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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Mar 07. 2024

직장 내 인간관계, 나만 힘든 걸까?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
-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온기를 나누려고 모여들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로의 가시에 찔렸다. 떨어지면 추위에 떨었다. 다시 모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던 고슴도치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마침내 서로에게 필요한 최적의 거리를 찾아낸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저서 <여록과 보유>에는 고슴도치 우화가 등장한다. 이것이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용어의 기원이 되었다.


인간관계에서도 고슴도치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미 우리는 팬데믹을 겪으며 모든 관계에는 적정 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았던가. 가족, 연인, 친구, 회사 동료 등 관계별로 적정 거리는 얼마일까? 미국 문화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실험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4가지 거리를 밝혀냈다.


먼저 밀접한 거리(0~46cm)는 가족이나 연인처럼 친밀도가 가장 높은 관계에 적절하다. 주로 접촉을 통해 교감하는 거리인데 친밀하지 않은 사람이 이 거리에 침입할 경우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다음으로 개인적 거리(46cm~1.2m)는 팔 길이만큼의 거리로 친구처럼 가깝게 느끼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접촉보다는 주로 대화를 통해 교감하며 가벼운 스킨십도 허용하는 거리다.


사회적 거리(1.2m~3.6m)는 사적인 질문이나 스킨십이 허용되지 않는 거리로 사무적인 관계에서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대화할 때도 예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 회사 사람들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공적인 거리(3.6m~7.5m)는 개인과 대중 사이의 연설이나 강의 등에 필요한 거리다.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박사의 저서 <당신과 나 사이>에 나오는 내용이다. 나는 이 4가지 거리를 이렇게 해석했다. 밀접한 거리는 '진하게 포옹하는 관계'로, 개인적 거리는 '반갑게 악수하는 관계'로 말이다. 또 사회적 거리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관계'이고 공적인 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관계'를 뜻하는 게 아닐까.


어려서부터 나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발버둥 치며 살았다. 부모님의 냉전으로 싸늘한 기운이 가득한 가정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내가 택한 방법은 모범적인 아들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나의 존재가 버림받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는 부모님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헛된 믿음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냈다.


운이 억세게 좋아 학창 시절에도, 군 생활 때도, 만 9년간 다닌 첫 직장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를 인정해 줬고 나는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운발이 떨어진 걸까. 첫 이직과 함께 시련이 찾아왔다.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한 상사와 한 동료가 UFO에서 내린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 직장에 출근한 첫날에 이미 선배 두 명이 퇴사를 결심한 상태였다. 상사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나를 포함해 다수의 피해자가 속출했다. 상사는 머리가 비상했다. 고도의 가스라이팅으로 나를 짓밟았다. 공개 석상에서 나를 본보기 삼아 인격 모독을 일삼았다. 그걸 지켜보는 팀원들은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상사는 단둘이 있을 때면 나를 한없이 따듯하게 보듬었다. 그의 손에 놀아나던 나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가 소시오패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공의 적은 한 명으로도 족한데 상사의 젊은 시절 데자뷔를 보는 듯한 동료도 한 명 있었다. 가정교육이 심각히 의심될 정도로 무례함이 하늘을 찔렀다. 그는 상사와 함께 공공의 적 '1+1 세트'였다. 영화 <식스 센스> 뺨치는 반전은 이제부터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상사와 동료는 서로를 끔찍이 챙기며 공생했다.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상사의 보호 아래 활개 치는 동료의 행태는 가관이었다.


'내가 희생해서라도 더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라는 이상한 정의감에 불타올랐다. 나는 그들을 계도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그것이 깊은 고난의 시작이었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기에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육아휴직이라는 '물리적 거리 두기'를 통해 상황을 객관화하며 자존감을 회복했다. 또한 관계에서 '감정적 거리 두기'를 통해 공과 사를 구별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마침내 나는 UFO에서 내린 외계인인 줄 알았던 그들을 지구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미친 짓이다. 더 이상 애쓰지 말고 거리부터 두어라.
- 정신분석의 김혜남 박사


어긋난 관계에서 겪는 모든 문제는 나의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었다. 자존감이 회복되자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미친 짓이라는 것. 나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은 존중하고 상처 주는 말은 무시하면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없애는 것. 이 모든 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었다.


자존감이 낮아져 있다면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당신과 나 사이>에서는 3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작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할 것. 둘째, 단점을 감추거나 극복하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 것. 셋째, 남들에게 너그럽듯 자신에게도 조금만 더 너그러울 것. 김혜남 박사는 "당신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기에 스스로 가치를 높이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관계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통제권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면 단호하게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모범적인 아들이 되는 것을 중단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기를 포기한 것이다.


결혼 5주년이 되어서야 좋은 아들인 동시에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시행착오를 통해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할 때 가정을 견고히 세워갈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버지와 감정적 거리 두기를 하고 나니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진정한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인간관계에 집착하며 살 필요는 없어요. 눈치 보는 희생자, 분노하는 피해자로 살지 말고 소중한 나 자신을 먼저 챙기세요. 마음이 편해지면 관계도 편해집니다.
- 더공감 마음학교 박상미 소장


관계에서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직장 내 인간관계의 적정 거리인 사회적 거리(1.2m~3.6m)를 기억하자. 타버릴 정도로 서로 너무 가까워지지는 않았는가? 아니면 얼어붙을 정도로 너무 멀어지지는 않았는가? 타인에게 관계의 주도권을 내어주고 있다면 당당하게 찾아오자. 원래 관계의 주도권은 내게 있는 것이니까.



이학기 반장의 저서 <서른, 진짜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중에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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