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석이는 그날 어린이 대공원에서 다른 학교 학생을 폭행했다. 같은 학년의 남학생이었다. 목격자들 말로는 그 학생과 건석이가 시비가 붙었고 건석이가 일방적으로 때렸다는 것이다. 말들을 종합해 보면 사실상 일방적이었던 건 아니고 서로 싸우기 시작한 건데 그 학생은 거의 맞기만 했다는 것이다. 시비가 붙은 이유는 맞은 학생과 그 무리들이 물 풍선을 던지며 뛰어다니다 물풍선 하나가 건석이 머리에 맞고 터졌다는 것이다. 맞은 학생은 그걸 보며 사과는커녕 재밌다며 웃었고 그래서 싸움이 시작됐다. 정황만 보면 단순 건석을 가해자로만 볼 수는 없었는데 문제는 폭행의 정도가 심했다는 것이다. 건석이는 상대방을 넘어트리고 그 상체 위에 올라 주먹으로 얼굴을 수차례 가격했다. 맞던 학생의 무리도 당장에 그걸 말리지 못한 것은 건석의 기운이 살기 등등 했기 때문이다. 건석은 흰자위만 보이듯 눈을 뜨고 있었다. KO를 얻어내려는 격투기 선수처럼 상대방을 때렸다. 목격자들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지나가던 10반 담임이 사태를 파악하고 건석을 제지했다. 맞은 학생은 이빨 세 개와 코뼈가 부러져 있었고 왼쪽 눈이 부어 눈을 뜰 수 없었다. 소문은 순식 간에 퍼졌고 점심 식사 장소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었지만 다들 건석이 얘기로 분위기가 뒹숭숭 했다. 4반 담임과 교무 부장 그리고 교감 선생님이 현장을 수습하러 갔고 남은 선생님들이 각자의 자리에 남았다. 교무부장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각 담임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타 학교 학생에게 시비 거는 일이 없도록 교육했다. 소풍은 오후 일정도 진행됐고 맑고 예쁜 날씨는 계속됐지만 오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맥주 같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우리 학교와 피해자의 학교가 합동으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열었다. 건석이는 심의 결과 6호 처분인 출석정지 처분을 받았다. 피해자를 지속적 장기간 괴롭힌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도 폭행 이력(영준이 사건)이 있었고, 피해자의 부상 정도가 심했다. 그리고 위원회에 출석해서도 건석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건석의 아버지는 위의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걸었고 물 풍선을 맞았다는 사실에 대해 피해자를 상대로 특수상해로 고소했다. 영준이와의 전례를 보아 예상 가능한 일들이었다. 건석이 아버지에게는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절차 랄까. 어쩌면 건석이 아버지의 빈틈없음. 뭐랄까, 절대적인 이기적임이랄까, 타인에 대한 동정은 찾아볼 수 없고, 무조건 이겨야만 하고, 올라서야만 하고, 앞서야만 하고, 공격만이 최선의 방어라고 여기고, 그런 것들이 사실은 건석이를 저렇게 만든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건석의 아버지는 건석을 보호하기 위해 영준이를, 그리고 이번 피해 학생을 고소했지만 애초에 건석을 이런 식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건석 아버지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건석이 아버지가 싸우고 있는 건 자기 자신이고, 그건 건석이도 마찬가지다. 건석이 싸우고 있는 건 영준도 아니고, 피해 학생도 아니고,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일 수 있다. 삶의 모순은 놀이터 모래바닥에 떨어진 백 원짜리 동전처럼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그곳에 있고 때로는 그것이 삶의 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건석의 공격성이 온전히 아버지 때문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런 판단을 하기에 내가 건석과 그의 아버지에 대해 아는 건 극히 일부다. 단지 느낌일 뿐이며, 혹시 그런 느낌이 맞다고 해도 한 인간의 행동 양식에 대해 온전히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 인과관계를 해석하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건석의 폭력성과 그의 폭행에 대해 옹호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건석이 '내가 보기에' 이상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폭행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그런 행동을 한 건석이는 또 얼마나 불쌍한 아이인 거냐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폭행은, 타인에게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피해를 입히는 행위는, 그 자체로 용납될 수 없다.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폭행은 언제나 존재했고, 어떤 형태로든 늘 우리 곁에 있어 왔다. 폭행을 단순히 개체와 개체 간의 생존 투쟁이라고 설명하기에 인간은 너무도 똑똑해졌다. 