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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간호사 Jan 28. 2022

미국에서 만난 간호사들

0.

3년 차 때 즈음, 한 달가량 미국의 Cleveland Clinic에 상처 장루 전문 간호사 과정에 해외연수를 갔던 적이 있다. 사실 그 교육과정보다도 미국의 대형병원은 우리랑 뭐가 다른지가 더 궁금했다. 드디어 대망의 실습 날. 우리는 WOCN (상처, 장루 전문 간호사)들을 따라다니며 외래부터 병동, 수술실, 중환자실까지 모든 곳을 출입할 수 있었다.


1. 중환자실

기계나 냄새는 비슷했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달랐다. 들어서자 일단 모든 병실이 격리 시스템을 갖춘 1인실이었고 넓고 쾌적했다. 모든 방은 햇살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고, 심지어 어떤 방에서는 햇빛을 받으며 보호자가 환자 옆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그 이질적인 모습이 무슨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우리는 그 방을 지나쳐, 꼬리뼈 쪽에 큰 욕창을 가진 환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담당 간호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으며 인사했고, 그날 내 프리셉터였던 미국 간호사는 나를 한국에서 온 실습생이라고, 중환자실 간호사라고 소개했다.


- 대단하네요. 한국에서 여기까지 공부하러 오다니. 미국 중환자실 와서 보니까 어때요?

- 영화에서 보던 거랑 똑같네요. 전부 1인실이고, 넓어요. 환자들보다 의료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 한국에서 간호사로 지내는 건 어때요?

- 뭐 다들 힘들죠. 대체로. 여기랑 달리 우리는 담당해야 할 환자들도 더 많고 여기처럼 상처 간호사, 호흡기 전문간호사처럼 도와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일도 빡빡한 것 같아요. 많은 동료는 그래서 미국으로 오고 싶어 해요.


- 여기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에 엄청 자긍심을 가지고 일해요. (Proud to be a nurse) 나도 이 일을 무척 좋아하고, 내가 받는 대우에 만족해요. 물론 가끔 힘들기도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이죠. (Challenging but worth it.)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간호사만큼 좋은 직업은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환자 상처를 드레싱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짧은 대화 동안에도 그 사람이 얼마나 간호사라는 직업을 사랑하는지, 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햇빛 탓인지 금발 탓인지 밝은 표정으로 자기 직업을 자랑하는 얼굴이 눈부셨다.


2. 병동

다음은 장루 수술을 고려하는 환자였다. 장루에 관해서는 교육해야 할 내용이 많고, 심리적으로도 지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으므로 수술 전, 후로 장루 전문 간호사가 찾아가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만큼 소통한다고 했다. 우리가 병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환자의 앞에는 담당 교수와 레지던트들이 모여 설명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막 들어섰을 때 교수님이 말했던 내용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오늘내일 중으로 수술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환자분이 괜찮다면, 우리 전문간호사 선생님과 PA 선생님이 한번 상태를 보고 난 후 의견을 듣고 함께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뒤에 서 있던 레지던트들도, 보호자나 환자도 전혀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그 방에서 놀란 것은 아마 나랑 함께 간 송운이 형뿐이었다. 주치의가 전문간호사와 PA의 의견을 듣고 함께 수술 여부를 논의한다니. 그리고 이 말을 모두 당연하게 받아들이다니. 그들에게는 일상이었지만 우리에겐 문화충격이었다. 의사들이 나가고, 환자에게 교육하고 나와 프리셉터에게 물었다.


-수술이나 향후 치료 계획에도 간호사가 개입하는 부분이 있나요? 한국에서는 대체로 그러지 않아서.. 좀 놀랐어요.

-당연하지. 우리도 의료진이니까. 무슨 말 하려고 하는지 알아. 미국에서도 모두 이렇지는 않아. 어떤 주나 병원들에서는 의사 권력이 비교적 막강하고 간호사는 수동적인 곳들도 아직 있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담당 간호사나 NP(전문간호사)들을 동료로서 존중해. 여기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그냥 직군이 다르지만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 같은 존재야.


"더욱이 NP가 되면 처방이나, 시술을 할 수 있는 법적 권한도 보장되고. 레지던트들은 수련이 끝나면 나가기 마련인데, 전문간호사들은 대개 더 오래 근무하고, 환자 케어나 시술 경험이 많다 보니 레지던트들을 가르치기도 해. 그러니 어쩌면 의사들과 간호사 사이가 안 좋기가 어려운 구조인 거지."


3. 외래

한국과는 다르게, 외래 역시 전문간호사들이 ‘진료’를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위화감 없이 간호사에게 진료를 받고, 교육을 받거나 처방을 받고 돌아갔다.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고 있자니 무척 놀라웠다. 함께 연수를 갔던 송운이 형이랑 신기한 티를 내면 없어 보일까 봐 조용히 속닥속닥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여자 목소리의 한국말이 들렸다.


-한국인이세요?? 간호사에요??


타지에서 보는 한국인은 왜 이렇게 반가운지. 우리는 기쁜 목소리로 맞다고 들뜬 모습으로 대답했다. 눈앞의 그녀는 한국에서 일하다 미국에 이민 온 간호사라고 했다. 지나가다가 우리말이 들려서 봤단다. 딱 봐도 ‘촌티’ 나는 간호사처럼 보였나 보다.


‘한국인’.‘간호사.’ 단 두 개의 키워드만으로도 우리는 금세 친한 사이처럼 수다를 떨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 한국에서 고생했던 얘기들- 태움과 과중한 업무에 질려서 미국에 와서 다시 적응하느라 고생했던 얘기들, 또 적응하고 나니 여기의 좋은 점, 연봉이나 생활 등을 쉬지 않고 얘기하며 넘어오라고 했다.


덧붙여 ‘여기서는 ‘간호’할 시간이 있다고. 이제야 간호사가 뭘 하는 직업인지, 또 얼마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인 느끼고있다.'고 했다. 잠깐의 즐거운 시간이 끝나고, 인사를 하고 나자 어쩐지 기운이 빠졌다.


4.

한 사람이 두 개의 배경에서 이렇게 달라지는 건 아마 환경 탓이겠지. 높은 연봉, 좋은 복지, 간호사로서의 자부심. 발전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확신. 사회의 존중.

어쩌면 한국에서는 간호사로서 아직 누리기 어려운 것들.


내가 여기서 대화하던 동안에도 밤낮없이 많은 환자를 돌보며 고생하고 있을 우리 병원 동료들이 떠올랐다. 또 얼마나 많은 간호사가 한국에서 고생하고 있는지, 또 더 좋은 간호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가 힘든 상황 속.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는 것부터가 가장 효과적인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당신과 내가 하는 일하는 곳은 느리게나마 확실히 나아지고 있다. 그래도 아직 여러모로 갈 길은 아득하리만치 많이 남아있다. 분명 더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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