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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리Rhee Nov 28. 2023

내 안의 어린아이


#내안의어린아이 #치유 #사랑 #관계중독 #물질중독 #인정욕구 #자기사랑하


우리 안에 내면아이와 내면어른이 있다. 




내면아이에게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 내면어른


우리 모두의 인격에는 ‘어른’과 ‘아이’로 구별되는 두 측면이 있다. 내면아이는 보통 우리의 본능적인 부분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감정이고, 내면어른은 우리 안의 논리적 부분, 사유하는 부분이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더 높은 자기'의 힘이 있는데, 곧 우주와 이어져 있을 때의 존재가 나타났을 때이다. 우리는 내면의 어른과 아이가 연결될 때 이러한 우주적 연결도 발생된다. 그런데 대부분은 내면어른은 자신의 고통을 회피하고 기쁨을 누리기 위해 내면아이를 돌보아야할 책임을 회피하며 내면아이를 버린다. 


나는 어떤 내면어른인가


순응형 내면어른, 

갈등을 피하는 피스메이커


자신이 다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 돌보미 유형이다. 이 사람들은 오로지 타인을 기쁘게 하는 데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느낀다. 그렇게 타인에게 순응하는 것이 사랑과 승인(자신에 대한 존재감의)을 불러올 것이라고 믿는다. 자기는 행복을 좇을 ‘권리’마저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조자의 역할에 머무는 것이 순리에도 맞다는 것이다. 이들은 마음속으로는 응당 받아야 할 칭찬을 받지 못한 것에 분개하면서도 자신이 모든 것을 베풀고 사랑한다고 믿는 순교자 타입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법도 달리 모르기 때문에 병이 나 드러눕기 일쑤다. 순응형인 사람을 역할 모델로 채택한다면 여러분의 사랑 없는 내면 어른은 기본적으로 권위적이고 내면아이의 욕구와 필요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통제형 내면어른, 

가차 없는 지배자


통제형 여성은 가차없고 냉혹하며 비판적인 엄마일 확률이 높다. 이러한 유형의 엄마는 남편과 자식들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확신하면서 흠을 잡고 비판함으로써 그런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때로는 자녀들에게 신체적 폭력도 사용하고, 독선적이다. 이들의 내면어른과 아이와의 내면 대화는 비판하고 흠잡기 좋아하는 권위적인 어른들의 말들로 이루어질 것이다. 


만일 당신이 통제형 부모에게 반항하는 입장에 있다면, 다음과 같은 내면대화를 듣게 될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 따윈 하지 마.”

“내가 하라는 대로 할 줄 알아?”


저향형 내면어른, 

책임지지 않는 애어른


저항형 인간들은 태만, 무능, 무관심, 망각 등을 통해 책임을 회피한다. 결국에는 자신의 인생을 반항하고 저항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저항형 인간을 역할 모델로 삼는 사람은 마음이 말라 죽은 것처럼 내면대화를 거의 감지할 수 없다. 그가 내면아이의 욕구, 필요, 감정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내면아이를 상대하면서 방임, 무감각, 무시로 일관하는 셈이다. 


어린시절 학대 받은 아이에게는 솔직하게 네가 사랑받지 못했다고 이야기 해주고, 지난 일을 가슴아파 할 시간을 허락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양육이다. 내면아이가 오랜 아픔과 슬픔을 극복하기까지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사랑으로 양육하는 내면어른은 내면아이에게 이 시간을 충분히 준다. 


