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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간호사 Jan 28. 2022

마지막 면회

장기기증, 그 숭고함에 대해.

1.

중환자실은 여러 이유로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는 구역이므로, 보호자들에게는 하루에 고작 30분 남짓한 시간밖에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 규칙은 제법 잘 지켜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간혹 의료진 재량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 환자 한두 명 몰래 면회를 시켜주었다가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모든 보호자들이 중환자실의 벨을 번갈아 가며 눌러서 업무가 지체되는 대참사를 낳기 때문이었다. 다들 각자의 가족을 위해 거기에서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니까.

고로 정규 면회시간 이외에 보호자가 들어올 수 있는 순간은 결국, 면회가 불가피하여 바깥의 보호자들 역시 모두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여야 한다. 예컨대 임종이 가까워지거나, 혹은 임종하였거나.

2.

22살의 대학생인 그녀는 친구들과 콘서트장에 있었다.

그 많은 사람이 모였음에도 기분 나쁘지 않은 후더운 열기,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과 진동 속에서 그녀는 친구와 함께 소리 지르고 뛰며 젊음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앙코르곡의 클라이맥스가 다다랐을 무렵, 그녀는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마치 거짓말처럼. 모두가 행복한 그 장소의 그 순간에 마치 불행이 그중에 한 명을 고른 것처럼.

3.

결국 콘서트장에 도착한 앰뷸런스의 소리가 음악소리에 섞였다. 혼수상태로 병원에 실려 온 그녀의 CT 사진에는 아주 커다랗고, 불길한 동맥류가 있었다.

뇌출혈이었다. 이미 어떻게 할 도리도 없이 뇌동맥에선 피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고 두개골 속은 심하게 부어올라 망가져 있었다.

"전조증상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이 정도의 뇌동맥류면 필시 두통이나 시야결손 같은.. 죄송하지만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망이 없습니다. 이미 뇌는 돌아올 수 없으리만치 심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 사람의 뇌는 그것을 소화해내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가족들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초점을 잃은 눈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보호자들에게는 더 이상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저 그녀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들렸을 뿐이다.

어찌 보면 크게 틀리지는 않은 말이었다.

4.

그녀는 다른 중환자들과 다르게 '예정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보호자들의 마지막 면회를 준비하는 순간에도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등의 생체징후들은 건강한 사람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곧 죽을 운명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삶을 위해. 장기기증을 위해. 가족들은 며칠간의 고민 끝에 어린 딸의 생명을 희생하는 서류에 떨리는 손으로 서명했다. KODA(한국 장기기증원)의 직원에게 동의서를 건네자마자 절차는 믿을 수 없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 시간에도 무수한 대기자들이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을 테니.

몇 번 더 면회를 하는 동안, 부모님은 그 며칠간 딸과 함께한 찬란한 시간들을 끝없이 곱씹고 추억하고 딸의 얼굴을 안고 얘기했다. 그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도 무척 고통스러워서, 많은 간호사가 얼굴을 가렸다. 중환자실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족들에겐 이 한주가 지나치게 빠르게 흘렀고, 지독하게 비현실적인 상황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아직 그녀가 쓰러진 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모르는 사람들의 삶을 위해 딸이 일찍 떠나야 한다니. 며칠 내내 고민하고 기증 동의서를 작성하고 나서도, 1분에도 수십 번씩 생각이 바뀌었다.

이젠 어떤 결정이 옳은지, 아니 애초에 이 세상은 왜 이따위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복도에 딸 또래로 보이는 간호사의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김 OO 님 가족분들. 마지막 면회할게요."

5.

온화한 얼굴의 중년남성인 아버지는 딸아이를 보러 와준 수많은 친구들을 모아놓고 침착하게 말했다.

"너무 많이는 중환자실에 못 들어가니까 우리 가족들이 먼저 면회하고 친구들은 수술실 앞에서 한 번 더 면회시켜준다니까 그때 하자. 고맙고 미안하다."

