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함께 살아가는 타인에 대해 진실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부모님이나 둘도 없는 친구나 아내나 남편이나 아들이나 딸이나 곁에 함께 있는 누군가를 그의 마음을 그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생각하고 사고하는데 언어라는 것은 완전할 수 없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불완전한 존재다. 인간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런 사람 자체에 대해 생각하고 인식하는 일인데 불완전한 사람이 불완전한 언어로 불완전한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자기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 완전치 못해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끼고 누군가를 연민하면서도 사라지길 바라고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곤 한다. 그런 스스로의 마음과 자기 자신의 모순에 대해서도 평생을 고민하고 실망하고 움직이고 변화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자기 자식이고 자기 부모고 자기 아내여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그 사람의 등에 점이 몇 개가 있는지 머리는 하루에 몇 번을 감는지 아침에 그의 살결에선 무슨 냄새가 나는지 알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일부일뿐 그의 전체가 되지 못한다. 내가 보는 그의 모습이 내가 아는 전부가 아닐 수 있고 그 깊은 속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레 짐작해 보는 것 밖에 없다. 그럴 것 같다고, 그럴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완벽할 순 없고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누군가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인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이조차도 내가 가진 사고력의 한계일지도 모르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인간 상호 이해에 대한 회의감이 생길 수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할 수 있지 않느냐고, 그 노력의 끝에 조금 더 완전한 관계가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들이 있다. 사람은 언젠가 죽고, 시간은 계속 흐르는 것처럼. 인간 인식의 차원 안에서 말이다.
건석이 아버지는 건석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아빠 엄마의 이혼이 건석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 마음에 생긴 어떤 변화에 대해 그는 건석을 이해하고 있을까. 건석이는 괜찮을 거라는 그의 확신이 자꾸 귀와 머리를 맴돌았다. 그의 말처럼 건석이 아무 일 없이 내일 다시 출근을 한다고 해도, 건석이가 복귀한다는 사실로 그가 건석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건석이 아버지와의 대화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떤 여운을 남겼다. 그가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도 그랬다. 나 역시 마음 한편으로는 5반 담임처럼 한 발짝 떨어져 단순히 사건이 빠르고 조용하게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여기서 끝은 아닐 것 같다. 더 큰일이 생길 거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의 일들이 영준과 건석에게,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금 더 짚어보고 이해하고 넘어가야'만' 한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건석 아버지와 면담 후 가을 소풍 계획 보고서 초안을 마무리한 후 퇴근했다. 퇴근길 라디오에선 곧 있을 추석 명절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소개되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피자를 좋아해서 차례상에 피자를 올린다는 등 차례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고 명절 때마다 '결혼은 언제 하냐' '성적은 잘 나오냐' '아기는 언제 갖냐는 등'의 잔소리에 요즘은 벌금을 매긴다는 이야기도 DJ가 전했다. 세상은 저 나름대로의 속도에 따라 흘러가고 있었고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행복해 보이고 모든 문제는 나에게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한 가지 유일하게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아내였다. 아니 정확히는 아내와의 관계였다. 내 마음을 모두 말하는 건 그녀에게 부담이기 때문에 나는 자잘한 어려운 일들은 이야기하지 않지만 나는 그녀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와의 안정적인 관계만으로, 이미 그녀에게 충분히 의지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었다. 