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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파수꾼 6

by 추세경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강원도 영월의 어느 산중턱이었다. 제천 IC를 나와서도 한참이나 국도를 탔다. 남한강을 끼고 달리는 88번 국도였다. 신아영은 출발할 때부터 내비게이션을 보지 않았다. 길을 모르거나 헷갈려하는 기색은 없었다.


직진만 하던 신아영이 옆으로 갈라지는 길로 차를 틀었다. 산과 산 사이의 샛길로 왕복 1차선의 도로였다. 길 초입에는 2층 높이의 펜션이 있었고 샛길을 따라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내천이 있어 경치와 입지가 모두 좋아 보였다. 해는 졌고 산길이라 가로등도 없는데 신아영의 운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반대편 차로에서 마주 오는 차들이 라이트 불빛을 번쩍였다. 산과 산 사이로 달빛이 비쳤는데 구름 뒤에 가려져 있어 밝지는 않았다. 마주 오는 차가 없을 땐 우리 차의 라이트와 도로 바닥과 가드레일에 달린 야광 반사판에 의지해야 했다. 그 도로를 30분 정도 갔을까, 신아영이 갑자기 유턴을 했다. 반대 차로에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표지판이 입구에 녹슨 채 서 있었는데 표지판에는 '사유지(뱀주의)'라고 적혀 있었다. 조금 무서웠다. 사실은 샛길로 들어왔을 때부터 그랬다. 차에는 우리 둘 뿐이었고 조수석에 앉아 어둠뿐인 산길을 이렇게 달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사유지에 진입해서도 20분이 넘게 굴곡진 경사를 올라갔다. 도로는 아스팔트로 되어있었고 경사 바깥으로는 낭떠러지였다. 추락을 방지하는 가드레일이 도로 가장자리에 있었다. 네모난 돌에 노란색 검은색 줄 무니 페인트가 그려진 가드레일이었다. 밤길 운전을 보조해 줄 표시등은 일절 없었다. 이곳은 공용 도로가 아니라 사유지였다. 오직 자동차의 헤드 라이트에만 의지해야 했다.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졌다. 몸이 왼쪽으로 쏠리고 오른쪽으로 쏠리고를 반복했다. 차에 달린 손잡이를 잡았다.


“괜찮아, 거의 왔어” 신아영이 말했다.


이내 경사가 끝나고 평지가 나왔다. 축구 경기장 두 개는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었다. 산 중턱에 이런 공간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평지 저편에 건물이 하나 있었다. 어둠이 내려 사방이 어두웠지만 건물에서는 빛이 새어 나왔다.


“저기야, 다 왔어”

평지 초입에서 건물까지 도로가 이어졌다. 비포장이었지만 지면이 고르게 다져져 있었다. 건물과 가까워지니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건물이 땅 위에 바로 있는 게 아니라 높이가 일 미터는 되는 석단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돌을 깎고 쌓아서 만든 석단였고 좌우로 백 미터는 넘어 보였다. 석단 중앙에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거기서부터 건물까지도 오십 미터는 되어 보였다. 건물은 1층으로 된 한옥 건물인데 좌우로 펼쳐진 길이가 월대의 폭을 모두 채웠다. 신아영은 석단 계단 바로 앞에 차를 댔다. 석단의 높이가 차의 높이와 거의 비슷했다.


"내리면 돼?" 안전벨트를 풀고, 신아영을 바라보았다.


신아영은 운전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입으로 길게 호흡을 뱉었다.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서 내려 가까이서 보니 더 장관이었다. 석단을 이루는 돌 하나하나가 나름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런 돌이 수 없이 쌓여 단을 이루고 공간을 만들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석단 저편에

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자줏빛 나무 기둥이 기와지붕을 받치며 좌우로 펼쳐져 있었다. 밤이라 건물의 좌우가 끝을 모르고 뻗은 듯 느껴지기도 했다. 차에서 내린 신아영은 석단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에게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녀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석단의 위는 지상과 분리된 또 하나의 세계였다. 사람 키만 한 계단을 올랐을 뿐인데 공간의 기운이 땅과는 달랐다. 한라산 백록담을 보며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땅이지만 하늘이고 텅 비었지만 가득한 느낌. 모든 걸 품으면서도 한 없이 작아지는 공간이었다. 잠시 멈춰 이 공간의 위엄을 느꼈다. 추운 바람도 짙은 어둠도 아픈 슬픔도 무거운 고독도 잠시 멎었다. 불가항력의 힘이 그곳에 있었다.


