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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동 오락실 10

by 추세경

학교를 마치고 영준이가 입원한 병원으로 가는 길이다. 건석이는 어제 무단 조퇴를 했지만 오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학교로 등교했다. 듣기로 그는 어제 어디에 갔는지 왜 학교에 빠졌는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5반 담임은 건석이를 그냥 이상한 애라며 씩씩 거렸지만 그가 돌아왔음에 안심할 뿐 그의 행적에 대해선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5반 옆을 지나며 창문 너머의 건석을 바라봤 지만 그는 창 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수업시간에도,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그를 살폈지만 창밖만 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계속이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5반 담임을 포함한 다른 선생님들은 건석에게 관심이 없었고, 학급 친구들은 그의 침묵에 그를 멀리했기에 나라도 따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제대로 모른 채로 대화하면 그의 잘못을 탓하기만 할 것 같았다. 시간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영준이와의 대화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건석은 그다음 순서였다. 영준이에겐 연락이 되지 않아 병문안 약속은 영준이 부모님과 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목요일에 수업이 적어 일과를 빼고 병원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그것 때문에 이틀을 더 기다릴 수는 없었다. 오늘은 오전과 오후에 수업이 모두 있어 중간에 시간을 빼기 힘들었고 그러려니 차라리 퇴근 후에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학교 앞 편의점에서 홍삼 음료 세트를 샀고, 혹시 몰라 일회용 마스크도 구입했다.


영준이 부모님을 처음 만났던 건 사건이 있고 삼일 뒤였다. 개학을 앞두고 학생들보다 먼저 학교에 출근해 개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교실에 있는 책상과 의자 개수를 점검하고 바닥 청소를 한번 했다. 방학 때 보충수업이 있던 영향인지 생각보다 교실이 지저분했다. 지나가던 교감 선생님이 왜 벌써부터 청소를 하고 있냐고 웃으면서 칭찬 섞인 말을 하고 가시기도 했다. 그날, 교실 청소를 하고 교감 선생님을 마주쳤던 그날 영준이 부모님이 나를 찾아왔다. 전화가 와서 지금 학교에 있다고 했더니 그러면 학교로 가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일에 대해 모르고 있었고 영준이 아버지가 나에게 상황을 설명해 줬다. 안 좋은 일로 전화를 하신 거지만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교사인 나에 대한 존중이 말투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아버님은 학교에 방문했다. 진회색 면바지에 광택 있는 하늘색 피케 셔츠를 배바지로 입고 검은색 구두를 신고 왔다. 생활기록부를 봤을 때 50대 초반으로 적혀 있었지만 백발 머리로 첫인상은 나이가 더 있어 보였다. 기장이 짧은 포마드 머리에 눈은 작았지만 눈꼬리가 밑으로 내려가 있어 목소리만큼 선한 인상이었다. 학교 중앙 현관 앞에 서 있는 나에게 그는 악수를 건넸고 인상만큼이나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외국계 택배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영준의 어머님은 학습지 선생님이었다. 그와 나는 학교 건물 사이에 있는 벤치로 갔다. 여름의 끝이긴 했지만 날씨가 덥지 않았고 벤치 위로는 옆에 있는 밤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영준이 아버지는 나에게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흥분하지 않았다.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사건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나에게 그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처음 이야기 해준 게 영준의 아버지였다. 그는 영준이가 어떤 아들이었는지부터 나에게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영준이는 어렸을 때부터 숫기가 없고 말수가 적고 혼자서 노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부모가 보기엔 그 정도가 심했다. 5살에 처음 유치원에 보냈는데 첫날엔 하루 종일 울기만 해서 중간에 다시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야겠다. 처음에야 적응이 필요한 거겠지,라고 판단하고 이틀이고 삼일이고 계속 유치원에 보냈는데 그렇게 한 달이 지난 뒤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며 연락이 왔다. 영준이가 다른 친구를 연필로 찌르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유치원에 입학하고도 일주일 내내 울기만 해서 특이한 아이라고 생각했고 울음을 그친 뒤로는 말도 안 하고 친구들이랑도 전혀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울음이 그친 것처럼 이 또한 적응이 되겠지 하고 지켜봤는데 놀이터에서 같이 놀자는 친구의 팔을 연필로 찔렀다는 것이다. 다행히 힘이 약해 친구가 다친 건 아니었지만 선생님을 포함 다른 모든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그랬고 분명히 '의도적으로' 찌르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아이를 유치원에 둘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 피해 아이의 부모에게 매일 같이 연락 와서 사과와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받았고 아이 병원비와 소액의 보상을 하고야 만 일이 일단락되었다고 했다. 그 일로 영준이 부모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아이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적도 없었고 부부 관계도 사소한 부부싸움을 할지언정 오히려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아이가 자랄 때도 사랑과 칭찬 보살핌으로 아이를 키웠기에 아이의 그런 모습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준이 엄마는 건강상 문제로 모유수유를 급하게 끊었는데 그것 때문인 것 같다며 자책했다. 소아 정신과를 찾아가 검사를 받아 보았지만 자폐증은 아니라고 했다. 공감 능력도 정상이었고 의사소통 능력에 문제도 없었다. 적어도 병원 검사로는 그랬다. 부모는 자폐가 아니라는 결과를 믿고 싶었다. 그리고 본인들 입장에선 그 결과를 의심할 이유도 잘 없었다. 영준이는 집에서 적어도 부모와 함께 있을 땐 말도 잘 들었고 떼를 쓰는 일도 드문 얌전한 아이였다. 말수가 적거나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없었고 자기들이 보기엔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섯 살 때 첫 번째 유치원 적응을 실패하고, 여섯 살에 다시 한번 유치원에 보냈지만 이번에는 이마로 다른 아이 머리를 박치기했고 여전히 다른 아이들과도 일절 어울리지 못해 그 유치원에서도 맡아주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한번 더 정신과에 찾아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검사 결과로 아이는 문제 될 게 없었고 그 말에 부모는 위안을 얻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영준이는 그렇게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유치원에 가지 못했고 당연히 친구라는 것도 없었다. 이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였다. 부모님은 영준이를 믿어 보기로 했고,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다행히도 초등학교에선 이렇다 할 사건을 만들지 않았다. 친구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일 등은 없었다. 친구관계도 누군가와 막역하게 사귀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학교 생활을 못할 정돈 아니었다. 생활 기록부를 보아도 대개의 평가가 ‘조용하고 착실하다’라는 평이었다. 부모는 그 정도로 위안을 삼았고 마음속으론 조금 더 욕심을 내서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생활을 하기를 바랐지만 아이에게 그걸 강요하진 않았다.


