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기획 인생학교 <안전 이별> 독후감
쉽게 선정한,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도, 판단은 다른 이의 몫으로 넘길 뿐. 꽤 뻔뻔하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이라고 불린다고 해도 어쩔 수 있나, 많은 정보가 넘쳐 흘러내려 조금이라도 퍼트려야 숨이 트이는 사람인 것을. 큰 이별을 두 번 겪은 2023년 곧바로 시작했던 독서모임 첫 시즌 뒤풀이에서 재채기처럼 이별 이야기를 꺼내버렸다. 하나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드러내고 혼자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멋지지는 않았다, 아니 별로였다. 혼자서 종종 후회하곤 했지만 모든 인생사가 그렇듯, 시간이 지나며 그 부끄러움마저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 모임 다음 시즌이 결정된 이후 이런 이별을 공식적으로 꺼내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적절한 책을 찾아 헤맸고, 찾았다, 하필이면 가장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 기획인 것으로.
쉽게 읽어낸,
책을 먼저 읽은 멤버들 반응이 뜨거웠다. 이렇게까지? 책 펼치기를 미루다 드디어 시작했고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은 분명히 다른 국면이었다. 마법이 걸려있는 듯이 빨려 들어가고, 고개를 끄덕이고, 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사람들에게 찍어 보내고. 이 책과 관련된 나의 시간은 활자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그 이상의 확장 체험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줄을 그을수록, 조금 선명해졌다. 이별을 꺼낸 사람의 생각과, 고민과, 마음과, 결정과, 지금의 심리에 대해. 행간 사이에 머뭇거릴수록 최대한 앞을 내다보려고 노력했다. 만남보다 더 이별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안전이별을 읽은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은 꽤 안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쉽게 추천한,
책을 읽은 나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가만히 못 참는다. 책을 읽고 이 독후감을 쓰기 전까지의 모든 시간 내내 만난 사람들에게 안전이별을 말했다. 대체 무슨 책이길래, 이렇게까지? 궁금증을 참지 못한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고, 빌리고, 사고, 또 시작된 연쇄작용. 새벽에 책을 읽던 친구가 감명을 받아서 카톡이 오기도 했다. 만나면 공감했던 구절을 공유했다.
아무래도 국내 판매량이 늘었다면, 발원지는 여기다 여기. 이별이 너무나도 강렬한 연애가 너무나도 간절한 사랑이 너무나도 강력한 우리에게 시작된 이야기. 지금도 내 책은 다른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있다. 조금만 흔들리는 커플을 보면 책을 건네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짧은 생을 살면서 긴 이별을 겪어본다면, 이해할 수 있다 이 마음을.
쉽지 않은 건,
다시 또 돌아가서 지난 여름, 굳이 그 마지막을 듣고 내가 꺼낸 말. '이런 나를 만나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내뱉는 순간 둘 다 울었고, 서로에게 닿지 않을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카페에서 써버린 냅킨의 양은 옷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순간까지 나에 대한 연민을 요구한 걸까? 하지만 진심이었다. 객관적으로 애인으로서 쉽지 않았을 사람이니까 나는. 그 외에도 주고받는 의미 없는 마지막의 시간. 눈빛도, 단어도, 문장도, 기억도 꺼낼수록 부서지기만 했다. 깨진 조각들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이별이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시간을 지낼 것이다, 우리는. 같이 정착하고, 적응하고, 익숙해지고, 또 새로워지면서 각자가 되었으니까.
너는 이 책을 영영 모를 것이고, 나는 이 책을 또 읽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