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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th in May 06. 2019

나미브: 붉은 바다

생사의 고개

20170806~20170807:
Namib-Naukluft NationalPark, Sossusvlei Dunes, Namibia


사막의 바위산을 병풍처럼 두른 오두막에서 눈을 떴다. 여명에 물든 바위 끄트머리가 그윽했다. 나미브 사막의 한가운데를 향해 온종일 달려가야 하는 날, 20일간의 여정 중에서도 이동거리가 가장 긴 날이라고 음바시는 설명했다. 나마 족 언어로 ‘아무것도 없는 땅’을 뜻하는 ‘나미브’는 세계에 단 하나뿐인 해안 사막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나미브 모래 바다(Namib Sand Sea)’라는 이름으로 등재돼있다. 나미브 사막의 모래는 내륙에서 적갈색을 띠다가 해안에 이르러 노란색이 된다고 했다. 바다와 맞닿은 끄트머리와 달리 내륙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서 남서풍을 타고 밀려드는 안개만이 수원(水源) 역할을 한단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스프링복 다섯 마리. 베다니 마을에서의 휴식. 특이한 새집. 20170806, 나미비아


황무지비옥


장거리 이동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뜻밖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럼에도 한결같이 아름다운 창 밖의 경치 덕분이었다. 자꾸 들여다볼수록 결코 단조롭지 않은, 신의 작품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장관이 온종일 펼쳐졌다. 오후가 되기 전까진 창 밖으로 흙빛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졌다. 땅과 하늘의 원형을 보는 것 같았다.


해가 다 지기 전에 달은 이미 중천에. 화성에 온 것 같은 기분. 20170806, 나미비아

 

땅에 바짝 붙어 자라나는 제법 녹색을 띤 관목들은 단조로운 풍경에 색채와 곡선을 더했다. 듬성듬성 나무들이 서 있기도 했다. 먼 곳의 나무들은 외딴곳에서 제각기 외로움을 견디고 있었다. 풍경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건 이따금씩 관목들 틈을 뛰어다니는 스프링복들 뿐이었다. 극도로 메마른 모래 바다 한가운데, 아무것도 살지 못할 것만 같은 곳에서도 생명은 기어코 적응을 해냈기에 고유의 동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눈 앞의 매 순간이 소중했다. 아무것도 없음 자체가 지극히 다채로울 수 있음을 보았고, 어디서건 기어코 삶을 이어가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 지금까지 감각해온 풍요가 사실 편견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막의 여러 얼굴들을 감상하는 사이 어느덧 창밖의 모래와 바위들이 노을에 맞닿아 한껏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 나미브의 심장이었다.


지는 해를 화이트화인 잔에 담아보았다. 석양을 마시는 기분. 20170806, 나미비아


죽음의 한가운데서

영원살다


아침 일찍 도착한 이날의 첫 목적지는 소서스블레이(Sossusvlei). 말라버린 나무들과 드넓은 게 펼쳐진 붉은 모래 벌판이 쓸쓸하고 뜨거운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sossus’는 ‘막다른 곳’을, ‘Vlei’는 습지를 뜻한다고 했다. 바다에 가닿지 못하고 소멸해 사라진 강의 기억을 품은 곳.


소서스블레이 가는 길. 죽은 나무 곁에 살아있는 오릭스. 정물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20170807, 나미비아

소서스블레이에서 조금 더 들어간 곳에 데드블레이(Deadvlei)가 있었다. 죽은 습지. 400m에 달하는 높이를 자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모래언덕들로 둘러싸인 이 습지의 바닥은 주변의 장벽과 달리 새하얬다. 습지로서의 기억, 물의 흔적을 간직한 진흙이 굳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었다.


데드블레이 한가운데에는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이라는 나무 몇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다. 300살이 된 채로 죽은 이 나무들은 죽은 지 700년 가까이 됐으나 너무 건조한 기후 탓에 미처 썩지도, 사라지지도 못했다. 살아서 존재한 시간보다, 죽은 채로 존재한 시간이 긴 건 어떤 기분일까.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는 물길을 향해 나무들은 더 깊이, 더 멀리 필사적으로 뿌리를 뻗치며 지난한 최후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었다. 생의 숭고함, 장엄함이란 그런 것일까.


한때는 호수, 혹은 강의 바닥이었을 곳. 붉은 모래장벽에 포위된 바닥. 20170807, 데드블레이, 나미비아


새파란 하늘 아래 빨간 모래산, 흰 바닥에 빼쭉 솟아난 검은 나무. 타오르는 태양 아래의 모든 게 너무 강렬해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것이 서서히 죽어버리는 최후의 장소로 손색 없는 곳이었다. 죽어서도 사라지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처럼 매일 뜨거운 태양에 타들어가는 곳. 기막힌 지명이라는 걸 실감했다. 가만히 마른 가지들에 손을 대어보았다. 죽은 지 오래인 그것들은 태양에 달아올라 아주 뜨거웠다.