그리고 그런 만큼 더 교묘하거나,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폭행은 발전했다. 사춘기 한때의 기억이라고 웃어넘길 수준의 폭행도 있겠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까지 파괴하는 폭력도 여전히 세상에는 많다. 법과 제도를 무시하하기도 하며 법과 제도를 회피하기도 하며 법과 제로를 압도하는 힘을 가진 폭력도 있다. 때로는 피해의 대상이 특정되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피해의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쪽으로 폭력은 뻗쳐간다. 아무 죄 없고,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결국 상처를 이겨내는 건 당사자 스스로의 몫이다. 물론 그것도 생명이 있을 때의 이야기고 그것 조차 사라진 상황에 대해 세상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다시 돌아와 폭력이라는 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그 자체가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라고 결국은 개체와 개체 간의 생존 투쟁이라고,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졌다 해도 우리의 본성과, 욕구, 욕망은 여전히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애초에 똑똑해진 인간이란 없는 게 아닐까. 인간의 이성이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영준이는 병원에서 복귀한 뒤로 예전의 모습과 같이 학교에 다녔다. 말수가 없었고, 존재감도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영준이가 그래도 축구를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우리 반 왼쪽 사이드 백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축구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 움직임은 아니었다. 패스나 드리블하는 걸 보면 감각적으로 공을 다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집념이 있었고 체력도 좋았다. 몸에 탄력도 있어 보였다. 보통 이상의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영준이는 공중의 원반을 쫓는 개처럼 공과 상대 공격수를 쫓아다녔다. 잘한다는 공격수들도 영준이 수비에는 힘들어했다. 우리 학년 에이스라는 7반의 공격수도 영준이를 쉽게 따돌리지 못했다. 영준이는 축구할 때만큼은 절대 지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있자면 왜 건석에게 맞기만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출석정지 처분이 끝나고 건석이가 복귀했지만, 예상대로 건석과 영준은 더 이상 어울려 다니지 않았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고,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었다. 건석이가 복귀하고 두 달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날, 건석이는 전학을 갔다. 집이 이사를 갔다는 소문도 있었고,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정확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건석이는 말이 없었고 5반 담임은 전학 소식을 기뻐만 할 뿐 정확한 이유는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학교에 복귀해서 전학을 가기 전까지 건석이는 두 번의 조퇴를 했고 한 번의 결석을 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수업을 들어갔을 때만의 숫자다. 건석이가 학교를 빠진 숫자는 그 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신기했다. 건석이는 우리 반 학생도 아니었고, 영준이를 폭행한 후에도 나와 대화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 해당 교과 선생으로 몇 마디 해본 게 전부였다. 사실상 대화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살면서 이 정도로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이만큼의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을까. 아마 짝사랑했던 몇몇 여자들을 제외하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는 나 또한 내가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꽤나 큰 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신기했다. 물론 그것이 남녀 간의 호기심 같은 귀여운 일이라면 기쁘겠지만 그게 아닌 이렇게 알 수 없는 이유라고 한다면 기분이 묘할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졌다는 걸 건석이는 알까. 모르겠지. 아무튼 건석은 떠났다. 그리고 잊을 때면 나타나는 과일트럭장사의 확성기 소리처럼 가끔씩 건석이 아빠의 웃음소리가 머리에 울렸다.
