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도 한계도 의미 없는 곳
아프리카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조금씩 아껴 읽던 이제니 시인의 ‘아마도 아프리카’를 마침내 다 읽었다. 더 이상 한국어로 된 텍스트가 남아 있지 않았다. 가산을 탕진한 기분이 들었다. 읽어치울 텍스트가 사라지고 나니까, 이제까지 아주 오래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창 밖의 광경처럼 마음이 텅 빈 기분이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곳은 부시맨이 직접 가이드를 맡아 사막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투어 장소였다. 우리를 안내할 부시맨의 이름은 프란스라고 했다. 프란스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까맣고 탄력 있는 피부 아래 숨어있던 새하얀 이가 반짝거렸다. 그의 영어에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악센트가 실려 있었다. 마치 다른 언어인 것처럼 리듬감이 넘쳐서 따라하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프란스는 부시맨의 언어로 된 진짜 이름도 알려주었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똑 똑 하고 혀를 튀겨 발음하는 흡착음(click consonant: 한글로 뭔지 찾느라 고생) 때문이었다. 프란스의 영어가 독특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코이산어(Khoisan languages)라고 불리는 부시맨의 언어는 클릭 발음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노래처럼 아름다운 언어였다. 입의 모든 근육을 한껏 끌어다가 지저귀는 것 같았다. 클릭 발음 7개를 포함해 몇 가지 표현을 열심히 배웠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남은 건 프란스가 장소를 옮길 때마다 사용했던 ‘‘어서 가자 / 다음으로 가자’ 정도다. 적을 수 없지만 누군가 시키면 발음할 수 있는 네 음절의 말이다.
손끝을 스치기만 해도 뜨거운 모래 위를 그는 맨발로 성큼성큼 걸어 다녔다. 부시맨들의 벗은 발은 80도까지 견딜 수 있다면서. 그는 부시맨의 방식으로 모래 속에 숨은 여러 가지 벌레들을 용케 불러내었고 육안으로는 결코 보기 힘든 먼 곳의 초식동물들을 손쉽게 찾아냈다. 우리는 카메라 줌을 잔뜩 당기고 나서야 무리 지어 있는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5만 명 가까이 되는 부시맨들이 사막에서 고유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춰 가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나의 세상과 이들의 세상이 같은 때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기분이 묘했다.
크리스를 타고 스바코프문트로 북향 하는 동안 노먼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최근 몇 년 들어 비가 와야 할 북쪽에는 비가 오지 않았고 사막에는 폭우가 내렸다고 한다. 2~5mm가 와야 할 곳에 95mm의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사막에서 전에 없던 식물들이 자라났단다. 한번에 물 25L를 마신다는 얼룩말의 개체 수도 폭우 덕에 급격히 늘었다. 사람들은 신이 나서 얼룩말 사냥을 했고 언제나처럼 정도를 지키지 못했다. 정부가 아주 최근 들어서야 다시 얼룩말에 사냥 제한 조치를 걸었다고 한다. 남미에서는 눈이 오지 않는 파타고니아와, 너무 쉽게 무너지는 빙하를 봤다. 아프리카에서는 제멋대로 내린 비에 신음하는 사막을 지난다. 이 별이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가 도처에 선명했다.
그 사이 크리스는 열대와 온대의 경계에 도착했다. 아무 곳도 아닌 것 같은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표지판이 서 있었다. 남회귀선(tropic of capricorn)이었다. 국경과는 또 다른 경계. 아픈 지구 위에 보이지 않는 선이 참 많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사막과 초원 사이 물길을 경계 삼던 이 대륙 위에 네모 반듯하게 그어진 국경선들은 얼마나 무자비한 것인지 직접 달려보면서야 새삼 실감한 터다.
여행은 사실 휴식이 못 된다. 낯선 곳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받는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미처 풀리지 못한 피로가 여독으로 쌓인다. 잠시 여행을 멈추고 쉬는 날도 필요하다. 스바코프문트는 쉬는 곳으로 제격인 도시였다. 사막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만 잠시 잊으면 마치 독일의 작은 마을 같았다. 식민 지배의 흔적이라는 사실에 어색했고, 케이프타운을 떠난 지 일주일 만에 느끼는 문명이라서 편안했다.
잘 정비된 팜 비치의 해안가를 산책했고, 아프리카에서만 먹을 수 있는 각종 고기 플래터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Simply Red의 If You Don’t Know Me By Now가 흘러나올 때 와인에 적당히 취한 크리스 가족은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힙한 바에 가서 흥청망청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주말 저녁을 친구들과 보내고 집에 온 것 같아 한 개 남은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웠다.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이튿날에는 전날 예약해둔 액티비티를 즐겼다. 나와 캐티야는 쿼드 바이킹과 샌드 보딩을 선택했다. 사막의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해 콧물이 났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이내 가파른 모래언덕 위를 곡예하듯 질주하는 데 익숙해졌다. 보드라운 모래 위를 미끄러지다 급경사에서 퉁퉁 튀기는 승차감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것이라 아주 짜릿했다.
샌드 보딩도 마찬가지였다. 기름 칠한 합판 하나에 의지해 최고 시속 80km로 모래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건 마치 알라딘의 마법 양탄자를 탄 것 같이 황홀한 일이었다. 소리를 지르려다 이빨에 모래가 잔뜩 끼었지만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썰매를 다시 타기 위해서는 합판을 들고 그 모래언덕을 다시 기어올라와야 한다는 단점이 치명적이었지만.
샌드 보딩 장소에서 바이크를 타고 조금 더 달렸더니 멀리 파란 바다가 보였다. 대서양이었다. 사막에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놀라운 곳에 서서 두 눈으로 직접 그 장관을 본다는 건 더욱 경이로웠다. 끝없어 보였던 모래바다의 끝에 맞닿아 다시 끝없이 펼쳐지는 진짜 바다. 거기엔 경계도 한계도 없었다.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입구 같았다. 아스라이 먼 수평선을 한참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 소소한 여행 팁
1. 스바코프문트 액티비티로 돌핀크루즈, 스카이다이빙, 샌드 보딩, 쿼드 바이킹 등을 선택할 수 있다. 전날 먼저 사무실에 들러 예약을 하고 이튿날 가는 방식이다.
2. 여행기를 쓰려고 찾아보니까 정말 스노보드 탈 때 쓰는 보드를 신고 샌드 보딩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쿼드 바이킹과 샌드 보딩 세트를 신청했기 때문에 우리가 나무 패널을 탄 것인지, 업체가 달라서인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