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소통법
남편은 나에게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났을 때도 듣기보다는 말하는 편으로 보인단다. 실제로 말하는 것을 겁내는 편은 아니다. 대중이 모인 강연 자리에서 질문이 있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손을 들고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는 용기도 낼 수 있다. 영어 강사로 지낸 시간이 길었기에 무언가를 설명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의 말에 늘 고개를 갸우뚱한다. 실제로 MPTI를 해보면 I와 E가 거의 비슷한 비율로 나오지만 나는 분명 내부에서 에너지를 얻는 I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람들과 말하는 것은 늘 어렵다. 어떻게 보이는 것과는 영 딴판으로.
난 왜 사람들과 말하는 것이 힘들까. 정확히는 편하지 않다. 분명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좌중을 주목시키는 감각을 지닌 것도 같지만 말하는 것이 늘 힘들다. 만남이 끝나고 나의 말을 되돌려 봤을 때 당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홀로 얼굴이 붉어지며 이불킥을 할 때가 수없이 많다. 이런 번뇌가 올 것을 알기에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이 점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화법’에 관한 책도 수없이 찾아서 읽어봤다. 상대방에게 어떻게 하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은 나만은 아닌 듯했다. 비슷한 주제를 가진 책이 꽤 많았고, 난 그중에 몇 권의 책을 탐독하며 답답한 만남의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에서 강원국 작가는 글쓰기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로 말하듯이 글을 쓰면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강원국 작가의 문체는 그의 화법과 비슷하다. 말과 글이 같은 사람이라면 말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크게 어려울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말하는 것이 어려워 글을 쓴다.
말하기 화법에 관한 수권의 책을 탐독하고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발췌해서 외우며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실전에서 적용은 역시 어려웠다. 영어 회화책을 닳도록 외워도 원어민을 만나면 얼어붙는 격이다.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막상 말하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만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홀로 허탈했던 경험들이 쌓여가자 결국은 ‘누구도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오랜 기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두문분출하고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했다.
대부분은 글보다 말이 편하다고 하지만 글이 더 편하다고 하는 이들은 글을 쓰면서 사유하고 고민하는 것들을 말로는 나눌 수 없다는 답답함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머릿속에 잔뜩 이고 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막상 친구들과 만나서 나누는 대화는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샀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정도의 얕은 이야기를 한다. 수다의 본질은 원래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제한할 수 없이 뻗어가는 오지랖에 있다. 그 본질을 거슬러 진지함을 장착하는 수다를 떨고 싶어 하니 스스로도 어깃장이 나는 느낌이다. 막상 그런 대화를 시도하면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것이 느껴지니 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게 된다.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라면 잔뜩 채워져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그간 내가 얼마나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사무치게 깨달았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라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종종 밀려왔다. 말을 하는 것이 더 쉽고 간편한 방식인 것 같지만 막상 글쓰기로 자신의 진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 깊고 영롱한 소통법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한동안은 날마다 글로 풀어놓지 않으면 답답함이 일정도로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다.
말로 풀어내는 것을 어려워하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오히려 에너지가 고갈되는 이들을 ‘내향인’이라고 한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분명히 ‘저는 내향인입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사랑하는 이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어렵기는커녕 가장 재미있는 놀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편하고 어려울 때가 더 많다.
글을 쓸 때는 누구보다 활발한 외향인이 된다. 글을 쓸 때만큼은 그 어떤 것도 숨기거나 가리지 않고 투명하게 나를 보여준다. 글에서만큼은 나를 숨기고 싶지 않다. 그럴듯한 사람으로 나를 포장하는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일부러 겸손한 척하지 않고, 뭔가 대단한 것을 꿈꾸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민망하다.
글을 쓰면서 처절하게 느꼈던 것은 글이 삶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그럴듯한 삶을 사는 것처럼 포장할 수 있어 보이지만 막상 글을 진짜로 써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위선자는 끝내는 글을 쓰지 못하리라는 것을.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실제 내 삶을 잘 살아내야 한다. 삶을 넘어서지 못하는 글은 통렬하게 나를 반성하게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역할을 한다. 몹시도 적나라하고 투명한 거울. 그것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진짜 아끼는 친구에게는 어떤 충고를 들어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수긍이 되는 것처럼 글을 쓰는 동안에는 모든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조금씩 더 글쓰기의 진정한 재미를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