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감정의 바다위에서...

by Tess

며칠 째 구병모 소설 '아가미'에서 나온 문장이 머리를 맴돌고 있다.

"원래 양가감정은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라는 라인에 꽂혔다. 저 양가감정이라는 것, 그게 내가 요즘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남편과 관련된 마음만 해도 그렇다. 그와 있으면 편안했고, 심각한 일도 가볍게 만드는 그의 유머에 끌렸기에, 헤어짐이 아프다.(이렇게 혼자 명절을 보내는 지금도, 적응이 안된다. 그립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내 아버지의 언어를 반복하는 존재였기에 무겁다. '너는 부족해. 더 해야해. 돈을 버는 생산성 있는 일을 해야지'라는 메세지를 주는 사람이었기에 나를 나로 살 수 없게 했다. 어떤 이유든 우리는 헤어졌고(그가 떠났고), 이것이 옳은 일이란 걸 안다. 하지만 15년을 함께한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커서, 나는 한 번씩 눈물을 왈콱왈콱 쏟아내야만 한다.

사랑과 짐스러움, 안정감과 고통, 그리움과 불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상태_ 이것이 바로 전남편과 나의 결혼생활을 생각하면 올라오는 양가감정이다.

부모와 관련된 마음 역시 그렇다. 우리 부모는 성숙하지 못하며, 그 미숙함으로 인해 자식인 나를 향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조건적 사랑을 주고, 원치 않는 것을 과하게 주다가도 내가 경계를 지키면 화를 내며 '그 동안 준 거 다 내놔'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부모의 이런 아픈 실체를 앎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버려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불안하고, 어떤 끈 떨어지고 싶지 않은... 붙잡히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다. 아무래도 어린 히연이 느겼던 생존적 불안과 공포가 여전히 작동하는 것 같다. 부모를 밀어내면서도 또 한쪽 끈은 붙잡고 있는 나. 이걸 인지하는 순간, 감정은 복잡하게 뒤얽힌다.

양가감정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랑, 애착, 안정감과 동시에 고통, 독립 방해, 불안이 공존한다. 이것은 논리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판단으로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애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 모순적인 감정의 강도도 세다.

나는 이 양가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감정들에게 저항하지 않고, 나를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려 굉장히 노력중이다. '아, 이게 양가감정이구나. 그럴 수 있지'하면서 마음의 한 곳에 자리를 내어주려 하고 있다. 그렇게 어린 희연과 성인이 된 희연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내 세계를 만들어 나가려 하고 있다.(오늘도 간신히 정신줄을 붙들고 있다!)

누구나 각자 다른 개인사와 숙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심하게 밀착되어 있던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그것이다. 이 부모의 욕망을 이뤄줄 거라고, 순진한(부모의 욕망에 기꺼이 도구가 된) 남자와 결혼해 샴쌍둥이처럼 살았던 나다. 38년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타자들이 섞여있는지_ 엄마와는 동일시된 상태로 살았고, 전남편과는 샴쌍둥이처럼 살며 자식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이건 모두 무의식적 층위의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도 저런 것들이 드러나면서 나는 나를 뜯어내고 잃어가면서 저들을 떠나고 있다.

이번 생애 저런 강력한 부모를 만난 것도, 그 밑에서 완전히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이건 아니라고 반응하는 몸을 갖게 된 것도, 또 어떤 세상을 만나는지 모르면서 '내 삶'을 찾으며 분리되어 나오겠다고 한 지금까지의 온갖 노력과 버팀, 저항 등은 나/ 안희연만이 겪고 써나가는 특수한 서사이다. 이것이 얼마나 나에게 버거운지, 또 어떤 날은 스스로가 기특한지도 나만이 알 수 있다.

그렇게 나는 '히연아 이겨내야 해' 라는 말과 '괜찮다.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라는 인정과 위로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나를 키워가고 있다.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러라고 있지 않은 "양가감정"을 견디면서 말이다.

그리움과 함께 오는 분노, 애착과 불안, 자립과 공포 등 이 모순된 감정들이 동시에 존재함을 인정하며, 이 모든 소용돌이 속에 있는 나를 알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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