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힘을 다했다. 흔하게 들어본 ‘죽을힘을 다했다’가 어떤 것인지 나는 그날 배웠다. 세상에 어떤 단어들은 몸으로만 배울 수 있었다.
그날 동수와 간 오락실에서 내 어깨를 두드린 녀석은 세명이었다. 얼굴로 보아선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오락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툭 쳤고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녀석이 뒤에 있었다. 얼굴이 넓다라고 까맸는데 눈꼬리는 옆으로 째졌고 광대에 주근깨가 있는 녀석이었다. 목소리는 얇았고 목에 뭐가 걸린 듯 목소리 끝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 양옆으로 두 녀석이 더 있었는데 셋은 키가 다 고만고만했다. 왼쪽에 있던 녀석은 남색 단가라 티셔츠에 카키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고 오른쪽에 있던 녀석은 청으로 된 칠부바지에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셋이 동시에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기에 그들이 같은 무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어깨를 건드린 녀석이 널따란 얼굴을 내 귀 쪽에 대더니 ‘따라와 씹새끼야’라고 했다. 그들이 눈빛을 봤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들으니 확실해졌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언제 봤다고 욕부터 하는지 참 정신 나간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무서웠다. 나보다 네다섯 살은 많은 형들이었고, 숫자도 셋이었다. 내가 그들은 오락실 문 앞에 서서 나를 기다렸다. 내가 일어나지 않자 손짓으로 다시 나를 불렀다. 아침에 동수가 나오라고 할 때부터 뭔가 불안하긴 했다. 물론 이런 일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수가 어딨는지 살폈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마 오락기 반대편 쪽 그러니까 나와 반대쪽에 있는 곳에서 오락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괜히 동수가 보고 싶었다. 그라도 내 상황을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한편으로 든 생각은 재수 없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괜히 내가 친구가 있다는 걸 안다면 녀석들은 동수까지 끌고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동수를 찾았다. 문 앞쪽에 다다랐을 때 반대쪽 뒤편에서 게임하는 동수가 보였지만 그는 오락에 집중하고 있었고 문을 등진 방향으로 앉아 있었다. 오락기에서 문 앞까지 가는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돈을 뜯기는 걸까, 하지만 뜯길 돈은 별로 없었다. 그러면 나를 때리는 걸까, 녀석들 기운으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도 충분했다. 집에서 그냥 포켓몬스터나 하고 앞에 놀이터나 가서 놀걸 괜히 나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괜히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에 가정을 붙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나랑 같이 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동수가 나를 나오라고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 오락실이 아니라 원래 자주 가던 오락실에 갔어야 하는데, 킹오브가 아니라 다른 오락을 했어야 하나, 왜 하필 나일까,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다. 둘러봐도 오락실에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다들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용기도 사실은 없었다. 오늘 했던 모든 행동이 후회스러웠다. 그들에게 나는 ‘씹새끼’였고 사람은 폭력 앞에서 별 이유도 없이 죄인이 되기도 했다. 그들에게 나는 처형해야 할 죄인이었고 나의 죄명은 수 없이 많았다. 잘 모르는 동네 오락실에 왔다는 것, 엄마 밥을 안 먹고 밖에서 라면을 먹은 것, 오전에 나와 아직까지도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것, 마음먹고 나열하자면 한참이었다. 그들은 문 앞에 서서 낚싯대에 진동이 오는 낚시꾼처럼 설레고 흥분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나에게 말을 건 녀석만이 째진 눈매로 나를 주시했다. 아무래도 그 녀석이 대장이었다.