크리스마스 날 나와 아내는 4호선 혜화역 대학로에서 데이트를 했다.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을 보고 프랑스 음식을 파는 식당을 가기로 했다. 영화는 자주 봤고 뮤지컬도 가끔은 봤지만 함께 연극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연극은 가정집에 도둑이 드는 배경으로 시작하는데 중요한 건 배우들이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가끔은 관객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그러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로 웃음을 자아냈고 나중에는 결국 감동까지 주는 결말이었다. 결말에 감동을 받은 건 아니지만 중간중간 많이 웃었다. 애초에 억지스러운 유머에도 잘 웃는 편이었고 그런 걸 관람할 때는 웃음의 역치가 낮아야 스스로도 더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나만큼 재밌어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웃길 때마다 어깨를 치고 같이 웃자는 식의 신호를 자꾸 보내니 오히려 그걸 또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전개가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고 배우가 하는 거짓말이 뻔한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연극이었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진심을 다해 연기하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예술에서 중요한 작품 자체의 예술성보다 그걸 실현해 나가는 누군가의 진심이고 열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교과서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그만한 힘이 있어야 했다. 이번 연극의 배우들은 그만한 에너지가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연극이 끝나고는 마로니에 공원 뒷골목을 걸었다.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고 차가 지나갈 수 없는 폭의 길은 아기자기 하니 예뻤다. 성탄절 분위기에 맞춰 캐럴이 흘러나왔고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가 들리기도 했다. 겨울 저녁이었지만 장갑을 끼지 않아도 견딜만한 기온이었다. 골목의 사거리 가운데에는 누가 설치했는지 건물 3층 높이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었고 햇빛을 모아 뿌려놓은 듯 갖은 색의 전구가 반짝였다. 그 앞에는 구세군 모금함과 빨간 옷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날씨가 춥지 않아서 그런지 그들은 밝은 표정으로 성금 모금을 홍보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눈을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색 패딩에 굵은 실로 짠 갈색 비니를 쓴 남자가 아내와 나에게 연극 표를 할인해주겠다며 다가왔다. 연극을 보러 왔냐고, 싸게 드린다고 했다. 이미 연극을 봤다고 했더니, 언제 우리에게 말이라도 걸었냐는 둥 등을 돌리고 가더니, 트리 뒤 쪽 화장품 가게 앞에서 다른 커플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저 남자도 어느 극단의 배우 일수 있었다. 그 옆으로 사람들이 원으로 둘러 있었다. 거리에서 누군가 버스킹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식당 예약 시간까지 20분이 남아 있었다. '잠깐 볼래?'라고 했더니 아내는 '서 있으면 추울 것 같은데, 잠깐만 이야'라고 했다. 가서 보니 가수는 감색 폴라티에 카키색의 반코트 그리고 블랙 데님 청바지를 입고 손에는 광택을 잃은 검정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중키에 사각 턱으로 얼굴이 큰 편이었는데 눈은 웃는 상으로 눈가의 주름이 세월을 담고 있었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 앞으로 네모난 Boss 스피커 두 개에 마이크가 연결된 상태였다. 남자는 마이크를 입가에 대었다.
"다음 곡은, 제가 좋아하는 가수 중에 '하림'이라고 있는데요. 여러 분도 잘 아시죠? 벌써 20년이 넘은 노래 같은데, 2004년에 발매된 노래 중 '위로'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곡 한번 불러보겠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장갑을 끼고 치는 박수라 가죽과 가죽, 털장갑과 털장갑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해 질 녘 노을처럼 소리는 이내 사그라졌다. 기대가 되는지 아내는 끼고 있던 팔짱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외롭다 말을 해봐요
다 보여요 그대 외로운 거
힘들다 말해도 돼요
괜찮아요 바보 같지 않나요
그대 맘 같지 않나요
어떤 사람도 어떤 친구조차
애써 웃으려 말아요
다 알아요 다 그런 거죠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슬퍼도 웃지 못한 채 살죠
눈물 흘려요
이제껏 참을 만큼 참았어요
손 올려 닦지 말아요
그저 흘러갈 때로 멀리 떠나가도록
그대는 강하잖아요
음 하지만 약하기도 하죠
아무도 몰라줬겠죠
그래서 더 많이 힘들었겠죠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슬퍼도 울지 못한 채 살죠
눈물 흘려요
그대는 힘들 만큼 힘들었죠
지금 울고 있나요
무얼 그렇게 참고 있나요
흘려버려요
그대의 가슴 가득 고인 눈물
손 올려 닦지 말아요
그저 흘러갈 때로 멀리 떠나가도록
성탄의 저녁은 깊어 갔다. 버스킹 가수의 목소리는 그가 살아낸 시간의 깊이를 담고 있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 걸 느꼈다. 연말은 차갑지만 따뜻하고 쓸쓸함 속에 희망을 품는다. 너무 춥지는 않은 겨울의 공기가 코끝에 걸렸다. 아내는 추운 게 싫다고 했지만 팔짱 낀 아내의 체온은 따뜻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