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다니지 않는 삶 살아내기
개그맨 고명환 씨는 어느 날 지방 공연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큰 사고를 당한다. 당시 매니저가 시속 190킬로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큰 사고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병원에 실려 온 상태를 보고 의사가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아슬아슬하게 죽음의 위기를 벗어난 그는 지금껏 고민하지 않았던 질문을 스스로 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가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독서였다. 한쪽 눈이 마비됐음에도 병상에서 책 읽기를 시작했다.
일 년에 200권 이상의 책을 본 그는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 자신이 주도하는 삶을 사는 것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답이었다.
끌려다니지 않는 삶. 가만히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많은 것들에 지배당한 채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를 끌고 가는 강력한 것은 역시 ‘돈’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고명환 씨는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신이 돈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개그맨으로 일할 때 하기 싫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밤무대에 나가서 일을 하고,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 즐거운 척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돈을 지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돈을 지배하는 능력을 위해 돈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벌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책을 읽었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도전했던 메밀국수 장사에 성공했다.
돈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고명환 씨처럼 당장 많은 돈을 벌기는 힘들다.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 돈인 경우가 많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하루는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스스로 끌고 가는 사람과 끌려다니는 사람이 분명하게 나뉜다. 시간이란 강력한 손아귀에 붙들려 가까스로 해야 할 일들만 겨우 처리하고, 그 손아귀가 느슨해질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그저 손 위에 놓인 스마트폰 세상을 유영하며 자신도 모른 채 시간을 낭비하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시간을 지배하며 사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세밀한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이들에게 맞춰 시간이 흐른다. 아무리 나의 의도대로 하루를 계획했다 할지라도 아이들의 필요에 따라 수정해야 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발생한다. 특히 길고 긴 방학 때는 하루 3끼를 챙겨주며 틈틈이 집안일도 해야 하는 엄마들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살라고 말하는 것은 허공에 떠다니는 공기처럼 텅 빈 말로 들려온다.
엄마라서 하루를 온전히 계획할 수 없다면, 하루에 최소 1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나는 그것이 엄마들이 시간을 지배하는 능력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내 시간을 산다는 것은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가치를 만들어낼 때 당신은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고명환,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 p. 197
내가 있는 곳에서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 택한 방법이 바로 ‘모닝 글쓰기’이다. 아이들이 일어나서 함께하는 동안에는 엄마로서 살아가야 한다. 아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만 할 수 없는 것이 엄마의 정체성이다. 그러나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하며 나의 삶을 만들어 가고 싶다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나’로 채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으로 있을 때 가장 자유로움을 느끼며 자신을 사랑하는 순간이 된다. 그러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을 필사적으로 사수하기 위해 아침에 일찍 눈을 뜬다.
미라클 모닝을 외치며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이들도 많다. 함께 독서하고 토론하고 있는 모임에서도 꽤 많은 분이 미라클 모닝을 위해 새벽 5시 전에 일어난다고 한다. 나도 처음에는 새벽 5시 전에 일어나는 것을 목표로 해보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는 오후 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각자의 생활 리듬과 체력에 맞게 일어나는 시간을 정해야 한다. 내가 정한 미라클 모닝 기상 시간은 6시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딱 1시간.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온 정신과 마음을 집중해서 오직 ‘글쓰기’에만 몰입한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무라카미 하루키, 김연수, 스티븐 킹, 베르나르 베르베르-은 하루에 최소 3시간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엄마로 살면서 3시간은 불가능하지만, 최소 1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기로 다짐했다. 가장 고결하고 농밀한 시간에.
<아티스트 웨이>를 쓴 줄리아카메론은 아침에 글을 쓰는 리츄얼을 통해 우리가 아티스트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아티스트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아침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는 실로 이전에는 없던 나만의 글이 엮어지고 꿰어지는 시간으로 변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진정한 아티스트의 길을 걷는다. 무엇보다 그렇게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스스로 충만함을 누릴 수 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빈 노트 위에 막막함을 느낄 때가 있다. 처음부터 에세이 한 편을 뚝딱하고 창작해 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모닝 페이지를 쓸 때는 그럴 필요도 없고 오히려 그렇게 쓰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그저 자신이 겪었던 일이나 그것으로 느낀 감정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쭉 나열해 보는 것이다. 이야기가 엮어지고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조각조각 이야기들을 산발적으로 흩어놓아도 된다. 물감을 이리저리 떨어뜨리고 빨대로 불었던 어릴 적 놀이처럼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쓰고 싶은 대로 아무것이나 떨어뜨려 놓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매일 쓰는 것이다. 창조하는 능력은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을 만들어서 마지막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생기를 불어넣는 것, 죽어있던 나의 상태를 일깨우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글쓰기를 하는 것은 그동안 죽어있던 감각들을 총동원에서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과정인 것이다. 작동되지 않아 삐걱대고 엄마로만 살면서 죽어있던 감각들이 하나씩 되살아나면서 점차 나만의 작품으로 완성되어 간다.
누군가는 미라클 모닝을 위해 일찍 일어나서 명상하거나 독서한다고 한다. 그 어떤 방법이든 그것은 자신에게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죽어있던, 그래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던 나의 감각들이 되살아나서 온전한 나로 존재하게 만든다.
모두에게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숨겨져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그 감각을 되찾았고, 그렇게 나의 시간을 지배하는 방법을 찾았다.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기대감으로 매일 글을 썼다. 영영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던 생명력이 다시 대지에 움트듯 내 안에 싹텄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생명을 키워냈다.
엄마로 사는 동안 내 안의 창조성이 사라지고 그저 엄마로서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버겁고 억울했다. 이제는 봄에 피어오를 생명력이 그러모아지듯 모닝페이지를 쓴다. 아주 사소한 변화가 삶 전체에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오늘도 나만의 향기가 가득 피어오를 하루를 기대하며 아침에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