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죽고 일 년은 멈춰 있는 시간이었다. 학교에는 휴학 신청을 했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걱정된다며 연락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몇 번 답장을 안 하니 그마저도 연락이 끊겼다. 그 이상으로 나를 챙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게 내 인간관계의 수준이었다. 알고 있던 일이었다.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장을 봐서 요리를 하기도 했지만 컵라면이나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일이 늘었고 그것도 귀찮으면 배달 음식을 시켰다. 심심하면 음악을 듣거나 소설을 읽었고 둘 다 질리면 영화를 봤다. 가끔 청소를 했고 졸리면 잤다. 샤워하는 횟수가 줄었고 면도도 안 했다. 머리도 자라는 대로 두었다. 잠드는 시간이 늦어졌다. 열 한시에서 열 두시, 열두 시에서 두시, 요새는 해가 뜰 때 잠들었다. 밤을 새우고 해가 떴는데 잠을 자지 못하기도 했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기절하듯 잠들 때도 있었다. 자다가 눈을 뜨면 벌레의 뒤꿈치 소리도 들릴 듯 집안은 조용했다. 어스름 내린 초저녁에 눈을 뜨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현관문 도어록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저녁을 먹자고 할 것 같았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엄마의 소리를 잊는 일이었다. 저녁을 먹으라며 부르던 소리, 찬물 좀 그만 먹으라던 걱정 섞인 잔소리, 미남 가수의 트로트 가사를 흥얼거리던 소리, 이유를 모르겠는 한숨소리. 잠에서 깨면 캄캄한 적막을 마주해야 했고 이어지는 정적 속에 엄마의 소리가 그리웠다. 그럴 때면 더 이상 그녀가 없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신아영이 찾아온 건 엄마의 납골당에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다행히 머리는 평소보다 정돈된 상태였고 수염도 길지는 않았다. 신아영은 왜 나를 찾아온 걸까. 그녀는 거실 소파에 앉았고 나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바닥에 앉았다.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시간이 없다는 건 또 무슨 말이고?"
“나 좀 목말라, 물 먼저 주면 안 돼?”
“아, 그래”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 상황이”
“그래?” 그녀는 대답을 하면서 우리 집을 둘러봤다.
“당연히 이상하지”
“왜?”
“왜냐고? 우리는 동창이긴 하지만 친구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졸업하고 연락했던 사이도 아니고 만났던 사이도 아니고 그냥 단지 같은 학교를 다녔던 동창이잖아. 근데 졸업하고 3년 만에 갑자기 집에 찾아온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그녀는 생수 뚜껑을 열어 물을 마셨다. 고개를 들고 500ml 물통의 절반을 천천히 마셨다. 물이 넘어가며 목이 움직였다. 이 모든 상황이 이미 예정되었던 일인 양 그녀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이상하지. 네 입장에서는. 졸업한 지 3년이 넘었고 대화도 안 해 본 사이니까.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아니야. 예정된 일이었고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어."
"예정된 일이었다고?"
"일단 너는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여야 해. 원래 세상은 그런 법이야.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고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선택뿐이야.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져야 해. 어머님이 돌아가신 건 유감이야. 하지만 그것도 이미 벌어진 일이고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어"
"아니 뭐 알겠는데. 네가 왜 나를 찾아온 건지, 예정된 일이라는 건 어떤 건지, 일단 그것부터 좀 말해주는 게 먼저야. 그리고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건 어떻게 알았어? 비밀이라고 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네가 알고 있는 것도 이해는 안 되는데?"
신아영은 뒤로 묶었던 머리 끈을 풀더니 다시 머리를 모았다. 두 손을 펴서 머리를 뒤로 쓸어 머리를 묶었다. 표정은 웃음기가 없었다. 방이 어두워졌다. 아까만 해도 해가 밝은 날이었는데 뭉쳐진 먼지 같은 구름들이 하늘을 가렸다.
“비가 오려나?”
"그럴 것 같네. 날이 흐려. 그래도 비는 안 올 거야"
"어떻게 알아?"
"그냥 느낌이 그래"
"나 어렸을 때부터 공상하는 걸 좋아했거든. 만화책 보거나 소설 읽거나 영화 보는 게 첫 번째 취미고. 장르도 현실에서 벗어나는 걸 좋아했어. 판타지 소설이나 우주에서 싸우는 영화나 시공간이 뒤틀리는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야. 근데 지금은 내가 그 이야기 속에 들어온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내가 혹시 귀신같아?" 신아영이 웃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오늘 아침 꿈에 네가 나왔다고, 네가 나와서 나는 몽정을 했다고, 그런 네가 지금 내 앞에 있다고, 같이 대화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말해주고 싶은 게 많은데. 오늘은 좀 어려워. 아까 시간이 없다고 한 것도 지금은 말할 수 없어. 말할 수 없다고만 해서 미안해"
"그러면 언젠가는 말해준다는 거야?"
“우리는 또 보게 될 거야. 머지않아, 조만간”
"왜 만나는지 모른 채로?"
"네가 문만 열어 준다면"
"그때 생각해 볼 게"
신아영이 떠나고 침대에 누웠다. 양손을 깍지에 끼고 머리 뒤에 대었다. 서로를 얽고 있는 손가락 뼈마디에 힘이 들어갔다. 깍지가 서서히 풀리는 걸 느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늘을 곱씹었다. 그녀와의 대화를 되짚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녀가 다녀간 후 집의 분위기도 달라진 것 같았다. 묘하게 비틀려 보인 달까. 아끼는 카메라의 렌즈를 누군가 몰래 바꿔 놓은 듯한 이질감이었다. 천장에 해가 비치기 시작했다. 흐린 구름 사이로 해가 나기 시작했다. 비가 오지 않을 거라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2시가 넘었다. 밖에 나가고 싶었다.
