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균이와 동수의 집에 갔던 그 다음날, 동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교에 나왔다. 그가 어제 어디에 갔는지 궁금했지만 책상에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앉아 있는 그에게 무언가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나는 동수네 집에 가서 어떤 이질감,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 충격을 받았는데 생각해 보면 동수에게는 그곳이 집이었고 삶의 공간이었다. 사회에서 그런 삶의 형태가, 살아가는 모양이 어떤 취급을 받고 어떤 대접을 받는지 당시의 나이에는 몰랐지만 생각해 보면 그 냄새와 그 분위기, 애꾸눈이었던 동수 아빠의 얼굴, 떡진 머리 등은 그 자체로 나에게 멀리하고 싶은 것들이었다. 가까이하고 싶지 않음, 본능적인 두려움이랄까, 그런 걸 느꼈다.
동수는 왕따였다. 친구들이 그를 괴롭히거나 욕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는 친구가 없었고 그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었다. 동수가 먼저 친구들에게 다가온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 사건이 있기 전만 해도 동수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그가 정말로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었는지 확언하긴 어렵지만 내가 관찰한 동수는 누군가와의 친목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니 친목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데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기에 동수는 조용했다. 뭔가가 멈추어 있는 듯, 건전지가 다된 로봇 장난감과 비슷했다. 그 속에 어떤 게 있는지 몰라도 보이는 모습은 일단 그랬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자주 동수를 관찰했다. 동수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어떤 날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집에 가곤 했다. 선생님은 어떤 사정을 아는지 더 이상 우리에게 동수를 잡아오라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면 애초부터 사정을 알았는데 그날 특별히, 그리고 별다른 이유 없이, 동수를 잡아오라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동수의 조퇴나 결석은 우리 반 학생들에겐 익숙한 일이 됐고 아무도 그에게 왜 어제는 안 왔냐는 둥 왜 어제는 일찍 갔냐는 둥 묻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동수가 학교에서 말을 하는 것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수업시간에 발표자로 호명을 받으면 동수는 눈만 껌뻑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어떤 선생님들은 당황했지만 그의 표정을 살피곤 이내 더 이상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동수는 가만히 있거나 엎드려 잤고 점심시간엔 밥을 먹고 학교 철봉 쪽에 나가 서성였다. 철봉 근처에 있었지만 철봉을 하는 건 아니고 가끔 점프해서 철봉 쪽에 손을 대든 지 철봉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다른 학생들이 철봉 근처로 오면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하루는 점심으로 짜장밥과 군만두가 나온 날이었다. 스테인리스 급식 식판에 밥을 받아먹었다. 그때만 해도 각자의 수저집을 챙겨 다녔는데 내 수저집은 빨간 체크무늬에 테두리가 노란 실로 되어 있었다. 밥을 거의 다 먹다 동수를 봤는데 밥을 받아 놓고 하나도 먹지 않았다. 눈치로 보니 수저를 안 가져온 것 같았다. 누구에게 얘기도 못하고 눈만 좌우로 굴리다 나랑 눈이 마주쳤다. 나는 요새 그를 관찰하던 게 혼자 뜨끔해 이내 눈을 피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수저를 닦으러 복도로 나갔다. 정수기 옆 수도에서 숟가락을 닦는데 그의 처진 눈꼬리가 눈에 밟혔다. 그 안의 검정 눈동자가 자꾸 생각났다. 닦던 수저를 더 정성스레 닦아 수저집에 넣었다. 교실로 가서 동수에게 내 수저집을 건넸다. 그는 아직도 식어가는 짜장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써, 닦은 거야" 나는 동수에게 말했다.
