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사람, 그리고 음식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다. 물론 서울에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인천 출신 경기도민이지만, 어쨌거나 내 생활 반경은 언제나 도시에 속해 있었다. 쉼을 얻기 위해 때로는 도시가 아닌 곳으로 달아났다. 그래도 나는 어쩔 수 없는 도시형 인간이었다. 번화가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면서, 볕이 좋은 날 번잡한 거리를 거닐면서 자주 그렇게 생각했다. 그걸 산티아고에서도 새삼 느꼈다. 페루 리마를 끝으로 빌딩이 들어선 도시와 작별한 지 딱 열흘 만이었다. 낯설지만 익숙한 도시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작은 행복들을 새로 누렸다. 또 필연으로 맞닿게 된 사람들을 깊이 생각했다.
산티아고는 완전한 도시였다. 공항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명품 화장품 브랜드가 면세점에 즐비했다. 도심으로 나가는 교통수단에는 시스템이란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 물가로 도시를, 저렴한 남미와의 작별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시내까지 22000페소. 그러니까 우리 돈 30000원이다. 칼라마에서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쓰지 않았을 돈이라 가슴이 또 한번 쓰렸다.
에어비앤비는 깔끔한 신축 아파트들이 즐비한 곳에 있었다. 부촌 지역 같았다. 디자인 호텔처럼 깔끔한 방 안에 짐을 풀고 창 밖을 보니 높이 솟은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이 고됐던 모양이다. 깔끔한 욕실, 따듯한 물을 펑펑 쓰는데도 수압이 유지되는 샤워, 사각사각 포근한 침대, 여기저기 충분한 콘센트, 끊김 없는 와이파이가 나를 완전히 녹였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이 모든 게 참 간절했던 지난 몇 주였다. (리마에는 고작 하루 머물렀으니까 빼자)
이튿날에는 알람도 없이 편안하게 눈을 떴다. 나의 촘촘한 여정 가운데 산티아고는 별다른 계획 없이 여유를 갖고 둘러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였다. 봄가을 날씨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이기도 했다. 날이 제법 쌀쌀했고 빗방울이 오락가락했지만 꽤 먼 거리를 신나게 걸었다.
딱히 볼거리가 풍부한 여행지가 아니라서 오히려 모든 게 수월했다. 혼자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온몸 가득 활기가 차올랐다. 케이크가 맛있다는 카페에 들어가 홀로 디저트를 먹었고, 도시 곳곳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샀다. 서울 광화문이나 이태원, 여의도 한복판에서 광합성하듯 도시의 기운을 들이마셨던 여느 휴일 중 하루 같았다. 서울에서 그랬듯 산티아고 거리 구석구석으로 걸음과 시간을 함께 흘려보냈다. 마치 여행자가 아닌 것처럼, 여기 잠시나마 속한 사람인 것처럼 태연히 거리를 쏘다니는 게 아늑했다.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 없는, 난이도 낮은 도시 여행이 시작되자 곁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 깊이 들어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산티아고는 우유니 단체 카톡방을 중심으로 만난 동행들이 (H언니와 J오빠 부부를 빼고) 모두 한곳에 모이는 마지막 여행지였다. 우리는 끼니를 함께 챙겼고, 산티아고의 낮과 밤을 같이 만끽했다. 발파라이소로 여행 속의 짧은 여행도 다녀왔다.
나와 한 살 차이가 나는 S언니와는 쿠스코 여행사 사무실 앞 계단에서 처음 만났다. 마추픽추 트랙킹 얘기를 하면서 잔뜩 상기돼서는, 투명하게 반짝거리던 그 눈동자를 기억한다. 우리는 라파스에서 한 밤을 같이 자고 우유니에서도 때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러다 반나절 간 산티아고 구석구석을 둘이 돌아다니면서 시시콜콜하고 깊은 얘기를 나눴다.
