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수가 멈춰 선 곳은 어느 문방구 앞이었다. 언덕길을 내려간 지점에 양갈래 길이 있었고 그 뒤로는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길이 갈라지는 중앙에 문방구가 있었고 문방구 출입구 위로는 하얀 글씨로 ‘러키 문방구’라고 적힌 색 바랜 파란색 간판이 있었다. 나도 가본 적이 있었고 노부부가 운영하는 문구점이었다. 동수는 문방구 유리문 앞에서 한 동안 살피더니 문 옆에 놓여있던 과자 자판기를 발 앞꿈치로 두 번 찼다. 과자 자판기에는 동그랗고 갈색인 초코맛 과자가 수북이 들어있었다. 원래는 백 원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자판기 입구로 한 움큼만큼 과자가 쏟아지는 기계였다. 근데 동수는 돈을 넣지 않고 그걸 발로 찼고 그러니 돈을 넣은 것처럼 과자가 나왔다.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동수는 재빠른 동작으로 입구에 손을 대어 과자를 받았다. 그리고 한입에 과자를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나는 그 잠깐의 동수의 행동은 나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학교에선 말 한마디 없고 느린 행동에 눈동자에 초점 하나 없어 보였던 동수였는데 그때 그 순간 동수의 행동은 재빨랐고 냉정했고 망설임이 없었다. 초콜릿 과자를 한입에 넣고 씹은 뒤 손과 입 주변을 털어는 동작은 빈틈이 없었고 적어도 그 행동에 있어선 가장 효율적으로 보였다. 전문가 같다고 할까,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는 그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 뭔가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나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다.
동수는 다시 걸었다. 문방구 뒤의 아파트 단지를 지났고 아파트 단지 후문의 횡단보도를 건넜다. 동수가 횡단보도를 건널 땐 난 별 수 없이 무단 횡단을 했다. 4차로 밖에 안 되는 도로기도 했고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무단 횡단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손을 짚어넣는 것 같은 일이었다. 조금 위험한 것 같지만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동수는 놀이터가 있는 근린공원 공터를 지났고 빌라와 상가가 밀집한 얕은 언덕을 올랐다. 방향으로 보아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덕을 지나면 8차선 대로가 나오고 육교를 건너 조금만 가면 내가 갔던 동수네 집이 나올 것이었다. 벌써 9월 말에 접어들었고 날씨가 좋았다. 가을 특유의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맑은 햇빛이 모든 사물에 부딪쳐 눈에 들어왔다. 이럴 때면 세상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는데 길가의 나무며 건물의 유리창이며 전선줄 위로 날아가는 새도 아름다웠다. 나는 동수를 미행하는 지금의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부모님이나 학교에 대한 걱정은 마음 한편에 치워버렸다. 좋은 날씨에 밖을 걷는다는 게 심지어 좋기도 했다. 숨어서 누군가를 따라간다는 것에 대한 희열까지 있었다. 동수를 눈과 발로 열심히 쫓으면서 머리로는 동수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무얼 위해 걷고 있을까. 학교 안과 학교 밖의 세상은 그에게 어떻게 다를까. 사회 속에서의 자신과 혼자 있을 때의 자신은 어떻게 다를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의 동수는 어떻게 다를까. 학교라는 곳이, 사회라는 곳이,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그를 쫓다 보면 그걸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동수에게 그 이유를 물어볼 생각을 해봤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아직은 동수와 직접 대화할 자신이 없었다.
언덕을 내려가 대로변으로 향할 줄 알았던 동수가 길을 틀었다. 언덕이 끝나기 전 건물 사이로 난 골목길로 들어간 것이다. 동수가 집으로 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미행에 긴장이 떨어졌던 나는 그의 예상 밖 동선에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렇고 골목길로 들어서면 당장에 그가 시야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누군가를 시야 안에 두고 이동하는 건 막상 해보니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나는 빨간 벽돌로 지은 빌라와 그 앞의 전봇대 사이에 숨어 있었다. 사라진 동수를 보고 전봇대를 뛰쳐나와 뛰려고 하는데 뒤에서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공격적으로 울렸다. 색 바랜 구형 청동색 세단에 탄 중년 남성은 창문을 내리고 나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경적 소리에 놀라고 남자의 화난 표정과 짜증 가득한 윽박에 또 한 번 놀랐다. 갈길이 급하기도 하고 아저씨가 무섭기도 해서 나는 다시 골목 쪽으로 도망치듯 뛰었다. 