석단 위로는 신아영과 나 둘 뿐이었고 우리는 건물을 향해 걸었다. 계단 끝에서 일직선으로 걸으니 건물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건물은 좌우로 더 넓었다. 문 앞에 서자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철컥하는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가까이에서 봐도 한옥이었고 나무로 된 문이였기에 왜 쇳소리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왔다.


“어서 오세요. 아영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남자와 신아영이 인사를 나눴다. 남자는 180cm가 넘는 키에 정장을 입었다. 문을 열기 직전에 다림질이라도 한 듯 정장에는 구김하나 없었고 흰색 셔츠에 나비모양 타이를 하고 있었다. 어깨가 넓고 팔이 길었는데 얼굴은 작아 키가 더 커 보였다. 머리카락은 황갈색으로 얇았지만 정돈이 잘되어 있었다. 눈에 쌍꺼풀은 없고 눈매가 길게 뻗었지만 눈꼬리는 쳐져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눈꼬리 쪽에 깊게 파인 주름이 세 개가 있었다. 차림새나 몸의 자세만 봤을 땐 젊어 보였지만 눈가의 주름 때문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언뜻 보면 20대로 보이기도 했고 달리 보면 40대가 넘어 보이기도 했다. 입고 있는 정장도, 외모도, 이 건물과 어울리지는 않았다. 그는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입은 다문 채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했다.


“들어오시죠"


남자는 손바닥을 위로하며 우리를 안내했다. 직업적으로 몸에 밴 듯한 매너였다. 신아영과 내가 들어가고 그가 문을 닫고 따라왔다. 건물의 실내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전통 한옥의 모습이 아니라 현대식 실내였다. 바닥과 벽면은 대리석이었고 은은한 다운 라이트가 실내를 비추었다. 온도와 습도가 좋아 추웠던 몸이 금방 풀렸고 건조한 느낌도 없었다. 방음도 잘돼 우리가 걷는 발소리만 실내에 울렸다. 티브이에서 보던 고급 호텔 같았다. 복도는 10m 이상 이어졌는데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벽면에 걸려 있는 한 점의 액자였다. 사람 키 만한 커다란 액자에 그 고양이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동네에서 마주쳤던 그 고양이, 오른쪽 귓바퀴가 뭉개진 검정고양이였다. 사진 속 고양이는 엉덩이를 낮게 하고 다리에 힘을 준 뒤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진이 커서 고양이는 실제보다 컸고 나와 눈높이가 같았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은 얼마 전 집 앞에서 나를 응시했던 노란 배경에 검정 동공이었다.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하고 있으니 꼭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눈빛만 보면 사진 속에서 그대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잠시 멈춰 사진을 바라보았다. 얼마 간의 대치를 하다 깨달은 건 액자가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는 것이었다. 고양이는 사진처럼 생생했지만 물감이 종이에 굳어 입체감 있는 질감으로 배경이 채색되어 있었다. 다시 보니 고양이에게도 사진과는 다른 이질감이 있었다. 앞서 가던 신아영은 뒤로 돌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오던 남자도 나를 앞지르지 않고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고양이가 왜 여기 그려져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움직여야 했다.


