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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동 오락실 15

by 추세경

이틀 전 영준이 아버지와 통화했을 때 아버님은 영준이가 많이 회복 됐다고 했다. 일주일 뒤면 등교할 수 있다고, 다행이라고 했다. 나에게 하나 물어봤던 것은 치르지 못한 중간고사 성적은 어떻게 되냐는 것이었다. 학교폭력예방 법률에 의거한 교장 선생님의 판단에 따라 영준이는 기말고사 성적으로 중간고사 성적 인정점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인정점 비율은 백 퍼센트였다. 그러니까 기말고사 성적 그대로를 중간고사 성적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기말고사에서 국어 점수가 50점이면 중간고사 국어 성적도 50점이 되는 것이고 100점을 맞으면 중간고사 성적도 100점이 되는 것이다. 아버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다행이라고 하셨다. 영준이 부모님은 영준이의 의사에 따라 건석이를 고소하지 않았다. 건석이 아버지에게 병원비와 어느 정도의 위로금을 받는 정도로 일이 마무리된 것이다. 건석이 아버지도 영준이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관리자 입장으로서 일이 더 커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찝찝하기도 했다. 아직도 사실 건석이가 영준이를 왜 때렸는지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한다. 물론 영준이가 나에게 이야기해 줬던 부분이 있지만 그건 영준이 입장에서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건석이 입에서 그걸 들은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게 설명이든 별명이든 건석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도 일단 중요한 건 영준이와 영준이 부모님의 입장이었다. 그에 따라 공식적으로 이번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학교 차원의 처벌도 끝났고, 사건 당사자들 간의 합의도 끝났다. 내가 더 나설 필요는 없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가을 소풍 날짜가 됐다. 장소는 어린이 대공원이었다. 10월의 나뭇잎은 가을 해가 싫은지 자꾸 햇살을 튕겨냈다. 나무만 봐도 눈이 부신 날씨였다. 높이 나는 비행기의 기종도 보일 듯 하늘은 파랗고 투명했다. 소풍 계획안을 기안할 때만 해도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날씨는 하루 종일 맑음이었다. 집합 장소는 어린이 대공원 정문 앞 공터였다. 집합 시간은 9시. 학생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만났는지 둘 씩 셋 씩 함께 걸어오는 학생들도 있었고 이어폰을 끼고 땅을 보며 혼자 걸어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생들의 표정은 내일이 방학이라도 된 냥 밝았다. 광대에서 빛이 나듯 웃었다. 교복 뒤에 숨겨진 각자 만의 개성을 사복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어쩌면 조금 더 과장된 개성일 수도 있었다. 소풍을 위해 사입은 새 옷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산속 펜션에서 듣는 새소리 같았다. 들뜬 울림이 파란 하늘을 날았다. 듣기 좋고 기분 좋은 소리였다. 소풍의 일정은 별다른 게 없었다. 백일 장도 아니고 사생대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모두 도착하면 출석 체크를 한 후 자유시간을 부여한다. 어린이 대공원은 놀이기구도 있었고 수풀이 우거져 산책하고 편하게 다닐 곳도 많았다.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먹고 다시 한번 출석을 체크한다. 하교할 때가 되면 다시 모여 인원을 확인한다. 그게 오늘 일정의 다였다.