골목길이 완전히 시야에 들어왔는데 큰일이었다. 동수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까 그 자동차의 아저씨가 내 행동이 수상했는지 길을 가지 않고 골목 앞에 차를 정차한 채 창문을 내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건물 가장자리 구석구석으로만 이동하는 내 행동이 이상해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동수였고 지금 눈앞에 동수가 보이지 않았다. 그 새 벌써 골목을 다 지나고 다른 곳으로 간 걸까? 아니면 혹시 나를 알아차리고 도망을 간 것일까? 일단 반대쪽 골목 입구까지 뛰었다. 반대쪽에선 길이 좌우로 갈리고 앞은 우리 동네 구청 부지로 구청 건물을 둘러싼 울타리 담으로 막혀 있었다. 동수가 이곳으로 지나갔으면 왼쪽으로 언덕을 내려가거나 오른쪽으로 경사길을 올라갔을 것인데 좌우로도 동수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지나온 골목 쪽을 보았지만 동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이곳에서 언덕을 내려가면 대로변이었다. 대로변으로 가려고 했으면 아까 처음부터 내려갔지 이 골목을 지날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언덕을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내려온 언덕을 다시 올라갈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왼쪽을 택해 잽싸게 내려가 대로변의 인도 쪽을 살폈다. 하지만 그쪽에 동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동수가 아까 그 골목 근처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힘들었지만 다시 길을 올라와 골목 입구 끄트 머리에 몸을 숨겼다. 동수가 이곳에 있을 거라 생각하니 이런 내 모습을 그가 지켜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갓길에 주차된 차 뒤에 숨어 지나온 골목길을 구석구석 살폈다. 골목길에 주차된 차들 는 사이사이 혹시 동수가 숨어 있나 봤지만 적어도 시야 내에 들어오는 곳엔 보이지 않았다. 골목 양쪽의 건물들은 회백색의 빌딩 하나와 빨간 벽돌의 주택이 연달아 있는 골목이었다. 주택들은 대문이 잠겨 있었고 담장도 있었고 그 앞에 집다 하나씩 주차자리가 있었다. 회백색 빌딩 연식이 오래돼 보이는 5층 빌딩이었는데 2, 3층은 ‘성동 PVC 전기’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간판 옆으로는 전깃줄이 엉켜 지나갔는데 창문은 아마도 사무실로 쓰이는 것 같았다. 건물 입구에는 검정 고급 세단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내 시선이 멈춘 곳은 그 건물 1층이었다. 고급 세단 옆쪽에 오락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빛바랜 적색 간판에는 하얀 글씨로 펀펀 게임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락실 입구는 유리였는데 검정 필름이 도배되어 있어 내부가 보이진 않았다. 동수가 골목에 있고 그가 어딘가 들어갔다면 저곳밖에 갈 곳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왔다.
오락실에 동수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저 안에 동수가 없으면 그를 놓치는 게 될 것 같았다. 동수를 놓치면 내가 이곳에 온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선생님께 혼나고, 엄마아빠에게 걱정만 끼치고, 아무런 소득도 없는 것이다. 내일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이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볼 것도 분명했다. 그들의 물음에 대하여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도 생각해야 했다. 그냥 동수를 따라갔다고 하면 믿을까, 따라가다 그를 놓쳐서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하면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그러면 거짓말을 해야 할까,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동수가 뭐 하는지 뭐가 그렇게 궁금하다고 그렇게 충동적으로 따라 나왔을까. 따라가도 나중에 정상적으로 하교하는 날 기회를 봐서 따라갈 걸, 너무 생각 없이 나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었고, 그래도 느낌으로는 저 오락실에 동수가 있을 거라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오락실이 아니면 이 골목으로 그가 올 이유가 없었다. 일단 조심스럽게 오락실 앞까지 걸어갔다. 어디서 동수가 볼 수도 있으니 사방을 계속 주시했고 건물들 벽 쪽에 붙어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오락실은 유리문이 삼분의 일쯤 열려 있었다. 근처까지 가니 게임 효과음이 들렸다. 요란하고 뒤죽박죽 하지만 어떻게 들으면 경쾌한 것 같기도 한 여러 효과음이 섞여 들렸다. 멀리서 볼 땐 몰랐지만 가까이서 보니 어두워 보였던 유리도 반투명 유리라 눈을 가까이 대면 오락실 안쪽을 볼 수 있었다. 오락실 내부는 별로 크지 않았고 오락기들이 문쪽 유리를 빼고 삼면을 둘러 세워져 있었다. 오락기에 앉은 사람이 셋 정도 보였는데 다행히도 한 사람 옆에 동수가 서 있었다.
