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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동 오락실 2

by 추세경

담임을 맡은 지 반년이 넘었지만 영준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생활기록부 상의 기본적인 정보야 이미 알고 있었고 사고가 난 뒤로도 자세히 한번 더 살피긴 했지만 그 아이와 특별히 유대를 가질만한 기억은 없었다. 내가 조금 더 관심을 뒀으면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영준이는 기본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보통 학급을 맡으면 소수의 튀는 학생들이 있다. 자꾸 사고를 치고 말썽을 부리는 학생들, 뭐만 해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학생들, 어디가 자꾸 아파 꾸준히 관심을 줘야 하는 학생들, 그런 학생들이 있다. 나머지 학생들은 그렇게 특출 나지도, 그렇게 문제가 되지도, 그렇게 힘들게 하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영준이가 그런 학생들 중에 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영준이는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무색무취라고 할까. 영준이는 그런 학생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영준이가 당장 학급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전혀 어색한 게 없을 것도 같았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런 쪽으로 아주 특이한 학생이었다. 일부로 자기 존재를 숨기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랄까. 한편으로는 내가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닐까 돌아보기도 했다. 당장 영준이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 대해선 잘 알고 있는지 그들의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그 존재감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 돌아보기도 했다. 사실 모든 학생들에게 고른 관심을 가지고 한 명 한 명의 행동양식을 잘 파악하고 그들이 학교 생활을 잘 해나 갈 수 있게 만드는 게 선생의 책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육 시스템 상 선생 한 명 당 맡아야 하는 학생수는 스물다섯 명이 넘는 게 현실이고 저출산 문제로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숫자다. 학급의 모든 학생을 한 명의 담임이 정성으로 관리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다. 수업을 준비하고 기타 행정 업무를 보고 아이들 까지 ‘정성으로’ 관리하려면 밤낮없이 일만 해야 한다. 변명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나름대로 학생들에게 좋은 담임이고 괜찮은 선생이고자 노력하는 편이고 내가 너무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었는지를 돌아봤을 때 꼭 그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영준이는 그만큼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는 친구였고 그게 타고난 그만의 존재 양식인지 아니면 일부로 노력해서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다니는 것인지, 그게 학교에서만 그러는 건지, 아니면 모든 일상에서 그러는 건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존재감이 별로 없는 학생인 것도 결국엔 이 사건이 일어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만큼 그는 스스로를 잘 숨겨 왔다.


“누군데 안 받아”


내가 울리는 스마트 폰 화면을 보고 있자 마침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내가 물었다. 안 받으려고 한 건 아니고 잠깐 당황했을 뿐이었다. 더 이상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스마트 폰 화면의 초록색 수신 버튼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영준이니?”


나는 조심스러웠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병원에 찾아갔지만 면회를 거부당했고 전화나 문자 등의 연락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준의 부모님은 영준이가 아무와도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담임인 나와도 그렇고 심지어는 당신들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의사와 간호사의 진찰에 대해 의사 표현은 했지만 그들이 아니면 어느 누구와도 지금은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랬던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러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매달려도 연락이 없던 전 애인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처럼.


“선생님”


“그래, 영준아”


“엄마한테 들었어요. 몇 번이나 병원에 오셨다고”


“당연히 가야지. 몸은 괜찮니?”


“아파요. 아직”


“그래, 그렇구나. 많이 아프니?”


“선생님”


내가 통화하는 걸 지켜보던 아내는 이내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서있던 자세를 바꿔 소파에 앉았다.


“선생님, 저를 때린 건 건석이가 아니에요”


“뭐라고?” 쥐고 있던 스마트 폰에 힘이 들어갔다.


“저를 때린 게 건석이가 아니라고요.”


“무슨 말이야? 그럼 누가 널 때렸다는 거야?”


“저를 때린 건 어둠이었어요. 까맣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요.”


“어둠…?”


“네, 어둠이요” 영준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목소리가 약간 어눌했고 떨리는 느낌도 있었다. 원래 말투가 이런 건지 아니면 부상 때문에 발성이 흔들리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방금 대답을 할 때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고, 발음도 명확했다. 마치 어둠을, 어둠이라는 존재를 실제로 본 사람처럼 말했다.


“영준아 선생님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조금만 더 자세히 말해 줄래? 네가 말하는 어둠이 뭐야?

“의사 선생님 회진이 와서요. 일단은 끊어야 할 것 같아요”


라며 영준이는 전화를 끊었다. 인사도 없이 먼저 전화를 끊네, 라며 잠깐 기분이 나쁠 뻔했지만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당황스러웠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둠이라니, 무슨 말이지. 평소의 영준이에 대해 더 많이 알았다면 그 말의 진위, 그걸 말한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짐작해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무리 그가 그런 말을 왜 했는지 도저히 짐작이 어려웠다. 원래도 그렇게 느꼈지만 영준이에 대해 아는 게 정말로 없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해 좀 알아야 그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알고,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도 조금 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전혀 그게 되지 않았다. 혹시 원래도 농담 같은 걸 많이 하는 아이였는지,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하는 아이였는지, 그 조차도 알 수 없었다. 혹시 너무 맞아서 잠깐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너무 충격을 받아서 비관적인 생각이 그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아닐까, 잘못된 선택을 하려는 암시 같은 말은 아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오갔다.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영준이가 걔지? 맞은 애”


“어 맞아”


“그래서 뭐래? 연락 엄청 기다리지 않았어?”


“맞아”


“그래서 뭐라는데?”

“여보”


“응”


“여보는 어둠을 본 적이 있어?”


“어둠?”


“응 어둠”


“자기 얼굴이 지금 어둠 같은데?” 하며 내 볼을 꼬집었다.


아내의 말에 긴장이 풀렸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내 얼굴이 어둠이라니, 그럴 만도 했다. 일단은 씻고 싶었다. 더 이상 이 일만 생각하기엔, 너무 피곤했다.

“씻고 올 게. 클렌징크림으로 어둠 묻은 것도 잘 닦아야겠어” 하며 나는 웃었다.


“빨리 갔다 와” 하며 그녀가 내 볼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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