그들 앞에 서자 단가라 티셔츠를 입은 녀석이 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누가 보면 친한 동생을 데리고 다니는 듯한 동작이었다.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면서도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팔꿈치 안쪽이 내 볼에 닿았다. 그의 살결은 차가웠고 땀에 절어 끈적하기도 했다. 그 상태로 오락실 밖으로 나왔다. 오락실은 4차선 도로 옆에 있어 구석진 위치는 아니었다. 오락실 옆으로는 중고등학교 교복을 맞추는 가게가 브랜드별로 세 개가 연달아 있었다. 가게들은 유리 통창이라 안이 보였지만 모두 불이 꺼져있고 주인도 보이지 않았다. 인도에도 이상하리만큼 사람이 없었다. 나이키 신발을 신은 녀석이 ‘어디로 가지’라고 했자, 눈이 째진 녀석은 ‘놀이터 뒤쪽?’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이키 녀석은 ‘아냐 거긴 주말에 형들 많이 와서 좀 그래’라고 했다. 나를 어디로 데려 갈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차도 저쪽에 차들이 한 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간 불에 정차해 있었는데 신호가 바뀐 것이다. 오십 미터 사십 미터 차들의 우리 쪽으로 다가올 때, 나는 단가라 티셔츠의 팔을 뿌리치고 도로 건너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빵빵. 나의 무단 횡단에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야, 죽고 싶어?’라는 말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아마 운전자인 것 같았다. 그리고 ‘저 씹새끼 잡아’라는 소리도 들렸다. 그 녀석들의 목소리였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내가 건너간 뒤로는 도로로 차들이 움직였기 때문에 그들은 곧바로 도로를 건너지 못했다.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도로를 건너 나를 쫓아오고 있었지만 다행히 거리는 꽤 벌어진 상태였다. 백 미터 정도만 더 뛰면 굴다리가 나왔고, 그것만 지나면 우리 동네였다. 거기만 가면 일단은 숨기 편한 곳도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집에 갈 수도 있었다. 일단 뛰어야 했다. 굴다리 앞에서 뒤를 돌아봤을 때 그들은 서로 갈라지고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뭇 영화에 나오듯 서로 흩어져 내 동선을 차단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내 뒤 쪽으로는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다. 지름길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승부는 끝났다. 굴다리를 지날 수 있는 길은 이 길이 유일했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이곳은 나의 동네였다. 그래도 두려운 마음은 여전했고, 호흡도 힘들고 다리도 아팠지만 계속 뛰었다. 걸음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어디 숨어 있을까 고민해도 했지만 집까지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에 가면 나를 지켜줄 동네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놀이터에만 가도 같이 어울리는 형누나들이 있을 것이었다. 일단 우리 집 아파트로 가는 게 가장 안전했다.
집 현관에 들어와 나는 위 열쇠, 아래 열쇠, 쇠걸이까지 모두 잠갔다. 보통은 다닐 때는 편의상 아래 열쇠만 잠그는 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쇠걸이까지 확실히 잠갔다. 나는 신발도 안 벗고 현관에 드러누웠다. 호흡이 힘들어 머리가 어지러웠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 개새끼들’ 하는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뭔가 짜릿한 흥분감에 기분이 좋았다. 나보다 몇 살이나 많은 놈들을 따돌리고 집에 온 것이었다. 그래, 나는 달리기가 빨랐다. 반에서도 삼등 안에 드는 실력이었다. 몸은 죽을 것 같았지만 기분은 너무 좋았다. 어떻게 시간이 맞았는지 내가 드러눕자마자 집에 있는 뻐꾸기가 여섯 시를 알리며 여섯 번을 울었다. 나의 승리를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혹시 우리 집을 알고 찾아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그렇다 해도 괜찮았다. 집 문은 굳게 잠가 놓은 상태였고 형들 이래 봤자 그들도 애들이었다. 곧 있으면 엄마 아빠가 올 터였고, 그게 아니라면 경찰에 신고하면 그만이었다. 일단 누워서 이 순간을 즐겼다. 잠시 눈을 감았다. 이마에서 귀 뒤로 땀이 흘렀다. 냄비의 끓는 물이 식듯 가빴던 호흡이 가라앉았다. 몸이 편해지자 누운 채로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소파 앞으로 기어가 쿠션을 하나 집었다. 그걸 머리에 대고 다시 누웠다. 해가 져가는 선선한 바람이 베란다 창문에서 들어왔다. 팔다리를 벌리고 겨드랑이와 가랑이 사이에 공기가 통하게 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졸린 듯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동수는 이제 내가 사라진 걸 알았겠지. 이 기막힌 일들을 빨리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아빠한테는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오락실에 간 것도 말하기 그랬고 동수랑 라면만 먹고 다닌 것도 말하기가 복잡했다. 괜히 걱정만 끼치고 꾸지람만 들을 것 같았다.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몸에 기운이 돌았다. 그리고 배가 고팠다.
저녁 일곱 시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올라오고 있는 데 많이 막힌 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 어디 있었냐고 물었다. 그냥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았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엄마는 나에게 9시 정도면 도착할 거 같으니 저녁도 잘 챙겨 먹으라고 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가스불에 국을 덥히고 대접에 계란찜에 밥과 참기름 간장을 넣고 비볐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었고, 다 먹고는 오렌지 주스도 한잔 마셨다. 샤워를 하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켰다. 개그맨들이 나오는 예능프로가 하고 있었다. 별로 재미는 없었고, 집중도 안 됐다. 엄마아빠는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아빠 손에는 전기구이 통닭이 들려 있었다. 저녁을 못 먹었다고 아들도 같이 먹자는 것이었다. 엄마는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한번 안고 볼에 뽀뽀를 해줬다. 아들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별말 없이 가만히 있었지만 사실 엄마가 엄청 보고 싶었다. 아까 약속했던 9시에 오지 않자 괜히 불안하고 보고 싶기도 했다. 아빠가 사 온 통닭 냄새가 코 끝을 건드렸다.
