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 조퇴를 하고 동수를 미행했던 날 내가 집에 들어갔을 때 엄마는 나를 보고 어디 갔었냐고 화를 잠깐 내더니 이내 펑펑 울었다. 걱정했던 것만큼 혼나진 않았지만 엄마 아빠에게 동수를 따라갔었다는 건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냥 학교가 답답해서 동네 놀이터를 어슬렁 거리고 오락실도 다니고 했다는 말을 엄마는 의심쩍어했지만 상황을 모르는 이상 내가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답답할 땐 학교에서 나와도 괜찮으니 미리 엄마 아빠한테 알려 달라고 했다. 전화 한 통이면 되는 것이고 혼내지도 않을 테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학교에 가서 담임이 게는 실망스럽다는 말과 눈빛을 받아야 했다. 실망스럽다는 말을 대 놓고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담임 선생님이 동수를 '잡아 오라'라고 했을 때부터 나도 그녀에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실망했던 것이 있어서 그녀의 신임을 잃은 것이 크게 힘들진 않았다. 그리고 친구들은 나보고 어디에 갔다 왔냐고 물었지만 그냥 엄마에게 말한 것과 똑같이 놀이터를 어슬렁 거렸다고만 이야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친구들이 뭐라 하든, 선생님이 뭐라 하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을 수가 없었다. 동수가 오늘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러니까 동수네 집에 처음 갔던 그날 이후로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동수는 무단조퇴한 다음 날은 반드시 학교에 왔다. 동수가 안 보이니 별의별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집에 가서 아빠에게 구타를 당한 건 아닌지 아니면 출근길에 샛길로 빠져 오늘도 오락실에 있는 거 아닌지,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다가 다시 아빠한테 잡혀간 건 아닌지, 아니면 삶을 비관하고 어딘가로 떠나버린 건 아닌지, 목숨을 버린 거 아닌지, 등등 생각은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 듯 이런저런 가능성을 모두 탐색했다.
동수는 그 후로 일주일이 넘게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동수가 나타나지 않는 걸 그러려니 했지만 나는 오지 않는 동수가 신경 쓰였다. 솔직히 말해 그가 '죽을 것 같아' 자꾸 불안했다. 나랑 친했던 사이도 아니고 평소에 그를 배려해 줬던 것도 아니고 아무 사이도 아닌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이런 내 생각을 티 내고 싶지도 않았다. 어떤 관계로든 내가 동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동수와 나는 전혀 관계없는 사이였고 그건 사실 동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수에게 나라는 존재는 아무 존재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내 이름이나 알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동수와 나는 전혀 관계없는 사이였고 그건 사실 동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수에게 나라는 존재는 아무 존재도 아니었다. 그가 내 이름이나 알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겉으로는 동수가 없어도 나의 학교에 생활에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점심시간이면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고, 운동장 수돗가의 물을 머리에 끼언고 꼭지에 입을 대고 마시기도 했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문장 읽기를 시키면 한 글자도 안 틀리고 싶어 집중해서 읽었고,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동전이나 학종이 따먹기를 하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수저를 씻을 때면 동수 생각이 났고 가끔씩 친구들이랑 떠들다 가도 시선이 동수 자리에 머물기도 했지만 나는 어느새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동수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우리에게 별도로 말씀해주시진 않았고 나도 굳이 선생님께 먼저 가서 물어보진 않았다.
