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상중학교 2학년 4반의 담임이었고, 국어 선생이었다. 학교는 남자 중학교라 보통 심상 남중이라 불리곤 했다. 보통 7시 30분까지 출근했고 교무실 자리에 앉으면 첫째로는 오늘 수업 일정을 확인했고, 둘째는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 반 아이들에게 전달할 말을 정리했다. 학교의 학사 일정 관련이든 담임으로서 훈육 차원의 이야기 든 매일매일 해야 할 말은 달라졌다. 생일인 친구가 있으면 조회 시간에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고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괜찮았던 인사이트가 있으면 학생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다음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다이어리에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오늘 중에 해야 할 일로는 중간고사 이후의 가을 소풍 계획보고서 작성이 있었고 건석이 부모 님과의 면담이 있었다. 화요일 오후엔 수업이 없어 2시에 건석이 부모님, 정확히 말하면 건석이 아빠가 학교에 찾아오기로 했다. 사실 어제 그와 통화를 한 것도 면담 약속을 확정하기 위해서였다. 통화 말미에는 영준이를 고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애초에 그것 때문에 전화를 한 건 아니었다. 다이어리 스케줄 적은 ‘2시 건석 아빠’라는 글자를 보며 잠시 멍해졌고 거기서 무슨 의미라도 찾아야 하는 것처럼 글자에 동그라미를 두 번 세 번 그렸다.
아침 조회 시간에 출석을 확인했다. 영준이 자리는 한 달째 비어 있었고 아이들도 내 앞에선 영준이 이야기를 삼가는 눈치였다. 곧 있을 2학기 중간고사 준비를 잘하라고 일렀지만 요새 우리 반 애들에게 가장 큰 이슈는 중간고사 끝나고 있을 구기 대회였다. 특히 축구를 좋아하는 애들이 많았는데 같은 학년 10개 반 중에 우리 반인 4반과 7반이 가장 잘하는 편이었고 1학기 때는 결승에서 0대 4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졌었다. 평소에는 비등 비등한 실력이었기에 아이들은 충격을 받았고 가을 학기만을 벼르고 있었다. 그게 벌써 한 달 앞으로 다가왔고 원래도 점심시간이면 나가서 공만 차던 녀석들인데 요새는 한층 더 흥분했는지 오후가 되면 교실에는 땀냄새가 가득했다. 영준이는 말 수가 적었지만 운동은 좋아했고 반에서도 오른쪽 풀백을 맡아 뛰고 있었다. 발 기술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뛰는 걸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유일하게 영준이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순간이 축구를 할 때였다. 나야 같이 공을 차는 입장이 아니라 영준의 빈자리에 대해 잘 몰랐지만 한 달째 나오지 않는 영준이의 공백에 대해 축구팀 아이들은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출석을 부른 뒤엔 혹시 컨디션이 안 좋거나 아픈 친구가 없는지 물었다. 모두가 괜찮다고 했다. 중간고사가 3주 남았음을 알렸다. 학생이면 꼭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직업이 선생이고 역할이 담임인지라 공부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회를 마치는 데 창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때 묻은 하얀 스펀지 같은 구름들이 하늘을 어둡혔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었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길 라디오에서 오늘은 하루 종일 청명한 하늘이 계속될 거라고 들었다. 혹시 잘못 들었나, 되짚어 봤지만 아니었다. 분명 오늘 아침에 들은 이야기였다. 하긴 일기 예보야 틀리는 날도 많으니 뭐, 하고 바라보니 아이들 얼굴이 더 죽상이었다. 비가 오면 축구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애들 특성상 비가 많이 오지 않으면 그래도 하겠지만 문제는 운동장 상태였다. 비가 오면 물이 고이고 땅이 파여 축구를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침 조회를 마쳤다. 복도로 나왔더니 시멘트 바닥에서 벌써 습기를 머금은 냄새가 올라왔다. 천장 조명이 켜져 있었지만 복도는 어두웠고 바람도 많이 부는지 창밖의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내에게 오늘도 파이팅 하라는 메시지가 왔다. 이제 그녀도 출근하는 길일 것이다.
오전은 내내 수업이었다. 우리 반 수업은 없었지만 다른 반 수업이 연속으로 있었다. 이건 내 느낌이지만, 그리고 그 느낌을 믿고 있지만, 비가 올 때면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가 떨어진다. 애초에 수업이라는 게 열심히 듣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나뉜 시간 전반적인 수업 분위기를 판단한다는 게 애매한 개념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는 이야기다. 교실 안은 불로 환하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처지고 학생들의 정신이 잠깐 다른 데 갔다 온다고 할까. 비 오는 소리를 듣는 건지 비 떨어지는 모양을 듣는 건지 아니면 습하고 처진 분위기 자체가 싫어 수업을 듣는 것도 지치는 건지 이유야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수업하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비 오는 날이면 괜히 내 말소리가 더 울리는 것 같고 울리는 내 목소리를 내가 인식해 혹시 잘 못 말하는 건 없는지 점검할 때도 있다. 게다가 학생들도 쳐져 있으니 그들을 수업에 집중시키려면 내가 더 노력해야 하고 그런 이유 때문에 수업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진이 빠진다. 오늘은 안 그래도 연속 네 개나 수업이 있어서 하나씩 하나씩 수업을 끝내갔다. 하나씩 하나씩, 벤치 프레스 세트를 끝내 듯이, 중간중간 호흡을 하며 한 수업 한 수업 씩 수업을 마쳐갔다. 쉬는 시간에 잠깐 복도를 걸을 때면 여지없이 영준이와의 통화가 떠올랐다.
