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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동 오락실 1

by 추세경

퇴근길 강변북로의 차들은 앞뒤가 막혀 느리게 움직인다. 완전 군장을 한 군인들이 야간에 행군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앞은 막혀 있고 뒤에선 쫓아오니 답답하고 부자유하다. 이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고 그 흐름 안에서 운전자는 엑셀과 브레이크를 기계적으로 밟을 뿐이다. 주황빛 석양에 반짝이는 한강물을 보며 FM 라디오에 나오는 성시경의 노래를 들으면 지루할 것만 같은 퇴근길 시간에도 그 나름의 낭만이 있다. 운전으로 출퇴근을 한지 벌써 3년이 지났다. 3년 전에 강동구 소재의 학교로 전근을 갔고 아내의 회사 위치를 고려해 집을 구했더니 나의 출퇴근 시간은 서울 안에서도 1시간 20분이 걸렸다. 중학교 국어교사로 생활한 지 올해 벌써 14년이 지났고 생일이 지나고부터는 만 나이를 따져도 마흔 살이 넘었다. 결혼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여름에는 아내와 결혼한 지 10주년이 되었다. 오늘 유독 하늘이 맑았던 탓인지 퇴근길 해 지는 모양도 유독 아름다웠고 그 덕에 어떤 감상에 젖었다. 지금의 내 삶을 한번 돌아보았다고 할까, 강변 북로 상에서 내 차의 위치를 가늠하듯 평생의 내 삶에서 (불의의 어떤 일로 단명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나는 어디쯤에 있는지, 마흔이라는 나이는 공자님 말씀에 따르면 불혹의 나이인데, 나는 그만큼 의혹됨 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아내에게는 좋은 남편인지, 연로한 부모님에게는 괜찮은 아들인, 내 삶은 잘 흘러가고 있는지, 여러 가지 감상들이 시간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논리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앞 뒤 없이, 위아래 없이 머릿속을 흘렀다. 오늘 유독 차가 막힌다 싶더니 마포대교 부근 1차로에서 사고가 있었다. 촌스런 빨간 립스틱 색깔의 SUV가 연식이 오래된 은빛 세단을 뒤에서 박았다.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지만 충돌은 컸는지 SUV의 우측 범퍼가 부서져 2차로에 뒹굴었고 세단의 후방 트렁크는 종이 접기라도 한 듯 구겨져 있었다. 보험사 차량 두대와 경찰차 한 대가 사고 차량 앞뒤로 서 있었고 운전자로 보이는 듯한 중년 남자는 보험사 직원을 앞에 두고 미간을 찌푸린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사고 현장을 보는 순간 두서없이 흐르던 감상은 사라졌고 감각의 초점이 다시 현실에 맞춰졌다. 시계를 보니 7시 5분이었고, 배가 고팠다. 사고 현장을 지나자 차들의 흐름이 조금 빨라졌다. 그렇다고 밟을 수 있는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까 보다는 한결 나았다. 집에 가려면 아직 40분은 더 가야 했다. 한 손으로 잡던 핸들을 두 손으로 다시 고쳐 잡았다. 언제든 사고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게 자동차 운전이었다.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아니 사실은 오늘 만의 일이 아니었다. 벌써 한 달 정도 된 일이라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한 달 전에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중학교 2학년 우리 반 남자애가 옆 반 남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 내가 알기로 둘은 친한 친구 사이였는데 사건이 있고 다른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그냥 친한 게 아니라 둘도 없이 친한 사이라고 했다. 흔한 말로 서로 베프 사이라는 것이었는데 여름 방학이 끝나기 직전이었던 일요일 저녁 가해자 학생의 아파트 계단에서 일방적인 폭행이 있었다. 가해자 학생은 한 대도 맞지 않았고 얼마나 친구를 때렸는지 오른손 주먹뼈에 찰과상을 입어 이주 동안 붕대를 하고 다녔다. 피해 학생은 개학하고도 학교에 나오지 못했고 병원에 입원했다. 사건 이후의 한 달은 뻔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피해자의 부모는 학교를 찾아와 가해자 학생과 담임인 나를 불러 질책했다. 교감실과 교장실을 찾아가 따졌고 경찰에 고소를 했다. 교장 선생님은 나를 불러 일단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조사해 보라고 했고 나는 가해 학생과 두 학생을 아는 대부분의 학생들을 불러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물었다. 가해 학생은 왜 폭행을 했는지에 대한 대답은 일절 하지 않고 자기는 잘못한 일이 없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주변 친구들은 본인들 역시 이 일로 놀랐다고 했다. 둘의 사이는 더없이 좋았고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학기 중에 학교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었고 방학 중 그 둘만 있던 공간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왜 그랬는지 더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개학 후 처리해야 될 행정 업무들과 주어진 수업을 병행하며 앞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여러 일들로 정신없이 한 달이 흘렀다. 근데 오늘 가해자의 부모가 피해자 학생을 경찰에 고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해자 주먹에 상처가 난 것이 피해자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가해자의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고소한 사실이 맞냐고 내가 전화로 묻자 그렇다고, 피해자 때문에 아들 손에 상처 난 걸 보지 못했냐고 되려 나에게 따졌다. 그의 목소리는 겨울의 가로등 기둥처럼 차가웠고 딱딱했다. 더 이상 따져볼 여지가 없다는 걸 느껴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의 감정은 가해자 측이 참 뻔뻔하다, 정도의 작은 분개였지만 흥분감이 가라앉은 지금은 그 감정이 분개보다는 어떤 무서움, 이해할 수 없음에 가까웠다. 가해자 아빠의 목소리에는 피해자에 대한 동정이나, 가해자인 아들에 대한 부끄러움 등이 일절 없었다. 차갑고 딱딱했던 그의 목소리에는 본인들은 전혀 가해자가 아니라는 믿음, 그게 사실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내가 무서움까지 느꼈던 건 살면서 가져왔던 가치체계, 무언가 잘못을 하면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낀다든지,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 연민이나 동정을 가진다든지, 하는 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건 아니라는 걸 몸소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40년 인생을 살면서 뻔뻔한 사람도 많이 봤고,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을 통해 인간이 인간답다는 건 사실은 ‘만들어진 가치’ 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런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완전히 해가 저물어 자동차 라이트를 켜야 했을 때쯤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집안은 깜깜했다. 한 달 전만 해도 해가 길어 비슷한 시간에 와도 깜깜하진 않았는데 이제는 완전한 어둠이 집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오니 방바닥이 차가웠다. 지난주만 해도 별 느낌 없었는데 이제는 잘 때만 이라도 보일러를 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 지나 이제 거리도 단풍으로 물들 것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 스마트 폰을 열어 아내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녀는 나에게 9시는 되어야 집에 올 수 있다고, 나에게 먼저 저녁을 먹으라고 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7시 40분이었다. 아내가 오려면 1시간 20분이 남았다. 밥도 먹고 샤워도 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었다. 여유가 있다는 판단이 서니 일단 소파에 앉고 싶었다.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은 1인용 소파 위에 던지고 나는 3인용 소파에 앉았다. 거실에 불은 키지 않았고 현관의 주황빛 센서 등이 꺼지자 집은 다시 어두워졌다. 내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음이 잘되는 집이었고 그런 고요함이 매력인 집이었다. 몸을 완전히 등받이에 기댔다. 등받이 끝에 목 뒤편을 누르듯 앉았고 좌로 우로 목을 움직였다. 오후에 통화했던 가해자 아버지와의 전화가 머리를 맴돌았다. 그의 차가웠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 녀석 때문에 내 아들 손이 다쳤다고요. 멍도 들었고, 아직도 제대로 손도 못 핍니다. 중요한 건 그거라고요. 내 아들 손이 다쳤다는 거. 부모로서 그 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님도 부모면, 내 마음 아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지만, 나는 부모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혹시 내가 부모였다고 해도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진 않았다. 가해하며 생긴 가해자 손의 상처 때문에 피해자를 고소한 가해자 부모, 그걸 여느 부모의 마음이라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두 녀석은 무엇 때문에 사이가 갈라진 것일까. 나와 친했던 누군가와 어느 순간 사이가 멀어졌던 일들을 떠올려 보고 싶었다. 내 경험을 돌아보면 그들의 일들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의 나이라는 게 그런 나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학교 2학년의 사춘기. 떨어지는 가을 잎 하나에도 울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사춘기를 겪는 방식은 사람마다 제각 기다. 그러니 사춘기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판단할 수는 없었다. 테트리스처럼 생각 조각이 하나하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조각을 구멍 난 바닥에 맞춰 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고 끊임없이 떨어지는 생각 조각에 어느새 잠에 들었다. 졸린지도 모른 채 들어버린 잠이었다. 머릿속의 스위치를 누군가 꺼버린 것처럼.


