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잃은 밤, 길을 찾는 마
크로아티아에 다녀온 뒤 여전히 못자고 있다. 시차적응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다니!!! ㅜㅜㅜ
일부러 낮잠을 안자고 깨어있다가(진짜 대환장 좀비모드임) 밤 10시쯤 눕는다. 그러면 11시쯤 잠이 드는데, 미치고 팔짝 뛰는 것이 12시에 깬다.
와 내가 작년에 이혼하면서도 5시간은 안깨고 잤는데, 크로아티아에 다녀와서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시차적응의 무서움을 몸소 깨닫는 중... 예전에 미국이나 유럽에 여행을 다녔어도 학생이라 부담이 없었는데, 지금은 다음 날 8시-8시 30분까지 출근해야하니 압박감도 엄청나다. '깨워주는 사람도 없는데, 못일어나서 출근 못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으로 더 잠을 설치는 듯.
12시쯤 깨서, 새벽 3-4시까지 깨어있는 시간은 무지하게 고통스럽다. 눈은 감고 있는데 온갖 생각이 휘몰아친다. 그 중 가장 예리하게 와닿는 감각은 외로움과 슬픔이다. 이런 날에... 자던 남편에게 가서 '여보 나 잠안와..'하면 그는 언제든 나를 안아줬다. 그가 주는 무게감이 나를 안정시켰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 잠들 수 있었다. 요즘엔 그런 온기와 허그가 간절하게 그립다.
동시에 '우리가 헤어졌음. 끝났음'이란 감각이 얼마나 세게 와닿는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깊이로 또 나를 찌른다. 15년이란 세월과 교류했던, 얽혀있던 감정과 습 그리고 인연의 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진한가보다. 그렇게 울고 또 대성통곡을 했는데도 여전히 새롭게 아프다. 울 때마다 새롭다. 그리움이라는 것이, 혹은 슬픔이라는 것의 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감정들이 슬퍼할 때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배가 되어 쌓이는 것일까봐 두렵다.
요즘엔 심지어 어플로 남자를 만나서 몸을 섞는 것도 시들하다. '이 남자는 어떤지보자! 쟤는 어떨까?'하면서 호기심에 불타오르고, 거침없이 만나러 가던 나였는데... 이젠 이것도 '뭐하러?'라면서 궁금하지가 않다. 무엇보다 나를 '성적대상화'로만 보는 시선이 지겹다. 나는 보여지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심층적인 존재니까! 내 얼굴과 몸매, 그리고 스타일 된 옷보다 들은게 많은 꼬이고 복잡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를 보려고 하지 않는데, 여기서 오는 허기가 있다.
그래서 틴더도 지웠다. 지난 달의 나만 해도 '아 재밌어! 이런 세계가 있다니! 끝까지 가볼꺼야. 할 수 있는데까지 다 해볼거야'라며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사람을 만나고 몸을 열었다.(순화된 표현으로 쓴다ㅎㅎ) 그런데 요즘은 이것도 재미가 없다. '그래서 뭐? 그 끝이 뭔데? 이게 맞나? 그냥 그때그 때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사는게 맞나? 주체적이긴 하다만... 그래서?'하면서 "교류"에 대한 욕구가 솟아난다. 육체 말고도 정신적 교류를 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가진 깊은 허기의 원인인 것 같다. 전남편과 살면서도 채워지지 않았던... 그래서 문학과 책으로, 심리상담으로 관심을 갖고 파고들어야만 했던... 지금까지 나는 전남편이 그리워서, 그 슬픔을 어찌할 줄 몰라서 다른 남자들과 자고다닌다고 생각했다.(물론 이것도 부분적으로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밑의 층위에는 이렇게 존재로서 교류하는 것, 정신+육체적 교류를 모두 다 하는 것에 대한 큰 욕망이 깔려있다. 매우 커다란 것이 흐르고 있는 듯... 그렇게 울면서도, 전남편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슬슬 내가 원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깊은 차원의 대화와 영혼의 교류를 하고 싶다.
한편,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다녀와서 계속 둥둥 떠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내가 아직 '여행모드'라서 그렇다는 것을 발견했다. 쌍문동 집에서도 '이곳은 내 home이 아니야. 나는 떠날거야, 그런데 어디로?'하면서 머리 복잡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으니... 편히 쉬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쌍문동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여기저기를 여행다니면서 살고 싶은 것도 아니더라.
지독한 불면과 나풀거리는 정서에 시달리면서도 들여다보니, 내가 원하는 것은 나에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내가 나의 home이 되는 것_ 나는 그것을 바라고 있다. 이 감정은 뭐지? 하면서 들여다보고, 또 거둬내다보니 분명해진다.
나는 어떤 종류의 자유를 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이 중심을 갖고, 살기를 바란다.(더이상 어떤 침범도 받고 싶지 않다.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나는 사고의 확장과 그로 인한 삶의 변동을 통해 큰 기쁨을 느낀다. 이게 내 '자기 쾌락'이 되겠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철학이라고 생각한다(for now) 이것이, 사고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나를 뿌리내리게 한다. 지금의 내가 가진 중력은 방향을 찾겠다며 읽고 있는 책들과 강의가 되겠다.(+약간의 요가)
2학기가 시작되었다. 출근하자마자 이정우 선생님의 들뢰즈 강의를 찾아 듣는 나를 보면서... 공부를 해야겠다. 이 길로 가야겠다며 다짐했다. 일단은 거기로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여행 내내 '그 다음 도시는 어디지? 어디로 가야되지? 뭘 타고 가야되지?' 하면서 고민하고 방황했다. 그 과정 끝에 나는 버스 2번과 페리 2번, 국내선 1번을 타면서 크로아티아에서 5도시를 다 돌고왔다. 한국에 와서도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그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여전히 최악의 수면패턴을 가졌지만, 마음은 편하다. 적어도 한 줄 실을 붙잡은 것 같으니 이것을 잡고 이어가는 것은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