3교시를 마친 후의 쉬는 시간이었다. 5분이라도 앉아 있고 싶어 빠른 걸음으로 교무실로 가고 있었다. 아침보다 비 세기가 거세 졌고 복도 중앙 쪽 형광등이 나가 복도 전체가 한층 어두워 보였다. 맞은편에서 건석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먼저 나를 봤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시선을 발끝만 향해 보고 걸었다. 건석이는 키가 170 중반쯤으로 중학교 2학년 치고는 큰 편이었다. 얼굴이 작고 어깨가 넓어 키가 더 커보였는데 또래에 비해선 골격이 좋았지만 아직 더 변할 수 있는 그 나이 특유의 말랑말랑함이 보였다. 하지만 상하체 길이와 얼굴과 어깨의 선 등의 밸런스가 좋았고 키만 좀 더 크고 근육만 더 붙으면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릴 멋진 체형이 될 것 같았다. 교복 바지와 셔츠, 니트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셔츠의 왼쪽 팔만 팔꿈치까지 걷은 채로 걸었다. 얼굴도 눈코입이 가지런히 자리 잡아 잘생긴 얼굴이었다. 눈 매가 살짝 올라갔고 쌍꺼풀은 없었지만 눈이 컸다. 코가 높진 않았지만 콧날의 각도가 괜찮았고 얼굴이 작아 오히려 딱 지금 얼굴에 딱 어울릴 만했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두 광대와 그 살짝 밑으로 집중된 빨간 여드름이었다. 이마나 턱은 깨끗했지만 볼에 여드름이 많았고 그 나이 학생들 중에서도 좀 심한 편이었다. 건석은 깊은 생각에서 잠시 벗어난 것처럼 나를 잠깐 쳐다보았지만 인사는 하지 않고 지나쳤다. 사건 이후 교무회의에서 정학 10일 처분을 받고 지난주 목요일부터 학교에 복귀한 상황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와 한 번도 직접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영준이의 담임인 걸 그가 알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알아야 했지만 이렇게 마주 보며 지나가는데 인사도 안 하는 것이면 나를 아예 못 본 건지 아니면 봤는데 잘 몰라서 인사를 안 한 건지 아니면 보고도 무시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에게는 무언가 할 말이 많으면서도 할 말이 없었다. 불러 세워 인사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일단 오늘 내게 중요한 건 건석의 부모님을 만나는 일이었다. 대화를 해도 그다음에 필요한 일이었다. 일단 교무실로 갔고 내 자리에 앉았다. 탁상 달력에는 ‘14시 건석 아빠’라고 적혀 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아내에게 받은 문자에 대해 답장을 못했다는 게 생각났다. 원래 바쁘면 답장이 늦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그 정도로 바쁘진 않았다. 정신이 자꾸 어젯밤의 통화와 오후에 있을 일에 쏠려 있는 것 같았다. 아내는 아침에 보낸 문자 이후로도 주말에 등심을 구워 먹자는 메시지를 보낸 상태였다. 동네 마트에서 주말 간 세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답장이 늦어 미안하다고, 너무 좋다고 답장을 했다. 조금 더 쉬고 싶었지만 어느새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다. 다음 교시 수업에 가야 했다. 그리고 마침, 다음 교시 수업은 건석이가 있는 5반의 수업이었다. 건석이가 정학에서 복귀한 뒤 그를 처음 마주하는 수업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5반을 향해 걸었다.
사건이 있은 후 건석의 담임과 다른 학생들을 통해 건석이 어떤 아이인지 알아보았다. 내가 알게
된 건 이런 것들이었다. 건석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 동네에 살았고 그와 초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건석이는 초등학교 때 반장도 여러 번 했고 (딱히 열심히 하는 건 아니었지
만) 공부도 잘해 친구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주목을 받는 친구였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온
이후 말수가 줄고 친구 관계도 소원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도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엄마의 외도로 아빠와 엄마가 이혼 소송 중이며 건석의 양육권에 대해서도 부모 간에 갈등이 심하다는 얘기였다. 건석이가 변한 시점과 부모의 갈등 시점이 비슷해 사람들은 건석이 변한 이유를 부모 간의 갈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건석이는 현재 아빠랑 같이 살고 있었다.
