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상한 나라의 파수꾼 5

by 추세경

오늘 신아영을 만나기로 했다. 어제는 크리스마스였고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뉴스 앵커는 21년 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고 티브이 채널에선 성탄 특집 영화를 틀어주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는 중동 국가들끼리 전쟁을 앞두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자신들의 체제를 인정해 달라며 인접 국가의 민간 지역에 폭격을 가했다. 유튜브 영상으로 폭격의 현장을 볼 수 있는데 피를 흘리며 우는 아이를 소총으로 무장한 남자들이 트럭에 납치하는 장면이 있었다. 아이가 납치된 부모는 인터뷰에서 아이를 살려달라며 울었다. 폭격을 당한 나라에서는 무장단체의 주요 거점에 보복 공습을 가했지만 무장단체는 공격을 받을 때마다 인질을 한 명씩 죽이겠다고 발표했다. 붙잡혀 가는 아이의 울음과 울부짖는 부모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그만 티브이를 껐다. 도서관에 가려면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날씨가 추웠지만 공기가 맑았다. 밤 사이 눈이 와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는 언덕길에는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었다. 알갱이들이 뭉쳐진 곳도 눈에 띄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 내린 풍경이 반가웠다. 해가 떴을 때 바깥에 나온 게 3개월 만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10분이면 도서관에 갈 수 있었다. 도서관은 4차선 도로 옆에 있었는데 비스듬한 경사 위에 세워져 인도에서 도서관으로 가려면 얕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도서관 옆으로는 근린공원이 있어 책을 보다 쉬고 싶으면 편하게 나무속을 걸을 수 있었다. 도서관은 내가 초등학생 때 지어졌으니 10년 정도 된 건물이었다. 건물의 외벽은 붉은빛이 도는 갈색 벽돌이었다. 도서관 벽면에 볼을 대면 차갑게 정신이 들었는데 그 시원한 느낌이 좋아 여름에는 괜히 걷다가 팔과 목을 대기도 했다. 건물은 4층이었다. 1층에는 신문과 잡지를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열람실은 벽면이 통창이라 낮이면 햇살이 잘 들었다. 2층에는 책이 진열된 열람실이었고 3층은 수험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4층은 컴퓨터가 나선형으로 배열된 전산실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도서관에 다녔는데 여름이면 2층 도서관 구석에 앉아 혼자 책을 보곤 했다. 추억이 많은 곳이었다.


도서관 앞에 도착했다. 출입구를 보니 오늘은 휴관일이었다. 정기 휴관은 매달 2, 4주의 월요일이었지만 건물 보수를 이유로 연말에 1주일 간 휴관을 하고 있었다. 신아영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4시 50분이었다. 그나마 날씨가 따뜻한 날이었지만 왜 굳이 밖에서 만나자고 했는지 궁금했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추울 것 같아서 근린공원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도서관 옆에는 공원이 하나 있었는데 한 바퀴를 돌면 10분이 걸리는 작은 공원이었다. 나뭇잎들이 모두 떨어진 겨울 공원이었지만 빈 가지마다 눈송이가 내려 있었다. 걷고 싶은 풍경이었다.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모자를 눌러쓰고 공원을 걸었다. 공원은 얕은 언덕 위에 있었고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가면 철봉과 평행봉 등 운동기구들이 있었다. 겨울이고 도서관도 닫아서 그런지 공원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오랜만에 외출하니 어지러운 것도 같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상쾌했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았을 때 신아영이 벤치 앞에 서있었다.


신아영은 모자가 달린 유광 검정 패딩에 두꺼운 하얀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신발은 지난번과 같은 흰색 스니커즈였다. 세 달 전에 봤던 신발인 데도 새 신발 같았다. 새로 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난번과 똑같았다. 신아영을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은 호수 표면의 햇살처럼 반짝였다. 덩달아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힘을 주어 내렸다. 그녀를 반기기엔 아직도 걸리는 게 많았다. 신아영이 누구인지 그녀를 믿을 수 있을지 아직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만나러 왔다. 벤치 옆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바람에 흩날렸다. 내 머리 위에 눈이 떨어졌고 떨어진 눈을 털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딱 맞춰 왔네"


"너는 1분 늦었어"


시계를 보니 3시 1분이었다.


"아니야. 10분 전에 왔는데 추워서 공원 한 바퀴 돌았어"


"알아 사실은. 먼저 도착해 있었거든"


"못 봤는데?"

"차에 타고 있었어" 신아영은 도서관 주차장 출입구 쪽의 빨간색 포르셰를 보며 말했다. 시동이 켜진 채 비상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같이 갈 곳이 있어. 아니 정확히는, 만날 사람이 있어."


"누군데?"