사실 나는 순응형 내면어른으로서 갈등을 겪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항상 순교자의 옷을 입고 상대가 내세우는 기준에 맞추어 그/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매우 노력한다. 그러나, 내가 베푼 노력에 무언가 감사함의 대답이 없을 시에는 매우 분개한다. 표현은 하지 못한 채, 상대방의 인정 혹은 사랑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실상 나의 부모님은 통제형이었고, 이에 나는 매우 순응형, 그리고 저향형인 내면아이를 키워왔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언제나 내면아이의 놀고 싶은 욕구는 무시한채, 경력개발에만 힘을 쏟아왔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시댁 어른들을 만나면서 쏟아지는 며느리라는 역할에 저항하느라 모든 나의 에너지를 써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부모님과 시어른들의 인정에 중독이 되어왔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을까? 책을 읽어 나가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부모에게서 충분히 못받았다 생각되는 사랑을 타인들로부터 얻으려는 헛된 노력


잃어버린 내면아이


우리는 대부분 낮은 자존감 상태에서 자신이 완전하고 훌륭하다고 느끼게 해주기를 상대에게 바라며 인간관계를 맺는다. 내 기분이 좋거나 나쁜 것이 상대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이런 상태에서 연인이나 혹은 부부 등으로 관계 등을 맺게 되면 ‘동반의존’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자신의 가치를 상대가 정하도록 허용하고, 자신은 상대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통제하려 들게 마련이다. 우리는 화, 비난, 토라짐, 훈계, 설명, 보살핌, 지나친 순응, 부정 등을 통해 남을 통제하려고 든다.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는게 바로 이런 상황을 말 하는 것이 아닐까? 왕자님이 선 카톡을 주어야, 기념일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값진 선물을 준비해주어야, 프로포즈는 기억에 남을 만큼의 커다란 이벤트로 등등 자신이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디즈니 시리즈 공주님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해주어야, 나는 상대를 통해 사랑받고 가치 있다고 여기고 느끼는 것 말이다. 만일 내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행동들을 내가 생각했떤 ‘왕자님’이 해주지 않는다면, 화를 버럭 내거나, 삐져있거나, 그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는 등으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내면아이와 만나기


 내면의 연합, 내면어른과 아이의 완전한 융화, 일체감은 곧 (①)'거짓자기'를 없애고, 우주의 힘을 만나 (②)'더 높은 자기'에 이르게 해준다. 그런데 이것은 곧 내면어른과 내면아이 서로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감정과 상대에게 충실 할 때에만 일어난다. 그러나 불안한 내면어른은 내면아이는 저버린채, 항상 상대에게 승인을 얻으려고, 사랑을 얻으려고, 인정을 얻으려는 미래의 결과물에만 투사하기 때문에 번번히 실패 한다.  


현재의 내면아이와 만나 충실할 때 우리는 연합을 이룰 수 있다.


내면 아이의 힘


온화함 vs. 유약함


수동적이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며 그들이 우리를 이용하게 내버려 둔다면 유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타인에게 조종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반대로 타인을 조종함으로써 그 두려움을 은폐하고자 한다면 이는 본질적으로 유약한 짓이다. 타인의 승인과 반대에 권위를 부여할 때 우리는 유약하다. 상대에게 두려움을 품고 지나치게 순응하거나 저항함으로 우리를 조종하게 놔 둔다면 우리는 유약하다. 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나아가 상대를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서 온화하면서도 강해질 수 있다. 


행복한 삶의 비결 중 하나는 내면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를 하지 않으면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없이 내면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물질, 사물, 사람을 찾아 목적 없이 방황하게 되기 일쑤이다. 


내면아이를 깨우는 몇 가지 방법


내면아이와 매일 아침 저녁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는건 가장 강력한 내면 대화이다. 특히나 아래와 같은 질문을 통해서 내면아이를 깨울 수 있다.

“어렸을 때 뭐하면서 노는 걸 제일 좋아했지?”

“어떤 책을 읽고 싶어?”

“어떤 종류의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어? 미술? 공예? 음악? 글쓰기?”


내면아이가 고집하는 잘못된 신념들이 있는데, 나는 스스로 나의 고통을 어떻게 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고 나를 대하는 방식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념과, 남을 조종할 수 있다는 신념들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마음을 열고 잘해주면 저쪽도 마음을 열 것이다. 나는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으며, 타인의 감정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신념 등은 모두 어린 시절의 잘못된 경험에서 나온다. 이런 잘못된 신념에 빠져있는 내면아이에게 더 없이 사랑스럽고 온화한 눈길을 건네자. 너 자신의 감정은 오롯이 네 몫이라고, 내면어른이 내가 도와줄 테니 이제 그만 일어서라고 말이다. 


