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이 아닌, 나의 중심으로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by Tess

어제 플리트비체에서 약 5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해변도시 스플리트로 넘어왔다. 여긴 엄청나게 붐빈다… 그래서인가 버스에서부터 엄청 지쳤고 약간의 번아웃을 겪기도 했다. 인간이 싫어서 혼자 여기로 온 건데… 어찌나 사람이 고프고.. 나를 좀 어떻게 해줬으면 싶은지ㅜㅜ

심지어 스플리트에 얻은 방은 엄청 신식이라서 드디어 형광등 불빛에 내 꼴이 어떤지도 좀 제대로 보이고, 에어컨에 세탁기까지 있는데! (플리트비체에서 잔 곳은 어디 시골 오두막같은 곳이라 휴대폰도 잘 안터졌다;) 이 모던함이 떠나온 곳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사실 동유럽 분위기 자체가 전남편과 생활했던 러시아를 떠올려서, 처음 온 크로아티아인데도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이별을 경험하는 중이다. 더불어 여긴 왜 이리 동양인을 보기 어려운건지! 그 많은 중국인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인들(슬라브민족과 휴가온 유럽인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위축된다. 이들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데(이것이 이들이 나를 존중하는 방식이란 걸 안다) 이런 거리감이 편하면서도 외롭다. 하루종일 입 한 번을 뗄 일이 없다.어디 여행객들이 모인 곳이라도 찾아가고픈 마음…

그동안 계속 동남아 여행을 해서 그런가… 여기 물가도 적응이 안된다. 숙박비도 식비도 투어비용도 엄청나다. 왜 유럽인들이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머물고 있는지 너무너무 잘 알겠다. 그렇다고 서비스 같은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전부 다 돈이다. 내가 돈이 막 모자른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이걸 이 돈을 내고 사먹는게 맞나? 내가 이만큼 지출하고 이 숙소를 예약해도 되나?‘ 하면서 계속 어떤 허용과 저항의 순간에 부딪힌다. 이게 피곤하다.

이런 마음과 연결해서… 나에게 ‘슬픔‘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혼하고 1년간 ’난 이걸 해내야만 한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한다’ 라면서 슬퍼할 틈을 주지 않았다. ‘분노’의 에너지로 살았달까? 이혼의 정당함을 내 자신에게 피력하면서, 돌아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려면 분노하고 상대방을 미워해야만 했다. 그리고 일을 하고, 부모가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하거나 혹은 찾아오는 상황에서는 마음 껏 슬퍼할 수도 없었다. 보는 눈도 너무 많았고… 쌍문동 집에서 혼자 살아도 너무 많은 시선이 들어오더라)

그러다 크로아티아에 오면서 다 터졌다. 비행기에서부터 울고 또 울었다. 그냥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아휴 내가 왜 이러지. 진짜 미쳤나…‘ 하다가 어제부터 바뀌었다. ‘히연아 슬퍼해도 되. 울어도 되‘ 하면서 맘껏 울게 뒀더니, 희안하게도 눈물이 덜 난다. 애도의 과정인 것 같다. 분노 뒤의 슬픔… 나는 울련다. 울 수 있을 때 ^ ^

한편, 나는 엄마와의 카톡을 차단한 상태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크로아티아에 있을거다란 말 없이 그냥 왔다. 굉장히 냉정하고 싹바가지 없는 딸의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생존보고 하듯이 ‘저 어디에요. 저 뭐 먹어요‘ 하면서 끊임없이 엄마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연락을 해야했을 것이다. 그러면 난 절대 나만의 애도시간을 가질 수 없었겠지_

아니나 다를까…. 연락이 안되는 엄마는 문자로 ’너네 집에 가볼꺼다. 엄마 병원다닌다‘ 라면서 저 멀리 한국에서도 나에게 불안증을 전염시켰다. 아… 나는 저 먼, 시차가 8-9시간이 나는 곳까지 와서도 엄마의 악령에 시달려야만 하는구나! 와… 미숙씨 정말 강력하네!

그리고 이렇게 엄마의 불안증이 나에게 넘어올 때면 언제나 시험에 든다. 책도 눈 앞의 풍경도 눈에 안들어오고, ‘엄마한테 지금이라도 문자를 해야하는건가?’ 하면서 동동거리게 된다.

하지만! 버텼다. 버텨냈다. 엄마가… 지지난주에 옥수수 20자루를 들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또 연락없이 찾아와서 폭탄던지듯이 아니 사실 쓰레기를 버리듯이 내 집 앞에 음식과 물건들을 쌓아놓고 가는일만 없었어도 나는 크로아티아에서 엄마에게 보고아닌 보고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또 엄마를 차단해야만 했고, 이 먼 곳으로 떴다. 필연이자 우연인걸까?

여기에 와 있어도.. 엄마가 쌍문동 집에 찾아갔으면 어떻게 하지? 열쇠아저씨를 불러서 내 집 문을 따고 들어갔으면 어떻게 하지? 하면서.. 내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존재한다. 요 며칠간 나의 불안함의 정체는 엄마를 버리려는 딸의 불효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은 반대였다. 저 강력한 엄마가 나의 보금자리를 파괴할까봐… 어렵사리 쌓아온 나의 경계를 또 무너뜨릴까봐… 그게 두려운 것이었다. 엄마는 나의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존재이다.

그 동안은 “빤스런”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돈 수백을 써가면서 빤스런을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공포와 불안증에 휩쌓이는 나를 보면서, 과연 내년에 해외로 뜨는 것이 답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게 또 나에게 혼란을 줌 ㅋㅋㅋㅋㅋ 막상 와보니, 유럽이 내 환상과 상상만큼 좋지 않은 것을 봐서 그럴 수도…

그러다 오늘 답을 내렸다. 빤스런이든, 퇴직이든, 떠돌이든, 혹은 다른 도시에 정착이든… 모두 다 내가 중심이어야 한다고. 엄마로부터의 도망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내가 가고 싶어서. 내가 하고 싶어서’라는 중심을 두고 있으면 그 어느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크로아티아는 충동적이지만 내가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막 우와~ 할 정도로 반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감정을 갈무리하고 살아온 방식을 되돌아 보는 곳에 괜찮은 곳이다. 햇볕과 적당한 무관심들이 나를 홀로 둔다 ㅋㅋㅋㅋㅋㅋ

여기서도 나는 강력한 시험에 들고 있다. 원가족을 떠나는 것이, 상징적인 의미로 내 안에 있는 부모를 죽이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 하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 나 쪽으로 방향을 돌이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게 나의 중력을 만드는 중이다.

결국 나는 쓰는 사람이고,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으며 그러고 싶다.

며칠을 정체모르던 정서에 시달렸는데 이것도 쓰면서 정리가 되었다. 쓰면서 중심을 잡는다.

이전 22화울음터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