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100분은 짧다

무더위도 이긴 연극 나들이

by 구독함

“아들 이 옷 어때? 연극 볼 때 입으려고 산 건데”


연극 보러 가기 전 날, 엄마는 새롭게 구입한 원피스를 입어봤다. 소풍 가기 하루 전날 설레는 학생처럼 엄마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올랐다. 가슴이 떨린다고도 했다. 더군다나 엄마가 재밌게 읽은 책 <불편한편의점> 내용인 연극이기 때문에 더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설렘


서울의 무더위도 엄마의 설레는 감정을 막지 못했다. 서울 온도 29도는 반팔티에 반바지를 입어도 땀이 나는 날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불평불만이나 예민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짜증지수보다 엄마의 설렘지수가 높았다.


엄마는 출발하기 전부터 "가슴이 떨린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엄마는 연극을 기대하면서 한 주를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그만큼 엄마에게 연극 관람은 큰 이벤트였다. 이것마저도 엄마랑 나랑 성향이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한주 한 달 힘들 때마다 기다리는 이벤트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가는 것 마저도.


동생의 역할


<모자란 독후감>에서 2회에서 책 <불편한 편의점>을 다뤘기에 둘이 연극 공연을 보려 가려했다. 방송 콘텐츠를 위해, 엄마의 새로운 경험을 위해 인당 38000원 총 72000원의 거금을 썼다. 다음날 엄마가 "딸도 간대"라는 카톡을 남겼다. 책도 보지 않은 동생이. 저렴하지도 않은 연극 공연을 본다는 것이 의아했다.


"오빠가 요즘 돈이 없는데 엄마 꺼까지 돈 내주면 안 돼?" "내가 3명꺼 다 낼게"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도 나랑 동생의 성향은 참 다르다. 나는 좋게 말하면 알뜰하고 나쁘게 말하면 짠돌이, 동생은 좋게 말하면 통이 크고 화끈하고 나쁘게 말하고 싶진 않다. 연극 보러 가는 길에도 엄마는 집에서 커피를 텀블러에 담았고 나는 얼음물을 챙겼다. 하지만 동생은 메가커피에 들러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 먹었다. 그 와중에 나는 250원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지만 동생은 거들떠도 안 봤다.


집을 나서자마자 동생은 가방에서 유튜버들이 쓰는 핸드폰 짐벌을 꺼내더니 나와 엄마의 뒷모습을 찍어줬다. 한편으론 고마웠지만 지나가는 사람에게 민폐주는 건 아닐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행인 얼굴 걸리지 않게 최대한 찍어주는 동생을 보니 너무 고마웠다.


연극 공연 40분 전에 미리 도착해 발권을 받고 10분 간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인근에 ABC마트가 있어서 더위도 피할 겸 들어갔다. 엄마는 여름 샌들을 하나 사고 싶다며 이것저것 구경하자 신발 업계 종사자인 동생이 엄마 옆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샌들 추천도 해주고 우유부단한 엄마한테 "디자인 보다 엄마가 편한 걸 신어야지. 한번 걸어봐" 라며 엄마의 고민을 줄여줬다. 하지만 엄마가 맘에 든 샌들 사이즈가 없어 아쉬움을 뒤로한 채 ABC마트를 나와 극장으로 향했다.


연예인병?


공연 30분 전부터 입장했다. 들어가는 길에 <연극 불편한편의점> 홍보용 사진이나 문구가 눈에 띄었다. 동생은 뒤에서 핸드폰으로 열심히 찍어줬다. 우리 말고도 뒤에 사람들도 입고서부터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잡기도 했다. 만 원대 대학로 연극만 보다가 3만 원 후반대 극장을 와보니 입구부터 잘해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좌석은 적당한 중간 위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족 관람객이 많았고 초등학생들도 꽤 많이 있었다. 연인보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동생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 안 읽어. 이런 연극이 있는지도 모를걸."이라며 단정 지었다. 내 동생도 30대 초반이니 '책 3장만 읽고 온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관람객이 거의 가득 찬 걸 보더니 엄마는 "사람들이 우리 유튜브보고 사람들이 이 연극 보러 온 거 아냐?"라며 나랑 동생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동생은 "엄마 연예인병 걸린 거 같아"라며 농담을 했고, 나는 "엄마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우리를 알아봤겠지"라면서 엄마가 한 상상의 나래를 접어줬다. 그냥 맞장구 쳐줄걸 그랬다.