집합 시간이 되어 출석을 확인했다. 우리 반 학생은 25명이었고 지각한 학생은 없었다. 9시에 집합 예정이었고 59분에 지하철 출입구에서 두 명이 전력으로 뛰어오긴 했지만 반 대열에 합류했을 때는 정확히 9시였다. 먼저 도착한 학생들은 뛰어 오는 두 명을 보며 지각이라고 놀렸지만 사실상 지각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그걸 모르고 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뛰어온 두 녀석은 숨 차했지만 이빨을 보이며 웃었고 한 녀석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처음에 지하철을 반대로 탔다고 집에서는 일찍 나왔다고 했다. 다른 녀석은 반대로 탄 녀석이 타자는 대로 탄 거뿐이라고, 자기는 하나도 잘못이 없다고 덧붙였지만 으레 하는 말일뿐 다른 친구를 정말로 탓하고 싶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제시간에 도착했음을 뿌듯해했고 그게 재밌다는 듯한 말투였다. 도착한 학생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살폈다. 영준-건석 사건 외에도 우리 반에는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학생들이 세명 정도 있었다. 한 명은 성준인데 모친이 암으로 1년 전부터 병원에 있었다.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걸로 봐서는 그래도 사교적이었다. 표정에 변화가 별로 없어서 가끔 웃거나 가끔 찡그릴 때의 표정이 인상에 남는 녀석이었다. 나와 대화할 때는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평소에는 조용했지만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다. 머리가 어지럽다든지, 배가 아프다든지, 발목을 삐친 것 같다든지 이유도 여러 가지였다. 양호실에 가는 일이 많았고 한두 달에 한 번은 아픈 걸 이유로 조퇴를 신청했다. 오늘 얼굴을 보니 얌전한 표정이었지만 무언가 상기된 듯 하늘을 자꾸 살폈다. 기분이 좋아 보여 다행이었다. 오늘은 아프다고 안 할 것 같았다. 관심을 가져야 할 두 번째 학생은 호연이었다.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일진 무리에 속해 있었다. 호연이는 말랐지만 키가 크고 살이 까맸다. 머리는 짧았지만 앞뒤로 뻗치는 직모라 인상이 더 날카로워 보였다. 1학기 때도 두 번이나 동급생과 다툰 적이 있는데 한 번은 상대를 일방적으로 때렸고 한 번은 싸움 순위 다툼을 한다고 많이 때리고 많이 맞기도 했었다. 1학년부터 자주 싸워 이미 담임이 됐을 때부터 그 이력을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싸움 순위로는 손에 꼽혔다. 부모님은 함께 식당 일을 하셨는데 장사는 잘되어도 퇴근이 늦어 방과 후 시간에도 호연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호연이는 대공원 앞에 모여 있을 때도 나란히 앉아 있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다른 반 일진 무리들과 어울려 대열에서 벗어나 있었고 일부로 그를 크게 호명해 다시 자리로 오게 했다. 알게 모르게 반 학생들을 괴롭힐 때도 있었지만 담임인 나에게는 싹싹했다. 성적은 나빴지만 머리 회전은 빠른 아이였다. 호연이 같은 아이에게는 내가 그를 주시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게 좋았다. 마지막은 진모였다. 그는 왕따였다. 반에 친구가 없었고 내가 아는 한 학교를 통틀어도 친구가 없었다. 나이에 비해 수염이 빨리 자라 입술 위가 까무잡잡했다. 그렇다고 수염이 굵은 건 아니고 아직 면도를 한 것도 아니라 성인의 수염과는 결이 달랐다. 묵에 물을 많이 섞은 붓질 같았다. 진모는 왕따였지만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외모도 준수했고 덩치도 나이에 비해 큰 편이었다. 오히려 그가 다른 친구들을 따돌린다고 할까, 그는 늘 조용했고, 과묵했다. 얼굴에는 늘 세상 모든 게 귀찮다는 표정이 묻어 있었다. 그렇다고 극도로 사람을 꺼린다 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팔씨름이 한창 유행할 때 그의 덩치를 보고 도전하는 친구들에게는 매번 팔씨름을 상대해주기도 했다. 팔씨름도 잘하는 편이라 도전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그때마다 진모는 귀찮다는 듯 대결에 응했지만 막상 시합에서는 열심을 다하는 것 같았다. 