밖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갈 집이 있었고, 그곳에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그녀는 나를 항상 반겨주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건 13년 전이었다. 임용되어 첫 학교에 다닐 때였고 교사 생활 2년 차 때였다. 1년 동안 모은 돈을 선납금으로 넣고 36개월 할부로 첫 차를 샀다. 운전을 좋아해 성인이 되고부터 아버지 차를 운전하고 다녔고 취직하고 2년 안에 차를 사는 게 목표였다. 쥐색의 작은 세단이었고 배기량이 크진 않았지만 차가 작은 만큼 원하는 대로 속도를 낼 수 있는 아끼는 차였다. 서울은 대중교통이 잘되어 있다지만 사람이 붐비는 게 싫어 차를 사고부터 바로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했다. 벚꽃이 한창 만개했던 4월 초 봄날 학교 근처 주유소에 갔고 주유기 앞에서 창문을 열었는데 그때 그 앞에 서 있던 게 아내였다. 그녀는 나에게 얼마나 주유할 거냐고 물었고 치열을 보이며 미소 짓는 그녀 뒤로 봄날의 햇볕이 비쳤다. 공기 한 알 한 알을 따스히 채우는 빛이었고 거기에 어울리는 미소였다. 원래는 5만 원어치만 하려고 했지만 얼떨결에 ‘가득이요’ 하고 말해버렸다. 그녀는 알겠다고 했고 나에게 카드를 받아갔다. 주유를 해준 후 그녀는 카드와 함께 주유소 이름이 적힌 노란색 포장재의 포켓 휴지를 서비스로 줬다. 아까의 미소를 한번 더 지었고 희고 얇은 손목이 눈에 띄었다. 퇴근길 차 안에서 내 머릿속은 온통 그녀였고, 왜인지 기분이 좋아 창문을 열고 장범준의 ‘벚꽃엔딩’을 불렀다. 이 세상 벚꽃이 모두 나를 위해 핀 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매번 그 주유소만 찾았다. 두 번째 갈 때는 혹시 몰라 처음 갔던 때의 요일과 시간을 비슷하게 해서 가기도 했다. 화요일 18시경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갔을 땐 그녀가 없었고 그날 밤은 왠지 모를 쓸쓸함을 달래려 동네를 한 시간 동안 산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 번째 갔을 땐 그녀가 있었고 첫 번째 보았을 때 보다 더 큰 설렘을 그날 느꼈다. 그렇게 반년 동안을 그 주유소만 다녔고 고객과 손님으로서의 대화만 했지만 그녀도 나를 인식하고 있다고 느꼈던 어느 가을날 이제는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고민을 하며 그날도 주유소에 갔고 다행히 오늘도 그녀가 나와 나를 맞았다. 카드로 결제를 마치고 영수증과 노란색 포켓 휴지를 받았는데 거기에 파란색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포스트잇엔 그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걸 줄 때 그녀는 평소보다 더 환하게 웃었고, 내가 아무 말 못 하고 포스트잇을 보고 있자 ‘연락 주세요’ 하고 한번 더 웃었다. 그리고 내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 순간 나는 시간이 멎은 것 같았다. 고막의 기능이 정지된 것처럼 주변이 고요했다. 포스트잇에 적힌 그녀의 글씨를 바라보았다. 가녀린 속목 만큼이나 귀여운 글씨체였다. 알고 보니 그 주유소는 그녀의 외삼촌이 운영하는 곳이었고 그녀는 취업 준비를 하며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이미 집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를 그녀가 반겨줬다. 우리는
포옹했고 그녀는 오늘 팀장님이 오후 반차였다고, 그래서 칼퇴를 했다며 미소 지었다. 집에 오니까 배가 고팠다. 생각해 보니 오늘 건석이 일 때문에 점심을 걸렀다. 아내는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아는지 ‘배고프지’라고 했고 떡만둣국을 해주겠다고 했다. 자기는 배가 안 고파서 샐러드를 먹겠다고 내 것만 끓여주겠다고 했다. 지난 일요일에 맛있다는 만두전골 집에서 포장해 온 김치 만두가 집에 있었다. 나는 가방을 방에 두고 화장실에서 간단히 손발만 씻고 식탁 의자에 앉아 벽에 기댔다. 아내는 양상추와 파프리카를 씻고 포장된 닭가슴살을 찢어 그릇에 담고 사과를 썰었다. 그 위에 오리엔탈 소스를 뿌려 금세 샐러드 한 그릇을 만들어냈다. 능숙하고 군더더기 없는 솜씨였다. 인덕션으로는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냈고 냉동고에 있던 얇게 썰린 가래떡을 물에 불렸다. 육수에 멸치 액젓과 소금, 후추로 간을 냈고 떡과 만두를 넣은 뒤 대파와 지단 고명을 얹어 나에게 줄 만둣국까지 완성시켰다. 아내가 요리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물이 끓는 소리 칼이 도마에 부딪치는 소리 흐르는 물에 재료가 씻어지는 소리 등등 식탁 벽에 기대 그 소리들을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내는 어느새 ‘다 됐어, 상 좀 차려줘’라고 했다. 나는 식탁 깔개와 수저받침, 수저를 세팅했고 김치와 멸치조림 등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 올려 두었다.
아내의 요리는 맛있었다. 그녀는 간을 맞추는 데 재능이 있었고 그녀가 간을 하는 정도가 나의 입 맛과는 딱 맞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어때? 맛있어?”
“응, 엄청, 엄청 맛있어”
“그래? 엄청까지 맛있어?”
“응 엄청 맛있어”
“뭐가 맛있는데?”
“간이 딱 맞고, 육수가 진해, 떡도 알맞게 딱 잘 불려진 거 같아”
“그거 내가 정성으로 해서 그래” 하며 그녀는 웃었다.
“그런 거 같아, 고마워”
아내에게 샐러드로 저녁이 되겠냐고, 만두 국을 조금 먹을 거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요새 살이 조금 찐 것 같다고, 몸이 무거워진 게 싫다고 했다. 아내가 말했다.
“여보 오늘 웃기는 얘기 하나 들었다”
“웃기는 얘기?”
“응”
“뭔데?”
“회사 신차장님 있잖아. 맨날 업무 시간에 주식한다는 분”
“아 응응 팀장님이랑 사이 안 좋다는?”
“응 같이 점심 먹으면서 해준 얘기가 있는데, 참 웃기더라고”
“뭔데?”