스무 명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앳된 얼굴들은 하나같이 울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아버지는 침착하고 부드럽게 다독이며 중환자실의 쇠문을 건넜다.

보호자의 초연한 모습에 놀랐다가, 문이 닫히자마자 쏟아지는 울음에 더 놀랐다. 딸아이의 친구들 앞에서 더 슬퍼하지 않으시려 필사적으로 참고 계셨던 것인지,

들어가기 전 손을 씻는 짧은 순간 동안 눈물이 씻고 있는 손 위로 멈추지 않고 쏟아져 그는 오래도록 손을 씻어야 했다. 눈물이 비 오듯 흐른다는 표현은 전혀 과장되지 않았었다. 그는 옆에서 소리 내 울고 있는 아내와 둘째 딸을 다독이며 소리를 삼키며 흐느껴 울었다. 내가 살면서 본 울음 중 가장 슬픈 울음소리였다.

가족은 마지막으로 누워있는 딸 앞에 다다랐다. 스러질듯한, 이미 진작에 스러진 사람들의 통곡 소리. 듣고 있는 모두의 뱃가죽을 찢어놓을 듯한 슬픔이 눈과 가슴 깊은 곳을 계속해서 쑤셔댔다. 아릿한 통증에 내 배를 만져보니 날것의 저릿한 고통이 묻어 나왔다. 아마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두 같은 상실감을 함께 느꼈으리라.

아버지는 눈물에 갇혀 잘 보이지도 않는 눈동자를 겨우 들고 담당의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아니 질문이라기보다 애원에 가까운 음조로.

"..정말 끅. 가망이 없나요…. 0.1프로, 아.. 아니 0.001프로라도 기적처럼 깨어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후.. 윽.."

"의학적으로는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검증한 결과 확실하게 뇌사상태입니다. 죄송합니다."

단호하게 말해야 하는 전공의의 목소리도 그날은 유독 심하게 떨리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마지막으로, 얼굴 보시고 필요하신 만큼 천천히 인사하시고 좋은 말씀 해주세요."

엄마는 통곡하는 와중에도 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으려 양손으로 딸의 얼굴을 쓰다듬고, 더듬고, 앞머리를 정돈하고, 입을 맞췄다. 너무 눈부신 시간이어서, 보고 있는 모두 눈이 시려 그 순간을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웠다.


필요한 만큼, 이라. 좋은 말씀, 이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

이미 가족들의 손길과 눈빛, 얼굴에서 이 순간 그녀는 어디에서라도 평생 받아야 할 모든 사랑 같은 좋은 것들을 다 받아내고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수술실에서 준비가 됐다는 연락에, 보호자들은 면회를 마쳤고 그들은 다 같이 침대를 붙잡고 거의 끌려가다시피 내려갔다. 나는 그제야 전혀 하지 못했던 전산 작업의 마무리에 바빠 정신이 없었고, 눈이 시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곧 환자명단에 김 OO(22/F)가 없어지고 나서야 그녀가 더 많은 사람을 살리러 갔다는 실감이 들었다.

6.

집으로 돌아와, 위대한 정신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은 자식의 죽음이라고 했다. 그런 지옥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도우려 내미는 희생에 대해 생각한다. 가늠조차 어려운 그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려보려 노력한다.

그들이 마지막 이별하던 순간을 복기한다. 이 비극 속에서, 눈물로 흠뻑 젖은 눈으로도 타인의 희망을 바라보려는 시선을. 그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일들을 이미 초월한 사람들 같았다. 

죽는다는 건 뭘까. 또 남는다는 건 뭘까. 가장 소중한 어떤 존재를 놓는다는 것은 어떤 걸까. 희생하고, 또 그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올까. 아무리 노력해도 끝내 그 분들의 마음에는 짧은 생각이 전혀 가닿지 않아 혼자서 까만 밤속을 허우적댄다. 금세 숨이 막힌다.

아마 오늘의 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턱없이도 모자란 간호사였겠다고 생각하며, 그저 기도를 보낸다. 나도 오늘, 그들의 마음 일부를 이식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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