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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내일 Apr 17. 2019

유명해지고 싶어요

당신의 욕구는 무엇인가요?

사전적 의미로 욕구란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일로 명시된다.


학창 시절 내 첫 번째 욕구는 키가 크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때 엄마와 함께 신발 사러 가는 날이면 주인아주머니에게 “아이고, 아드님은 발이 크니까 키 엄청나게 크겠네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정말 듣기 싫었다. 13살 당시 내 키는 140cm가 조금 넘는 정도였다. 중학교 때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우리 반 남녀 통틀어서 두 번째로 작았고 책상 첫째 줄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말 많이 바라지도 않았다. 첫째 줄만 벗어나고 싶었다. 키와 성격의 상관관계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작은 키는 성격도 소심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3개월 동안 매일 하다시피 새벽까지 농구하고, 우유 2L씩을 마시며 키 크려고 노력했다. 다행히도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욕구가 이뤄지고 나니 여자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또 다른 욕구가 생겼다. 사소한 욕구의 연속이었다. 아쉽게도 키가 자란 만큼 살도 같이 쪘고, 졸업할 때는 몸무게가 95kg이었다. 외모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지만, 소심한 성격이 변하지 않은 데는 외모의 영향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여자 친구를 사귀겠다는 생각은 마음으로만 간직하게 되었다.    


욕구는 자신이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것을 표현할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욕구’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영어로 욕구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Need를 부정적으로 잘 생각하지 않는 것과는 반대이다. 키 크고 싶고, 여자 친구 사귀고 싶은 것은 전혀 부정적인 것이 아님에도 욕구란 말을 꺼내 본 적 없던 이유는 “뭐야, 얘 이상해. 여자 친구 사귀는 게 욕구래.”란 말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욕구란 말을 언제 써?"라고 말하기에는 고등학교 도덕시험 단골 문제였던 매슬로우 욕구 5단계에 대한 뜻과 사례를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했던 욕구는 1~3단계인 생리적 혹은 애정과 소속의 욕구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욕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부정적이지 않다면 왜 꺼내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답은 우리가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욕구는 언제나 비밀로 되어져 왔다


영화 <파이트 머니> 주인공인 잭은 내면이 불안정한 사람이다. 주변에서 성격이 소심하고 의지가 나약한 사람으로 비치는 것은 그에게 큰 상관이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내면에는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욕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내면을 감추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충동적이며, 야성적이며, 본능에 충실한 더든을 만나게 된다. 잭은 자신의 내면과 너무나 닮은 듯한 그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더든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욕구를 표출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이 바뀌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감독은 잭을 보통사람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나와 내 주변에 있는 평범한 보통사람이다. 보통사람은 잭과 같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감추며 살아가는 것 같다. 스스로 갑갑함을 느끼지만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없다고 스스로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도 잭과 보통사람에게 감추며 지내라고 말하는 이 없지만, 사회가 만들어놓은 규범에 의해 더 깊숙이 숨겨놓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대부분 표현하는 것보다 감추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아왔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표출하려 하면 “너는 남자라서, 여자라서, 아이라서, 노인이라서, 학벌이 좋지 않아서, 직업이 좋지 않아서, 돈이 없어서, 그냥 안 돼.”라는 말로 막아버렸다. 최근에서야 많은 것이 변하고 있지만 “안 돼” 개념 자체가 욕구를 막고 있었다. 그로 인해 표현하지 않은 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중동과 서아프리카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고, 여성의 인권에서 더욱 또렷하게 보이기도 했다.    


하루는 두바이 버스 정류장에서 30명 정도가 두 줄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앞쪽 입구로 탈 수 있는 줄에는 여성 10명 내외가 있었고, 중간 입구로 탈 수 있는 줄에는 남성 20명 정도가 있었다. 처음에는 여성을 배려하는 정책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던 중동 여성의 여러 문제와는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나중에 현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정부가 여성을 위해서 만든 정책이다. 하지만 일부 남성이 여성과 한 무리에 섞이는 것을 싫어해서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그의 이야기가 진실임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몇 명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위의 이야기는 내가 본 한 사례에 불과했다. 무슬림 국가에서 남성은 이슬람 율법상 제한이 있는 부분이 있기는 했으나, 자신의 욕구를 어렵지 않게 표출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여성은 제한이 많았다. 1부 4 처제, 여성 할례, 히잡 등 차별받는 경우가 많았고, 그들의 욕구를 감추면서 살았다. 표현하기에는 사회가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눈치로서의 허락이 아닌 종교의 교리였다. 그들에게는 교리가 법이었다. 최근에서야 젊은 층에서부터 시작된 여성 인권 운동이 조금씩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부모가 무슬림이라도 다른 종교를 선택할 수 있고, 히잡을 쓰지 않고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사우디에서는 여성이 운전을 시작했고, 이란에서는 여성에게 축구장 관람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녀들이 올린 SNS에서는 응원과 더불어 입에 담지 못한 욕들도 많았는데, 전쟁터와 다르지 않았다.