S언니는 본인 내면의 이야기가 분명하고 풍부한 예술가였다. 남들의 시선이나 기준과 맞설 만한 중심을 가진 진하고 멋진 사람이기도 했다. 우리는 첫사랑 이야기부터 가장 최근의 연애, 결혼과 커리어, 인생의 목표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했다. 번화가 한복판을 다니면서, 행인들이 이해하지 못할 언어로 나누는 매우 사적인 이야기. 묘하게 치유받는 기분이었다. 처한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또래들이 고민들은 양태가 비슷했다. 동지를 만난 것 같았다.
K오빠와 SJ이는 일찍이 페루 리마 한인민박에서 만났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K오빠가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출장을 와서 한인 민박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그는 학교를 마저 졸업하느라 잠시 일을 쉬었다가 복직 직전 남미 여행을 왔다. 셔츠는 복직에 대한 예행연습 같은 것이었다. 그는 남미를 여행하는 내내 셔츠를 포기하지 않았다. 쿠스코에서도, 우유니에서도, 산티아고에서도. 그의 셔츠들은 언제나 정갈하게 각이 잡혀 있었다. 매일 밤 손빨래를 하고 고이 말린 덕택이었다.
그렇게 철저한 사람이 기념품 앞에만 서면 앞뒤 따지지 않고 지갑을 여는 게 흥미로웠다. 돌이켜보니 그건 K오빠가 여행을 대하는 방식과 맥이 닿아 있었다. 매 순간 마치막처럼 최선을 다하는 것. 그래서 페루의 수공예품을 전부 쓸어 담을 기세로 골라잡을 수 있었다. 얼어붙는 우유니 사막의 새벽을 견디며 혼자 밖에서 별을 봤다. 여름용 스니커즈를 신고 해발 5000m가 넘는 비니쿤카에 올랐다. '칠레 와인'에 잔뜩 신이 나 다 마시지도 못할 와인을 사들고 왔다. 그런 그의 열정에 비춰 나는 여행자로서 스스로에게 조금 더 채찍질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 몸집만 한 파란색 캐리어를 끌고 검은색 캡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리마 한인민박에 들어선 소녀. 그게 SJ이의 첫인상이었다. 함께 다니면서 지켜보니 작은 체구,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달리 강단이 제법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하고 느긋한 모습이 나보다 한참 더 어른 같았다. 제 아무리 춥고 피곤한 상황에서도 그저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띠고 나직하게 "너무 추워요", "졸려요" 하고 말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먼 곳으로, 오로지 자비를 모아 여행을 온 것이 대견했다. 여행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이야기하던 SJ 특유의 목소리와 표정이 생생하다. 중간에 일정이 꼬여 일종의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SJ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았다. 대신 혼자 3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일행들을 뒤따라왔다. 그와 같은 나이었을 때 나는 얼마나 나약하고 의존적이었던가를 생각하면 부끄러워졌다. SJ가 앞으로 살아나갈 날들이 꽤 알찰 거라는 걸 예감할 수 있었다. SJ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내 예감보다도 그의 내일이 더 단단하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이 귀한 일행들 덕분에 내게 산티아고는 식도락 측면에서 엘도라도 같았다. 나 홀로 여행자에게 다시없을 사치의 기회가 여기 전부 있었다. 한국식 후라이드 치킨과 삼겹살, 라볶이, 김치찌개와 계란 프라이로 해치우는 흰쌀밥 한 공기. 한국에선 손 뻗으면 닿았던 당연한 호사를 20일 만에 산티아고에서 다시 누렸다.
우유니에서 아타카마로 1박 2일 투어를 통해 넘어간 일행들까지 모두 산티아고에 입성한 7월 13일, 아침 겸 점심으로 치킨을 먹었다. 성대한 축제의 시작이었다. 한인타운에 있는 '치킨 스토리'의 명성은 남미를 여행하는 내내 익히 들어왔다. 단단히 각오를 했는데도 한 달 만에 접하는 치킨 맛에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치킨 무에서까지 천국의 맛이 나는 것 같았다.