꿈을 꿨다. 나는 방안에 있었다. 물건이 하나도 없는 빈방이었다. 방은 어두웠지만 열린 문 사이로 문 밖의 불빛이 들어왔다. 바깥의 불빛은 벽면에 닿았고 문과 문틀 사이의 모양으로 빛났다. 그 빛으로 벽에는 문의 그림자가 생겼다. 방은 고요하고, 안락했다. 아마도 이 방은 어렸을 때, 유치원도 가기 전이었을 때, 부모님과 살던 집이다. 그때의 안락함이었다. 그때의 고요함이었다. 벽면에 비치는 불빛에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다. 자세한 모양은 알 수 없어도 분명 사람의 그림자였다. 그림자가 나타난 뒤 주변의 고요는 적막으로 변했다. 안락했던 마음에 두려움이 자랐다. 두려움이 자라는 만큼 그림자는 커졌다. 아니 그림자가 커져서 두려움이 자라는 건 지도 몰랐다. 사람의 그림자는 계속 커졌다. 문의 크기보다 커졌고 벽면을 모두 덮을 정도로 커졌다. 방도 어두웠지만 그림자의 어둠이 더 짙었다. 그림자의 어둠이 방의 어둠을 삼켰다. 짙은 어둠이 방 전체를 가득 채웠다.


