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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Oct 14. 2023

조승연 작가와 같은 무대에 서다

사랑하고 용서하는 법 배우기


경기히든작가에 당선되고 책이 출간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후로도 꾸준히 글을 쓰며 또 다른 길이 열리기를 기대했다. 그러던 중에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 있었다. 오래도록 존경하고 사랑했던 어른에 대한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는 일이었다. 사람에 대한 실망은 살면서 언제고 밟을 수 있는 지뢰이지만, 밟을 때마다 그것을 완충해 주는 것은 없다. 늘 시리도록 아픈 법이다. 실망이 미움으로 뻗어가질 않기를,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알기에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굳은 마음이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당시 내가 매일 붙잡고 있던 것은 그저 달리기 뿐이었다. 몸을 움직여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책도 잘 읽히지 않고,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 여전히 모닝 페이지를 썼지만 나는 여전히 한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게 이토록 어렵다는 것만 절감하며 절망하는 하루하루였다. 그나마 매일 달릴 수 있어서 살 수 있었다.


그때 본 것이 <제1회 경기도 브랜드포럼>에서 주최한 도민 참여 글 공모전이었다. 경기히든작가로 경기도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좋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주최하는 행사에서 글 공모전을 한다는 것에 마음이 갔다. 이 공모전은 적지만 상금도 있었고, 최우수상을 수상하면 브랜드 포럼에서 도민 대표로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하는 기회도 주어진다고 했다. 도전해 보기로 했다. 당시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당시 빠져있던 달리기에 관한 글을 써보면 좋겠다고 글감도 바로 떠올랐다.



결과 발표를 잊고 있다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던 중에 당선 소식을 전화로 들었다. 변화상을 수상했는데 최우수상이라 했다. 최우수상을 받은 분은 포럼날 대표로 글 소개를 해야 한다며 정중하게 발표 부탁을 했다. 당선자 발표가 미뤄져서 전화를 받았을 때는 포럼을 겨우 일주일 앞둔 때였다. 내가 쓴 글을 바탕으로 '경기도 브랜드'에 관한 발표를 해달라고 하니 거창한 주제 앞에 부담감이 확 밀려왔다. 그래도 흔쾌히 해보기로 했다. 그냥 그때는 내게 주어진 것은 다 받아들이고 그것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보겠노라 마음먹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이날 연사가 조승연 작가님과 유홍준 교수님이라고 들었다. 그들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행운이었다. 그들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준비했다.


이날 내가 발표한 내용이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직접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발표 대본을 정리해서 읽고 또 읽으며 준비했다. 포럼이 열리기 전에 미리 행사장에 가서 리허설을 할 때는 어찌나 떨리던지. 그렇게 큰 무대에 서서 여러 관중 앞에서, 그리고 생중계되는 유튜브가 촬영되는 중에 발표를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럼에도 그 시간은 왔고, 남편과 두 딸, 시부모님과 형님네 가족까지 직접 축하한다고 총출동했다.




무대에 서서 나의 이야기를 했다. 경기도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것, 엄마로 살면서 글쓰기로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 그리고 나의 도시에서 달리면서 나의 좁은 세계를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꿈꿀 수 있게 된 것까지. 솔직하고 진솔하게 나의 이야기를 담아 발표했다. 경기도의 브랜드는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제대로 빛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 했다. 각자의 이야기가 빛날 수 있는 경기도가 되길 바란다면서.


실제로 발표할 때는 이상하게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내가 발표하기 전에 조승연 작가님과 유홍준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감동이 커서였을까. 그들에 이어서 한 무대에서 발표한다는 것이 부담됐지만 나는 나의 이야기를 담담히 전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떨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글쓰기는 연이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문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예기치 못한 기쁨도,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도 함께 밀려왔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한 뼘 더 자라 사랑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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