"내가 얘기해 줄 수 있는 건. 그 사람을 만난 뒤야."


"저 빨간 포르셰가 너 차야?"


"응"

"너는 참 알 수 없는 거 투성이다"


"나 추워. 그리고 언제까지 비상등만 켜놓고 저기에 차를 세워 놓을 수는 없어"


오랜만에 온 도서관 정경을 한번 둘러보았다. 빨간 벽돌의 외관은 정겨웠고 근린공원의 나무들은 내 마음을 편하게 했다. 곳곳에 쌓인 눈 위로 겨울의 햇빛이 떨어졌고 언제 눈이 왔냐는 듯 하늘은 비교적 맑았다. 겨울 하늘답게 색이 옅고 담담했다. 습기를 머금은 차가운 공기가 폐부에 닿았다. 걱정도 됐지만 끌리는 대로 하고 싶었다.


"나도 추워"


신아영은 운전을 잘했다. 핸들을 돌리고 깜빡이를 넣고 사이드 미러를 보는 게 리모컨으로 티브이 채널을 돌리 듯 편하고 쉬워 보였다. 차를 타고 그녀는 운전에 집중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가끔씩 운전하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앞에서는 살짝 휘어 보였던 코가 옆에서 보니 더 자연스럽고 예뻤다. 창밖을 보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강 위로는 겨울 햇살이 비추었다. 멀리 보이는 쓰레기 소각장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스포츠카는 처음이었고 트럭 옆을 달리면 트럭 바퀴가 눈높이에 있었다. 어느새 고속도로에 진입했고 첫 번째 휴게소를 지나칠 때 그녀가 말을 꺼냈다.


“나는 운전이 좋아. 어렸을 때부터 차가 좋았어. 일곱 살인가, 여덟 살 때부터 아빠가 운전할 때면 조수석에 내가 앉았어.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뒤에 앉았고. 아빠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그게 그렇게 신나는 거야. 밤에는 가드레일 옆으로 가로 등이 하나씩 스쳐가는 게 좋았어. 하나가 지나고 다시 하나가 지나고 또 하나가 지나고, 그걸 보고 있으면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어. 멀리서 보이는 달빛도 좋고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 소리도 좋았어. 아빠는 옆모습이 잘 생겼거든. 그런 아빠를 보는 것도 좋았어. 아빠는 운전에 집중했어. 내가 아빠를 쳐다보는 것도 모르는 건 아닐까 싶게. 아빠를 보고, 창밖을 보고, 뒤에서 편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엄마를 보고.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그때가 제일 좋았어. 어느 도로를 달리는 지도 몰랐지만 그냥 그 시간이 좋았어. 그때의 달빛 가로등 불빛 그 불빛에 빛나는 아빠의 옆모습이”


핸들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이 보였다. 잡지의 보석 광고에 나올 듯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었다. 기어를 바꾸려고 기어봉에 손을 올리면 그 손을 잡고 싶었다.


“운전은 언제부터 했어?”


“고등학교 3학년 때 생일이 지나고 바로 면허를 땄어. 만 18세부터 되니까. 고등학교 3학년 생일날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했어. 그게 어떤 생일선물보다 좋았어” 철골을 길게 늘어트린 대형 트럭이 나타나자 그녀는 차로를 바꿨다. 사이드 미러를 보고 깜빡이를 켜고 핸들을 돌리고 액셀을 밟았다. 커지는 엔진소리와 함께 금방 트럭을 앞질렀다. 트럭과 멀어지자 원래 차로로 복귀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야자를 하는데 공부가 너무 안 되는 거야. 답답하고. 원래도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일 야자 시간을 지키긴 했거든. 공부가 되든 안되든 책을 펴놓고 일단 앉아 있긴 했어. 어떤 애들은 귀마개까지 끼고 공부하잖아. 안 그래도 교실은 조용한데 답답하게 귀마개는 왜 끼는지, 아무튼 아무래도 그날은 답답해서 안 되겠는 거야. 그래서 아빠한테 전화해서 말했어. 오늘은 야자를 하기 싫은데 드라이브시켜주면 안 되냐고. 아빠는 그러자고 했어. 엄마랑 같이 학교로 가겠다고, 20분 정도 걸린다는 거야. 우리 아빠는 그런 아빠였어. 내가 하는 건 언제나 괜찮다고 하는 아빠. 건강하고 남한테 피해만 안 주면 된다고 늘 말씀하셨어. 공부는 알아서 하라고. 운전면허를 따면 차를 사주겠다고. 아빠는 나한테 차를 사주려고 내가 열 살 때부터 적금을 붓고 있었어. 선생님한테는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조퇴를 해야겠다고 말했어. 선생님은 ‘그래 안 좋으면 가야지’라고 말하면서도 눈빛은 나를 의심하는 눈치였어. 말이 조토방 야간 자습 중에 나가는 건데 조퇴라는 게 어딨어? 그래도 상관없었어. 아빠가 괜찮다고 했는데 뭐.


