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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리Rhee Dec 05. 2023

당신이 옳다

제목부터 나의 마음을 적신다. 그것도 따뜻하게 그리고 환하게. 책이 나에게 "당신이 옳다."라고 말해주니 말이다.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하늘을 날고, 조금이라도 지적을 받는다 싶으면 양쪽 귀를 딱 붙이고 양쪽 눈썹이 바깥으로 쳐진 강아지같이, 세상 루저 같이 그렇게 다니는 나에게. 옳다.라고 말을 해주니, 이보다 더 든든한 단어의 선택이 또 있을까? 이 책은 읽지 않아도 제목부터 그냥 마음에 든다. 


평소에 나는 친구들에게 공감을 잘 해온 편이라 자부하고 살았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포인트를 못 맞춘 채 변죽만 울려왔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 있었다. 


p.125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그래서 공감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내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얻게 되는 무엇이다. 


아 노력해야 하는 것이구나. 내가 상대방을 공감합네 하고, 상대 앞에 앉아서 어쩌면, 내 이야기를 더 많이 쏟아붓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랬다. 나도 내 외로움이나 혹은 나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나의 논리를, 나의 생각을 엄한 친구들에게 펼쳐오곤 했었던 것 같다. 


p.117 너를 공감하다 나를 만나다... 상대에게 공감하다가 예기치 않게 지난 시절의 내 상처를 마주하는 기회를 만나는 과정이다. 


팀에 아끼는 후배가 있었다. 마음이 무척이나 갔다. 일을 같이 하게 됐다. 후배 애가 업무에 있어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무조건 토 달지 않고. '그래 네가 맞아.' '전적으로 네 의견이 옳아.'라고 맞장구쳐주었다. 그 아이가 제시하는 모든 조건에 맞춰서, 일을 해 내려고 애썼다. 힘들다고 나에게 시간을 내어 달라고 하면, 퇴근 시간도 쪼개어 그 아이의 이야길 들어줬다. '그래 그렇지.' '네가 힘들만하지.' 공. 감. 해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나에게 울며 불며 힘든 이야길 털어놓는데, 나도 모르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어려움을 주변에 묻고 다녔고, 해결책이 없는지 내 일인마냥 거들었다. 그렇게 업무도 직장 내의 어려움도 그 아이의 도움이 되려 애썼다.


그런데, 그 이후에 내 마음 안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자꾸 업무에서 헷갈리면 그 아이에게 찾아가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회사 안에서 힘이 들면 그 후배 애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 후배아이에게 의존하는 나를 보게 된 것이었다. 나는 분명 도움을 주고자 했던 입장이었는데,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기대게 됐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한참을 보냈던 것 같다. 나는 10년 전 대리 시절에 내가 내놓은 아이디어에 공감받기를 원하던 때로 돌아가있었다. 나는 한참 육아에 직장 내에서의 갈등에 나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렀던 때로 내가 돌아가 있었다. 나는 회사 업무에 너무 시달렸는데다가 팀장과의 마찰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던 나의 동료들에게 서운했던 그때로 내가 돌아가 있었다. 그때 내가 받고 싶었던 심리적 물리적 도움을 내가 우리 팀 후배에게 그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엔 도움이 필요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후배 애가 사실 힘들었던 마음을 그냥 표현했을 뿐이었지, 이렇다 할 구체적인 도움을 달라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도움을 열심히 주고자 했던 나의 노력은 과거에 내가 받고 싶었던 것을 후배 애를 통해서 표현된 것뿐이었던 것이다. 가만히 그때 외로웠을, 한참 무기력했을, 그리고 도움이 절실했을 나를 안아준다. 꼭 끌어안아주고, 힘들었을 거라고 그 감정은 당연한 거라고 내가 나 자신을 토닥여준다.


p.119 언제나 내가 먼저다. 오래전 자기를 있는 그대로 대면했고... 그러고 나서 홀가분해졌다... 오래전 자기 삶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이 내 것인지 네 것인지 모르게 뒤섞여 혼란스러웠던 것이 분리된 것이다.


내가 안타까웠던 것은 내 후배가 아니라, 10년 전 직장에서 처했던 나의 상황에 대한 나 자신이었던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 후배 아이는 자신의 삶을 살아 내는 것이고, 그에 대한 적절한 지혜도 힘도 스스로 갖고 있고 잘 헤쳐 나갈 것임을 이제는 안다. 내가 그 동안 너무나 그 친구에게 오지랖을 폈는지는 모르겠다. 도움을 준다는 명목하에 그 아이의 자주성을 헤친 것은  또 아니었는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과거에서 편안해지니, 그 아이에 대한 감정도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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