<불편한편의점> 1권과 2권을 100분으로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1권에 재밌는 설정이나 인물의 개성을 보여줬다. 지루할 때쯤 배우들은 노래를 선보이며 감동을 두배로 만들어줬다. 엄마의 표정을 슬쩍 볼 때마다 엄마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게 빛났고 연극에 깊이 빠진 모습이었다. 내용을 다 알고 보는 거라 지루해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배우 연기의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100분 공연을 마치고 커튼콜 시간에 엄마는 누구보다 힘차게 박수를 쳤다. 동생이 배우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으려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옆에 있는 엄마의 손이 걸릴 정도로 크고 열렬히 박수를 쳤다. 배우들이 엄마의 손뼉 치는 모습을 보고 뿌듯해했으면 좋겠다.


자나 깨나 남편 생각


공연을 보고 나서 바로 녹음을 했으면 좋으련만 혜화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나는 곧장 다른 일정이 있어 이동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와 녹음을 하기로 했다. 사실 엄마는 연극 보러 갈 때도 수첩을 가져갔다. 내가 엄마보고 수첩은 가방에 넣고 아무것도 적지 말라고 했다. 연극을 온전히 즐기길 바랐다. 공부하듯이 연극을 보면 100% 즐기지 못했을 거라고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녹음할 때 미리 질문지를 달라고 했다. 정말 편하게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미리 답변을 준비해서 논리 정연하게 말하고 싶은 거 같다. 지난 방송 때 내가 너무 말이 많아서 엄마 위주로 말을 유도했다. 그래도 내심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에 엄마보고 "엄마도 자연스럽게 나한테 궁금한 거 묻거나 나한테도 말을 걸어줘"라고 했지만 녹음 시간 내내 엄마는 답변하기에 바빴다.


녹음 중 연극을 보러 가고 싶은 사람을 물어봐도 엄마는 "아 저.. 남편"이라고 답했고, 한옥 카페를 같이 가고 싶은 사람도 "남편"이라고 대답했다. 친구나 이모를 예상했지만 엄마의 마음속은 오로지 '아빠'였다. 추후에 물어보니 아빠랑 다니는 게 가장 마음 편하다고 했다. 미우나 고우나 남편은 남편인가 보다.


영상은 힘들어


동생은 동영상 촬영을 8분으로 편집해 줬다. 엄마와 녹음한 오디오를 영상에 입히기만 하면 되는 건데 난관이 있었다. PC방에서 캡컷을 다운로드해 영상편집을 다 마쳤는데 영상으로 추출이 안 됐다. 무료체험만 하려고 해도 카드를 등록해야 한다고 해서 갖고 있는 체크카드, 신용카드 다 해봐도 등록이 안 됐다. 아마 비자카드가 아니라서 안된 거 같다. 급한 대로 다른 영상편집프로그램으로 편집을 하고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워터마크가 정말 크게 나왔다.


유튜브를 본 동생이 자기가 해볼 테니 음성 파일을 자기한테 보내달라고 했다. 민망해서 금방 내리고 동생한테 부탁했다. 넉넉잡고 40분 정도면 되는 편집이라 동생이 금방 해줄 줄 알았지만 직장인은 바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동생은 야근하느라 할 시간이 없었고 바로 어제 오후 11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동생한테 오늘 바로 편집이 불가능하면 내가 해보겠다고 했다.


동생을 졸린 눈을 비비면서 핸드폰 앱 '캡컷'으로 편집을 시작했다. 자동자막에 오탈자까지 하나하나 수정했다. 나도, 동생도 대학교 때 영상편집을 해봤기에 영상편집이 얼마나 힘이 들고 귀찮은 일인지 안다. 동생이 도와주는 건 이번 한 번만이라고 했다. 나중에 또 영상콘텐츠를 만든다면 그때는 내가 꼭 해야겠다.


연극 <불편한편의점>을 보고 온 엄마는 다음 목표는 싸이가 하는 <흠뻑쇼>라고 했다. 2030 관람객이 콘서트장에서 물을 흠뻑 맞으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본 것 같다. 50대 엄마가 젊은 애들이 노는 곳에 가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멋있지만 아들 입장에서 같이 가야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https://podbbang.page.link/dqnQeFUidpjbJwGn7

https://youtu.be/HsW1tLvC1gY?si=433Z2ut3C-4BqwLD

100분은 짧다(연극 불편한편의점)

https://m.blog.naver.com/9dokham/22394987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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