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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파수꾼 12

by 추세경

“… 엄마?”


문을 열고 나온 건 엄마였다.


"... 엄마?"


엄마는 나를 보고 놀란 것 같았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를 본 게 아니라 속 커튼 뒤에 숨어 있는 벌거벗은 남자의 실루엣을 본 것이다. 엄마가 더 놀라기 전에 속 커튼을 헤치고 엄마에게 얼굴을 보였다.


"민규야" 엄마는 동공이 커졌고, 이내 반가우면서도 슬프고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서로의 팔과 얼굴을 쓸어내리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엄마도 나도 한동안을 울었다. '이 만큼의 눈물은 당연히 울어야지'라는 듯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도 나만큼 울었다. 엄마가 안쓰러웠다. 여기서 라도 살아 있어서 기뻤다. 이제라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울음은 그 자체로 진동해 그 안에 내가 빨려 들어갔다. 내가 우는 게 아니라 울음이 나를 진동시켰다. 그 울음 속에는 어린 내가 훌라후프 하는 걸 귀여워하는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의 엄마가 있었다. 티브이 앞에서 엄마가 빨래를 갤 때 엄마 허벅지에 누워 자고 있는 내 모습이 있었다. 엄마와 나는 수 없이 많은 시간과 기억, 언어와 감각, 추억과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작고 미묘한 무수한 순간들로 우리는 이어져 있었다. 엄마의 죽음은 내 일부의 죽음이었고 그건 감정적인 슬픔이 아닌 물리적인 아픔이었다. 세상에는 뼈를 깎는 고통도 있지만 뼈가 깎이는 슬픔도 있었다. 엄마의 죽음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한바탕 운 뒤 엄마는 나에게 일단 씻고 옷부터 입으라고 했다. 엄마가 안내해 준 방에는 하얀 시트의 싱글 침대가 있었고 그 옆의 우드 톤 옷장에는 흰색 반팔티와 회색 면 운동복이 개어져 있었다. 서랍에는 돌돌 말려 정돈된 속옷이 여러 장 있었다. 누군가 올 것이 준비한 듯 정리돼 있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몸을 말렸다. 햇빛 냄새가 나는 면 소재의 옷들을 입었다. 엄마는 나에게 따뜻한 생강차를 가져다주었다. 그제야 엄마의 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연갈색 스웨터에 아이보리 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화려하진 않아도 편안하고 소재도 좋아 보였다. 엄마는 나에게 배고프지 않으냐고, 밥부터 먹으라고 했다. 식탁은 잔칫상이었다. 소갈비와 삼치구이, 콩나물과 시금치 무침, 연근조림과 멸치 볶음, 양념 김 까지, 식탁에 빈 공간이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앉으라고 한 뒤 끓고 있는 소고기 미역국을 퍼서 내 자리로 건넸다. 검은 콩이 들어간 쌀밥을 밥솥에서 바로 퍼서 주었다. 국과 밥에서는 하얀 김이 올라왔다. 식탁에 앉기 전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를 안았다. 엄마의 등에서 엄마 냄새가 났다. 엄마는 나에게 어서 먹으라고 했다.


밥을 거의 먹었을 때 엄마가 이야기했다.


“그날 새벽에, 죽는 순간이라고 할까, 차에 치일 때, 네가 커온 게 파노라마처럼 머리에 스쳤어. 갓난 아기 때 쥐고 만 있던 예쁜 손가락부터, 말을 옹알거리고, 걸음마를 시작하고, 나에게 달려와 안기고, 모든 순간이 짧은 순간에 머릿속을 스쳤어. 출근한다고 너 자는 걸 못 보고 나온 게 미안했어. 그게 내 기억의 끝이야. 눈을 떠보니 이 집이었어. 침대에 누워 있었고 어느 때보다 포근하고 편안했어. 거실에 나왔더니 집에는 온기가 있었어. 집이라는 게 사람이 살지 않으면 관리를 잘해도 티가 나거든. 사람의 온기가 베어서. 근데 여기는 누가 사는 것처럼 따뜻했어. 근데 집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어. 신발장도 비어 있었고. 누군가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질 않았어. 몇 시간을 기다리고 며칠을 기다리고 그게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혼자였어. 이곳이 현실 속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어. 그 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혹시 정신이 어떻게 된 건 지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아니었어. 사고력도 감각도 다 괜찮았어. 내가 미쳤다는 걸 납득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어.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상인 거지. 사후세계라고 믿었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사람이 죽으면 이런 곳에 오는 거구나, 그렇다면 꽤 괜찮네. 집은 안락했고 모든 게 다 있었어. 냉장고에는 식재료가 넉넉했고 화장실에도 필요한 게 모두 있었어. 옷도 옷장에 입을 만큼 있었어. 나한테 딱 맞는 사이즈들로. 심지어는 귀 후비개도 있었고. 민규 너 생각이 많이 났어. 아빠도 없이 컸는데 이제는 엄마도 없이 커야 한다니. 다른 거야 상관없었어. 민규 너 말고는 삶에 대한 미련도 없었어."


