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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파수꾼 7

by 추세경

내 인생은 평범했다. 아빠가 없다는 건 그다지 불행한 일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편부모 가정도 많았고 가족이 지옥 같은 가정도 많았다. 그에 반해 내 삶은 조용하고 안락했다. 엄마의 일상은 매일이 전투였을지 몰라도 나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둥지 안의 아기새처럼 평화로웠다. 평범한 나를 특별하게 해주는 건 책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내 안은 다채로운 세상으로 채워졌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며 살인자의 마음을 경험했고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를 읽으며 시한부의 사랑이 무엇인지 배웠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인간이길 거부하는 사람을 만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청춘이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죽고 알았다. 내가 사는 곳이 작은 둥지였다는 걸. 나는 둥지에 숨었고 세상을 등졌다. 바깥으로 나가는 방법은 배운 적도 없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 내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둥지보다 덩치가 큰 고양이였다.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고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노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이게 현실인지 아니면 내가 미친 건지 판단이 안 됐다. 내가 사는 곳이 현실인지 아니면 소설 속 세계인지 알 수 없었다. 소설 같은 현실이, 현실 같은 소설이, 나를 덮쳤다.


고양이 인간은 나와 악수를 마치고 반대편 소파에 가서 앉았다. 들고 있던 실크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다리를 꼬고 한쪽 팔을 소파 등받이에 걸쳤다. 귀를 두 번 접었다 펴더니 혀로 자기 입 주변을 핥았다. 눈을 두 번 깜빡였다.


“아영 양. 그간 잘 지냈어요?”


“그럼요. 조로 님도 잘지 내셨죠?”


“보시다시피”


둘의 분위기는 편안해 보였다.


“그나저나, 민규 씨는 많이 놀란 것 같네요”


“그럴 수밖에 없죠. 처음이니까요.”

“민규 군, 이미 알겠지만, 우리는 이미 아는 사이입니다. 몇 번이나 마주쳤었죠”


고양이 인간은 탁자를 두 번 두드렸고, 어느새 아까의 그 사내가 나타나 고양이 인간 앞에 있는 찻잔에 따뜻한 커피를 따랐다. 사내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었다. 같은 동작만 평생을 반복해 온 사람처럼 최소한의 걸음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하는 것 같았다. 동작 하나하나에 기품이 있었다. 신아영은 자기도 커피를 달라고 해서 받았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남자는 더 필요한 게 없냐고 묻고 목례를 한 뒤 사라졌다.


“보시다시피, 저는 고양이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소설과 현실을 이어주는 곳입니다. 민규 씨가 믿든 안 믿든 저는 이곳에 실재하는 존재입니다. 이 성의 관리자고요. 이곳은 5만 년이 넘게 존재했습니다. 소설과 현실의 연결 통로.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죠. 아, 건물은 최근에 다시 지었습니다. 최근이라고 해봤자 500년 전입니다. 인간들에겐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이죠.”


고양이는 생각보다 수다스러웠고 말도 빨랐는데 발음은 정확했다. 고양이의 입으로 사람의 말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일단 좀 당황스럽고 지금 말씀하신 것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이 뭐고, 현실이 뭐라고요? 연결 통로요?"

“조금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현실의 세계와 이야기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세계가 균형을 이루고 있죠. 현실세계의 힘이 더 강해도 안되고, 더 약해도 안됩니다. 현실 세계의 에너지가 이야기의 세계를 만들고, 이야기 세계의 에너지가 현실 세계를 만들죠. 그리고 이곳은 그 에너지가 통과하는 곳입니다. 순환의 고리라고 할까요. 사람들이 만드는 이야기와 그들의 꿈, 상상력 까지도 모두 이곳을 통과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겁니다. 저 같은 고양이가 말이죠 “


창밖을 보니 눈발이 굵어졌다. 바람이 거센 듯 눈이 날렸지만 바깥의 소리는 실내로 들어오지 못했다. 장작 타는 소리만 정적 속에 울렸다. 고양이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두 손을 모아 잡고 나를 응시했다.


