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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동 오락실 9

by 추세경

동수는 바들바들 떨었다. 뒤통수를 맞고 몸을 한번 휘청이고 난 후였다. 때린 사람이 아버지인 걸 확인하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아버지 앞에 섰다. 그리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과자 기계를 당당하게 발로 차던 모습은 온대 간데없었다. 애꾸눈 아저씨는, 그러니까 동수 아버지는 동수에게 험악한 표정으로 뭐라고 했다. 오락실 소리 때문에 말의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입모양을 보았을 때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동수를 꾸짖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아까 동수에게 동전을 줬던 청년은 뒤를 한번 돌아보고 가만 잠시 지켜보더니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동수에게 뭐라고 했던 아저씨는 뒤에 무슨 일이 있든 오락에만 집중했다. 잠시 뒤 동수 아버지와 동수가 밖으로 나오려 해서 나는 이미 봐 두었던 건물 입구 지하 계단으로 몸을 숨겼다. 동수는 동수 아버지 뒤에 따라 나왔고, 그를 따라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동수 아버지는 걸으면서도 뭐라 씩씩 거리며 입을 움직였다. 아버지를 만난 동수는 다시 학교에서의 동수로 변한 것 같았다. 눈에 초점이 없고 살짝 벌어진 입술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그 표정의 동수로 돌아와 있었다. 뒤통수를 맞을 때 흔들리던 동수의 얇고 숱 없던 머리카락이 자꾸 잔상에 남았다. 나는 이번에도 동수 아버지와 동수의 뒤를 쫓았다. 아까 동수만을 쫓을 때보다 벌써 뭔가 스스로가 능숙해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 나 자신에 대한 만족감에 몸놀림이 좀 과해지기도 했다. 내가 그랬던 데 하나 더 이유가 있다면 그들이 가는 길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수 아버지와 동수는 자기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봤던 길이고 그랬기에 익숙했다. 동수 아버지와 동수는 어느새 자기 집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반지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더 이상 동수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아까 오락실에서 나올 때부터 처음의 그 흥분감은 사라져 있었다. 동수는 학교에서의 동수로 돌아와 있었고 그때부터 뭔가 맥이 빠져 버렸다. 한 5분 정도, 동수의 집 앞에서 동태를 살폈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의 미행은 이걸로 끝이었다.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부모님은 많이 화가 나셨을 것이다. 벌써부터 어떤 거짓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아니 엄마아빠에게만큼은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할까.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할까. 체육시간 줄넘기를 안 가져와서 집에 갔다고 할까. 둘 다 별로 말이 안 됐다.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 아빠가 이해해 줄까. 아니 생각해 보면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동수가 밖으로 나가기에 충동적으로 따라 나갔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따라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행했어요’라는 게 사실이지만 뭔가 나 스스로를 납득하기도 어려운 이야기였다. 돌아보면 나 스스로도 내가 동수를 왜 따라 나갔는지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애매하기도 했다. 학교로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고 그렇다고 당장 집에 가기에도 이른 것 같았다. 어차피 혼날 거면 되도록 시간을 미루고 싶었다. 저녁에 가면 혼나는 시간도 줄어들 것 같았다. 오늘은 학습지 선생님이 오는 날도 아니었고 태권도를 가야 하는 날도 아니었다. 집에 가면 오로지 혼나는 일 밖에 없었다. 일찍부터 가서 혼나기만 할 수는 없었다. 어딜 가야 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떠오르는 건 아까 동수가 있던 오락실 밖에 없었다. 주머니엔 이천 이백 원 정도 돈이 있었고 이 정도면 두세 시간은 오락실에서 시간을 때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락실로 돌아가면서 이쪽 동네를 보니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번엔 처음 와서 잘 몰랐고 오늘 오는 길엔 미행하느라 주변을 잘 못 봤었다. 동수네 동네는 빨간 벽돌의 주택과 주택형 공장이 섞여 존재하는 곳이었다. 걷다 보니 지하에서 기계음이 올라오는 곳도 더러 있었고 그런 주택 앞에는 파란색 봉고 트럭이나 은색의 승합차가 주차된 곳이 많았다. 전봇대 마다는 쓰레기봉투가 쌓여있는 곳도 많았는데 그 사이에 누군가 음식물 쓰레기도 같이 끼여 넣었는지 역한 냄새가 났다. 그 밑 아스팔트로 액체가 흐른 자국이 있었고 작게 파인 홈에 주황 및 액체가 고여있기도 했다. 전봇대 상단엔 에이포용지가 붙어있었는데 쓰레기봉투 쪽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함께 삐뚤빼뚤한 글씨로 ‘걸리면 죽는다’라고 쓰여있기도 했다. 하늘이 맑은 가을날이라 전봇대와 쓰레기 더미에도 맑은 햇살이 부딪혔는데 쓰레기봉투에 반사되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동네는 지저분한 거 같은데 햇살과 하늘은 맑았고 나는 걸어온 길 그대로 다시 오락실로 향했다.