그리고 딱 일주일이 지났을 때, 동수가 학교에 나타났다. 동수의 등장에 대해 아무도 반기거나 내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학교에 갔을 때 동수는 이미 예의 그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동수를 본 순간 내 눈은 커졌고 속에서 반가움이 올라왔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나는 동수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에게 무관심한 여러 반 학생들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수업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줄곧 동수의 행동을 주시했다. 동수는 쉬는 시간에도 거의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그를 시야 안에 두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가 화장실을 가거나 복도로 물을 마시러 갈 때면 창문 밖으로 그의 동선을 쫓기도 했다. 5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동수가 자리에 앉아 있는 걸 확인한 후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았다. 지퍼를 내리고 수업 중 참았던 소변을 보는 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수가 다시 무단으로 조퇴를 한다면, 그게 오늘이든 아니면 앞으로 언젠가든, 또 그를 쫓아갈 수 있을까. 그날 오락실에서 동수가 아빠에게 잡혀(?) 가지 않았다면 동수는 어디서 뭘 했을까. 동수 아빠라는 불청객의 난입으로 나는 동수의 일탈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기분이었다. 만화 영화를 보다가 사촌 형에게 리모컨을 뺏긴 기분이랄까. 그런 아쉬움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번 더 무단 조퇴를 감행하긴 어려웠다. 첫 번째 미행은 충동적으로 했던 거지만 그날 엄마가 울었던 모습을 생각하면 한번 더 그런 일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한번 더 그랬다가는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낙인찍힐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빠 말마따나 엄마 아빠한테 미리 전화를 해서 친구를 미행하겠다고 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고 일단 동수가 나가는 걸 따라잡으려면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시간도 없을 것이다. 무작정 동수를 따라가기엔 이미 늦은 일 같았다.
‘어?’
생각이 많았는지 오줌 조절을 잘 못해서 왼손 검지와 엄지에 오줌이 묻었다. 왼손을 어정쩡하게 들고 오른손으로 지퍼를 올렸다. 손을 씻으려고 뒤를 돌았는데, 동수가 나를 보며 서있었다.
순간 나를 보고 서있는 게 맞는지 아니면 그냥 화장실에 왔는데 내가 착각하는 건지 헷갈렸다. 우리는 대화를 해본 사이도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할 사이도 아니었다. 잠시 놀랐지만 그냥 화장실에 왔겠거니 하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데 동수는 내 동선을 쫓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괜히 죄진 사람 같은 기분도 들어 서둘러 화장실을 나가려고 했는데,
“박희원”
하고 동수가 나를 불렀다.
“…?”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동수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건 처음이었다. 수저를 빌려주고 되돌려 받았을 때도 사실상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당황해서 나는 아무 말하지 못했고 동수도 나를 부른 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초 정도 흘렀을까, 다시 동수가 말했다.
“지난번에, 나 왜 따라왔어?”
“…”
그가 나를 불렀을 때도, 그가 질문을 했을 때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 말을 할지 생각하기는커녕 그냥 머리가 멍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수업 시간 종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나는 벨소리를 핑계 삼아 아무 대답 없이 교실에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갔을 때 이미 친구들은 모두 앉아 있었고 비어 있는 두 자리 중 하나에 내가 앉았다. 그리고 조금 뒤 동수가 들어와 앉았다.
선생님의 수업 내용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동수 생각뿐이었다. 그의 말투, 목소리, 표정 하나하나를 되새김길 했다. 동수는 내가 그를 미행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아니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에게 들킬 만한 순간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나마 생각나는 건 골목길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에 잠시 멈췄던 그때인데,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때 동수는 이미 내 시야에 없었고 그가 내 시야에 없었다는 것은 그도 나를 보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내가 자기를 따라간다는 걸 눈치챘음에도 그걸 눈치챘다는 표시도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쫓아와 따진 것도 아니고 걸음걸이가 빨라졌다거나 뛰었다거나 하는 것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똑같았고, 내가 자기를 따라간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는 건 뭔가 더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동수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의 동태를 살피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고개를 돌리기가 어려웠다. 그가 나를 의식하고 있을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도 나를 쳐다보고 있고,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큰 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수업 시간이 엄청 느리게 가는 것 같았지만 아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쉬는 시간이 되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동수에게 가서 말을 걸든, 동수를 피해 도망을 가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냥 친구들과 쉬는 시간을 보내면 될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동수가 와서 나에게 왜 대답을 안 하느냐고, 왜 나를 미행했냐고 묻기라도 하면, 그걸 친구들이 알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더 복잡할 것 같았다. 최소한 그날의 일은 나와 동수만의 비밀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희원”