서아프리카는 이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서아프리카는 대부분 이슬람 교리를 믿고 있으며, 아프리카 부족 문화에서 여성의 위치는 종족 번식이 우선으로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지 친구들에게 들어보면 서아프리카가 아니더라도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위치는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여행 중에 만난 독일 친구는 5년째 아프리카 지역 여성 인권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아프리카 여성은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 싶다는 욕구를 표출할 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말처럼 아프리카 및 중동에서 여성이 좀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사회적인 규범들과 다르거나 특별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의 균형과 안정에는 좋지 않은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특별한 소수는 평범한 다수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항상 숨기고 살아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소수도 욕구를 밖으로 꺼내는 시대가 되었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성 性 정체성이 대표적이다.     


영국에 있는 맨체스터는 소도시지만 축구팀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나도 같은 이유로 방문했으나 예상치 못한 특별한 경험을 맞이했다. 축구를 관람하러 가는 길에 형형색색의 깃발과 함께 수많은 인파가 중앙 교차로에 모여 있었다. 몇 분 뒤, 기다리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울려 퍼지는 악기 및 음악 소리에 맞춰 도로에는 수천 명의 사람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런데 평범한 행렬이 아니었다. 남자는 화장을 진하게 하고, 여성용 옷을 입고 있거나 남성용 속옷만 입고 있었다. 여성도 얇은 옷차림을 입고 있었으나, 뭔가 다른 느낌을 풍기게 하였다. LGBT(성소수자) 페스티벌이었다. 소수가 가지고 있는 성 정체성 및 욕구가 평범한 다수의 눈에 보였다. 그들은 축제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흥겹게 풀어내고 있었다.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던 상황이 현실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최대한 편견 없이 그들을 바라보려 노력했고, 그들로부터 ‘소수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맨체스터에 머무는 3일 동안 축제를 즐기면서 그들의 욕구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페스티벌이 벌어지던 날의 거리

 

남의 욕구를 이야기했으니 내 욕구를 이야기할 차례인 것 같다. 이전의 내 욕구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으나, 요즘 내 욕구는 유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가장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가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라 불리는 앤디 워홀이 말한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대중들은 손뼉을 쳐 줄 것이다.” 인지도 모르겠다. 유명해짐으로 인해 돈을 많이 벌면 좋겠지만, 돈의 욕구와는 조금은 다르다. 좋아하는 글쓰기로 유명해졌으면 좋겠고, 이 책으로 유명해지면 더 좋을 것 같다. 아프리카 후원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글이 있는데, 내가 유명해진다면 (그 책이 세상에 나온다면) 책을 구매하는 부수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자연스레 인세와 후원금도 많아질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받았던 도움을 보답하는 내가 선택한 방법이다. 또한, 내 글과 이야기로 인해 좋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 많아지는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글과 말로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그러면 그들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게 되고 선한 영향력이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욕구를 표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감추려고 마음먹으면 평생을 감추고 살아갈 수도 있다. 감추려고 했던 것을 꺼내려고 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할 것이다. 내가 주의해야 할 것은 범법 여부이다. 법을 어기는 것이 내 욕구라면 가슴 깊숙이 묻어둘 것이다. 이제는 키 크고 싶고,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은 소소한 욕구가 아니다. 깊은 내면에 가지고 있는 나의 욕구를 찾아내고 꺼내는 과정이다.

매슬로우 이론 중 4, 5단계인 존중과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는 이유이다.    



당신의 욕구는 무엇인가요?





책 <답은 '나'였다>와는 달리 사진 몇 장을 첨가하였습니다.

(기존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위클리 매거진 목차가 총 12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맥락을 이해해야 하다 보니 사진 몇 장을 넣는 것이 좀 더 공감하기 쉽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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