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계기와 근자감
1.
"선생님. 혹시 일기는 안 쓰세요? 묶어서 책 내 볼 생각 없어요?"
환자의 수액을 연결하다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정면으로 맞았다.
뜬금없는 질문을 한 환자는 심근경색으로 간단한 시술 후 집중관찰을 위해 하루만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였다. 특별히 상태가 안 좋은 환자도 아니었고 인상착의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중년의 남성이었으므로, 그 질문이 아니었더라면 그저 얼굴 없이 스쳐 간 수많은 환자 중 한 명이 되었을 터였다.
"네. 그런 거는 잘…."
당황한 내 대답은 말끝을 흐린 채 우물쭈물 공중에 멕아리없이 흩어졌다. '일기'라는 단어 고유의 은밀하고, 어딘가 감성적인 어감이 어쩐지 민망했다.
2.
여기서는 헐렁한 환자복을 입고 앉아서 가벼운 농이나 던지고 있는 평범한 중년남성이었지만, 그는 병원 밖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글만 쓴 기자라고 했다.
여러 번 말썽을 일으킨 심장 탓에 그는 중환자실에만 벌써 세 번째라며, 올 때마다 이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시간을 꼭 써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의 눈동자가 취재하는 카메라처럼 반짝거렸다.
그 눈동자가 다소 부담스러워 괜히 엉거주춤 자리를 피했다.
아마 기자님도 내가 그렇게 느꼈으리라 생각했는지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날 내 근무는 평소처럼 끝났다.
3.
당황해서 그런 줄 알았던 두근거림은 퇴근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내 얘기를, 생각을 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싸구려 글이라도 써서 가끔 혼자 기록해둔 것도 몇 개 있었다. "글로 전해지는 감정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남궁인 작가의 말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써보고 싶다.
3년 동안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면서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 죽느냐, 사느냐 사이의 그 절박과 안도의 중간에서 팽팽한 공간 안의 날들. 그 전쟁 같은 시간이 담긴 일상들을 직접 기록하고 싶어졌다.
내 안에 반대의견도 거셌다. ‘책을 쓴다‘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얕은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어. 견문도 감성도 없는 글은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아. 스스로 시간 낭비하지 마.
설레고 동시에 답답하고, 떨리고 또 갑자기 부끄러워서 저녁 내내 서성거렸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멈춰줘야 할 것 같아 고민 끝에 전화를 걸었다.
4.
형. 있잖아요. 제가 오늘 병원에서 기자님을 만났는데요. 음, 제 입으로 말하기 좀 민망한데 혹시 저한테 글 써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자기가 출판사 쪽은 알아봐 준다고. 편집부에서 글도 다듬어 주니까 중환자실 안에서 지나가는 일상들을 일기처럼 써주면 안 되냐고요. 가령 그날그날 본 환자들 얘기나, 처음 목격한 죽음이나, 멈춰가던 심장을 극적인 심폐소생술로 되살려내는 그런 것들이요.
혹시 형은 일하면서 그런 기록 남긴 것 없어요?
저는요. 사실 일 하면서 일기 써볼 생각을 한 번도 못 해봤어요. 그런데 얘기를 듣고 나니까 진짜 해보고 싶어지는 것도 같고. 그런데 병원에선 싫어하겠죠? 환자 정보 유출되고 병원 이미지도 있고 하니까. 그냥 혼자 생각하다가 답이 나오지 않아서 얘기하고 싶었어요. 진지하게 어떨 거 같아요?
-너 글 잘 쓰냐.
어유 인마. 그게 근자감이야.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야. 아무리 편집을 해준대도 기본기는 있어야지 뭐가 나오지 않겠니. 상처받진 말고.. 현실적으로 니가 쓸데없는데 시간쓰고 잘 안되서 속상해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
솔직히 너는 너무 허무맹랑한 얘기를 자주 하더라. 한번 잘 생각해봐. 차라리 그 열정으로 그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대답은 지극히 현실에 기반을 둔 충고였으므로 반론의 여지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구구절절 맞는 얘기들이 내 의지를 침몰시켰고, 그의 조언은 그가 경험한 나로부터 증명된 얘기였다. 나는 다시 우물쭈물하며 전화를 끊었다. 어쩐지 조금 분했다.
근자감이라니. 근거 없는 자신감.
오기가 생겼다. 이 청개구리 같은 본성 덕에, 지금의 일기를 쓴다.
책은 어림없더라도, 설령 혼자만 읽게 되더라도 계속 기록하리라. 그게 내 자신감이었다.
5.
그날부터 나는 글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고, 일기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한, 결국 부끄러운 문장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 역시 나는 글을 못써.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었나 싶다. 야 너 글 잘 쓴다. 그런 실없는 칭찬을 받았던 초딩때는 그럴듯한 단어들 몇 개 집어넣고 원고지 여섯 일곱 장만 채우면 막 글짓기 상 받고 그랬었는데. 머리가 커져서인지 겉멋이 들어서인지. 반대로 세상은 커버렸는데 내가 아직 초딩 빡대가리여서인지. 한문장 한단어 고르기가 어렵고 버겁다. 겨우내 모든 쓸만한 뉴런들을 짜내고짜내 다 쓰고나서 다음날 그 글을 보면 어제의 나를 때려버리고 싶을 만큼 못 썼다. 아. 도저히 읽고 내려갈 수가 없다. 유시민 작가가 전에 쓴 글을 보고 부끄러운 만큼 성장하는 거랬는데. 그럼 나는 며칠이면 성층권도 뚫겠다. 나는 내일도 이 글을 보면서 오늘의 나를 꿈속에서 후드려 패겠지.
있는 그대로 쓰면 너무 건조하고 재미없거나, 생각을 집어넣고 보면 폼잡는 것 같아서 토나오고, 가볍게 쓰면 진짜로 너무 유치해.. 아아-. 나도 읽을만한 글이라도 쓰고싶다. 모든 작가님들께 넘볼수 없는 경의를 표합니다.
6.
그런데 웃긴 건, 이렇게 못 쓰는 데도 쓰는 일이 행복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쓰기 위해 집중하고 있자니 일상이 달라 보인다.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냈을 일상. 얼굴도 없이 스쳐 갔을 환자들. 그 찰나로 반짝거리고 금세 날아가는 생각들.
쓰기 위해 더 집중해서 일상을 본다. 한 번 더 생각하고 곱씹어본다. 갑자기 모든 날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다. 진짜라니까. 너도 써.
언젠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본인의 하루를 되새김질하고 뱉어내며 그걸 보고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면서도 계속 기록하면서 당신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를. 조금 나아가 용기가 된다면 그 글을 꼭 같이 나눠보며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덕분에 알게 된 글쓰기의 즐거움. 일상의 소중함. 이제 어차피 이 실력으로 낼 수도 없을 책은 언젠가의 꿈으로 남겨진대도 아무래도 좋다. 지금의 끄적임이 조금씩 나를 더 삶에 집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로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잘 못 써도, 꽤 쓸만한 사람이다.
나는 아직 쓸만한 인간은 아니어도, 쓸 만한 일상 속에 산다.
그래. 이게 근자감이다.
애초에 자기 자신을 믿는데 근거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