동수가 게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한 남자 옆에 멍하니 서서 그가 오락하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남자는 삼선 슬리퍼에 발목이 조이는 회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남자가 하는 게임은 킹오프 파이터였다. 화면 좌우로 사람 둘이 나와서 치고받고 싸우는 게임이었다. 남자는 다리를 꼬고 왼손으로는 조이스틱을 오른손으로는 동그란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져도 이겨도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손은 엄청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옆에는 재떨이가 보였는데 생각해 보니까 오락실 문쪽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동수는 미동도 없이 그의 뒤에 서 있었고 어디서 났는지 막대 사탕을 빨고 있었다. 사탕을 왼쪽 볼에서 오른쪽 볼로 오른쪽 볼에서 왼쪽 볼로 옮기고 있었다. 한동안 지켜봤지만 동수는 직접 게임을 하진 않았다. 남자가 하는 걸 구경만 했다. 남자는 그런 상황이 익숙한지 동수는 신경도 안 쓰는 듯 게임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자기 옆에 의자를 손으로 슬쩍 밀고 뭐라고 하듯 입을 움직였다. 그러자 동수가 그 의자에 앉았다. 같이 게임을 하는 건 아니었고 아까처럼 남자가 하는 게임을 쳐다봤다. 반투명 유리라 잘은 안 보였는데 눈이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웃는 건지 아닌지 궁금해 눈을 최대한 유리 쪽에 붙였지만 그래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오락실 문이 완전히 열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새로운 손님이 오락실에 들어가며 나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눈은 동수한테 집중하고 귀에는 게임소리가 시끄러워 누가 다가오는 걸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지금 이 골목에서 가장 수상한 건 이 오락실이 아니라 나였다. 남자는 괜히 기분 나쁘다는 듯 문을 세게 닫았고 고동색의 철제문에선 쾅하는 소리가 났다. 아까 차 때문에 놀라고, 지금은 그 남자 때문에 놀라고, 아찔한 일은 하루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동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오락실을 나가려는 건가 싶어 어디에 숨을까 주변을 둘러봤다. 오락실 바로 옆에 빌딩 입구가 있었다. 입구 바로 앞으로는 계단이 있었고 지하실로 가는 계단도 있었다. 동수가 나오면 곧바로 저 지하실 계단으로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동수는 왼쪽 벽 쪽 오락기에서 오른쪽 벽 쪽 오락기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엔 아까 문을 강하게 닫고 들어간 그 남자가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검정 맨투맨에 빨간 모자를 쓴 남자였다. 남자는 화면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비행기로 적군 비행기를 없애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동수는 다시 그 뒤에 가서 아까와 같은 자세로 서서 그의 게임을 구경했다. 빨간 모자의 남자는 아까 삼선 슬리퍼의 남자보다 버튼을 더 세게 누르는 로 것 같았다. 아까 문을 닫을 때처럼 신경질 가득한 기운으로 게임을 한다고 할까. 저렇게 두드리면 적 비행기가 아닌 오락기 버튼이 먼저 망가질 것 같았다. 남자는 게임을 잘 못하는지 안돼서 죽었는데 다시 게임을 진행할 거냐는 숫자가 나오자 뒤에 있던 동수를 바라보며 뭐라고 몇 마디 했다. 표정이 험악했고 아마 게임에서 진 분풀이를 동수에게 하는 것 같았다. 동수의 상체는 미동이 없었는데 순간적으로 경끼가 인 듯 다리를 떨었다. 아까는 힘껏 과자 자판기를 차던 발이었지만 상대는 동수보다 두 배는 큰 존재였다. 그 남자는 동수에게 뭐라 몇 마디 하더니 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려 같은 게임기에 동전을 넣고 게임을 시작했다. 삼선 슬리퍼의 남자는 잠깐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상황을 지켜보더니 이내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동수는 다시 등을 돌려 슬리퍼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에도 혹시 문을 열고 나올까 긴장했지만 내쪽 문쪽이 아닌 슬리퍼의 남자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동수는 그 자리에 가서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처음처럼 슬리퍼 남자의 뒤에 서서 게임을 구경했다. 아까 그랬으니 자리에 앉아서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다시 돌아와서는 긴장한 듯 경직된 자세로 다시 서 있었다. 슬리퍼 남자는 동수가 왔든 안왔 든 무신경한 척 게임을 하다가 이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백 원짜리 하나를 동수에게 주었다. 동수는 남자에게 고개를 까닥하더니 이내 오락실을 한번 돌더니 다시 슬리퍼 남자 쪽으로 와서 그가 하고 있던 옆옆 오락기에 앉아 동전을 넣었다. 캐릭터가 눈을 던져 상대방을 눈덩이로 만들고 그걸 발로 차서 없애 버리는 게임이었다. 동수는 게임에 집중했다. 어른 들은 손이 커서 조이스틱이 손에 완전히 가려졌지만 동수는 손이 작아 손으로 완전히 감싸도 조이스틱 끄트머리가 튀어나왔다. 표정에 변화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얼굴에 생기가 띠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보았던 표정,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표정이 아니었다. 어쩌면 저런 표정을 짓고 싶어서 동수는 조퇴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의 동수와 문방구 앞에서의 동수는 같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동수는 오른손으로 열심히 오락기 버튼을 눌렀다. 빠르고, 힘 있게, 열심을 다해 눌렀다. 어떤 적이라도 물리칠 수 있을 것처럼, 그렇게 눌렀다.
닫혀있던 오락실 문을 누군가 있는 힘껏 밀었다. 내가 그를 보았을 때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애꾸 아저씨가 문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수의 위치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망설임 없이 동수에게 향했고, 동수의 뒷 통수를 손바닥으로 있는 힘껏 때렸다. 동수의 뒤통수는 남자의 손보다 작았고 연갈색의 머릿 결은 얇았다. 그런 동수의 머리를 그가 내리쳤다. 동수의 아빠가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