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다를 것이 없구나…

명절에 든 통찰

by Tess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명절을 보냈다. 그 동안 명절이라하면, 엄마의 ‘며느리 증후군’을 옴팡 뒤집어 쓰는 날이었다. 내가 며느리가 되어서는 엄마+내 며느리 증후군까지 겪어야했고 ㅎㅎㅎ

명절 전날부터 당일 그 다음날까지 “시가-시외가-친정-외가”를 방문하느라(틈틈이 집에와서 깨비산책시키는 등 진짜 바빴음)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었다. 명절 일주일 전부터 엄마따라 장보기, 친척들 선물 준비하기는 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외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있다. 혼자서 밀린 집안일(이불빨래, 화장실청소, 세탁조청소 등)을 하고 그냥 있다.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그토록 가고싶엇던 전시를 보러 가는 것도 아니다. 잠깐의 산책, 동네친구와의 수다 등을 제외하곤 쌍문동 집에 틀어박혀있다. 아! 여전히 한티로 엉덩이 치료받으러 다니는구나…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약간의 와인을 마시면서 ㅎㅎ그냥 쉬고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고 부모님과 다를 것이 없구나! 내 욕망을 이루겠다고 다른 사람(전남편)을 끌고 온 것이 똑같구나! 라는 통찰말이다.

부모는 자신들의 욕망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자식인 나를 필요로 했다.(여전히 필요로 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엄마는 자식이란 존재를 통해 남편으로부터 돈을 얻어낸다. 이건 김미숙씨에겐 생존의 문제다. 그녀가 일을 하지 않고, 남편으로부터 당당하게 자원을 받아내려면 ’내 자식한테 주는거야‘라는 명분이 잇어야한다. 그걸 위해선 내가 필요하다. 나는 미숙씨의 ATM기의 카드다.

아버지의 케이스는 좀 다르다. 그는 돈과 권력을 지닌 존재지만, 늘 여성들에게 조종당한다.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서 자식을 수단으로 두는 사람이다. 자식 자체가 신경쓰인다기보다, ’얘가 자신의 엄마에게 전화를 하나 안하나, 내 엄마에게 얼마나 잘하나 안하나‘에 관심이 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소외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스스로를 소외시켰을지도…)

이 둘 중 누구의 욕망이 더 큰 지는 모르겠다. 둘 다 강력한듯… 아무리 포기시키려해도 끄떡도 안한다. 말로 ‘저는 제 인생이 있어요. 제가 행복하길 바라지 않으세요? 그러면 좀 내버려두세요‘라고 나이스하게 말해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좀 세게 말하면 또 서운하다 뭐하다하면서 난리다.

부모가 자식에게 당근 죄책감이라는 카드를 다써서 길들인달까?

여태까지는 ’하..내 부모 왜저래. 하 진짜 미치겠다. 부잣집 외동딸이면 뭐하노. 외동이어서 이렇게나 괴로운 걸 사람들은 알까? 부모가 저래서, 내가 이혼까지 한 거잖아!‘ 하면서 부모의 욕망만 보고 탓하고 원망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도 똑같은거다.

나도 내 욕망을 위해서는 타자(전남편)를 필요로 했다. 그 욕망은 심지어 온전히 내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외부시선으로부터 ’잘사는애, 사랑에 성공한 애, 안정된 삶을 가진 애, 다 가진 사람’이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선 전남편이 있어야했다.

그가 있어야만 나는 사회가 이야기하는 정상이라는 표준에 들어갈 수 있는데, 거기에 내가 만든 이미지를 다 이루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나는 23살에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만난 남자랑 6년을 연애하다가 결혼에 성공한 사람이란 것이 대게 중요했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사랑을 이뤄낸 사람, 근데 우린 심지어 좀 특별하게 잘 살아, 친구처럼 알콩달콩 대화도 잘 통하니 잘 사는 그런 예쁘고 귀여운 부부인 것이 의미가 컸던 것이다.

이걸 붙잡고 있는 것이 내 욕망이었다. 거기에 결혼햇으니 ‘아이까지 있어야지. 아이란 존재가 다가진 사람이라는 상을 완벽하게 만들어줄거야‘하면서 아이에 집착했다.(이게 도대체 누구의 욕망인지 생각해보지도 못한채….) 아이를 만들려면 당연히 남편이란 존재가 있어야했고… 그렇게 부모로부터의 방어막이자. 구원자이자, 내 욕망을 이루고 유지시켜줄 존재로 남편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나도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보다 타자를 데리고와서, 그 사람을 앞세우고 기생하려는 욕망의 구조를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타자를 놓는 것이 그렇게 어려워 울고불고 다니는 것이고….(아 물론 15년동안 함께했던 감정을 정리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게 업이구나! 부모가 하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여 되풀이하고 있는 것. 스스로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괴롭다고 토로하는 것. 그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구나! 나라고 다를 것이 없구나!!!

와, 그러니 뭔가 새롭게 보인다. 부모는 욕망을 놓는 법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들의 세계만이 전부라고 알고 자란 나는 욕망을 붙잡고 키우는 법만을 알앗지, 얘를 놓고 나만의 욕망을 스스로 개발하고 취하는 법을 혹은 놓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니 나도 괴로울 수밖에!!! 무지한 사람은 스스로 고통에 빠져잇기에, 폭력적이다. 나는 이 폭력을 의도햇든 의도하지 않앗든 나 자신과 타인에게 휘둘렀다.

결국 나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나라고 그토록 원망하던 부모와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이제야 보인다. 욕망을 이어받아 되풀이하는 구조 안에서 나는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지…..

그걸 알아챘다는 사실만으로도, 좀 다르게 숨 쉴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완전히 놓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알고 있다 — 나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앎이, 언젠가 나를 다른 길로 데려가리라는 원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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