한인타운의 아씨마켓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마법의 상점이었다. 라면, 햇반, 비빔참치, 된장국 블록, 간편식 전복죽, 비락식혜까지. 터무니없는 가격표가 붙은 그 모든 것을 신나게 사들였다. 이런 가격일 줄 알았더라면 무리해서라도 한국에서 더 들고 왔어야 한다고 몇 번이나 푸념을 했다. 먹어치우면 되는 걸 뭐가 짐스러워 인색하게 굴었나 깊이 후회했다. 그리고 이내 그 물건들을 구입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포만감을 느꼈다.
아침저녁으로 S언니와 SY, M, J가 머무르는 에어비앤비에 모여 푸짐한 잔치를 벌였다. J의 지인이 산티아고 교민이라서 밑반찬을 바리바리 공수받기까지 했다. 매 끼니가 과분했다. 삼겹살, 라볶이, 순대가 상 위에 올랐다. 거기 와인보다 비싼 막걸리와 와인 오프너보다 싼 와인을 곁들였다. 얼큰한 김치찌개, 오징어포, 김과 함께 흰쌀밥(=햇반)을 한정식이라도 되는 양 먹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한국 음식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 경험의 역사에서 산티아고가 분기점이 되리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너무 싸다는 이유만으로 잔뜩 사 온 와인은 아무리 마셔도 줄지 않았다. 한국에서라면 백화점에 포장돼 있을 것 같은 와인들이 동네 술가게에서 대충 쟁여져 있었다. 거기서 사온 와인을 저녁을 마친 뒤에도 한참 홀짝거리면서 다 함께 '꽃보다 청춘' 페루 편을 봤다. 고작 열흘 전에 지나온 여행지로 잠시 추억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희열, 윤상, 이적이 마추픽추에서 눈물을 보일 때는 덩달아 눈물이 났다. 행복이 뭐 별건가 싶었다. 사흘에 불과했지만, 긴 여행 속에 짧은 일상이 생긴 것만 같아 심신이 평안했다. 좋은 사람들과 한국 음식을 요리해 먹고 마신 순간들은 교환학생으로 벨기에에 머물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이 도시를 끝으로 당분간 다시 홀로 다녀야 한다. S언니는 뉴욕으로, K오빠는 서울로 돌아가고 SJ이와 SY, M, J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나는 파타고니아로 향한다. 헤어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적적함과 막막함이 가슴에 사무쳤다. 그새 깊어진 정이 무서웠다. 우리는 한국에서의 재회를 기약하며 작별했다. 남미에서 겪은 가장 커다란 이별이었다. 여생에 이변이 없는 한, 이 대륙에서 다시 이만한 크기의 이별을 겪을 일은 없을 터였다.
#소소한 여행 팁
1. 칠레에서는 출금이 잘 안 된다. 한 번에 출금할 수 있는 돈이 너무 소액이라 수수료가 많이 나갔다.
2. 산크리스토발 전망대 인근은 대학가라서 시끌벅적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 같은 곳이랬다. 클럽이나 바가 많이 보였다.
3. 그렇지만 전망대 꼭대기에서부터 시내로 나오는 택시나 우버는 잘 잡히지 않는다. 케이블카 끊기기 전에 하산하자. 케이블카 끊겨도 갈 방법 있겠거니 하면서 걸어 내려오다가 하마터면 시내까지 걸을 뻔했다.
4. 떨어진 생필품을 지금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 고민했는데 돌이켜보니 아르헨티나, 브라질 물가가 더욱 비쌌다.
5. 산티아고 공항은 비교적 노숙을 할만했다. 자정을 넘겨서까지 영업하는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음식을 시키고 오래 버텼다. 테이블에 엎드려 선잠도 잘 수 있었다. 가게가 문을 닫은 뒤에는 의자가 있는 곳으로 옮겨서 조금 더 시간을 때웠다.
6. 발파라이소를 당일치기로 끝내려면 새벽같이 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 애매한 아침 시간 버스를 탔더니 도착하자 점심때였다. 점심 먹고 좀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돌아오는 버스를 타야 했다. 동선과 시간문제로 파블로 네루다 생가를 못 가서 너무 아쉽다.
7. 아씨마켓은 일요일에 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