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랐고 고개를 돌려 동수 쪽을 바라봤지만 동수는 예의 그 멍한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었다. 나를 부른 건 수학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뭔 생각을 하냐고 핀잔을 줬다. 선생님 눈에는 내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보였나 보다. 선생님은 칠판 앞으로 나와 지금 교과서에 나와 있는 문제를 풀어보라고 했다. 사각형 한쪽 꼭짓점의 각도를 구하는 문제였다. 사각형 네 각의 합이 360도라는 걸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걸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이건 이미 학습지에서 배운 내용이었기 때문에 푸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선생님은 내가 문제를 못 풀면 한 소리 더 할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문제를 풀어내니 떨떠름한 목소리로 ‘흠, 잘 푸네, 자리로 들어가’라고 하셨다. 자리로 들어가서는 수업에 집중하는 척했지만 머리로는 그러지 못했고 어느새 수업이 끝났다. 장고 끝에 정리한 계획은 이랬다. 이번 수업이 끝나면 점심시간이니, 우선 아무 일 없는 양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혹시 동수를 주시하고, 혹시 그가 나에게 말을 걸려고 오면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도망을 간다. 그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으면 일단 나의 평소 상태를 유지한다. 그리고 동수가 교실이 아닌 곳에서 혼자 있을 때 그에게 가서 대화를 시도한다. 그에게 어떤 말을 할지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 거기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어나 줄을 서고 배식대에서 밥을 받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동수를 주시했다. 혹여나에게 다가온다면 식판을 들고뛸 작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동수에게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었다. 배식을 받을 때 나보다 줄에서 열명 정도 뒤에서 밥을 받았고 자기 자리로 가서 밥을 먹었다. 다행히 점심을 다 먹을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수저를 씻으러 복도로 갔고 혹시 또 뒤에 동수가 나타날 까봐 경계하며 움직였다. 다시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동수가 문 밖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잠깐 움찔했지만 내 쪽으로 오는 게 아니라 중앙 계단 쪽으로 움직였다. 혹시 또 조퇴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운동장에 나가는 건가, 헷갈렸다. 거리를 두고 동수를 쫓아갈까 싶었지만 이미 한번 걸린 사람이라 의지가 떨어졌다. 일단 교실 창문에 가기로 했다. 우리 반 창문에서는 중앙 현관이 보였고 동수가 밖으로 나간다면 교실에서도 그를 관찰할 수 있었다. 동수의 자리를 보니 가방이랑 기타 물건들도 그대로 자리에 있었다. 조퇴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교실 창가 맨 앞으로 갔다. 그나마 현관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였다. 여름 더위가 가고 있어 운동장에 학생들이 많았다. 축구하며 노는 아이들도 있었고 한쪽 구석에선 말뚝박기를 하는 애들도 있었다. 말뚝 박기 친구들 옆으로는 두 친구가 이유는 몰라도 한 명은 도망가고 한 명은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1학년인가, 2학년인가, 그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다리던 동수가 나타났다. 동수는 고개를 살짝 내린 채 땅을 보며 걸었다. 학교에선 항상 그런 걸음이었다. 동수는 운동장 반대쪽에 있는 놀이터 쪽으로 향했다. 아마도 또 철봉 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동수는 자주 철봉 쪽에 갔고 철봉 사이사이를 혼자 도는 게 취미였다. 장난감 가게에 전시된 장난감 기차처럼 똑같은 속도로 철봉 주변을 빙빙 돌곤 했다. 그가 철봉 쪽으로 간다면 그건 기회였다. 내가 그쪽으로 간다면 그와 일대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동수는 철봉으로 간 게 맞았다. 거기에 도착해 그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걸 확인하고 나는 뛰기 시작했다. 교실을 뛰어나와 학교 중앙 계단을 세 칸씩 뛰어 내려왔다. 혹시나 동수가 사라질 새라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이 복잡했다. 막상 동수에게 가고 있지만 그를 마주했을 때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뭐부터 물어봐야 할까. 내가 미행하는 걸 언제부터 알았냐고 물을까, 아니면 왜 그 뒤로 일주일 동안 결석을 했냐고 물을까, 그것도 아니면 오락실에 왔던 사람이 너네 아빠가 맞냐고, 그것부터 물을까, 그것도 아니면, 혹시, 오락실에서 뒤통수를 맞을 때 많이 아팠냐고, 맞은 건 괜찮냐고 물을까. 할 말이 없을 것도 같았는데 할 말이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새, 동수 앞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