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맛에 맞는 오프닝
"더우시죠? 여러분은 어떻게 더위를 이겨내고 계신가요?"
"그게 아니라 멘트에 감정을 담아서 해야지"
"그럼 엄마가 해볼래?"
오프닝 원고 리딩을 엄마에게 빼앗겼다. 나와 챗GPT가 쓴 오프닝 원고 멘트를 엄마는 몇 번 읽어보니 즉흥으로 수정했다. 아무리 챗GPT라도 사람 입맛에 맞는 멘트를 만들어줄 순 없나 보다. 엄마가 욕심을 내면 칭찬하고 응원해줘야 하는데, 그 욕심이 꺾이면 의욕을 잃으면 어쩌나 걱정부터 든다.
엄마의 책임감
2주 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중 하나가 <아무튼라디오>였다. 워낙 얇은 책이어서 엄마는 부담없이 그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내가 "엄마 베스트셀러 <혼모노> 책 샀어. 이것도 읽어봐"라고 말했다. 엄마는 "읽던 책은 마저 봐야지. 그리고 이 책도 재밌어. 이걸로 해도 괜찮을 거 같아"라고 대답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책, 드라마를 보다가도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끝까지 보려 하는 성향이 있다. 끈기가 부족한 나를 보면 답답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책 내용이 없는 이유
엄마가 먼저 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라디오 관한 추억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라며 의견을 먼저 냈다. 물론 책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내 동생이 한 말이 떠올랐다.
"오빠! 책이 중요한 게 아냐. 엄마와 아들이 함께 한다는 게 의미가 있는 거야"
이번 방송은 책보다는 라디오 추억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했다. 나도 라디오를 정말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할 얘기가 많았지만 주위 피드백을 참고해 내 말수를 줄이고 엄마 말을 유도하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시도
라디오의 꽃은 오프닝 원고다. 엄마와의 방송에서도 오프닝 멘트를 해보려고 했다. 무더운 여름에 맞는 알맞은 원고를 챗GPT의 도움을 받았지만 엄마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아무리 챗GPT라도 맛있는 멘트를 만들어주진 못하나 보다.
연극 나들이 편을 제외하곤 기존 방송 분량은 20분 정도였다. 이번편은 분량이 짧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튜브 방송에 달린 댓글을 준비해 읽었다. 아무래도 엄마와 아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100% 선플이었다. 댓글을 달아준 사람 중에 끝까지 들어준 사람이 다면 자신이 단 댓글 내용을 다시 한번 들을 수 있다.
이전 방송에서 엄마가 "태양은 언제나 우리편"이라고 말 한적이 있다. 댓글에 그 말을 언급하면서 선플 남겼다. 그 댓글을 보고 엄마가 감명받았다. 소녀감성인 엄마의 마음을 건드리는 댓글이 정말 고마웠다. 엄마가 한 말을 엄마가 지어낸건지, 책에서 본 문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담
방송을 본 주위에서 "엄마의 방송실력이 점점 늘고 있다" "아들보다 엄마가 말을 더 잘하는 것 같다"는 등의 반응이 있다. 이 이야기를 엄마한테 해주자 엄마는 "어머? 진짜~ 웬일이야"라고 부끄러워했다.
도서관을 가기 전에 엄마한테 "책 어떤 거 빌려올까?" 물어보니 엄마는 "요즘 시를 읽고 싶네. 시집 하나 빌려와 바"라는 말을 했다. 며칠 전 본 기사 <나태주도 한강도 아니다… 19세 대학생이 쓴 시, 베스트셀러 1위 올랐다>를 본 게 기억이 났다. 베스트셀러인데 도서관에 없을 줄 알았는데 차정은 시집 <토마토컵라면>에 덩그러니 있었다. 참고로 베스트셀러 <혼모노> <가공범> 등은 예약도 못할 정도 인기가 많다.
집에 가져오자마자 엄마한테 "20살이 쓴 시가 베스트셀러에 올랐어"라고 말하자 엄마는 "이 시집 먼저 읽어야겠다"라며 평소 읽고 있던 <혼모노>를 잠시 접어뒀다. 나는 평소 시를 전혀 읽지 않아서 어떤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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