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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th in Jun 09. 2019

코리사스/아우초: 지키는 모든 방법

보존(保存), 보전(保全), 보전(補塡)

20170810~20170811: Khorixas/Outjo, Namibia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키기 위해서는 가졌음을 알아야 하고, 가진 것이 가치 있음 또한 알아야 한다.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려는 여러 모습들을 코리사스에서 에토샤를 여행하며 보았다.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아끼는 것을 가두고 때로는 그대로 두었다. 본래 모습을 좇아 꾸미거나 거리를 두기도 했다.


부시맨의 천국으로 가는 길, 유독 초록이 돋보인 관목. 스피츠코페와 암벽의 벽화들. 20170810, 코리사스, 나미비아


있는 그대로


스바코프문트를 벗어나 에토샤로 향하는 길에 부시맨의 작은 천국(Small Bushman Paradise)에 들렀다. 곁에는 나미비아의 마테호른이라 불린다는 스피츠코페(Spitzkoppe)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부시맨들이 살았다는 이곳에서 코뿔소, 스프링복 등의 모습이 담긴 암벽화를 볼 수 있었다. 암벽화는 자연 상태 그대로 거기 있었다. 만 년 넘게 받았던 햇빛과 바람을 그대로 받으면서.


남은 그림은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귀여웠지만 한때는 필사적인 생존의 기록이었다.  2만년도 더 전의 일이다. 부시맨들은 계절마다 볼 수 있는 동물들을 그려 동족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이 그림들이 숱한 계절 동안 사냥의 이정표 역할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암벽화 근처에 덩그러니 누운 동물의 시체가 상징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크리스를 대고 점심 식사를 했다.


목재 껍질을 종이로 쓸수 있다는 나미비아의 특별한 나무. 그리고 썩어 사라지고 있던 야생동물의 사체. 20170810, 나미비아


그날 밤은 사냥 농장에서 보냈다. 숙소 예약에 문제가 생겨 한참을 헤매다 간신히 찾아낸 곳이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칠흑 같은 밤이어서 알지 못했는데 오두막들을 둘러싼 농장이 제법 컸다. 염소와 양, 얼룩말들이 철창 안에서 신나게 내달리고 있었다.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철창 앞까지 다가온 얼룩말을 한 뼘 앞에서 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살아있는 얼룩말이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얼룩말이었다. 사냥을 놀이로 즐기는 사람들이 하루 이틀씩 묵으면서 농장의 얼룩말 등을 쏘아 맞추고 그걸 재료 삼아 만찬을 즐긴다고 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라이언킹에서나 보던 얼룩말이 시골의 닭, 소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어서 얼떨떨했다.


농장에서 눈을 뜨니 밖으로 보이던 풍경. 염소들과 얼룩말들. 20170811, 코리사스, 나미비아


이른 아침 농장을 떠난 크리스는 화석림(Petrified Forest) 지대에 멈춰 섰다. 2억 8000만 년 전 중앙아프리카에서 자라던 소나무들이 물길을 타고 떠내려와 묻힌 곳이다. 먼 데서 죽어 이 땅에 다다른 나무들은 지층의 융기가 거듭되자 1940년경 마침내 자태를 드러냈다. 지표로 드러난 부분은 길어야 10미터 안팎에 그치지만 묻힌 부분까지 헤아리면 수십 미터가 될 거라고 했다.


엄청난 시간을 머금고 화석이 된 나무들이 드넓은 황무지 도처에 널브러져 있었다. 앉기 좋은 나무 등걸 모양으로, 또 부서져 굴러다니는 돌멩이의 모습으로. 무심하리만치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 표지가 없어서 처음에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드러누운 땅 아래엔 수천 톤의 석유나 학술적 가치가 대단한 화석들이 웅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미비아 정부는 그걸 알면서도 발굴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화석림의 가치를 보전(保全)하기 위해서다. 발상의 토대와 방향이 이 시대와는 달라 대단하게 느껴지는 결정이다. 나이 든 나무들이 더욱 특별해 보였다.


퇴적암처럼 보였던 나무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듯했다. 바위인줄 알고 그냥 지나친대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20170811, 나미비아


지켜지기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면


화석림 지대를 벗어나 만난 건 힘바 부족이었다. 반쯤 유목 생활을 한다는 힘바 부족은 식민 지배를 했던 독일인들에게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자꾸 들어서는 농장과 광산에 속절없이 밀려났다. 나미비아와 앙골라의 전쟁 틈바구니에서 설 자리를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힘바 부족을 정부는 일종의 완충지대를 두고 보호한다. 일부 마을만 관광객을 위해 개방해두었다. 우리가 들른 곳은 민속촌 같은 곳인 셈이었다.


초가 오두막 수 채가 놓인 곳에 특유의 차림새를 한 힘바 부족이 둘러앉아 있었다. 물로 씻지 않는 힘바 부족은 붉은 돌에서 나온 색소를 동물 기름과 섞어 몸에 바르는 것으로 청결을 유지한다.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또 온갖 해충으로부터 피부를 지키는 그들만의 방식이다. 지는 해를 받은 붉고 탄탄한 피부가 매끈하게 빛났다. 헐벗은 아이들의 커다란 눈동자는 투명하게 반짝였다. 여기까진 유목 시절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시대를 느끼게 하는 건 셔터를 눌러대는 관광객들에게 수공예품을 파느라 여념 없는 힘바 어른들이었다.


태양 아래 붉게 빛나는 힘바 부족의 피부. 그들의 오두막. 20170811, 나미비아


예상대로 불편했다. 전에도 느낀 실망이다. 이국적이라는 특질을 방패 삼아 페루라는 나라 전체에 눌어붙어있던 상업주의와 푸노 섬에서 앵벌이를 하던 아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부끄러워졌다. 이 광경이 불편한 것이 알량한 문화적 우월감이나 오만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실 유럽 사람들의 반응이 내 마음을 더 어렵고 불편하게 했다. 독일인은 없었지만 식민 지배의 역사를 갖고 있는 네덜란드나 영국 출신 일행들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지나치도록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정치적 올바름을 가면처럼 뒤집어쓰고 정색하는 모습들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힘바 부족은 나름대로 살아남는 방식을 터득했을 것이다. 나미비아 정부도 이들의 문화를 남기고 전할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몇 가지를 선택했을 테다. 그들을 비난하거나 불편해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값진 것을 가졌음을 안 뒤에 그걸 지키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갖가지 방법 가운데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낫고 못한 지 쉽게 말할 수 없다. 지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렵고 그래서 숭고하다.


힘바 부족의 아이들. 동그란 뒷통수와 눈동자가 너무 귀여웠다. 낯가람도 없이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아이들 때문에 자리를 뜨기 쉽지 않았다. 20170811, 나미비아





# 소소한 여행 팁

1. 힘바 부족이 파는 수공예품은 사실 다른 곳에서도 살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공예품을 팔아 번 돈으로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는다고 하니 싸지 않더라도 여기서 사는 게 의미가 있을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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