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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간호사 Jan 12. 2022

무서운 얘기 해줄게

0-1.

나는 종교가 없다. 애초에 워낙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초자연적인 일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다. ‘에이. 요즘 시대에 무슨.’ 하고 마는 그런 부류. 그럼에도 여기서 직접 겪거나 들은 얘기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일들이 있다. 그런 결의 얘기들 엮음.

1.

이브닝 근무로 출근해서 보니, 간 밤 사이 격리방에 입원해있던 남자아이가 결국 숨을 거뒀다. 당연하게도 그 자리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오늘따라 그 정갈함이 유독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금세 그럴 생각이 들 틈 없이 바빠졌다. 그날도 입원 환자가 많아 결국 그 자리도 다른 환자로 채워졌다. 새로 그 자리를 차지한 할머니는 경미한 뇌출혈을 맞았는데, 의식수준도 명료하고 의사소통도 되었지만 워낙 고령에 기왕력도 있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집중 관찰을 위해 오셨다. 워낙 활력징후도 괜찮고, 조용하신 분이어서 손이 갈 일이 크게 없는 분이었다. 다만 상태를 확인하러 올 때마다 이불이 침대 옆으로 떨어져 있었던 것이 좀 신경 쓰였다. 격리방은 다른 방들보다 조금 온도가 낮은 편이라 금세 추워지기에 흘린 건가 싶어 새 이불을 갖다 덮어드리고 나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할머니가 일부러 이불을 발로 차는 걸 목격했다. 나는 약간 씩씩대며 들어갔다.

-할머니! 이거를 몇 번째 덮어드리는데 왜 자꾸 발로 차시는 거래요~ 안 추워요?

그러자 할머니가 꺼낸 말에 안 그래도 추운 격리방이 순간 더 서늘해졌다.

-저기 남자 아 하나가 구석에서 울잖여. 춥다고. 나는 괜찮으니께 저기 아한테나 좀 덮어줘. 보기 안씨려죽겄어. 얼굴은 허예 가지고.

2.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내 동기는 간호사 탈의실이 장례식장에 있대. 매일 장례식장 지하로 내려가서 어렴풋이 들리는 곡소리를 들으면서 옷을 갈아입고 출근을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어깨가 너무 뻐근하더니 며칠 사이에 엉엉 울 정도로 아파지더라는 거야. 당연히 병원도 가보고, 침도 맞아보고, 마사지도 받아봤지만 효과가 전혀 없었대. 한 달 정도를 참고 지냈을 무렵 이제 혼자만 탄 엘리베이터가 인원 초과라며 알람이 울리고 멈춘 뒤부터는 너무 무서워지기 시작한 거지. 그날도 너무 아파서 울다가 겨우 출근했는데, 바쁜 와중에도 팔이 안 올라가서 미치겠는 거야. 어떻게든 꾸역꾸역 일하면서 LC 신환을 받았는데, 보호자인 아줌마가 한눈에 봐도 좀 이상해 보여. 왜인지 모르겠는데 뭔가 압도되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 있지. 그 아줌마가 하루 종일 주위를 서성거리면서 뭔가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면서 맴도는 것 같았대. ‘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물어봐도 금세 ‘아니야. 아니야~ 선생님이 이뻐서 쳐다봤어.’ 하면서도 계속 스테이션 주위를 심각한 표정으로 휘적휘적 다니는 거지. 동기는 워낙 아프기도 하고 정신도 없어서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끝날 때까지 일을 했어. 결국 인계를 주고, 퇴근을 하려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아까 그 아줌마가 진짜 소름 돋는 얼굴을 하고 복도 끝에서부터 혼자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무섭게 뛰어오더래.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 그냥 그 자리에 얼어버릴 정도로. 그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등 뒤에까지 와서 갑자기 양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계속 혼잣말을 하는 거야.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쳐다봤더니 ‘미안해 언니. 내가 미쳐서 그렇다고 생각해. 내가 미쳐서 그래. 잠깐만 참아. 진짜 잠깐만.’ 하면서 눈이 뒤집힌 채로 쉬지 않고 혼잣말을 하더래. 한국말 같기도 하고, 약간 기도할 때 하는 방언 같기도 하고. 그게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 못 하고 떨고 있으니까 스테이션에 선배들이 나와서 겨우 떼어내줬대. 그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머니는 ‘미안해 선생님. 진짜 너무 미안해. 이제 다 됐어. 똥 밟았다 생각해’ 하면서 병실 앞으로 가서 다시 바닥을 쓰다듬으면서 누군가 얘기하듯이 혼잣말을 하더라는 거야.

예상했겠지만, 그 직후부터 거짓말처럼 온몸에 통증이 사라졌대.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드디어 몇 주 만에 처음으로 깨지 않고 푹 자고 일어날 수 있었어. ‘아마 무당이나 그런 분인가 보다.’ 싶었지만 일단 출근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더니만, 이미 그날 새벽에 환자를 데리고 퇴원하셨다더라고. 그 통증은 뭐였을까. 그리고 그 보호자는 뭐였을까. 어떻게 거짓말처럼 동기가 일하던 그날 그 시간에만 입원했다가 또 금세 사라졌을까..

3.

환자가 임종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보호자는 아직 오고 있는 중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모두가 초조하다. 보호자는 임종을 지켜야 하고, 우리는 환자분의 숨을 어떻게든 더 붙잡아야 한다. 모두가 촉박한 시간. 1분에 20회, 10회. 아주 미세한 심장박동.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 보호자들이 겨우 도착한다. 환자의 얼굴을 본다. 손을 잡자마자 거짓말처럼 ECG가 평평해진다. 거짓말 같지만 실제로 종종 본다. 간호사들은 ‘환자가 보호자를 기다렸다.’고 한다.

0-2.

위의 얘기들 전부 어쩌면 상황이 만들어지고, 우연들이 겹쳐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하면서 겪은 초자연적인 일들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많은 영혼이 잠깐은 육신 주변을 서성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던 가족들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떠나시는 걸지도.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가끔 괜히 으스스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좋은 곳으로 가세요.’ 하고 예외 없이 인사하는 습관이 그래서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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