오락실에 도착해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아까 보다 사람은 늘었는데 동수와 함께 있던 아저씨 두 명은 보이지 않았다. 오후 세시가 넘어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더러 보였고 초등학교 5,6 학년 형들도 조금 있는 것 같았다. 앉을자리가 없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꽤 사람이 많았다. 우리 동네에 이 오락실이 있는 건 처음 알았다. 오락실에 들어가 가만 둘러보니 그래도 오락의 종류는 다른 오락실들과 대개 비슷했다. 킹오브 파이터, 1945, 메탈 슬러그, 스트리트 파이터, 버추어 캅 등 한번씩은 다 해본 게임이었다. 나는 킹오브 파이터를 좋아했다. 아파트 상가 문방구 앞에 오락기가 있어 꽤나 많이 했고 필살기 버튼도 거의 외우고 있었다. 동네에서 가장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또래 중엔 제일 잘했고 두세 살 위 형들까지도 이길 정돈되었다. 한 번은 세 살 위 누나가 나한테 자꾸 져서 나한테 욕을 한 뒤 오락기 콘센트를 뽑아 버린 적도 있었다. 당시엔 조금 무서웠지만 집에 가서는 그만큼 내가 잘했다는 흐뭇함을 느끼기도 했던 경험이다. 그러니 고민할 것도 없이 오락실에 들어가 내가 할 첫 번고 첫 번째 게임은 킹오브 파이터였다. 킹오브 파이터는 인기가 많았고 벌써 두 자리 모두 누가 앉아 서로 대결을 하고 있었다. 이으려고 대기하는 사람도 한 명 있었다. 나도 그 오락기에 백 원짜리 하나를 올려두었다. 그다음은 내 차례라는 표시였다.


처음 같이 하던 상대랑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지만 그들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오락실을 떠났다. 오락실에 막 들어왔을 때보다 사람이 많이 줄었고 킹 오브 파이터를 하는 사람도 나 혼자였다. 중간에 1945라는 비행기 게임도 하곤 했지만 결국 나는 킹 오브 파이터가 재밌어 그걸 주로 했고 그렇게 두 시간을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문뜩문뜩 오늘 있었던 동수의 일과 집에 갈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오락실은 재밌었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제는 집에 가야겠다 싶었고 마지막으로 킹오브 파이터 한판만 더 하고 집에 가려고 했다. 혼자 동전을 넣고 하고 있는데 한 두 살 형 같은 사람이 동전을 넣고 오른편에 앉았고, 대결했지만 내가 손쉽게 이겼다. 손을 움직이는 걸 보니 아무리 해도 나에게는 안될 사람 같았다. 지자마자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어 빠르게 동전을 꺼내더니 다시 이었다. 그가 주머니에 넣을 때 찰랑이는 동전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질 게 없었다. 캐릭터 한 명도 죽지 않고 내가 이겼고 그는 나에게 말은 안 하고 혼자 씩씩댔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있는데 그의 친구 두 명이 그의 오른편에 와서 섰다. 놀리는 말투로 상대가 안된다는 식으로 내 옆의 남자에게 뭐라고 했다. 그렇게 두 판인가 세 판을 더 했는데 게임에만 집중하던 남자가 중간에 친구 두 명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그가 친구들을 올려다보자 친구 둘은 서로끼리 도 몇 번 눈빛을 주고받았다. 말은 하지 않았는데 뭔가 서로 알겠다는 듯한 정적으로 눈 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또 게임을 하는데 남자의 텐션이 그 전과는 조금 달랐다. 원래도 잘 못했지만 이제는 이기겠다는 의지조차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일단 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랬다. 낌새가 이상했다. 서 있던 두 명의 친구도 더 이상 그를 놀리지 않았고, 그저 우리 둘을, 아니 정확히는 나를 주시했다. 나는 오락기 화면을 보며 게임에 집중하는 척했지만 고개를 살짝 돌려 그들에게도 시선을 주고 있었다. 그 둘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한번 더 확인이라도 하듯 고갯짓으로 나를 가리켰고 서로의 사인이 확실하고 합의되었다는 듯이 다시 내 쪽을 바라보았다.