부잣집 거실, 이라고 해야 할까. 복도를 지나 넓은 응접실 같은 공간이 나왔다. 일반 가정집의 거실보다는 크고 넓었고 호텔 로비라고 하기엔 작고 아늑했다. 복도 반대편의 벽면에는 벽난로가 있었고 단순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장작이 타고 있었다. 벽난로 앞에는 고급스러운 자주 빛깔의 벨벳 소파 세 개가 디귿자 모양으로 놓여 있었고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반짝이고 있었다. 거실은 건물 전체의 중앙에 있었고 거실 양 옆으로는 건물 끝으로 이동할 수 있는 복도가 있었다. 신아영은 익숙한 듯 소파에 앉았다. 두리번 거리는 나에게 앉아서 기다리라고 남자가 나를 안내했다. 소파 앞의 테이블에는 금테두리를 한 하얀색 다기 세트가 있었다. 내가 앉으니 나와 신아영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주전자 손잡이를 잡고 차를 따르는 동작에서도 남자는 어딘지 기품이 있었다. 찻잔 위로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차 말고 더 필요한 건 없으신 가요? 담요라도 드릴까요?”


“괜찮아요 저는”

"저도 괜찮습니다"

사내는 손목시계를 한번 보더니 신아영에게


“곧 오실 거예요"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항상"


“별말씀을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탁자를 두 번 두드리세요” 라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눈가의 주름이 멋스러웠다. 그는 벽난로 옆쪽에 난 문으로 사라졌다.


창 밖을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산속의 어둠은 짙었고 어둠을 덮으려는 듯 하얀 눈이 쏟아졌다. 밤새 눈이 내리면 신아영의 차는 눈 속에 묻혀버릴 것 같았다. 막상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익숙하고 편안해 보였다. 신아영은 두 손으로 찻잔을 잡고 액체의 표면이라도 관찰하는 듯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저 남자는 누구야? 저 사람이 말한 곧 온다는 사람이 우리가 만난다는 사람이야?"


“맞아. 많이 궁금했지?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여기는 어딘데?"


"나보다는 그분이랑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 거야"


"답답해"


나는 눕듯이 소파에 등과 목을 기대고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바라봤다. 촛대 모양 조명이 빛났고 밑에 달린 유리 장식에 빛이 반사돼 반짝였다. 소파가 편해 잠시 눈을 감았다. 조명 빛의 잔상이 감은 눈앞을 떠다녔다. 벽난로의 열기를 느끼고 따뜻한 차를 마시니 몸에 긴장이 풀렸다.


우리가 지나왔던 복도 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빠르거나 느리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간격의 울림이었다. 사찰의 종소리처럼 고요한 중에 선명한 소리였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광이 반짝이는 검정 구두가 보였고 주름이 각 잡힌 검정 턱시도를 입고 한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흰 셔츠에 검정 보타이 허리에는 광이 나는 검정 커머번드를 차고 재킷은 기장이 짧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나는 경직됐다. 머리가 하얘지고 소리가 잘 안 들렸다. 동영상에서 편집자가 내 윤곽선만 일시정지를 해놓은 것 같았다. 안 펴지는 왼쪽 새끼손가락만 뭔가에 진동하듯 떨렸다. 신아영은 소파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걸어갔다. “오랜만이에요” 라며 가벼운 포옹을 나누고 함께 소파 쪽으로 왔다. 나도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 할지 그냥 앉아 있어야 할지 사소한 판단조차 힘들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생각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고양이였다. 사람의 몸에 고양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 얼굴에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 걸 지도 몰랐다. 멀리서 봐서는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좀 더 가까이 와서 신아영과 인사할 때는 가면은 아니고 분장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피부와 수염과 이빨과 눈동자는 분장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는 챙이 둥글고 원기둥 모양이 위로 뻗은 실크했을 쓰고 있었다. 그는 내 쪽으로 와 모자를 왼손으로 벗더니 오른손으로는 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모자 속에 숨겨졌던 그의 귀가 드러났다. 오른쪽 귀가 뭉툭하게 잘려 있었다. 집 앞에서 만난 고양이, 이 건물 복도에 액자로 걸려 있던 그 고양이였다. 그는 나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송곳니는 위아래로 뾰족했고 손가락은 하얗고 가늘었다.

“오랜만입니다. 차민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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