가을 공기는 코의 기압을 묘하게 바꿨다. 회색 후드가 더울 것도 같았지만 나와 보니 입기에 딱 맞았다. 목적지를 가지고 나온 건 아니었다. 일단 나오고 싶었고 어디든 나가고 싶었다. 마을버스를 타려고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하교하는 초등학생 두 명이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4학년이나 5학년 정도 되어 보였는데 두 녀석 모두 삼십 년 전 국민학생인 듯 머리가 짧고 피부가 까맸다. 키가 더 큰 석은 가을인데도 샌들을 신고 있었고 키가 작은 녀석은 작은 눈에 볼 살이 통통하게 올라와 있고 눈과 눈 사이가 유독 넓었다. 키가 큰 녀석이 주변을 살피더니 전봇대 밑에 있는 돌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통통한 녀석은 그걸 보며 희주였다. 키 큰 녀석이 눈을 한 번씩 옆으로 흘기더니 언덕 옆의 좁은 골목으로 돌을 꺼내 던졌다. 통통한 녀석도 주머니에 돌이 있었고 수차례나 있는 힘껏 돌을 던졌다. 돌이 하나만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세 번 네 번을 골목으로 돌을 던졌다. 잠시 뒤 골목 사이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녀석들이 고양이를 맞추려고 돌을 던진 것이었다. 꼬리가 짧고 한쪽 귓바퀴가 짧은 고양이었다. 언제 다쳤는지 뾰족한 왼쪽 귓바퀴와 다르게 오른쪽 귓바퀴가 뭉개져 있었다. 골목에서 나온 고양이가 뛰어오더니 내 쪽으로 점프를 했다. 얼굴 쪽이었고 피한다고 피했지만 넘어지고 말았다. 고양이는 나를 스치고 빌라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초등학생들은 키득거리다가 내가 넘어진 걸 보고는 언덕길로 도망쳤다. 뒤를 돌아보며 웃으면서 뛰어갔다. 쫓아가서 패 주고 싶었지만 시야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넘어지면서 팔꿈치를 찧고 손바닥이 까졌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집에서 이 정류장까지는 엄마의 출근길이었다. 현관문을 지나고 언덕길을 걷고 계단을 내려왔을 것이다. 계단은 폭이 2미터도 안 되는 돌계단이었다. 높이는 낮아도 경사가 심해 오를 때면 다리가 묵직해지는 계단이었다. 겨울에는 깜깜하고 길도 미끄러웠을 텐데 매일 그 새벽에 어떻게 이 길을 걸었을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일이 힘들다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아까 넘어진 팔꿈치가 쓰렸다. 나는 고양이 한 마리에 넘어지고 팔꿈치도 아픈데 엄마는 그 새벽에 자동차에 치였다. 엄마가 사고를 당했을 때 나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잠에서 깨보니 부재중 전화가 20통이 넘어 있었다. 무음이라 듣지 못했다. 몇 통은 경찰서에서 몇 통은 소방서에서 몇 통은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일곱 살 때 감기에 걸려 동네 의원에 찾아가는 데 거리에 있는 ‘24시 사우나’라는 간판을 읽고 엄마에게 ‘엄마, 24시 사우나가 뭐야’라고 했다. 내가 한글을 깨쳤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엄마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굽혀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 품의 온기는 따뜻했다. 내 뒤통수를 쓰다듬던 엄마 손의 보드라움과 목뒤에서 나던 엄마의 살 냄새에서 엄마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걸 느꼈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버스에서 내렸다. 창가 쪽 남자가 할머니의 장바구니를 버스에서 내려주었다. 손잡이와 바퀴가 있는, 빨간 천으로 된 쇼핑 카트였다. 왼쪽 바퀴의 바큇살이 부러져 달그락거렸다. 할머니는 남자에게 고맙다고 한 뒤 카트를 밀었다.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티브이를 보며 빨래를 게다가 깔깔 웃던 엄마가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때 나에게 선물로 체크무늬 목도리를 받고 감동받은 엄마의 얼굴이 생각났다. 보너스를 받았다며 나에게 5만 원을 주던 엄마의 기쁨 어린 표정이 머리를 스쳤다. 로또의 숫자 세 개가 맞아 흥분했다가 나머지가 꽝이라 허탈해하던 모습도 내 안에 있었다. 엄마의 모든 순간이 나를 감쌌다. 엄마는 일만 했고 외로운 분이었지만 나를 지키며 그녀 나름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 삶 속엔 작은 행복들이 겨울나무에 매달린 눈송이처럼 묻어 있었고 남들이 어떻게 살든 그 작은 행복들을 소중히 아꼈다. 내 세계의 절반은 엄마였다. 엄마가 있기에 내가 있었고 내가 있기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안쓰러웠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내 기억 속에 남은 그녀의 행복들이 녹아 내 안에 가득 찼고 터져나 오는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버스가 몇 대나 오갔고 타고 내리는 사람들은 나를 안쓰러우면서도 낯선 눈으로 나를 구경했다. 몸이 녹아내리는 듯 울었다. 엄마가 사라졌다. 엄마가 세상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