게임이 끝나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니 오락실에는 나와 그들 무리 셋 그리고 구석에서 눈싸움 게임을 하고 있는 아저씨 한 명 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라 곤 없는 것 같았다. 상황 판단이 서자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 직감이 맞다면 그들은 나를 노리고 있었다. 어떤 의미의 노림 인지는 뻔했다. 나를 때리거나, 돈을 뺐거나, 그런 것들이었다. 상대는 나보다 형들이었고 숫자도 셋이었다. 이 동네는 큰 범주에선 우리 동네였지만 정확히는 내가 잘 안 오는 동네였다. 그런 것조차 뭔가 불리하게 느껴졌다. 일단 하던 게임은 계속해야 했다. 중간에 그만두고 나가는 건 더 티가 나는 행동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진 그는 더 이상 게임을 잇지 않았다. 나는 게임을 하면서도 그들의 동태를 살폈다. 다른 오락기로 가서 게임을 했지만 한 명은 줄 곳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주머니엔 천삼백 원 정도밖에 없었다. 삥을 뜯기긴 싫었지만 설사당한다 해도 그렇게 큰돈까진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나를 때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하던 게임이 끝났고, 나는 그들을 의식하며 오락실 문 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예감대로, 그들도 하던 행동을 멈추고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티를 안 낸다고 하는 것 같지만 나에게는 그들의 기운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문까지 세발자국이 남았고, 두 발자국이 남았다. 나의 계획은 별거 없었다. 별일 없는 듯 문까지 걸어가서, 문을 열고는 냅다 도망가는 것이었다. 내가 그들의 행동을 눈치챘음에 대해 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걸었다. 내가 눈치챘다는 것을 알면 그들은 상황을 안 가리고 나에게 덤벼들 것이었다. 침착해야 했다. 한 걸음을 더 걸어 삼분의 일쯤 열려 있던 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전력으로 뛰었다. 뒤에서 다급한 소리가 나더니 ‘야 저 새끼 잡아’라고 누군가 외쳤다. 나는 죽기 살기로 뛰었다. 뛰면서도 내 눈치가 빨랐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했고 잡히면 안 된다는 간절함과 잡히면 큰일 난다는 두려움이 함께였다. 다리가 떨렸지만 일단은 뛰는 게 먼저였다. 나는 달리기가 빨랐고 뒤에서 이런저런 욕이 들려왔지만 스타트를 먼저 끊은 덕에 우리 사이에 거리는 꽤 벌어졌다. 뒤를 돌았을 때 그들은 뭔가 얘기하더니 셋이 갈라져서 뛰기 시작했다. 그냥 쫓는 게 아니라 나눠져서 길목을 차단하겠다는 목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쪽 동네를 잘 몰랐기에 그냥 오로지 왔던 길을 전력질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까는 동수를 미행하던 길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쫓겨 냅다 뛰고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찼지만 계속 뛰었고 얼마나 갔을까 나에게 익숙한 진짜 내 동네가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놀던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가 나왔고, 나는 비비총으로 자주 총싸움하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 숨었다. 여기는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이었고 혹시 그들이 이 근처에 있다 하더라고 이제 이곳은 나의 동네였다. 일단 숨을 고르고 잠시 쉬었다 가야 했다. 그리고 다행히 나는 다행히 집까지 갈 수 있었다. 그 아파트 단지부터 우리 아파트까지 주변을 잘 살피며 걸었지만 그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아까 그들이 갈라졌을 때부터 그들은 방향을 잘 못 잡았던 것 같다. 안심이 되었고 나름대로 쉽게 따돌렸다는 뿌듯함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이제는 엄마아빠에게 혼날 걱정이 들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혼날게 뻔했지만 방금은 그래도 나쁜 놈들로부터 무사히 도망쳐 나온 아들이었다. 그런 나를 따뜻한 마음으로 맞아주시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어느새 우리 집 현관문 앞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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