“하지만 요새는 그 균형에 균열이 가고 있습니다. 이야기 세계의 에너지가 자꾸 약해지고 있죠. 아니 달리 말해 현실의 에너지가 정도를 넘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세계는 깨져버릴 겁니다. 이야기의 세계가 사라지는 거죠. 상상력이 없는 세상이 되고 맙니다. 민규 군이 좋아하는 소설이 없고, 만화가 없고, 영화가 없는 세상입니다. 음악도 듣지 못하고 노래도 부를 수 없는 세상이죠. 응급실 앰뷸런스가 도로에서 사이렌을 울려도 차들이 비켜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버스 정류장에서 젊은 청년이 흐느껴 울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세상이요. 꿈도 없고 대화도 없고 공감도 없고 연민도 없는 그런 세상과 비슷하죠. 물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딱 한마디로 말하기는 불가능해요. 현실과 상상력은 서로 섞이고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는 게 아닙니다. 상상력이 없는 세상을 완벽하게 상상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제가 궁금한 건 왜 제가 여기에 있는지 에요. 현실의 세계나 소설의 세계,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있는 거죠? 왜 이곳에서 당신을 만나야 합니까? 신아영은 또 어떤 상관이고요."


나는 신아영과 고양이 인간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신아영은 두 손으로 찻잔을 잡고 시선을 내려 응시했다.


“우리가 당신을 부른 건, 당신이 선택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선택받은 자를 안내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곳을 떠나고 싶으면 떠나도 됩니다. 당신이 떠나고 싶다면 붙잡을 수 없어요. 누군가의 의지를 막을 힘은 저에게 없습니다. 저희는 당신을 강제로 끌고 온 것도 아니고, 납치한 것도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민규 군의 결정이에요"


“선택받은 자요?”


"네 그리고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당신의 어머니는 살아 있습니다."


"네?"


“작년 10월에 돌아가신 당신 어머님이 살아 있다는 거예요. 말 그대로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끝의 소리가 올라갔다. 안 그래도 답답했는데 왜 갑자기 엄마 얘기가 나오는지 순간 욱할 뻔했다. 신아영은 여전히 찻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영아 여기까지 왔으니 네가 설명 좀 해줘. 이게 다 뭔지."


신아영이 결심한 듯 나에게 대답을 하려는 데 고양이가 다시 끼어들었다.


"진정하세요. 답답한 거 압니다. 당혹스럽고, 이해도 안 되고, 화도 나죠. 일단 제 얘기를 들으세요. 당신의 어머님이 죽은 곳은 소설의 세계입니다. 현실에서 죽은 게 아니에요. 소설의 세계에서 죽은 거죠. 말씀드렸듯, 세계의 균형이 깨지고 있습니다. 금이 가고 있어요. 그 틈에서 당신의 어머님이 사라져 버린 겁니다. 하지만 살아 있어요. 현실에서 죽은 건 아니라고요.”


“엄마를 살릴 수 있다고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시군요" 고양이는 시선을 내리고 찻잔의 손잡이를 잡고 찻잔을 돌렸다.


“균열의 틈에서 어머니를 구할 수 있는 건 결국 당신입니다. 그 균열에서 어머님을 구하고 그 균열을 매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민규 군이에요. 잔인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당신이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어머님이 현실에서 사라진 걸 수도 있고 어머님이 균열에 빠졌기 때문에 민규 군이 선택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 때문에 엄마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누가 선택을 한다는 거죠?"


"거기에 어떤 힘이 작용하는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에요. 선택받았다는 것도 하나의 표현일 뿐이죠. 누군가의 의지가 작용하는 일인지, 세계의 에너지가 만드는 현상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민규 씨는 선택이 되었고, 어머니는 그 틈에 빠졌습니다. 인과관계로도 선후관계로도 해석할 수 없는 일이죠. 보다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고양이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는 나를 자각했다. 목 위로 고양이인 인간과 마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새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자의 말을 믿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시간이 필요했다. 냉동고에서 얼음을 꺼냈다고 바로 물이 될 수는 없었다.


"엄마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내 어조는 누그러져 있었다. 의사에게 치료법을 묻는 환자처럼 물었다.


고양이 인간은 송곳니로 입술 아래쪽을 깨물었다.


“나도 선택받은 자야” 신아영이 말했다.