엄마는 밥공기를 비운 나에게 더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엄마는 다 먹은 그릇들을 싱크대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럼 그 이후로 계속 여기에 있던 거야? 혼자서?" 나도 내가 먹은 식기를 싱크대 쪽으로 날랐다.


"계속 혼자였어.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르겠어"


"하루이틀이야 편하지, 너무 힘들었겠다. 관리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먹을 것도 떨어질 거고, 어떻게 산 거야 지금까지?"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시 새로워져 있어. 냉장고도 다시 차 있고 빨래도 다 되어 있어 바닥의 먼지를 쓸어낼 필요도 없어. 나는 그냥 여기서 먹고 마시고 잠만 자면 되는 거야.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 밖에는 뭐가 있나 궁금해서 집을 나갔더니, 풍경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어, 마당을 나가서, 담장 주변을 한번 돌고, 이 언덕을 한번 내려가 보고 싶어 대문을 나갔어. 그 순간 온 세상이 휙 도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는 회전을 한 것처럼 어지러웠어. 땅과 하늘과 내가 뒤섞이더니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다시 집에 있는 침대였어. 몇 번을 반복해도 똑같았어. 조급한 마음에 담장을 뛰어넘었는데 세상이 돌았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어. 이 집과 마당 어디를 둘러싼 곳을 나가도 마찬가지였어.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어. 오늘은 안되니까 다음 날 해볼까, 하는 마음에 하루하루 시도해봐도 결과는 똑같았어. 나는 이곳에 갇힌 거야. 처음에는 살만 했어. 나갈 수는 없지만 풍경도 괜찮고 먹을 것도 채워지고 일도 안 해도 되고. 평생 일만 하고 살았는데 일을 안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기도 했어. 인생이 이렇게 편할 수 있나 싶었어. 며칠 지나다 보니 깨달은 건 이곳은 시간이 멈춘 곳이라는 거였어. 시간이 멈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몰라도 내가 느끼기엔 시간이 멈춘 곳이었어. 머리카락도 안 자라고 손톱 발톱도 안 자라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똑같았어. 심심해서 책을 한 장 찢어 종이 접기를 했는데 종이가 다시 책에 붙어 있었어. 먹을 게 다시 채워지거나 집을 누가 청소해 주는 게 아니라 시간이 다시 돌아오는 거였어. 기억은 남지만 시간은 반복됐어. 그러고 보니 이곳은 해가 지질 않았어. 늘 해가 떠있었어. 밤 시간이 되면 피곤해서 잠은 들었지만 바깥은 늘 환했어."


엄마는 내가 말에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고 혼자 말했다. 내가 듣고 있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어 보였다. 속에 쌓아 왔던 얘기들이 맥주 거품이 잔을 넘치듯 쏟아져 나왔다. 눈빛과 입매에 그간 대화할 사람이 없었다는 게 티가 났다. 엄마한테서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똑같은 매일이 반복되니 편안하고 안락했던 이 공간이 사실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라는 걸 깨달았어.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는 외로움, 어떤 변화도 없다는 무료함,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이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어. 말이 웃기지 않니? 죽은 자가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는 게. 죽었어도 의식이 있는 이상 외롭고 불안했어. 두렵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마당 대문을 백 번도 넘게 넘었어. 혹시 한 번만 더 넘으면 뭐라도 바뀌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침대로 돌아왔어.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거울을 보고 나랑 대화하기도 했고, 책을 찢어 하루 종일 학을 만들기도 했어. 하루 동안 학을 몇 마리나 만들 수 있을 거 같니? 짐작이가? 그런 순간에도 배는 고파서 밥은 차려먹었어. 어느 날은 소파를 찢고 주방에 컵들을 부수고 식탁을 넘어뜨리고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들을 모두 던졌어. 집 안에 있는 걸 모두 부수고 엉망으로 만들었어. 깨진 유리에 맞아 상처가 나기도 했어. 그런데도 자고 일어났더니 다시 다 멀쩡한 거야. 내 손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어. 그냥 이 순간을 즐겨보자고 마음도 먹었지만 점점 시들어 가는 걸 느껴. 사람의 온기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은 결국 물에서 건져낸 물고기고 날개가 뜯긴 잠자리야. 뿌리가 뽑힌 꽃이야. 현실을 살 때도 외로움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엄마가 집 안을 부쉈다고 했을 때, 우리 집이 엉망이 됐던 게 떠올랐다. 엄마는 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현실서는 누군가 우리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라도 있는 걸까. 엄마가 설거지를 하려고 해서 나는 설거지를 안 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내일이면 다시 돌아오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게 맞다고, 그래서 한동안은 정리 정돈도 안 하고, 설거지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했다고 했다. 현생에서는 청소가 직업이었는데 여기서는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한 동안은 일절 아무것도 안 했다고 했다.