담임으로서 진모가 불안했던 이유는 그가 어떤 학생인지, 어떤 존재인지 잘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집안 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회사원에 어머니는 주부였고 집도 나름대로 잘 사는 것 같았다. 물론 집안일이야 바깥사람이 얼마나 알 수 있겠느냐 많은 그래도 문제가 있는 집이면 학생기록부의 이력으로든 아니면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의 입을 통해서든 조금은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데 진모네 집은 그런 꼬투리도 잡을만한 게 없었다. 그래서 진모가 어려웠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 잘 가늠이 안 됐다. 소풍 날도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열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는 듯하고 있었다. 복장은 또 나름대로 고가의 메이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영준이를 제외하면 24명이 전부 모였고 교무부장 선생님이 있는 카톡 방에 우리 반은 집합완료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미 8시 50분부터 다 모인 반도 있었고 우리 반이 순서로는 중간 정도 되었다. 9시가 넘어서도 4개 반 담임들은 차례로 집합 완료 메시지를 띄웠다. 근데 9시 10분이 돼서도 다 모이지 못한 반이 하나 있었다. 4반이었고, 아직 오지 않은 학생은 건석이었다. 지난번 무단 조퇴했던 이후로 건석이에겐 별다른 일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 수 있는 선에선 그랬다. 학교에 출석도 잘했고 조퇴도 하지 않았다. 4반에 수업을 들어가면 건석이는 턱을 괴고 창문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 앞을 보지 않기로 다짐한 사람처럼 내내 창문 바깥만 바라봤다. 쉬는 시간엔 자리를 비우거나 엎드려 있었다. 잠을 자는 건지 그냥 엎드려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건석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자꾸 어린 날의 동수가 떠올랐다. 때때로 내가 건석을 관찰하듯 그때의 나는 동수를 관찰했었다. 그런 내 행위가 비슷해서 인지 자꾸 건석에게 동수의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하지만 요목조목 따져보면 그건 억지스러운 동일시였다. 동수는 왕따였고 건석은 아니었다. 동수는 가난했고 건석은 잘살았다. 동수는 학교에서 말 한마디 못했지만 건석은 그러지 않았다. 자기가 입을 다물었을 뿐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힘이 있는 축에 속했다. 그 힘이라는 것을 누가 정하냐,라는 건 웃기는 이야기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선 자연스레 그런 서열이 정해지기 마련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왕따가 있듯 어느 곳에서나 힘의 서열은 존재했다. 그 안에서 건석의 위치를 따지면 건석이는 상위권이었다. 동수와는 비교가 어려웠다. 이렇게 나름의 논리를 세워 나 자신의 직감을 반박해도, 자꾸 동수와 건석이 겹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 직감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유 때문에 나는 건석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물론 그 시작은 영준이에 대한 폭행이었지만 사건이 마무리된 지금 시점에도, 아니 어쩌면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내내, 눈에 들어간 속눈썹처럼 자꾸 내 신경을 건드렸다. 건석은 9시 15분이 되어서 도착했다. 4반 담임은 지하철 출입구와 시계만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지만 건석은 그의 예상과 다르게 어린이 대공원 안에서 걸어왔다. 집합 완료된 다른 반은 이미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섞여 건석이가 집합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 반 학생들은 이미 10분 전에 공원에 들어간 상태였고 나는 다른 선생님들 무리에 섞여 아직 입구 앞에 기다리고 있는 4반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4반 담임은 건석이 보이자마자 채팅방에 ‘집합 완료’를 올렸다. 눈물 흘리는 이모티콘 열개도 함께 올렸다. 