신아영은 부모님의 장례를 마치고 다시 학교에 다녔다. 오후 보충수업까지는 듣고 야간 자율 학습은 듣지 않았다. 그녀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영은 겉으로 보기에 평소와 비슷했다. 점심을 먹고는 매점에 뛰어가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쉬는 시간에는 교실 뒤 사물함 앞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치마 대신 체육복 하의를 입었고 체육 시간이면 교실에 남지 않고(고3의 체육시간에는 공부 시간이 보장된다) 운동장으로 가 반친구들과 농구를 했다. 학생들 중 몇몇은 신아영에 대해 험담을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지. 이해가 안 돼'와 같은 말이었다. 남 욕하는 걸 취미로 사는 사람들에게 신아영의 모습은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서 수능을 치를 때가 되었다. 수능 전날엔 친구들과 응원쪽지를 주고받고 후배들이 준비한 합격 엿도 받아 가방에 챙겼다. 수능 당일이었다. 집에서 15분 거리의 시험장에 신아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난 뒤 학교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출석 일수는 채워 졸업은 할 수 있었다.


“내가 똑같이 생활해야 아빠랑 엄마한테 덜 미안한 것 같았어. 내가 씩씩해야 그들이 편하게 떠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나 욕하는 애들이 있다는 거 알고 있었지. 하지만 어쩌라고. 걔네가 어떤 욕을 하든 상관없었어. 대신 집에서는 많이 울었어. 몸에서 뭔가가 통째로 빠져나가는 것 같이 울었어. 가끔 큰 이모가 와서 반찬도 해주고 밥도 차려줬어. 이모 앞에서도 괜찮은 척했어. 밥도 한 공기 다 먹고 반찬도 맛있다고 이모 음식을 칭찬하기도 했어. 이 슬픔은 오로지 나랑 엄마 아빠 셋만의 것이고 싶었어. 슬픔도 나누고 싶지 않았어. 학교에 가선 또 괜찮은 척 웃고 집에 오면 혼자 울었어"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너도 누가 너를 찾아갔어?"


“수능 전날이었어. 김집사님이 나를 찾아왔어. 아까 그 남자분 말이야. 낯선 남자니까 처음에는 경계했지.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싶었어. 수능 전날이기도 했고. 결국 설득돼서 여기 온 건, 아무것도 붙잡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야. 내가 붙잡은 건 희망이고, 여기까지 따라왔어. 이곳에서 조로 님을 만났고. 그게 벌써 4년 전이야"


"그래서 부모님은? 부모님을 구했어?"


"아직"


눈을 감은 채 이야기를 듣던 고양이 인간이 말했다.


"아영님은 노력하는 중입니다. 아직 부모님을 찾지 못했죠."


"언제 찾을 수 있는 건데요? 찾을 수는 있는 거예요?"


"그건 아영님만 알 수 있어요. 선택받은 자 자신만이 알 수 있죠. 1년도 안 걸려 균열을 찾아낸 사람도 있고 평생을 노력해도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중간에 포기한 사람도 있고 애초에 시작하지 않은 사람도 있죠. 방법도, 시간도, 해야 할 일도, 균열의 크기도, 하고자 하는 의지도, 주어지는 환경도 모두 다릅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사라지는 겁니다. 무(無)로 돌아가는 거예요. 현실의 세계에도 존재하지 않고 소설의 세계에도 존재하지 않죠. 사라지는 겁니다. 완전히 요.”


고양이 인간은 팔소매를 걷어 시간을 확인했다. 금장으로 된 사각 다이얼에 검은색 가죽 줄이 채워진 시계였다. 시계를 보며 심각한 듯 입을 다물고 귀를 두 번 접었다 폈다.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죠?”


“날이 밝으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장소로 가세요. 그곳에 실마리가 있을 겁니다. 그게 알려줄 수 있는 전부예요. 나머지는 민규 군만이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을 쪼개는 듯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빚쟁이의 노크처럼 굵은 눈이 창문에 부딪혔다. 실내의 조명이 깜빡였다. 찻잔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모든 게 잠잠해졌을 때, 고양이 인간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앉아 있던 맞은편 소파 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네 발로 서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고양이의 노란 눈이 나를 응시했다. 뒤로 돌면서도 나를 응시하더니 고개를 돌려 건물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물 위의 소금쟁이처럼 움직임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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