“아니 어느 날은 자기 아들이 와서, 그니까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된 앤 데, 걔 친구가 걔한테 와서 자기 아빠가 차를 바꿨다고 벤츠로 바꿨다고 자랑을 했대. 그러고는 하는 얘기가 아빠는 차 언제 바꾸냐고 우리도 벤츠로 바꾸면 안 되냐고 했대”
“요새는 애들이 그런 거 더 잘 안다니까”
“그니까. 근데 그 친구 아빠라는 사람을 신차장님이 안다는 거야. 같이 동네에서 조기 축구하는 동생이래. 심지어 매주보고. 근데 자기가 알기론 차 바꾼 지 3년밖에 안돼서 아직 차 바꿀 때가 아니고 바꾼다 소식도 못 들었다는 거야. 그때 바꾼 차가 벤츠인 것도 아니고. 그래서 궁금해서 전화해서 물어봤대. 혹시 차 바꿨냐고”
“근데 아니래?”
“응 아니래. 무슨 소리냐고. 처음 듣는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는 거야”
“애가 뻥친 거야?”
“응 애가 그냥 없는 얘기한 거래. 초등학교 2학년 짜리 애가. 놀랍지 않아?”
“세상이 이상해서 그래서. 그것도 뭐 어른들한테 배운 거지”
“그러니까. 신차장님은 그러면서 애가 이상하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내 생각은 좀 달랐어”
“뭐가?”
“애가 좀 불쌍한 거 같았거든. 그게 뭐라고 벌써부터 거짓말을 하냐 싶어서”
“애라서 좀 더 본능적일 수도 있지 뭐. 그렇게 라도 으스대고 싶어서”
“그니까 으스댈 게 그런 거라는 게 조금 씁쓸하더라고”
“그 얘기 듣고 자기가 생각이 많았구나?”
“조금 그랬어. 우리야 둘이 살지만, 우리가 애가 있고 우리 애가 그랬다고 생각하면, 슬플 것 같아”
“세상이 참 피곤해. 사는 것도”
“그런 거 같아”
그렇게 이야기한 후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각자의 머릿속에서 그 이야기가 주는 여운을 느꼈다. 아니,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내가 알 수 없었다. 지금 내가 그러고 있으니 아내도 그럴 거라고 추정하는 것뿐이었다. 종종 그녀의 입에선 ‘우리가 애가 있었다면’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그럴 때면 항상 대화 끝에 침묵이 이어진다. 아내 안의 침묵의 세계, 그곳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나는 아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내가 아는 아내와 실제의 아내는 얼마나 멀고도 얼마나 가까울까. 서로 사랑하고, 인생을 함께 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이해하는 그녀는 본질로서의 그녀와 얼마나 가까울까. 그녀의 침묵 속에 무엇이 있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짐작할 뿐이었다.
밥을 다 먹었고 설거지는 내가 했다. 세재를 수세미에 뿌려 그릇을 닦았고 수저를 닦았고 냄비를 닦았다. 고무장갑을 켜고 수도를 가장 뜨거운 물로 켜 놓았다. 물이 뜨거워야 설거지가 제대로 되는 것 같았다. 그릇 세척이 끝나면 하수구 통의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비닐에 담았다. 그것도 끝나면 싱크대에 튄 음식 양념이나 설거지로 튀어 묻은 물들을 행주로 정리한다. 그 행주를 다시 한번 빨고 힘을 주어 짜서 수도 쪽에 걸어 말린다. 그래야 설거지가 끝난다. 아내는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그새 씻고 와서 덜 말린 머리를 수건으로 두르고 괜히 내 엉덩이를 한번 만졌다. 내가 쳐다보자 괜히 씩 한번 웃고 안방으로 가서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다. 씻을 준비를 하고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아내에게 ‘나도 씻는다’라고 했더니 아내는 나에게 ‘로션 발라?’라고 물었다. 나는 ‘바르지 마~’라고 답했다.
그날 밤 아내와의 잠자리에서 나는 평소보다 더 흥분했다. 아내의 손길이 내 감각을 자극했고, 나의 페니스는 스물한 살의 그것처럼 딱딱했다. 내가 그녀에게 들어갔을 때 아내는 신음을 냈다. 아내의 등에서 허리로 내려오는 기립근이 매끈했다. 스탠드 조명에 비치는 기립 근의 곡선은 아름다웠다. 기립근 끝으로 넓어지는 골반이 내 시선을 자극했다. 나는 그녀에게 가까웠다가 멀어졌고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그녀의 신음을 들으며 나는 아내의 침묵에 대해 생각했다. 침묵 안에 있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했다. 이 순간이라도 그곳에 닿고 싶었다. 더 깊숙이 더 가까이 그곳에 닿고 싶었다. 나는 움직였고, 그녀는 신음했다. 우리는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