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중화동 오락실 12

by 추세경

“그때 건석이는 건석이가 아닌 것 같았어요”


영준이가 말했다.


“건석이가 아니라고?”


“네”


“그게 무슨 말이야?”


영준이는 카페 탁자에 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방금 그 말을 할 땐 왼손과 오른손의 손가락 끄트머리를 몇 번이나 서로 부딪혔다. 영준이는 손가락을 계속 부딪혔지만 생각에 잠긴 듯 부딪히는 속도가 느려졌다. 다섯 손가락이 서로 한 번에 부딪히는 게 신기하다는 듯 손끝을 계속 바라봤다.


“너를 때린 게 건석이가 아니라 어둠이라고 한 거, 그 얘기를 하는 거야?”


“건석이가 저를 때릴 때, 주체할 수 없는 뭔가가 건석이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무언 가에 쓰인 듯, 홀렸다고 할까요, 건석이는 분노를 어디에 풀 데가 없어서 눈이 돌아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맞고 있는데 아파트에 정전이 있었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얼마나 맞았을까, 건석이는 쓰러져 있는 제 옆에서 저한테 미안하다면서 엄청 울었어요. 엄청 심하게 울었어요. 울다가 혹시 졸도하는 건 아닐까 오히려 제가 걱정될 정도로 울었어요. 그리고 저는 건석이가 우는 모습도 볼 수 없었어요. 눈은 부어서 잘 떠지지 않았고, 아파트도 한 동안 계속 정전이었거든요.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하니까 저는 뭐가 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처음 건석이가 저를 때릴 때는 저도 화가 나고, 이게 뭔가 억울하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건석이가 너무 그렇게 화를 내고, 너무 또 그렇게 미안해하고, 그런 모습을 보니까 오히려 저는 무서웠어요. 건석이가, 아니 건석이 안에 있는 뭔가가, 건석이를 그렇게 만든 뭔가가 뭔지 두려웠어요. 얘가 미친 건가 싶었거든요. 그리고도 한참이나 미안하다고 하니까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사과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인 것 같았거든요. 맞은 건 난데 제가 오히려 건석이를 걱정하고 있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매일 그날을 곱씹었어요. 저의 어떤 말에 건석이가 화가 난 건지, 무엇이 건석이를 건드린 건지, 건석이에게 저라는 존재는 무엇이었는지 돌아봤어요. 자꾸 마음에 남는 건 어둠이더라고요. 어둠 속에 울부짖는 건석이, 건석이를 덮은 어둠, 그런 것들이요. 기절을 한 건지, 잠들었던 건지 모르겠어요. 눈을 떴을 때 정전은 멈춰 있었고 119 구급대원들이 저를 데리러 왔어요. 119를 부른 것도 건석이었을 거예요”


“그랬구나” 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영준이는 부딪히던 손가락을 멈추고, 윗 이빨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영준이의 시선이 내가 들고 내리는 커피 잔을 따라왔다.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말을 골라야 했다.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아 침묵은 한참이나 계속됐다.


“건석이가 건석이가 아닌 것 같았구나. 때리고도 자꾸 미안하다고 했고. 황당했을 거 같은데? 어이없고?”


“네. 진짜 어이없었어요"


"근데 건석이는 애초에 왜 너를 때리기 시작한 거야? 둘 사이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


영준이는 다시 손가락을 부딪히기 시작했다. 태엽을 감아야 움직이기 시작하는 인형처럼, 손가락을 부딪혀야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제가 건석이 엄마를 좀 욕했거든요. 건석이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났고 그거 때문에 건석이가 힘들어진 거니까. 그래서 건석이 엄마를 욕했어요. 건석이를 위해서 한 말이에요. 같이 욕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랬더니 건석이가 너를 때린 거야? 자기 엄마를 욕했다는 이유로?"


"제가 생각하기엔 그것밖에 없어요. 그전까지 뭐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고 솔직히 저한테는 건석이가 유일한 친구였고, 건석이는 원래 친구가 많았지만 요새는 저랑만 어울렸거든요? 같이 있으면 편하고, 재미있었어요. PC방도 많이 다녔고"


"물론 엄마 욕을 한 건 좀... 실수한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그렇게 너를 때렸다는 건 잘 이해가 안되는구나"


"저도 그래요. 한순간이었어요. 저를 때리기 시작한 게요. 기분 나빠하는 티도 잘 안 났어요"