잠에서 깼을 때 주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칼이 도마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내가 퇴근해 요리를 하고 있었다.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언제 왔어?”


“10분 전에~ 밥 안 먹었지?” 아내의 목소리는 퇴근한 사람 같지 않게 힘찼다.


“응, 잠깐 앉아 있는다는 게 졸았네”


“졸은 게 아니라 잔 거지”라고 하며 그녀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렇지 뭐”


잠이 덜 깬 나의 볼을 한번 쓰다듬고 내 볼에 뽀뽀했다.


“일요일에 장을 안 봐서, 재료가 별로 없어. 김치볶음밥 할 건데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설거지는 내가 할 게”하며 나는 아예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래, 일단 맛있게 해 줄게”


그녀는 오늘 흰색 셔츠에 연청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바지 안에 셔츠를 넣고 갈색 벨트를 했는데 벨트의 금색 버클에 주방의 형광등 불빛이 부딪혀 반짝였다. 아내가 나보다 출근 시간이 늦어 그녀의 출근 복장을 보는 건 퇴근 후에나 가능했다. 달라붙는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몸매였고, 새삼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섬유 회사에서 일했다. 제조업 회사라 남자 직원이 많은 곳이었지만 마케팅부서에서 일하다 보니 그래도 부서의 절반은 여자였다. 업무 강도가 매일 야근해야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해외의 패션 브랜드들과 일하다 보니 시차가 있었다. 그래서 종종 야근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일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 계획을 세우고 그걸 실현시키고 거기서 성과가 났을 때 행복을 느꼈다. 평소에는 조용한 성격이고 인간관계도 귀찮아해서(그다지 필요를 못 느껴서) 친구도 별로 없었다. 결혼식 날 하객 사진을 찍을 때도 회사 사람들 말고는 지인이 없어 내 친구 몇이 신부 쪽에 서기도 했다. 나와 있을 때의 아내와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의 아내는 전혀 달랐다. 나와 있을 때는 목소리에 힘이 있었고 말도 많았고 콧노래를 부를 때도 많았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전혀 달랐다. 귀를 대지 않으면 안 들릴 정도의 소리로 말했고 불필요한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대화 자체를 못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대화하는 일 자체를 피했다. 할 말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어색한 사람이랑 어떤 말을 하려면 정말 온 힘을 다 줘서 대화거리를 생각해 내야 해. 아마 심한 변비 걸린 사람들이 화장실에 있을 때와 비슷할 거야. 아니 사실 심한 변비를 걸린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네. 어쨌든 그 정도로 그게 힘들다는 얘기야’라고 한 적도 있다. 연애 초반에 아내와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녀는 말 수가 극히 적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자리를 불편해한다는 걸 나는 알았고 그 후로는 그녀와 함께 누군가를 만나는 일을 되도록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같이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아쉽다는 생각도 했지만 반대로 그런 모든 에너지를 끌어 모아 나에게 쓴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내는 아내였고 지금의 아내를 그 모습 그대로 사랑했다.


“다 됐어~ 수저 좀 놓아줘”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와 나는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돼지고기 김치볶음밥이 메뉴였고, 어제 끓였던 콩나물 국이 함께였다. 김치볶음밥에는 당근이 잘게 썰려 있었다.


“별일 없었어?” 아내가 물었다.


“잘 보냈지”

“표정이 그게 아닌데?”


“뭐가? 피곤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니야?