업무 채팅에 굳이 그런 걸 올릴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게 4반 담임의 스타일이었다. 아무튼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린이 대공원은 내가 어릴 때도 방문했지만 소풍 장소로는 제격이었다. 서울 시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았다. 놀이공원과 일반공원이 합쳐져 있어 재미와 여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동료선생님들과 커피를 사서 공원 이곳저곳을 걸었다. 놀이공원 쪽에 가니 개장 한지 얼마 안 돼 매표소 앞이 사람들로 붐볐다. 손목에는 이용권을 상징하는 종이로 된 색깔 띠가 둘러져 있었다. 파란색은 하루 종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자유 이용권이었고 연두색은 어떤 놀이기구 든 10회를 탈 수 있는 이용권이었다. 가을 행락철이라 그런지 우리 학교 학생들 말고도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다른 학교에서도 소풍을 온 것 같았다. 다른 학교 중학생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고등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고등학생들은 사복이 아닌 교복을 입고 있었다. 세상에 비명이 즐거운 곳이 있다면 그건 놀이공원이 유일할 것 같았다. 놀이기구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은 즐거움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고 그 소리는 놀이공원 배경음의 한 축을 담당했다. 놀이기구가 내는 쇠의 마찰음과 사람들이 지르는 톤 높은 비명은 스피커의 볼륨버튼을 조절하듯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개장한 지 얼마나 됐다고 놀이공원 스피커에선 5살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오랜만에 놀이공원에 오니 한번 타보고 싶기도 했지만 선생님들은 놀이 기구를 이용하지 말라는 게 교무 부장 선생님의 지침이었다. 애초에 놀이기구를 잘 타지도 못하지만 오늘은 왠지 괜히 더 타고 싶었다. 아내에게 ‘다음에 에버랜드 가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진짜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마음 같아 선 조만간 한번 가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놀이공원 가는 게 그렇게 설레고 재밌었는데 마흔이 넘은 지금은 이렇게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여건 때문에 못 가는 게 아니라 사람 많고 시끄러운 놀이공원에 굳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 인지 모르겠는데 그때 처음 학교에서 소풍으로 어린이 대공원에 왔던 적이 있었다. 너무 재밌고 설렜던 경험이라 얼마 뒤에 부모님께 놀이공원에 가자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은 별로 가기 싫어하셔서 여러 번 졸랐는데 결국 부모님이 내 말을 듣고 가자고 하셨다. 아빠 차를 타고 갔는데 결국 도착한 곳은 무슨 서울 근교의 호수공원이었다. 나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삐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나이가 드니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 호수공원 갈래, 놀이공원 갈래를 물으면 당연히 호수공원을 택할 것이다. 평화롭고 조용하고 공기 좋고 그런 곳에 가야 마음이 편했고 쉬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 많고 시끄럽고 번잡한 놀이공원을 쉰다는 목적으로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당시 내 기억에 호수공원에 갔던 그날도 날씨가 참 좋았고 호수의 잔잔한 물결에 햇살이 부서지게 빛나고 있었다. 부모님은 그게 좋아 그곳에 가셨던 것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굳이 놀이공원에 안 가셨던 건 서운해할 부분이긴 하지만 그때의 서운함도 이제는 시간 속에 풍화되고 없었다. 놀이 공원에 오니 새삼 나이가 들었다는 실감이 들었고 부모님이 보고 싶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과 같은 기분이면 곧 아내와 놀이공원에 가보고 싶었다.


