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이기 이전부터 가끔 SNS에 글을 올렸다. 미래에 대한 얘기, 사는 일들에 관한 얘기들을 써서 간간이 올릴 때마다 내심 부끄럽긴 했지만 누군가 함께 읽어주고, 공감된다는 말이 벅찼다. 그래서 글을 올린 날이 어김없이 10분 간격으로 좋아요 수를 확인하고, 댓글들에 대댓글을 다느라 시간이 몹시 빨리 흐르곤 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친한 친구가 얘기했다.
-아 그런 것 좀 올리지 마. 보는 내가 존나 부끄럽잖아.
-!?
-인스타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
당연히 농으로 한 얘기고, 뭔 개소리냐며 웃어넘기긴 했지만 진짜로 그 뒤로는 인스타에 글을 올리는 게 극도로 꺼려졌다. 내 포스팅을 읽는 사람들 중에 몇 명이라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을까 봐. 괜히 어색한 친구가 와서 친한척하며 이런저런 개인적인 얘기를 터놓는 그런 느낌이거나 바보같이 아무도 안 읽는 글을 혼자 정성 들여 써놓는다고 생각하니 약간 내 모습이 불쌍해서.
당연히 그 뒤로는 인스타는 눈팅만 하게 되었고, 가끔 올리는 포스팅도 아무런 텍스트 없는 짤막한 사진뿐이었다.
잠시 아무것도 쓰지 않는 날들이 오래 이어졌다. 지나가는 일상을 바람개비처럼 의미 없이 그대로 흘려보냈다.
병원에 입사한 이래로도 가끔 기록해두고 싶은 날들이 많았지만, 떠오른 문장들은 관성을 이기지 못해 금세 잊혔다. 그 당시에 얼마나 치열하게 버텼는지, 또 얼마나 많이 무너지고 자책했는지, 다시 일어나면서 본 풍경들은 어땠는지. 매일 수도 없이 떠오르고 흩어졌던 내 20대 초중반의 생각들을 허무하게 전부 잃어버렸다. 더는 돌아오지 않는 생각들. 어렴풋하게 그려지지만, 기억의 속성에 의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압축되어 더는 생생히 잡히지 않는다. '쓸 만했던' 모든 날들이 아깝다.
쓰기 시작한 건 기자님을 만난 이후지만, 사실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중환자실에서의 모든 순간순간이었는데. 더는 미뤄선 안 된다고 생각한 날은 이날이었다.
그날도 당연히 무척 바빴다. 다들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 방송이 울렸다. "CPR-A. 신관 12병동. 신관 12병동. 1249." 내가 환자를 받아야 할 차례였다. 울렁거리는 속을 다잡고 인공호흡기, 인퓨전 펌프, 모니터링들을 뛰어다니면서 준비했다.
준비를 다 해놓고 남은 환자들 정리를 하고 있는데, 몇 분 뒤 결국 CPR 환자가 사망하셨다고 연락이 왔고,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러고는 섬뜩해졌다.
실존하는 타인의 죽음 앞에서, 환자를 안 받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모습이 스스로 견딜 수 없이 역했다.
인간 실격. 주인 없는 인공호흡기에서 울리는 알람은 이럴때면 항상 탈락음처럼 듣기싫은 소리를 내며 울린다.
얼마나 변했는지 그제야 실감이 난 것이었다. 예전의 나랑 소통하려면, 미래에 나에게 무언가 전하려면 써야겠다. 그래야 올바른 방향으로 변할 수 있겠다. 싶어서 더 미루지 않고 조금씩 글을 썼다. 흔들리는 날마다, 또 쓰고 싶은 말을 따라. 덕분에 그 뒤로는 가끔 부족한 생각을 하더라도, 후에 복기하며 채울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당신도 무엇이든 썼으면 좋겠다. 대단한 얘기가 아니어도 좋고, 예쁜 단어를 고르지 않아도 되고, 꼭 완성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어디 올릴 필요도, 그렇다고 올리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읽을 사람이 없어도 좋고, 있어도 좋다. 쓰다 보면 당신의 일상을, 그리고 그 안에서 스쳐 가는 생각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테다. 그러다 보면 얼마나 쓸만한 삶인지에 대해 아마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온연히 미래의 당신에게 저축된다. 하루 몇 분만 투자해도 이 효과는 적용되므로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셀카를 많이 찍어 놨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30대의 중반. 더는 전면부 카메라를 쓸 일이 많이 없다. 이미 전처럼 푸릇푸릇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도 똑같다. 세상에 마모되고 현실에 부딪히다 보면 마음도 녹슬고 늙는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가장 젊은 시간. 조금이라도 당신의 가장 예쁘고 젊은 생각을 기록해두자. 미래의 당신을 위해, 또 가족과 세상을 위해.
그리고 당신이 충분히 여유롭다면, 그리고 잠깐의 부끄러움을 이겨낼 자신이 있다면 부디 어딘가에 그 글을 띄워 보내준다면 더 좋겠다. 그렇게 따뜻한 간호사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모여서, 더 따수운 세상이 될지도 모르니.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우리들의 목소리는 분명 언젠가 한 번에 아름다운 폭죽처럼 터질 날이 올 테니까.
약속하건대 나라도 꼭 당신이 용기내어 올린 모든 글에 정성스레 댓글을 적고, '좋아요'를 눌러줄 준비가 되어있다. 고로 나도 용기를 내 이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