“멋있으시다” 나도 엄마 생각이 났다.


“교실에서 나와 학교 벤치에 앉아서 아빠랑 엄마를 기다렸어.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거야. 4월 초 봄날이었고 벚꽃이 만개했을 때였거든. 너도 알지만 우리 학교는 벚꽃이 예뻤잖아. 밖에서 학교를 보니까 교실에 켜진 불빛들이 예쁜 거야. 그 안은 엄청 답답한데 밖에서 구경하기엔 예쁜 거지. 그 느낌이 좀 이상했어. 기다릴 동안 노래를 들을까 해서 음원 차트를 보니까 '벚꽃엔딩' 일등인 거야. 들을까 하다가 그냥 이어폰을 다시 집어넣었어. 봄밤에는 그 나름의 울림이 있는 것 같아서. 그걸 그냥 즐기려고. 벌레 우는 소리, 달빛 떨어지는 소리, 식물들 싹트고 꽃피는 소리, 따뜻한 공기 소리 같은 것들."


"벌레 우는 소리까진 알겠는데, 달빛 떨어지는 소리나 따뜻한 공기 소리, 이런 건 무슨 말이야?"


"나도 잘 몰라. 그냥 내 느낌엔 그래. 그런 것들 때문에 봄밤은 포근해"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운전에 집중했다. 깜빡이를 넣고 핸들을 돌리고 액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았다. 승차감은 정속 주행하는 편했지만 차들을 하나하나 앞 질러가고 있었다.


“10분이 지나도 부모님이 안 오는 거야. 차가 좀 밀리나 싶어 그냥 기다렸어. 근데도 연락이 없어서 전화를 했는데 전화도 안 받는 거야. 노래도 듣고 유튜브도 봤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연락도 없는 거야.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이라도 해야지, 라면서 짜증이 났어. 근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는 거야. 경찰이라고, 신아영 학생 맞냐고 물어보더라. 맞다고 그랬더니 아빠랑 엄마가 죽었다고 하는 거야. 교통사고가 났다고. 병원으로 오라고 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도 나를 배려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을 천천히 하더라고. 무슨 소리하는 거냐고, 빨리 좀 말하라고 내가 화를 냈어. 그랬더니 아저씨는 나보고 똑똑히 알아들으라는 듯 더 큰 목소리로 분명하게, 학생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했어. 그때부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 귀에서 삐 소리가 나는 것 같고 눈앞이 빙빙 도는 것 같고 그랬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에 도착했는데 이미 부모님은 돌아가신 뒤였어."


덤덤한 말투였다. 감정을 빼고 말했다. 슬픔을 일시정지 하고 조문객을 응대하는, 장례식장의 상주 같은 말투였다. 왜 나에게 이런 말들을 하는 거지,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적어도 그녀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운전을 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을 할 때야 비로소 꺼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신아영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에 구멍이 난 듯 아팠고 신아영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곳이 가득 찼다. 그 순간 나는 이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마음이 녹아내려 이 여자에게 옮아갔다. 지금 감정이 혹시 착각이어도 나에게는 분명 사랑이었다.


“아빠랑 엄마는 내가 죽인 거야. 그때 내가 드라이브를 하자고 안 했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날은 두 분의 결혼기념일이었고 벚꽃이 만개한 봄날이었어. 내가 부르지만 않으면 둘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거야. 내가 좀만 참고 야자를 했으면 그 사고는 피할 수 있었어."


신아영은 액셀을 밟았다. 광주 원주 고속도로 타고 원주를 지났고 이제는 중앙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어디까지 가는지는 묻지 않았다. 갈수록 주변에는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이어졌다. 아니 산들이 겹쳐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추위에 푸르름을 잃은 산들은 빈 가지 사이사이로 하얀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눈이 언제 내렸든 고도가 높은 산은 겨우내 눈이 그대로일 것이다. 창밖으로는 노을이 지고 산맥들 뒤로는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신아영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참 슬펐겠다고, 네 마음을 안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이렇듯 예상 가능하고 정답에 가까운 말들은 많았다. 당신의 마음을 공감하고 있다는 어떤 말이든 괜찮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다였다. 노을빛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졌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그 눈 속에 어떤 마음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말로 대답을 해야 할지 한번 더 말을 고르기로 했다. 신아영은 액셀을 밟았고 그때마다 스포츠카의 엔진음이 반복해서 울렸다.

keyword
이전 04화이상한 나라의 파수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