놀이 공원을 구경하고 카페에 들렀다.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선생님들과 수다를 떨었다. 또래 선생님들의 주된 화재는 육아였다. 조금 일찍 결혼한 선생님은 아이가 초등학생인 선생님도 있었고 보통은 이제 유치원생 정도의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 3반 선생님은 지난 일요일에 혼자 아이를 산책시키느라 힘들었다고 집에 들어와 확인해 보니 3만보를 걸었다고 했다. 성인 걸음으로 3만 보니 아이는 얼마나 더 많이 걸었겠냐며 피곤해 죽겠다는 이야기였다. 가만 들어보면 말의 요지는 피곤해 힘들다는 게 아니라 자기 아이는 3만 보 보다도 더 걸을 만큼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것 같았지만 그게 마냥 아니꼽게 들리진 않았다. 밝게 말하는 3반 선생님의 표정이 보기 좋았고 어떻게 보면 부모가 자식 자랑을 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3반 담임에게 참 힘들었겠다며 당신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비쳤다. 소풍 덕분인지, 날씨 덕분인지, 다들 마음이 넉넉해 보였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됐고, 우리는 집합 시간보다 삼십 분 일찍 집합 장소로 향했다. 가보니 이미 근처에 도착해 놀고 있는 학생들도 보였다. 어떤 무리는 양팔로도 못 안을 굵기의 기둥의 느티나무에 기대어 말뚝 박기를 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괜히 웃겼던 것은 공격하는 사람들 보다 수비하는 사람들이 더 신나 보인다는 것이었다. 수비들은 허리를 숙이고 한 줄로 이어져 허리 위로 뛰어오르는 공격자들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그 두려움이 가져오는 흥분감 때문인지 공격자들보다 오히려 더 신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걱정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이었지만 이것만 버티면 다시 공격자가 될 수 있다는 설렘까지 섞여 있어 더 극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네 명의 공격자 중 세 명의 무게는 잘 버텼지만 마지막 학생이, 그것도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학생이 뛰어올라 그들의 허리에 떨어졌을 때 그들은 무너지고 말았다. 공격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7반 학생들이었고 7반 담임은 재밌다는 듯 바로 옆까지 가서 구경을 했고, 수비자들이 무너진 뒤에는 위험하다며, 이제 그만하라고 그들을 타일렀다. 무너진 수비자들은 한번 더 하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하면서도 복수할 기회를 잃었다며 허탈해하기도 했다. 공격자들은 한번 더 공격할 기회를 잃었지만 그래도 이긴 채로 끝냈다는 걸 기뻐했다. 내가 보기에도 뭔가 위험해 보였는데 7반 담임 선생님은 그걸 적당한 타이밍에 끊어냈다. 역시 노련한 분이었다. 나는 우리 반 애들은 어디 모이면 좋을지 장소를 둘러보았다. 그냥 보기엔 잔디가 넓게 깔린 공터라 어디에 앉아도 그게 그거 일거 같았지만 들여다보면 경사진 곳도 있었고 그늘이 전혀 없어 햇살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 곳도 있었다. 잔디 관리가 덜되 흙먼지가 많이 날릴 것 같은 곳도 있었고 지형 때문인지 물이 조금 고여 앉으면 젖고 진흙도 묻을 것 같은 위치도 있었다. 그런 걸 고려했을 때 아무래도 아까 학생들이 말뚝 박기하고 있던 느티나무 아래가 가장 상석인 것 같았다. 늘어진 느티나무 이파리가 그들을 만들었고 잔디 상태도 적당히 잘 말라 보였고 경사도 없는 완전한 평지였다. 느티나무 쪽으로 가 앉아 기둥에 기대앉았다. 우리 반 채팅방에 느티나무 쪽으로 모이라고 공지했다. 앉아 있으니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햇살 아래 있을 땐 조금 뜨거운 것도 같았지만 이곳에 앉으니 더없이 좋았다. 적당한 장소를 잘 선점해 뿌듯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 새소리가 바람에 섞여 귀를 맴돌았다. 바람이 새소리와 섞여 코를 간질였다. 핸드폰의 진동이 한번 울렸다. 아마 아내일 것이다. 일단은 핸드폰을 만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더 즐기고 싶었다. 십 오분 후면 아이들이 모두 이곳에 모일 것이었다. 일단 오 분만 이곳에 기대 눈부신 가을의 노래를 조금 더 듣고 싶었다.


아마 5분 정도 지났을 것이다. 졸지는 않았다. 아니 졸았다고 해야 하나, 잠과 현실 사이 어느 공간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었더니 선생님들 속한 메신저 채팅방에 메시지가 수십 개가 와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일인지 스마트 폰 화면을 내리며 확인했다. 그리고 수십 개의 메시지가 이어지게 된 첫 번째 메시지를 확인했다. 1반 담임의 메시지였다.

‘4반 김건석이 사람을 때렸다네요. 4반 샘, 전화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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