한 시간 정도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통닭을 먹고 양치를 안 했지만 오늘은 그냥 자고 싶었다. 입에 남은 기름 맛이 좋기도 했고 이런 침대에 누우니 몸이 녹아 더 이상 움직이기도 싫었다. 이런 엄청난 날에 양치질이 대수냐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기운이 몰려와 손끝 발끝엔 힘이 없었는데 막상 잠은 오지 않았다. 이제 생각해 보니 동수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었지만 동수는 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면도 얻어먹었는데 인사도 못하고 와버린 것이다. 동수는 나에게 삐쳤을 수도 있었다. 동수네 집 전화번호를 알면 전화라도 하면 되는데 나에게는 그의 전화번호가 없었다. 월요일 학교에서 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걸 알면서도 마음이 뭔가 급했다. 또 그 녀석들을 마주치면 어떡하지 싶었다. 한 가지 다행이라는 건 그 오락점을 기점으로 우리 동네와 그쪽 동네는 생활반경이 달랐다. 느낌으로 그 녀석들은 그쪽 동네 녀석들인 것 같았고, 그렇다면 다행이었는데 혹시나 우리 동네 애들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조금 더 크게 보면 다 같이 한 동네라고 볼 수도 있었다. 앞으로 밖에 나갈 때는 조심해야 할 것 같았고, 당분간 그 오락실이나 그쪽 동네에는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일은 일요일이라는 생각을 하니 행복했다. 내 행복 중에 하나는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는 것이었다. 일요일만큼은 내가 엄마 아빠보다 일찍 일어났다. 그러니 빨리 잠에 들고 싶었다. 그 녀석들도, 동수도, 오늘 있었던 일도 모두 잊고 일단 자고 싶었다. 문 밖에선 뻐꾸기가 울었다. 밤 11시를 알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눈꺼풀도 무거웠고 몸에도 힘이 없었지만 정신은 뭔가 깨 있었다. 그러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에 들었다. 잠이 오지 않아 괴롭다는 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잠에 든 시간은 모르겠다. 하나 분명한 건 뻐꾸기가 울기 전에 잠들었다는 것이다.
그날 밤 악몽을 꿨다. 장소는 어느 골목이었다. 나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두 빌라 사이에 있었다. 빌라 사이 폭은 좁았다. 양팔을 벌리면 두 빌라에 모두 손이 닿을 정도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회색구름이 피부에 남은 여드름 흉 자국처럼 하늘에 번져 있었다. 아직 비가 오진 안았지만 공기에선 비냄새가 났다. 빌라 사이에는 찌그러진 캔과 버려진 화분, 물티슈 껍데기 등이 널려 있었다. 골목 끝 쪽으로는 쓰레기봉투 더미가 누군가 일부로 골목을 막아 놓은 듯 쌓여 있었다. 일단 골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는 방향으로는 쓰레기봉투가 쌓여 있었기에 나는 뒤쪽으로 나가기로 했다. 뒤쪽도 마찬가지로 지저분했지만 골목 입구에 쓰레기봉투가 쌓여있진 않았다. 나는 뛰었다. 발 밑에 쓰레기들을 피해 가며 뛰었다. 실수로 얕은 물 웅덩이를 밟았다. 언제 고인 건지 색은 믹스커피 색깔이었다. 흰색 운동화가 젖었고 여름용 신발이라 흡수도 잘 돼 발가락 사이사이로 물이 스며들었다. 왼쪽 발이 뭔가 무거워졌다. 거의 다 왔는데 입구 쪽에 사람 실루엣이 보였다. 안보일 거리가 아닌데 얼굴이 잘 안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동수가 서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락실에서 도망친 후로 처음 만난 동수였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는지, 하지만 해냈는지, 그 영웅담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야’하고 내가 불렀다. 동수는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듯 무표정하게 거기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왼쪽 눈을 맞고 나는 쓰러졌다. 바닥의 찌그러진 캔 위에 머리를 찌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수가 많이 화가 났나 보다고, 내가 어제 말도 없이 사라져서 많이 삐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때릴 건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갑자기 화가 났다. 정신을 차리고 동수에게 가니 동수는 그 자리에 서서 다시 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동수가 날리는 주먹이 슬로 모션으로 눈앞에 오는 게 보였다. 일단 나도 주먹을 날렸다. 맞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근데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동수의 주먹은 뼈가 보일 정도로 가깝게 오고 있는데 아무리 힘을 주어도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그때 동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동수는 울고 있었다. 얇고 마른 듯한 눈꺼풀 속에는 투명하고 반짝이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팔은 여전히 올라가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그랬다. 동수의 주먹은 점점 더 나에게 가까워졌다. 죽을힘을 다해도 팔은 올라가지 않았다. ‘죽을힘을 다해도’ 그랬다. 동수는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