"그럼 하지 마 엄마. 지금은 왜 설거지하려고 해?" 싱크대 앞으로 가서 엄마 옆에 서서 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에 거품을 묻혀 그릇을 닦았다.


"살려고"


"응?"


"살아 보려고"


엄마는 닦고 있는 그릇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한 동안 설거지만 했다. 수전에 연결된 고무호스처럼 말을 쏟아내던 엄마는 그새 수전을 잠근 듯 말이 없었다. 살아 보려고 설거지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럴 수도 있고 부연 설명이 조금 더 필요해서 그럴 수도 있다. 엄마는 더 이상의 말이 없었고 그래도 다행인 건 설거지에 집중하는 엄마의 표정이 편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말을 쏟아낼 때는 엄마가 낯설었는데 이제야 내가 알던 엄마를 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설거지를 한 뒤 참외를 소파로 가져와 깎았다. 과도를 쥐고 있는 엄마의 손을 바라봤다. 왼손 검지의 손톱 밑으로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청소일로 생긴 습진이었다. 지금도 그게 남아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참외를 건넸다. 참외씨를 그대로 남긴 참외였다. 반면에 엄마는 씨를 벗겨내 낸 참외를 먹었다. 나는 씨 부분이 제일 맛있었지만 엄마는 씨를 긁어내고 먹었다. 소화가 안 된다는 이유였다.


"민규야, 참외 맛있어?"


"응. 엄청 달아"


참외를 먹으며 나는 엄마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진지하고 심각한 주제일 수도 있었지만 엄마에게 말하다 보니 왠지 초등학생이 가을 소풍에 대해 이야기하듯 말했다. 고양이 인간과의 만남에서부터 현실의 세계와 소설의 세계라는 이야기, 그게 맞다면 엄마는 죽은 게 아니라는 것, 나는 선택받은 자고 내가 엄마를 구해야 한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신아영의 존재와 특히 그녀와 잤다는 이야기는 엄마에게 할 수 없었다. 엄마네 회사 앞에서 트럭에 치였더니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말도 엄마가 걱정할까 싶어 하지 않았다. 내 얘기를 듣는 엄마의 표정은 자기 내면의 심연으로 가라앉은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든 엄마에겐 단지 배경음악에 불과해 보였다. 엄마의 반응이 어떻든 나도 내 말에 몰입해 속에 있는 말을 모두 꺼내 버렸다. 엄마가 듣든 말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속에 있던 이야기들은 흔들어 터트린 콜라의 탄산처럼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왔다. 나에게 일어난 기막힌 일들에 대해 그간 나도 어디 얘기할 곳이 없었다. 나는 나대로 내 말만 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어떤 생각에 골몰해 있는 듯했다. 어느새 할 말을 다 해버린 나는 그제야 엄마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엄마는 아직도 그녀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나는 엄마를 기다렸다.


"민규야"


"응?"


접시 위의 참외 조각을 포크로 찍다가 엄마 얼굴을 바라봤다.


"참외 다 먹으면 어서 이곳을 떠나"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단호하면서도 간절한 듯 슬퍼 보였다.


"밥 한 끼 해줬으니 됐어. 이제 아쉬울 것도 없어. 어서 떠나. 더 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러니 어서 떠나"


"왜? 이제야 만났는데 왜 바로 떠나라고 해 왜?"


"떠나라면 떠나" 엄마는 소리 질렀다. 몸은 떨렸고 얼굴은 빨개졌고 슬퍼 보였던 눈이 적의에 찬 눈으로 바뀌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엄마는 이내 참외 쟁반을 부엌으로 가져가더니 싱크대 앞에 서서 울기 시작했다. 엄마 곁으로 가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엄마가 이 정도로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화를 내는 모습이 충격이었고 지금은 감정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슬프기보다는 당황스러웠고 엄마가 안쓰럽긴 했지만 나까지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울 때가 아니었다.


"가야 돼 민규야" 울음이 잦아든 뒤 엄마는 독기가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평생 머무를 수는 없겠지만 엄마가 왜 당장 가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듣고 싶었다.


"너네 아빠처럼 돼"


"응?" 나도 모르게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금 안 가면, 네 아빠처럼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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