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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간호사 Jan 02. 2022

신규간호사의 유일한 무기

신규 간호사들에게 임상은 흔히 전쟁터로 비유되곤 한다. 군대도 안가는 여초사회에서 그런 메타포가 생기는 이유는 아마 병원이라는 곳이 신입들에게는 그만큼이나 치열하고,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럼에도 그들이 제법 괜찮은 생존률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전쟁터로 떠밀려 나가는 신병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무기 덕분이 아닐까. '동기'라는 유일한 지원군 덕분에 나는 그 험난한 각개전투를 이겨낼 수 있었다.

이는 아마 병바병(병원 by 병원)/ 부바부(부서 by 부서) 과 시대를 뛰어넘어 대부분의 간호사에게 적용되는 법칙이지 않을까.

그래서 같이 근무하는 날이면 꼭 '동기 사랑 나라사랑'이라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이상한 구호를 입에 달고 시도 때도 없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근무가 끝나고 나면 술이라도 마시면서 자신들의 굉장했던 하루를 무용담처럼 털어놓거나 선배들 얘기로 낄낄대면서 내일의 전투를 함께 헤쳐나갈 원동력을 얻는다.

사실 동기들이 실제 일을 도와주거나,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어차피 몇 달 일찍 들어온 동기래봐야 아직 다 그놈이 그놈인 애긔들이다..) 그저 자기가 모르는 것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다는 안도감 +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선생님들한테 혼나는 찌질한 모습을 서로 힐끔힐끔 보며 얻는 유대감 + 가장 힘든 시기에 함께 하고 있다는 동질감이 더해져서 간호사들에게 '동기'에 대한 애정은 유독 깊고 애틋하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동기'라는 낱말은 나에게도 항상 조금 짠하고 안쓰러운 20대 초반의 어린 우리들의 옛 모습이 떠오르게 해서 얼굴이 간질간질하다. 그 당시의 중환자실은 간호사 인력은 약 50명 정도였는데 우리는 운이 좋게도 그 해에만 거의 20명 정도 동기가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만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고, 위 선생님들은 아마 죽을맛이었겠지..)

약 1년이 지나고 나자, 그 전우들의 절반은 최전방을 이탈했고, 한 열명정도가 남았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쾌활하고, 각자 개성이 확실하지만 모두가 한 곳에 잘 녹아드는 착한 아이들이었다. 아직 사회생활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미래걱정은 커녕 당장 내일 근무 걱정이 전부였던 아직은 순수한 다 큰 애기들. 다들 얘기해주고 싶은 것도 많고, 또 서로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따수운 존재들.

 대부분의 신규 간호사들이 그러하듯 그 당시에 우리는 뭐가 그리도 재밌었는지 항상 근무가 끝나면 일하고 있는 동기 빼고 대부분이 모여 별것도 아닌 병원 얘기를 나누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에 크게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때는 취해서 깔깔대고 웃었고, 어떤때는 맨정신에 함께 울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이 모여만든 자조모임이었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분명 그 당시의 우리보다 즐겁고 행복했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며 불행은 증발하는 탓에 기억은 항상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분명히 우리는 그 시절 가장 치열하고, 동시에 서로가 있어 행복했던 것 같다. 최은영 작가는 쇼코의 미소에서 어떤 연애는 우정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같다고 썼다. 나에게 이는 분명 끈끈한 우정이면서 뜨거운 연애이기도 했다.

가끔 병원 주변, 해 질 녘의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가- 후더운 여름밤 서대문역 비어뱅 사거리를 지나치다가 문득 튀어나오는 그때 기억들은 그렇게 반짝이며 아른거린다. 그렇게 뜨거웠던 시절은 항상 사람 속에 흉터를 남겨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마음이 시큰해진다.

그 뒤로 어느덧 7년이 지난 지금은 더 이상 한 명의 동기도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지 않다. 나에겐 더는 동기가 없는 셈이다. 그 아이들은 어느덧 하나 둘 결혼하고, 애기를 갖고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며 자연히 멀어졌다. 이제는 가끔 위로 떠오르는 단톡방에서 이따금씩 안부를 묻거나, 생일을 축하하는 정도로 서로의 삶을 속으로 응원한다. 킹시국에 자주 모이기도 어려워졌고 어느새부터인가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기에 우리는 전처럼 가깝지 않음을 슬프지만 이해해야하기 때문이다.

더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서 더 아름다운 것일 테지만, 나는 항상 친한 후배들에게는 공부도 좋지만 열심히 놀아두라고 얘기한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많이 시간을 보내고, 도란도란 얘기하고, 별거 아닌 것에 함께 울고 웃던 그 시절이 어쩌면 네 인생에 어떤 것들보다 소중한 기억이 될 수도 있다고는 차마 부끄러워서 끝내 입밖으로 꺼내지는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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