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아주 오랜만에 '임상 간호'란 어떤 점에서 간호사에게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기록해둔다.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 어느덧 자연스레 출근해서 익숙한 일들을 능숙하게 해내는 당신. 무척 당연해진 일상에 어쩌면 잠시 잊었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이 순간에도 환자 옆을 지키는 제법 멋진 일을 하고 있는 간호사입니다. 잠깐. 이 글을 읽는 잠시 동안만이라도 곰곰이 생각해 주시겠어요? 당신은 어떤 간호사인가요? 또 간호의 가치란 무엇일까요? ‘덕분에’ 챌린지가 유행하며 모두가 간호사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내던 2021년의 대한민국에서 진짜 간호사인 당신은 그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당신이 더 쉽게 머릿속을 정리할 수 있도록 여기, 여러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간호’의 가치, 보람에 대한 토막글을 모아봤어요.
1. 가장 같이 있는 것, 가장 가치 있는 것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를 미국에서는 ‘Bed side nurse’라고 흔히 하더라구요. 저는 이 단어가 꽤 근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침대’는 누구에게나 가장 안전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하는데 ‘침상 바로 옆’에서 일하는 우리는 누구보다 환자와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또 환자들은 우리를 믿고 그만큼의 품을 내어주는 거니까요. 아무래도 임상에서 일하는 간호사로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은 역시 환자들이 회복하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의료인으로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 아닐까요. 사실 이런 얘기는 좀 오글거리기도 하고, 너무 꾸며진 얘기 같아서 저는 그러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혈액종양내과에서 일하다보니 간격을 두고 정기적으로 입원하시는 항암 환자분들을 여러 번 보고, 그만큼 서로 가까워지니 무척 감정적으로 벅찬 순간들을 자주 맞이합니다.
2. 최전방에 있다는 자부심 / 이 시국에 더욱 느낄 수 있는 보람
중환자실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일하며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사실 항상 일하면서 제일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왔기에 이번 코로나 병동에도 큰 고민없이 자원하여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D-kit를 입으면서부터 조금 떨렸어요. 제 숨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리는 갑갑한 옷과 모자 안에 막상 들어가보니 두려움이 마음 한켠에 어느새 자리 잡아 떡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제가 코로나에 걸리게 되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행여나 격리실에 들어가서 무언가 잘못하거나, 혹은 옷을 입고 벗을 때의 작은 실수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염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무척 무거웠습니다. 그렇다고 자원해서 나온 지금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 가능한 이 떨림을 숨기고 격리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곳은 음압기가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적막한 공간이었습니다.
하얗고 긴 복도에 차곡차곡 놓여 있는 병실에 들어가면 오롯이 환자와 저뿐이었어요.
그 안에서 어떤 환자들은 의식없이 잠든채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거나, 어떤 사람들은 그저 나른한 표정으로 지긋이 창밖을 쳐다보고 있곤 했어요. 체온을 재고, 설명하거나 약을 드리는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 어쩐지 조금 벅찼습니다.
폐쇄된 공간에 홀로 남은 환자들, 또 그들을 기꺼이 돌보는 우리병원, 또 더 나아가 우리나라 방역시스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제게 그 기간 동안 그 곳에서 두려움을 금새 씻어내고 일할 수 있던 연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3. 전문직으로서의 위상
저는 사실 입사하고 1년동안은 일하면서 조금 무서웠어요. 제가 사고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고, 일만 따라가기에도 벅차서 솔직히 내가 진짜 간호사가 맞나 의뭉스러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별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프리셉터 선생님 말 따라 독립하고 몇 개월간 꾸준히 자주 보는 질병과 경과, 약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또 복습하는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전에는 전혀 안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이해되고, 더 명확하게 그려지더라구요. 그제서야 왜 간호사가 전문직인지, 겨우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게 어떤 건지 스스로 깨닫고 나서는 그냥 시간이 흘러 연차가 쌓이는게 아닌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간호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차곡차곡 하루가 쌓여왔고 이제 저는 제 분야에 대해 공부하며 전문직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 모든 교육자분들에게도 이 인터뷰를 빌어 정말 양질의 교육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어느덧 저도 프리셉터가 되어 트레이닝에 들어갑니다. 제 프리셉티에게도 제가 조금씩 쌓아온 것들을 나눠줄 것을 생각하면, 또 그러면서 함께 성장해 나갈 과정을 생각하면 또 조금 설렙니다. 이렇게 내일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제가 간호사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안정감이 큰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로서 느낄 수 있는 간호의 가치 아닐까요.
4. 좋은 동료들과 한 팀으로 일할 수 있다는 소속감
제가 생각할 때 ‘우리 일’은, 도무지 혼자 해낼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어서 도움을 주고 받는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간호’라는 것이 사람을 돕는 일이므로 어쩌면 간호의 속성에 따라 우리끼리도 도움을 받는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환자를 받을 때, 모두가 피하고 싶은 응급상황, 시술 및 수술준비 등. 항상 묵묵히 도움을 주고 쿨하게 떠나는 선생님들의 뒷모습에 감사합니다.
혼자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사실은 누군가가 함께 확인해주거나, 지켜보거나, 기록을 도와주고 있죠. 차지선생님, 프리셉터 선생님, 혹은 동기들이요. 생각해보면 그 지켜보는 눈빛에 기대어 여지껏 일해올 수 있었습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바쁜 오후에도, 생각지 못한 응급상황에서도 ‘팀’이라는 이름아래 많은 선배,후배,동기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기에 다 이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사람들 말이에요.
그렇게 함께 같이 걸어온 시간들이야 말로, 이 간호 업무의 가치일지도 모르겠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고마워요! XX선생님들
자, 어떠셨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생님이 생각한 가치를 조금씩 저희에게도 나누어 주세요. 어쩌면 그것들은 나눌수록 조금씩 모두의 마음속에 심겨져,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모두의 안에서 크게 자라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