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바깥을 사는 법
시간은 여행을 하다 겪은 고난을 무용담으로 만들어준다. 그 덕에 아주 아찔한 일들조차 다음 여행을 위한 내공이 되고, 또 되새김질할 추억이 된다. 내게도 기록할만한 고난들이 있었다. 중국 만리장성에서 내려가는 케이블카 막차를 놓칠 뻔한 날, 이집트 카이로에서 베두인 사기단에게 낚여 피라미드 못 볼 뻔한 날, 아이슬란드 화산 터져서 요르단에 갇힐 뻔한 날. 돌이켜보니 그 고난들은 결코 사소하지는 않았지만 하나같이 '뻔한' 것들이었다. 뻔한 수난사에 획을 긋는 일이 기어코 일어났다.
다음 목적지는 칠레 산티아고였다. 우유니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방법은 하나. 칠레 칼라마(or깔라마)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한 뒤 거기서 비행기를 타는 거였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유니-칼라마는 '차 내식'까지 나오는 최우등 침대 버스인 크루즈 델 노르떼(Cruz del Norte)가 달리는 구간이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이동하는 날은 12일, 일주일에 딱 한번 크루즈 델 노르떼가 운행하지 않는 수요일이었다.
할 수 없이 로컬 버스표를 샀다. 11 Julio라는 이름의 버스 회사였던 것 같다. 매표소 아저씨는 칼라마까지 가는 데 8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이 버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블로그 포스트를 한 개 찾기는 했는데, 볼리비아와 칠레 국경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조금 있다는 정도의 내용뿐이라 불안감만 더해줄 뿐이었다. 일행 중 H언니 J오빠 부부와 SJ, SY이가 같은 버스를 탄다는 사실만이 위안이 됐다.
나름대로 상황 파악을 하려고 버스표를 산 뒤에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6명의 현지인을 통해 팩트 체크를 했다. 6단계 크로스 체크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거의 안 해봤던 것 같다. 나는 이 버스의 여정을 그만큼 엄중한 사안으로 대했다. 다른 운수 회사 관계자 2명, 내가 머물던 호텔 직원 2명, 동네 마트 직원 1명, 레스토랑 직원 1명.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그 버스로 칼라마까지 가는 데 딱 8시간이 걸린다고. 막힐 일도 없다고 했다. 허허벌판을 달려가는 거니까 예상 도착 시간이 크게 달라지진 않겠거니 생각했다.
출발 당일 이른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터미널로 향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에메랄드색 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버스 앞은 농산물, 잡화, 이불 등 종류도 갖가지인 짐을 잔뜩 끌어안은 현지인들로 이미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표를 미리 사둔 게 다행이었다. 캐나다와 영국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여행객 서너 명은 뒤늦게 입석으로 합류했다. 광역버스도 아니고 8시간짜리 국제선 버스인데 말이다.
버스는 보기보다도 문제가 많았다.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데 창문과 창틀의 아귀가 대부분 맞지 않았다. 바닥 어딘가에도 구멍이 뚫려 있는 게 분명했다. 살을 찢고 발을 떼어 버릴 것 같은 한기가 창틈과 바닥에서 동시에 서서히,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방한 용품을 전부 착용하고도 견딜 수 없어서 의자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 엉덩이의 온기로 얼마간 발의 감각을 되살릴 수 있었다. 잠을 청했으나 잘 수 없었고, 자면 안 될 것 같았다. 의식을 잃으면 죽음에 이를 것 같은 추위였다.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버스가 볼리비아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4시간이 지난 뒤였다. 볼리비아는 국경을 관리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제대로 된 건물이 없다시피 한 곳이었다. 심사 자체도 싱겁게 끝났다. 당연히 화장실은 없었다. 사람들은 쭈뼛쭈뼛 허허벌판으로 흩어져 숨을 곳을 찾았다.
고난의 향연이 시작된 건 그 뒤부터였다. 버스가 칠레 검문소로 바로 향하지 않고 허허벌판에 멈춰 서더니 사람도, 짐도 모조리 내리게 했다. 그리고는 모두가 마냥 기다렸다. 흙먼지와 모래바람, 한낮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광선을 맞으며, 하염없이.
"이 버스는 볼리비아 버스이기 때문에 여기서 칠레에서 오는 버스를 기다릴 거야. 그러면 우리가 볼리비아로 가는 사람들이랑 버스를 바꿔 타는 거지."
누군가 이렇게 설명을 했다. 처음에는 15분이면 된다고 했는데 버스는 오지 않았다. 시간이라는 게 정해져 있지를 않은 걸까, 담당자 모두가 휴대폰을 쓸 생각이 없는 건가, 두 버스는 우연히 만나기로 작정이라도 한 걸까.
한 시간 넘게 오만가지 생각을 펼치고 나니 드디어 칠레 쪽에서 버스가 한 대 왔다. 훨씬 몰골이 좋은 차였다. 그리고 다시 의문의 기다림이 시작됐다.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다시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불과 20분 떨어진 곳에 칠레 검문소가 있었기에 마음이 더욱 허탈했다.
칠레 국경은 비교적 삼엄했다. 직원 네 명이 모든 승객의 짐을 열어 하나하나 검사했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질문을 가장한 온갖 불만들이 여러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버스 중간 접선 방식의 월경 시스템을 고안한 사람은 누구인지, 어떻게 이렇게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와글와글해지자 누군가 지나가는 것처럼 이런 말을 툭 뱉었다.
