경험과 기쁨은 쉽사리 앗아가지 못한다. 매일 아침 글을 쓰면서 그 기쁨을 깨달았다.
달리기 싫은 날, 글쓰기 싫은 날이 있다. 하면 좋은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타협하며 안해도 된다는 속삭임에 넘어가고 싶을 때도 있다. 주저앉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떠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급할 때는 ‘딱 한 번만 더’를 외치며 한 걸음씩만 더 나아갈 힘을 쥐어짜 보는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불혹의 나이에도 날마다 흔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밀려올 때, 이만하면 됐다고 타협하고 싶어질 때 자신에게 외쳐본다.
“오늘 하루만 더”
자극하고 지속하는 일, 달리기와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다. 아름답고 싶다는 열망은 여전히 샘솟지만, 신기하게 달리기를 하고 글을 쓰는 동안에는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진다. 그것을 애써 피하거나 무시하려는 노력으로는 오히려 그 열망이 더 거세게 공격해 올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지속하는 용기를 낼 때 비로소 욕망을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힘이 발휘된다는 것을 배운다.
나의 놀이터에 달리기가 추가된 이유이다. 오늘 하루도 신나게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