건석이는 영준이가 친하게 지낸 첫 번째 친구였다. 영준이가 부모에게 건석이 이야기를 했을 때 그들은 기뻐했다. 부모에게 처음으로 친구 이야기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잘조잘 건석에 대한 소개를 한 건 아니지만 영준이 건석과 친하게 지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같이 PC방에 간다든지 시험기간에 도서관에 간다 든 지 하는 등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건석이 때문에 부모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마음속에 짐처럼 있던 영준에 대한 걱정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우리 영준이는 착한 아이라고, 여려서 누군가와 친해지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한 거라고, 어려서 그랬던 건 낯선 외부 환경에 갑자기 노출돼 일으킨 거부 반응 같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이 놓였고 한편으로는 친하게 지낸다는 건석이라는 아이가 궁금하기도 했다. 때문에 영준이 건석에게 맞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아들이 누군가 한테 맞았다는 것, 그것도 유일하게 친하다던 친구였다는 것, 이제는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영준이의 생활이 또다시 뒤틀려 버렸다는 것, 등등 때문이었다. 영준이는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코뼈와 정강이 뼈에 금이 갔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피범벅이었다. 영준의 아버지는 일단 영준을 입원시킨 후 사건의 정황에 대해 들어보려 했지만 영준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게 벌써 이틀이 지난 상태였고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 담임인 나에게 알리러 왔던 것이었다. 경찰에 신고는 안 한 상황이었고 일단은 영준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기 전 까진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그가 나를 찾아온 건 영준이가 입을 열 수 있게 도와 달라는 것이었고 일단 그걸 위해선 건석이 어떤 아이인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건석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되도록이면 모든 걸 알려달라고 했다. 나도 건석에 대해선 잘 아는 게 없었기에 그 후로 학생들과 선생들에게 건석에 대해 물었고 그렇게 알게 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선 영준이 아버지에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이나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준이든 건석이든 제대로 된 상황에 대해 알아낸 건 없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에 영준에게 전화가 왔고, 몇 마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사실을 영준이 아버지에게 이야기했지만 영준이 아버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본인들에겐 아직도 아무 얘기도 안 했다고, 나에게 어떤 말이든 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서운해하는 눈치기도 했다.


영준이가 있는 병원은 동네에서 크다는 종합병원이었다. 저녁 7시까지 가기로 했는데 어느새 해가져 어둠이 내려앉았다. 가로등이 반짝였고 건물의 간판에선 저 나름의 색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인도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가로 등 불빛 간격 따라 형체가 드러났다가 숨었다가 드러났다가 숨었다가를 반복했다. 누군가는 혼자서, 누군가는 둘이서, 누군가는 술에 취해, 누군가는 가방을 메고, 누군가는 유모차를 끌고, 거리를 걷는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퇴근 시간과 겹쳐 막혔고 성질 급한 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적을 울렸다. 인도의 사람들과 차도 위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무얼 위해, 어디로, 왜 가는 것일까. 아니 그런 것들에 대해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는? 내가 지금 영준이의 병원에 가는 것. 그 사실이 새삼 낯설었다.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과거에는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건이나 사고는 으레 그렇듯 전혀 생각지도 못했을 때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들에 우리는 대응하고 적응하며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선생이란 직업을 택했을 때, 그러니까 학생들에 대한 관리자로서의 직업을 택한 이상 마땅히 겪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막상 그게 현실이 되어 그 과정을 겪어 나가는 건 또 다른 차원의 기분이었다. 그렇게 보면 내가 지금 병원에 간다는 것, 그 차도 위에서 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합리적이고 설득 가능한 ‘이유’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냥 나는 어떤 이유로, 또는 섭리로, 또는 ‘아무 이유도 없이’ 어떤 상황 속에 처해지고 그걸 해결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게 삶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저마다 처해지는 상황이 다를 수도 있고, 그냥 그 안에서 적응하고 나아가며 때로는 후퇴하기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 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이나 부정의 해석을 하기도 하며 그렇게 저마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낸 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강한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그걸 실현해 내며 삶을 되도록이면 자신의 영향력 아래 통제시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가 가진 그 ‘강한 의지’라는 것도 어쩌면 그에게 주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삶의 귀결은 허무 일까. 그냥 주어진 대로, 비참한 삶이면 비참한 대로 살고, 복된 삶이면 행복하게 살다 죽고, 그게 전부인 것일까. 또 그렇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을까. 정답이 없는 것일까, 아니 진리가 있는 것일까, 밤거리의 사람들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거리의 불빛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지금 영준이를 찾아가는 이 길이, 이 시간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의미란 내가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주어지는 것일까.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평생토록 알 수 없을지도 몰랐다.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들어갈 때 시계를 보니 6시 50분이었다. 다행히 약속 시간에 늦은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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