그는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대답이 없어
"수저 안 가져온 거 아니야?"라고 했더니, 그제야 동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대답을 바라지 않고 그의 책상에 수저를 내려놓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동수 앞에 서 있기가 어색했고, 그에게 수저를 주는 나를 다친구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복도를 걸으며 나갔는데 괜히 심장이 떨렸고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했다. 친구들이 나를 동수와 친하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그냥 수저를 빌려준 것뿐인데, 싶었고 내가 방금 먹은 숟가락을 그가 쓴다는 게 왠지 비위가 상하기도 했다. 그가 쓴 걸 닦아서 내가 쓰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하긴 그 수저는 나만 쓰는 내 수저였다. 가족 중에서도 다른 사람은 안 쓰도 엄마가 나만 쓰라고 매일 챙겨주는 내 수저였다. 빌려주고 보니 칫솔을 빌려준 것 같은 기분이었고 나중에 그 수저를 내가 쓴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상상하기 싫었다.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렸고 자리에 돌아가보니 내 책상에 수저집이 놓여있었다. 고맙다는 말도 안 하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기도 했다. 수저집을 열어 보니 깨끗하게 닦인 수저가 들어가 있었다. 세척 후 덜 말라 수저에 물방울이 묻어 있었는데 닦느라 그런 건 줄 알면서도 덜 마른 그 수저를 보니 다시 한번 비위가 상했다. 자꾸 동수와 내 침이 섞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수가 자리에 있다는 걸 교실에 들어가면서부터 확인했지만 그날 오후 내내 동수를 쳐다보지 않았다. 또 눈이 마주치면 내 마음이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수를, 그 집에서 보고 상상하는 동수의 삶을, 그의 아버지를, 관찰하고 놀래고 신기해하고 그런 것에서 묘한 재미를 느끼는 그런 마음이었다. 들키고 싶지 않았고 동수를 위해서도 들켜서도 안 되는 마음이었다. 나는 동수를 연민했을까, 아니면 재밌어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일주일쯤 뒤, 나는 동수가 무단 조퇴하는 걸 따라나섰다. 글쎄 사실 그가 무단 조퇴인지 아니면 예정된 조퇴인지는 알 수 없었다. 3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에 동수는 운동장에 나가 잠깐 철봉 주변을 배회하더니 후문 쪽으로 나가버렸다. 교실 창틀에 앉아 동수를 바라보던 나는 동수가 나가는 걸 보고 뛰쳐나갔다. 그가 어딜 가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선택은 순식간이었고 그 순간에 나는 그를 따라가야 한다는 열망에만 사로 잡혀 있었다. 그가 돌아오지 않는 다면 나도 무단 조퇴를 하는 것이었고 주머니엔 천삼백 원 정도의 돈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선생님께 혼날 일이었고 엄마 아빠가 걱정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땐 앞뒤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엔 빨리 뛰지 않으면 동수를 놓치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가 어디에 가는지 이 시간에 뭘 하러 가는지 알고 싶었다. 학교 계단을 두 칸씩 뛰며 동수를 쫓았다. 동수는 후문으로 나갔다. 학교 문은 수업 시간엔 잠겨 있지만 쉬는 시간엔 열려 있고 아직 수업 시간 종은 울리지 않았다. 문으로 나갔더니 동수는 학교 담을 따라 걷고 있었다. 후문으로 나가서 좌측이었다. 동수가 조금만 더 가면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 힘들었지만 일단 계속 뛰었다. 예측대로 동수가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도 거의 코너에 다다랐다. 그리고 길이 꺾이기 전에 우선 멈췄다. 내 목적은 동수를 아는 채 하는 게 아니라 동수가 모르는 채로 그를 따라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행이었다. 차도를 끼고 꺾어진 길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어 동수의 동선을 살폈다. 그는 걷고 있었고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았다. 하긴 경계할리가 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쫓는다고 생각할리는 없었다. 이건 지금 나만의 게임이었다. 나만 긴장하고, 나만 숨 막히는, 나만의 게임이었다. 아직은 그를 나의 게임에 끌어들이지 않았다. 그 사실이 나는 더 흥분 됐다. 몰래 그를 관찰한다는 사실이 뭔가 더 짜릿했다. 아까 내가 뛸 때 학교 종소리가 울리는 걸 들었다. 내가 사라졌다는 걸 친구들이 의심할 때도 되었다. 선생님께, 엄마 아빠에게 혼날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이곳에 있었고, 당장에 다시 교실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일단 내 관심은 동수였다. 그가 뭘 하고, 어딜 가는지 그게 가장 궁금했다. 동수는 계속 걸었다. 나는 간격을 유지하며 그를 쫓았다. 티브이에서나 보던 일인데 내가 그걸 한다는 느낌에 더 흥분이 되기도 했다. 동수의 걸음은 생각보다 빨랐다. 학교 안에선 무빙워크를 탄 사람 마냥 움직임 없이 천천히 걸었는데 학교 밖에선 달랐다. 소개팅 약속에 늦은 사람처럼 걸음이 빨랐고 그 빠른 걸음에 간격을 맞춰가며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동수는 마트를 낀 코너를 돌아 빌라 사이의 언덕길을 올랐다. 나는 혹시나 들킬까 길의 오른쪽 끝에 붙어서 그를 따라갔다. 티브이에서 볼 땐 미행하는 사람도 잽싸게 걷다 전봇대 뒤에 몸을 숨기고 곁눈 질로 다시 따라붙는 등 나름대로 멋있어 보였는데 막상 직접 해보니 영 불편한 게 많았다. 하수도 뚜껑이 찌그러져 있어 발목을 접질릴 뻔하기도 했고 모아 놓은 쓰레기 더미를 피해서 가야 하기도 했다. 오르막길에선 이미 올라간 동수가 보이지 않아 더 빨리 따라붙어야 했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시야에 그를 확보하며 걷는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동수를 따라가는 데 머릿속으로 ‘동수를 잡아와라’라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동수를 잡고 싶진 않았다. 그저 그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의 삶과 그의 어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