그랬던 건석이 유일하게 어울리는 게 영준이었다. 둘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존재감이 없는 영준과 존재감이 없어진 건석은 서로 단짝이 되었다. 그리고 건석이 담임이나 학생들 모두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건 둘이 왜 친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존재감 없는 영준과 과묵해진 건석, 한편으로 보면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둘이 어떤 이유로 친한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둘이 친한 이유를 두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건석이 영준을 폭행한 이유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 영준도, 건석도, 입을 다물고 있다. 어제 처음 들은 영준이의 이야기는 일상적인 언어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언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표현할 언어가 그것밖에 안되었는지, 아니면 무언가를 암시하고 싶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5반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칠판 앞 탁상에 섰는데 뒷문을 열고 두 명의 학생이 들어왔다. 어디서 뛰어 왔는지 숨을 헐떡였고 내 눈치를 보며 재빠르게 각자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두 학생이 자리에 앉고 나는 건석의 자리 쪽으로 눈길을 줬다. 5반이 자리를 바꾼 게 아니라면 건석의 자리는 1 분단 뒤에서 두 번째 줄 창가 쪽 자리였다. 하지만 그쪽에도 자리가 하나 비어있었다. 건석이 없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아니면 자리를 바꿨고 누군가가 수업에 빠진 건가? 아니면 앞서 두 학생처럼 아직도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학생이 더 있는 건가?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내가 그쪽 자리에 시선을 두자 다른 학생들도 빈자리를 보더니 잘 모르겠다는 표정들을 지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짝꿍끼리 수군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자리에 건석이가 있는지 반 학생 전체를 한번 훑었다. 하지만 건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게 맞다면 지금 비어 있는 자리는 건석의 자리가 맞았고 건석은 지금 자리에 없는 것이었다. 확인 차원에서 탁상 맨 앞에 있는 학생에게 물었다.
“비어 있는 자리는 누구 자리야?”
“김건석이요”
“왜 비어있는 거야?” 다시 물었다.
앞자리 학생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짝꿍에게 그리고 뒷사람에게 답을 구하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다들 모른다는 눈치였고 이에 나는 5반 반장을 불러 건석이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아까 3교시 까지는 있었는데요.”라는 대답이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내가 건석을 마주친 것도 3교시를 마친 쉬는 시간이었다. 그걸 알기에 나도 뭔가 더 이상했다. 자리를 비운게 다른 학생이었으면 일단 수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내가 담임인 것도 아니고 다른 친구들은 모를 만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필 자리에 없는 게 건석이라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수업을 시작할 수 없었고, 잠깐 복도로 나와 5반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업 중이 아니었는지 5반 담임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이 선생님”
“네 박 선생님”
“지금 5반 수업 들어왔는데요. 건석이가 없는데? 김건석”
“네?” 이 선생의 말꼬리가 올라갔다.
“아니. 건석이가 수업에 안 들어왔다고요. 혹시 뭐 아는 거 있어요?”
“어… 아니요? 오늘 등교했는데요? 3일 전에 정학 풀려서 다시 학교 나오고 있어요”
이 선생의 대답에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건 나도 아는 일이었고, 물어보는 핵심은 오늘 학교에 왔냐 안 왔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사건 해결에 회피만 하려는 이 선생의 태도에 한 달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던 나였다.
“아니, 그건 알고. 지금 자리에 없다니까요. 뭐 조퇴라도 한 거예요? 뭐라도 아는 거 있어요?”
“어… 아니요? 조퇴 같은 거 얘기한 거 없는데…, 혹시 다른 애들한테 한번 물어보셨어요?”
“일단 알겠어요” 하고 그의 대답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경솔한 반응이었지만 더 이상 통화하면 더 짜증이 날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도를 앞 뒤로 한번 쳐다봤지만, 건석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 뛰어온 두 명처럼 조금 늦어도 자리에 앉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일단은 수업을 해야 했다. 5반 담임도 이 사실을 알았으니 건석을 찾는 건 그의 몫이었다. 신경은 자꾸 쓰였지만, 일단 수업을 해야 했다. 다시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갔다. 잠깐 복도로 나온 사이 애들은 무슨 일인지 신이 나서 떠들었지만 내 표정이 심각했는지 내가 들어가자마자 다시 조용해졌다. 일단 수업을 시작했다. 오늘 수업 내용은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읽고 소설 속 화자의 시점에 대해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이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인 소설이었고 그 외에 1인칭 주인공 시점은 무엇인지 3인칭 전지적 시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같이 소설을 읽으며 왜 이 소설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인지, 어떤 단어가, 어떤 문장에서 그런 걸 배울 수 있는지 가르쳤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계속 건석의 행방을 쫓았다. 아까 그럼 그 복도에서부터 그는 이미 수업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떤 사건으로, 어떤 계기로, 타의에 의해 들어오지 못한 건지, 어떤 가능성이 제일 높은 지 생각했다. 수업을 하면서 건석을 생각했고, 영준이가 말한 어둠에 대해 떠올렸고, 건석과 어둠과 영준에 대해 생각했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앞으로 나아갔고, 수업은 진행됐다. 어느새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결국 건석이는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