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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Oct 11. 2023

글쓰기에 재능이 필요할까

하루키의 말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통해 나름의 답을 전하고 있다. 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문학적 재능’이라고 말한다. 문학적 재능이 전혀 없다면 사실 소설을 쓰고자 하는 열망도 품을 수 없을 것이고, 글을 계속 써내려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루키는 ‘문학적 재능’은 필요한 자질이라기 보다는 자동차의 연료처럼 전제조건이라고 말한다. 재능이라는 것이 그것을 가진 사람조차 스스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본인이 얼마만큼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막상 달려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자동차처럼 앞으로 달릴 수 있는 주행거리가 표시되어 연료의 양을 측정해주면 좋으련만 인간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가늠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두 딸을 키우면서 아이마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기질과 재능이 다르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다. 두 아이를 향한 나와 남편의 양육태도가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비교적 동일한 환경과 태도로 아이들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두 아이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고, 같은 상황을 보고 대처하는 자세도 너무나 다르다. 무엇보다 부모이자 제삼자의 눈으로 판단컨대 두 아이가 지닌 재능도 분명히 다르다. 


문학적 재능도 본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에게는 주어지고 또 누군가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은 자에게 재능까지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다고 꿈을 꾸었지만 막상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처절한 한계끝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일치는 늘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천재적인 재능으로 탁월함을 인정받는 작가는 실제로도 몇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눈에는 분명 천재로 보이는 하루키도 본인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작가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글쓰는 작가가 모두 셰익스피어나 찰스 디킨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문학적 재능의 여부는 조금 더 관대하게 다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도감이 든다. 


하루키가 말하는 다음으로 중요한 자질은 ‘집중력’이다. 그가 정의하는 집중력은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붓는 능력’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재능의 양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되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집약해서 쏟아붓는 능력은 스스로 갖춰야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을 위해 하루키는 하루에 3시간에서 4시간 정도를 아침에 집중해서 글을 쓴다고 한다. 오직 글을 쓰는 일에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예술가이자 작가들은 불규칙적으로 그때그때 떠오르는 감각을 의지해 글을 쓸 것 같지만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하루키처럼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글을 쓴다.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에  ‘지속력’을 꼽는다. 하루에 4시간 이상 글쓰는 일에 집중한다고 한들 그것을 고작 며칠만 하고 그치는 것이라면 작품을 완성할 수 없다. 특히 하루키처럼 장편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집중력을 1년 이상 유지해야 하는 지속력이 필수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재능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지만 뒤의 두가지-집중력, 지속력-은 후천적으로 트레이닝을 통해 키워나갈 수 있다고 하루키는 말한다. 


하루키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그것을 듣는 작가의 꿈을 키우는 독자들에게도 반가운 말이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쏙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p. 122


하루키처럼 장편 소설을 쓰겠다는 거대한 포부는 품지 못했지만 모닝페이지를 쓰며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강한 열망을 품었다. 그런 마음을 품게 한 것이 내 안에 심겨져 있는 재능의 씨앗 덕분인지 아님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나로서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을 품게 됐다는 것이 나에게는 기적이다. 굳이 쓰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대다수이지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뭔가를 찾았다면 재능은 당장 고민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 마음을 품게 된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고 격려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 다음에 할 것은 바로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각자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끌어모아 집중하여 그것을 지속하는 힘을 키워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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