"기준이 효율은 아닌가 보지.”
그렇다. 여긴 남미, 어쩌면 기준이 다른 곳이었다. 20여 일간 훈련한 '남미 타임'에 나는 여태 적응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더 내려놓음으로써 분발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불안에는 깨달음도, 오기도 약이 못 됐다. 이미 국경에서만 4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니까 6명의 취재원이 말한 8시간이 이미 다 지나간 셈이었다. 칼라마까지는 지금까지 온 만큼을 다시 가야 한다. 날아간대도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게 뻔했다. 문제는 내가 예약해 둔 산티아고행 비행기가 오후 7시에 이륙한다는 거였다. 가망이 없었다. 내 속을 알리 없는 해가 언제나처럼 스멀스멀 지평선 아래로 허물어졌다. 황토의 평원 위로 스며든 노을은 야속하리만치 아름다웠다.
결국 칼리마 시내 터미널에 버스가 다다른 건 오후 6시 30분쯤. 출발한 지 13시간 만이었다. 아타카마로 가는 일행들과는 잠시 헤어져야 했는데,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 칼라마 공항으로 내달렸다.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7시. 다행히 항공편이 30분 연착돼 있었다. 아주 잠깐, 남미 타임의 순기능인가 싶었다. 국내선이니까 30분이면 어떻게든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체크인 카운터에 사정을 했는데 직원이 영어를 하지 못했다.
결국 비행기를 놓쳤다. 30만 원을 더 내고 오후 9시 표를 다시 샀다. 허탈했다. 30만 원이면 웬만큼 쾌적한 숙소에서 일주일은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먹을 것 아끼고, 가끔은 잠자리를 포기하면서 한 푼 두 푼 아꼈던 돈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게다가 비행기표를 다시 사면서 내가 체크카드를 하나 잃어버렸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국경에서 돈 정리하다가 흘린 모양이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끼니 해결할 만한 휴게소도 없는 길을 달려오느라 온종일 굶었다는 게 그제야 떠올랐다.
한국을 떠나온 지 22일. 이날 처음으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부둥켜 앉고 엉엉 목놓아 울고 싶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손쓸 도리 없이 계획이 어그러졌다. 못내 서럽고 속상했다. 라운지 소파에 몸을 던지고 숨어서 울 곳이 없나 두리번거렸다. 그때 문득 시구 한 줄이 떠올랐다.
확실성은 아름답지만
불확실성은 더욱 아름답다.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문장이다. 확실과 안주를 포기하고 불확실을 향한 도전의 여행을 떠나와서는, 다섯 시간의 오차에 거의 무너진 내 마음이 사무치게 가여워졌다.
크고 빠르고 우악스러운 세상, 도처에 불가항력적인 변수가 즐비하다. 어떤 것들은 보이지조차 않다가 삶의 한가운데를 훅 치고 들어온다. 인간의 계획이란 얼마나 작고 연약하며 알량한가. 그게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는 건 어찌나 부질없는 일인가.
나의 뜻이 하는 일의 한계를 알면서도, 사는 동안 자주 잊었다. 삶은 예측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여태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 불쑥불쑥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은 그 원리의 압축판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좌충우돌의 틈바구니마다, 더 큰 계획의 일부로 기능하는 예상 밖의 행복과 아름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흙먼지 자욱한 차창 밖에서 타오르던 이날의 노을 같은 것들. 더 말랑말랑한 태도와 뜻밖? 그게 뭐 어때서! 하는 배포 좋은 자세로, 앞으로 펼쳐질 날들을 대해야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칼리마 공항 라운지 구석에서 딱딱한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며, 나는 의외로 쉽게 다시 기운을 차렸다.
#소소한 여행 팁
1. 우유니에서 칼라마로 수요일에는 절대 가지 말자
2. 볼리비아 출국세가 20 볼인데 볼리비아 화폐만 받는다고 해서 현금을 준비했다. 그런데 삥을 뜯듯이 랜덤으로 받아갔다. 나는 운이 좋아서 출국세를 내지 않았고, 대신 애꿎은 20 볼을 소진하기 위해 싸구려 과자를 잔뜩 샀다. 그래도 랜덤이라 혹시 모르니 20 볼을 남겨가지고 가자.
3. 칼라마는 치안이 좋지 않기로 악명 높은 도시다. 나와 문제의 로컬 버스를 함께 탔던 한국인 대학생 두 명도 결국 칼라마에서 지갑을 전부 털렸다.
4. 국경에서 먼저 입국 심사를 받는 것에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초조해 말자.
5. 일행 SY이는 칼라마 시내에서 혼자 숙소를 잡느니 차라리 공항에서 노숙을 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면서 노숙을 하고 이튿날 아침 산티아고행 비행기를 탔다. 적당히 할 만한 했다고 한다.
6. 우유니까지 써내리는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것 같아서 상기시켜본다. 영어, 돼야 할 것 같은 곳에서도 잘 안된다. 영아 수준의 스페인어 실력과, 그들도 알 법한 쉬운 영어 단어, 구글 번역기 등을 총동원해 소통을 해왔다.
7. 사실상 온종일 이동만 한 날을 굳이 따로 빼서 멘탈 붕괴와 회복과정을 구구절절 서술했다. 저 문제의 버스에 대한 경고를 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