내면아이가 슬퍼할 시간을 충분히 주자


왜 내면아이 만나기를 두려워할까


우리는 내면아이를 실제로 만나기를 두려워하는데, 이는 나를 나 스스로 책임져야한다는 두려움에서 온다타인의 동의와 애정만이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사랑과 이해를 베풀 때 최고의 감정이 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최고의’ 감정이 상대방으로부터 애정과 사랑 그리고 관심, 이해 등을 받을 때만 온다고 착각한다. 더 많은 사랑, 더 많은 애정, 더 많은 물질적 소유, 더 많은 돈, 더 많은 권력을 갈구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얻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중독과 동반의존을 낳는 것이다. 내면아이를 만나기 두려워하는 큰 이유는, 내가 나 스스로 책임 질 수 없을 것 같은 무력함과 더불어 내면아이와 만나게 되면 인생이 망가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면아이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해줄 때, 오히려 내면어른으로서 탄탄해짐을 알 수 있게 된다. 


내면아이가 우리를 치유한다

 

매일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대화를 통해 내면아이를 만나자.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을 다해 사랑해주고, 내면어른으로서 보호가 필요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힘껏 도와주자. 그렇게 내면 어른과 아이의 연결이 될 때 상처받은 나 자신은 치유가 되고 더 높은 자기로 연결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꾸만 명품백으로 모든 돈을 다 쓰고 싶어졌다. 내가 물질에 중독이 되어있었던가? 비싼 값을 내고 물건을 소유해야만, 내 자신이 무언가 보상을 받는 것 같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중학교 시절, 작은 시계 선물에서 나의 이런 마음은 생겨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에는 한창 리바이스, 계스, 장스포츠 등등의 미국 제품들이 명품으로 열풍이었는데, 아빠가 내게 그 중 한 개를 사줬던 걸로 기억이 난다. 아빠가 나를 백화점에 데려가서, 물건을 내게 쥐어주고, 돈을 지불하던 그 때에 나는 사랑을 느꼈다. 성인이 된 후, 내 스스로 돈을 벌게 되면서부터, 뭔가 마음이 허전하고 속이 상하는 일들이 생기면 소비를 통해 그 마음을 해소하곤 했는데, 점점 액수가 늘어나고, 구매하는 횟수도 잦아진다 싶었다. 


가만히 내면아이에게 물어본다. “너는 무엇을 할 때 기분이 좋니?” “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마음껏 몸을 흔들 때 기분이 좋아!” 잊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처음 접했던 에어로빅 강의실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던 기억이 나면서, 그때의 흥겨움과 나의 유연함에 나 스스로 즐거웠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지금 이 순간 음악을 크게 틀어본다. 방안에 가득 울리는 감미로운 팝송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뭔가 마음이 시원해짐을 느낀다. 지금이 바로, 내면아이와 내면어른이 만나 화합하는 순간인가보다. 


 나는 가만히 내 마음을 또 들여다 본다. 어린시절 부모님에게 받고 싶었던 오롯한 사랑과 애정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자, 마음이 풍요로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게 되었고, 이런 모습의 엄마로 아이들과 남편을 껴안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은 그들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지, 내 책임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책임진다는 것은 애정어린 자세이지, 조금도 이기적이지 않다.




남에게 내 감정을 맡긴다는 것은 가장 이기적인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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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거짓자기 

            저자는 자아(ego)라고 해석을 해 두었으나, 내 식대로 더 마음에 와닿는 단어로 각색하여 표현했다. 내면 아이와 어른이 분리되어 거짓된 마음으로 가득찬 상태 정도로 번역된다.           

② 더 높은 자기 

            거짓자기가 없어지고, 내면아이와 내면어른이 완전히 융화된 상태. 이 상태에 이르면 행복감을 맛보고, 상처입은 내면 아이가 치유될 수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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