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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간호사 Jan 02. 2022

골밀도 검사를 받으며

우연한 계기로 골밀도 검사를 받을 일이 있었다.

이 병원에서 8년간 일하면서 골밀도 검사는 애초에 이름만 들어봤지 검사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사실 전혀 알지 못해서 사실 좀 긴장했다.

정작 검사를 받으러 가서 설명을 들으니 검사 과정은 무척 간단했는데, 속옷을 포함한 모든 옷을 탈의하고 검사용 가운을 입은 후, 침대처럼 생긴 검사대 위에 누워서 반듯하게 가만히 15분만 누워있으면 된다더라.

검사가 시작되기 전에, 선생님이 딱 두가지를 주의하라고 했다. 안지키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한다며.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누워있을 것. 잠들면 자세를 움직이게 되니까 졸지 말 것.’

솔직히 터놓자면, 별로 어렵지도 않은 얘기를 저렇게 엄격하게 주의시키는 게 조금 이해가 안됐다.

물론 예상했겠지만 처음에만 그랬다.

검사는 금새 시작됐다.

기계가 규칙적으로 내 몸 위에서 나를 스캔하기 시작했고, 나는 똑바로 침대에 누워 그걸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검사가 시작하고 1분가량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졸려웠다. 8시간이 넘도록 자고, 커피를 마시면서 출근길에 검사를 하던 상황이었는데도 그냥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사실이 말도안되는 고문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은 자면 안된다는 생각 뿐이었고 끈을 놓칠것 같은 순간이 몇초마다 한번씩 왔다. 진짜 검사가 영원처럼 느껴지고 기계도 처음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잠이와서 미치겠는데 잘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임이 피부로 와닿자 뜬금없이 사타구니가 가려웠다. 그 다음은 허벅지, 뒷통수. 와. 간지럽다. 머릿속으로 신호가 들어오는데 긁지 못한다고 스스로 신호를 차단하니까 그 ‘간지러움’의 느낌은 미친듯이 강해졌다. 오롯이 그 감각을 음미해야 하는 느낌. 마치 고량주를 입에 머금고 마시지도, 뱉지도 못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이제 졸릴 틈도 없이 그 감각을 정신력으로 이겨내야만 하는 약 10분여가량의 시간이 남았을 것이다.

와. 진짜 간지럽다는거는 사람을 미치도록 불편하게 하는 거구나. 

그 고통스러울 정도로 불쾌한 감각 속에서 문득 내 일에 대해 생각한다.

인공호흡기나 투석기, 체외순환기를 달고 있어서 손이 묶여있는 환자들의 불편함에 대해. 아프고 간지러워도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공포에 대해 생각한다.

이산화탄소가 몸에 쌓여 졸린데도 잘 수도 없게 하고, 그럼에도 침대위에서만 있어야 하는 지독한 고문에 대해 생각한다. 이게 15분이 아니라 24시간이 되는 끔찍함에 대해 상상한다.

직업이나 연차에 상관 없이, 어떤 것들은 직접 경험해봐야만 와닿는 일들이 있다.

오늘 이후로는 환자에게 기필코 가려운 곳이 없는지 꼭 물어보고 일을 시작해야지. COPD환자에게는 꼭 유튜브라도 틀어줘야지.

이 쯤까지 생각이 가닿으니 선생님이 돌아왔다. 검사가 끝났다고.

사실 처음부터 다시 이 고통을 참아야 할까봐 좀 떨렸는데 티 안나는 목소리로 온몸을 벅벅 긁으며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물었다.

‘검사 잘 끝났어요?’

‘네. 다시 안하셔도 되겠네요. 10명중에 9명은 두번이상 검사를 해요. 그 9명중에 또 5명은 한번은 더하고요. 사람들은 움직일 수 없다고 스스로 인지하는 순간부터 정신적으로 불편해지고, 또 그게 실재하는 불편함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어디가 간지럽다거나, 저리고 뻐근해해요. 아니면 혹은 너무 편안해서 잠드는 일도 흔하고요. 이 골밀도 검사는 중증환자들은 못하고, 주로 경환자들이나 일반인들이 많이 하는 검사인데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몸이 불편한 환자들은 이 잠깐동안에도 더 불편하겠죠.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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