병원 1층에 있는 카페는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랑 영준이 처럼 병원복을 입은 환자와 면회자의 조합도 보였고 혼자 자리에 앉아 스마트 폰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각 환자복을 입은 남녀가 자리에 앉아 웃으며 대화하는 테이블도 있었는데 옷은 환자복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엔 어디가 아픈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웃고 대화하는 제스처가 서로가 서로에게 이성적으로 호감을 가진 것 같았다. 모르는 사이였는데 병원에서 만나 사이가 좋아진 건 지 아니면 원래도 알던 사람들이 같이 입원해 저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 저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해요. 어렸을 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저도 친구들을 때렸던 적이 있거든요. 정말 어렸을 때요. 초등학교도 오기 전에.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잘 안나거든요. 그나마 기억나는 건 어떤 느낌 같은 건데, 혐오감 아니면 두려움, 그런 걸 엄청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엄청 혐오스럽게도 하고 엄청 두렵기도 한 알 수 없는 기분에 몸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던 것 같아요. 몸이 저릿저릿한 느낌이요. 옆 사람을 혐오하는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을 혐오하는 건지도 모르는 그런 기분이요. 제가 기억나는 건 그런 어렴풋한 느낌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벌 받은 거 같기도 해요. 저도 어렸을 때 이유 없이 누군가를 때렸었으니까요. 그래서 이유 없이 맞았나, 싶기도 하다는 이야기예요.”


"건석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니?"


"아니요. 굳이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예요. 저한테 벌어진 일에 대해서 저 나름의 해석이 필요하니까요. 그런 이유라도 없으면 너무 답답할 것 같아요. 건석이를 이해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건석이에게 복수하고 싶거나, 그런 마음이 있는 건 아니지 많아요”


“그렇겠네, 답답하고, 화도 많이 나겠어”


“이제 건석이랑 친구로는 못 지낼 거 같아요. 아직도 화가 많이 나거든요”


영준이와 대화를 마치고 그를 병실까지 데려다주었다. 영준의 부모님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왔다. 영준의 부모님은 내가 영준이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려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눈치가 없는 척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긴 뒤였다. 영준과 건석의 일에 대해선 아직 나 스스로도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영준이가 말해준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 그 안에는 무언가 시골길 도로의 과속 방지턱처럼 논리적인 흐름을 방해하는 것들이 툭툭 튀어나와 있었다. 건석이가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애다,라고 단정하면 다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잠깐 봤지만)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것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이유야 모르겠지만 엄마가 불륜을 저지른 상태였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애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정답인양 모든 걸 해석하기엔 어둠 속에서 분노했다 또 울어버리는 건석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이미지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연민인지, 뭔가가 뒤섞인 복잡하고 묵직한 감정이 마음에 남았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의 강변북로는 서울의 야경으로 반짝였다. 반포대교에선 분수를 설치해 여러 줄기의 물을 포물선으로 내뿜었고 거기에 무지개 조명을 비추고 있었다. 한강 공원의 사람들은 무리 지어 그걸 구경했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 강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높게 솟은 한강 변의 고층 아파트는 외벽에 조명을 설치해 야경의 멋을 더했다. 아파트 저층부터 고층까지 일자로 이어진 조명은 빨강에서 파랑으로 다시 노랑으로 초록으로 색을 바꿔가며 반짝였다. 운전석 창문을 조금 내렸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가을 공기가 선선했다. 해 저문 밤 이렇게 혼자 운전을 하다 보면 일상의 영역과 분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영준이와 했던 대화 같은 데서 벗어나 오로지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실감이다. 꽤 괜찮은 기분이고 서울 밤의 야경과 이 정도 온도의 공기면 더할 나위 없었다. 가로등 불 빛이 하나하나 눈앞을 스쳐갔다. 도로의 흐름에 맞춰 차로를 바꾸고 액셀을 밟았다. 자동차 깜빡이 넣는 소리가 간명했다. 불빛과 소리 그리고 바람, 작은 감각들에 집중했다. 감각에 집중할수록 생각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그때,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나만의 시공간에 있는 느낌이었는데 벨소리 덕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폰과 연결된 차 모니터를 보니 아내에게 온 전화였다. 수신 버튼을 눌렀다.


"응, 여보"


"여보, 오고 있어?"


"응, 지금 마포대교쯤이야, 삼십 분 정도 더 가야 될 것 같아"


"영준이는 잘 만났어? 다친 건 좀 괜찮대?"


"멍이 좀 있고 꿰맨 곳 실밥이 아직 남아 있긴 있는데, 그래도 괜찮아 보이더라"


"그래, 다행이네, 벌써 한 달 지났으니까"


"응, 그런 거 같아"


"걔는 뭐래? 왜 맞은 거래?"


"음... 가서 말할게, 말하면 복잡하기도 하고, 오늘은 이 일에 대해 그만 생각하고 싶기도 하고, 그러네"


앞에 가는 차가 차로 중앙을 안 맞추고 차로 왼쪽에 딱 붙어 갔다. 차도 좌우로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음주 운전인지, 초보운전 인지 모르겠지만, 차로를 바꿔서 그 차를 추월했다.


"여보 빨리 와, 보고 싶어"


"응 나도 보고 싶다. 어서 갈게"


"응"


여의도 고층 빌딩의 환한 불빛이 한강물에 비쳤다. 다시, 액셀을 밟았다.

keyword
이전 11화중화동 오락실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