입양하러 간 강아지를 보는 눈빛으로 그녀는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런가?” 하고 그녀는 다시 밥을 먹었고,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맛있다. 김치볶음밥”


“응. 간이 잘됐네” 아내는 미소 지었다.


“사실 오늘, 건석이 아빠가 영준이를 고소했어”


“응? 건석이라는 애가 가해자 아니야?”


“맞아. 건석이가 가해자지”


“왜 고소를 하는데? 뭘로?”


“건석이 손이 다쳤대. 영준이 때문에”


“지가 때리다가 그렇게 된 거 아니야?” 아내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게 맞지. 근데 그게 부모의 마음이래. 내 아들이 다쳤고, 그게 영준이와 있었던 일이니, 영준이 잘못이라고. 부모로서 마음 아플 수 있는 일이라고 그러더라”


“정신병자 아니야?”


“몰라. 너무 당당해서, 태도가 너무 완고해서, 혹시 내가 잘못된 건가 싶었어. 그 정도로 여지가 없었어. 그 사람 목소리에”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 같아"


"맞아. 근데 일단은 둘이 왜 싸웠는지부터 좀 알고 싶어. 둘이 그렇게 친했다는데 왜 건석이가 영준이를 그렇게 때렸는지. 혹시 모르잖아. 영준이가 건석이한테 진짜 뭘 잘못했는지도"


"그래도 폭행은 잘못된 거야"


"아니 때린 게 잘했다는 건 아니야. 그래도 이유는 알아야 될 거 같아서. 건석이가 그렇게 못된 애는 아니었거든"


아내 눈의 초점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나를 보는 건지 내 뒤를 보는 건지 헷갈리는 시선 처리였다. 짧은 순간이었고 이내 다시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아이를 안 낳은 건 잘된 일인 거 같긴 해. 맞은 애가 우리 애라고 생각했으면 끔찍했을 거야. 맞은 이유가 뭐든지 간에"


"그래, 그건 맞아"


아내와 나는 아이가 없다. 결혼 직후부터 아이 없이 살자고 했던 건 아니었다. 무조건 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었지만 결혼하고 2년이 지났을 때부터는 아이를 낳는 게 좋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도 이년이 지나도 임신은 잘 되지 않았다. 난임주사도 맞고 인공수정도 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시험관 시술까지 도전해 봤지만 임신이 되지 않았다. 시술 과정에서 수차례 주사를 맞았고 아내는 몸에 자꾸 구멍을 내고 있다며 힘들어했다. 시험관까지 실패하고 나서 하루는 퇴근했는데 아내가 베란다에 서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에 내가 들어왔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 하고 있냐고 그녀를 불렀더니 그제야 돌아보았고 그때 그녀의 눈에 초점이 없다는 걸 알았다. 처음 본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어느새 다시 평소의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별일 아니라고 했고 그 주 주말에 우리는 아이 갖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딱히 피임할 필요는 없지만 더 이상 시술 같은 건 받지 말자고 아이가 없어도 둘이 행복하게 살자고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며 아내는 울었고, 나도 울었다. 가끔씩 아내가 초점 없는 눈을 보이는 건 그때부터였다. 자주 그러는 건 아니었지만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이 뇌리에 깊게 남아 나는 아내가 그런 눈빛을 가질 때마다 그걸 예민하게 알아차렸다.


저녁 먹은 걸 정리하고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할 때 고무장갑을 끼고 가장 뜨거운 물로 그릇을 닦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릇의 때를 수세미로 닦는 동안 생각은 끊임없이 흐른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모양은 따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 버리게 두는 것이다. 물이 흐르고 거품이 닦이고 그릇이 깨끗해진 듯이 의식은 흘러 제자리를 찾고 번뇌가 정리된다. 설거지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그렇게 설거지에 몰입해 있는데 소파 위에 두었던 스마트 폰이 울렸다. 밤 9시였고, 밤 9시에 나에게 전화할 곳은 몇 없었다. 마지막으로 프라이팬만 닦으면 돼서 설거지를 끝내고 전화를 받을까 싶기도 했지만 직감적으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시공간을 멈추게 하는 듯한 울림이 전화벨 소리에 있었다. 소리는 벽에 부딪쳐 집안에 퍼졌고 나는 잠시 멈춰 그 울림에 담긴 무게를 짐작했다. 한번, 두 번, 세 번 소리가 반복됐다. 고무장갑을 벗고 소파로 향했다. 발걸음을 빠르게 하려고 했지만 다급하지 않으려고도 했다. 재빠르게 전화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침착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소파에 가서 스마트 폰을 들었다. ‘2학년 4반 하영준’이라고 화면에 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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