박제된 나무들. 기이한 아름다움이었다. 잠깐 서있었을 뿐인데 얘들이 왜 죽었는지 실감나게 해준 열기와 건조함. 20170807, 데드블레이, 나미비아


붉은 모래산 위에 서서


데드블레이에서 듄 45(dune 45)까지 사막의 모래 위를 달려가야 해서 크리스를 두고 4륜 구동 지프차를 탔다. 세스림에서부터 45km 떨어져 있는 이 언덕이 유일하게 사람이 오를 수 있도록 허락된 곳이다. 차에서 내려 올려다보니 하늘과 맞닿은 꼭대기가 까마득해 보였다. 그 위를 까맣게 개미처럼 줄지어 오르는 게 사람들이었다. 데드블레이에서 섣불리 언덕 하나를 올라가려다가 체력을 탕진한 뒤였기 때문에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끄럼 타듯이 모래언덕에서 굴러내려오는 바람에 주머니마다 들어간 모래는 아무리 빼내도 계속 나와서 바지까지 무거웠다.


망설이는 내게 백발이 지긋한 루가 다가왔다.

“수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래 언덕에 오를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야. 놓칠 생각이야?”

그토록 도발적으로 물어오시니 놓칠 수가 없었다. 크리스 식구들과 함께 한걸음 한걸음, 끝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 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붉은 모래 바다의 파도 모서리 위를 걷는 셈이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숨이 차서 그렇기도 했고, 감당하기 힘든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했다. 한낮의 햇살을 받아 빛나는 붉은 모래는 너무 곱고 예뻐서 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높이를 알 수 없을  것 같은 붉은 모래의 착시. 바닥에서 정상도 아니고 중간 높이를 바라본 게 맨 오른쪽 사진이다. 20170807, 듄45, 나미비아


더는 못 갈 것 같은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자 일종의 희열이 느껴졌다. 다음 한 발짝 다음 한 발짝 ‘저기 호세가 있는 곳 까지만, 저 앞에 캐티야가 있는 곳 까지만 가자’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500만 년의 시간을 거쳐 칼라하리 사막으로부터 오렌지 강을 따라 이 멀리까지 불어온 170m 모래의 꼭대기. 멀리 오로지 모래로만 이뤄진 높고 빨간 다른 언덕들이 보였다. 양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지탱되는 언덕들이 정말 붉은 바다처럼 보였다. 장관이었다.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 투성이구나 싶었다.


듄 45 정상에서. 영상 끝부분에 높이를 실감할 수 있는 사람 크기가 나온다. 20170807, 나미비아


마지막 목적지인 세서림 계곡(Sesriem Canyon)을 들렀다가 숙소를 향하는 길에 크리스가 고장이 났다. 도로가 거칠어지면서 이리저리 부서지고 튀어 오른 돌덩이가 차체 하단의 파이프 하나를 부쉈다고 한다. 모두가 합심해서 간신히 크리스를 고쳤다. 숙소에 도착한 건 밤이 아주 깊은 뒤였다.


듄 45를 오르느라, 크리스를 고치고 어렵사리 숙소에 도착하느라 잔뜩 지친 식구들을 달래준 건 숙소 직원들이 불러준 아프리카 민요였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저녁을 먹는 동안 직원들이 쭈뼛쭈뼛 수줍은 미소와 함께 마당 한가운데로 다가왔다. 그들은 목청을 가다듬더니 악기도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된 노랫말이 청아하고 높은 소리로 화음을 이뤘다. 한(恨)과 비슷한 특별한 무언가가 서려있는 듯했다. 사방이 허허벌판인 사막에 막힘이 없어서 그 신비로운 목소리들은 아주 멀리까지, 밤의 깊이만큼 퍼져나갔다.


노란 페트라 같기도. 점점 더 가물어가면서 계곡이 무너져가는 중이라고 했다. 20170807, 세서림캐년, 나미비아
크리스를 고치는 동안 신비롭고 황홀한 색으로 저물던 저녁해.  20170807, 나미비아





#소소한 여행 팁

1. 간식이 떨어졌다면 베다니 마을에서 사두는 것이 좋다. 제법 큰 마트가 있다. 마을 입구의 휴게소 겸 카페에서 파는 커피가 아주 맛있다.

2. 데드블레이, 듄 45 갈 땐 반드시 얇은 긴팔 옷을 하나 가지고 가자. 물도 충분히 마시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뜨겁고 건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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