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베스트셀러가 쓴 <토마토컵라면>
"시 너무 많이 읽는 거 같아"
평상시 엄마는 자작시를 들려주곤 한다. 방송에서 자작시를 읽어달라고 하자 부끄러워한다. 글쟁이들은 내향형 관종이 많다던데 우리 엄마가 그런 성향이 있어 보인다. 글을 쓰고 공유하고 싶어 하지만 막상 여러 사람 앞에서는 부끄러워하는 우리 엄마.
시집 괜찮을까?
이번 방송을 하기 전부터 엄마는 "요즘 괜찮은 시집 없니? 시를 좀 읽고 싶어"라면서 도서관 가는 나에게 부탁을 했다. 최근에 내가 소설만 빌려오기도 했고 무더운 날씨에 엄마는 좀 감성적이고 싶나 보다. 그러던 중 조선일보 <나태주도 한강도 아니다… 19세 대학생이 쓴 시, 베스트셀러 1위 올랐다>라는 기사를 발견했다. 대학생 시인이 베스트셀러 1위에 선정되다니... 이 시집 빌려가면 엄마도 분명 좋아하리라 확신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베스트셀러 책 빌리는 하늘에 별따기다. 항상 대출 중인 데다가 예약을 하고 싶어도 예약자가 이미 5명이 되어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최다 예약 인원이 5명으로 더 이상은 예약도 안 되는 시스템) 혹시나 하고 도서관에서 <토마토컵라면>을 검색해 보니 '비치중 대여가능'이라는 글이 떴다. 믿을 수 없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봤는데도 똑같았다. 재빠르게 가져와서 시집을 빌려왔다.
도서관에서 책을 여러 권 빌려서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시집을 빌려왔다고 했다. 엄마는 이전에 구입해 놓은 <혼모노>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내가 "엄마 19세 대학생이 쓴 베스트셀러 시집인데 이거 어때?" 하고 물으니 엄마는 <혼모노>를 잠시 접어두고 "이 시집 먼저 봐야겠다"라면서 큰 관심을 보였다. 제목도 신선하고 얇은 시집이기에 엄마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MC 불효
녹음을 앞두고 엄마는 시 영감을 마구마구 떠올렸다. 때라는 제목에 꽂혀 시 한 편을 짓더니 나에게 시낭송을 해줬다. 엄마가 쓴 시 내용을 들어보니 무슨 일이든지 급하게 일을 진행하면 안 되고 해야 할 때, 기다릴 때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는 '낄끼빠빠'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라는 뜻으로 요즘은 또 잘 안 쓰는 것 같다)
<때>라는 시뿐만 아니라 길, 초코파이, 긍정 등 뚝딱 시 5편을 지었다. 엄마는 과거 문학소녀였던 걸로 알고 있다.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기록하고 그 글자를 조합해 한 편의 시로 만드는 작업하는 데 있어 쾌감을 느끼는 우리 엄마. 이번 방송은 엄마만 믿고 간다.
처음으로 책 선정을 시집을 선택하기도 했고, 시에 대해 잘 모르니 방송 전 엄마에게 디테일하게 질문을 알려줬다. 엄마는 맘에 든 시 한 편을 나한테 말해주더니 "이거 무슨 뜻인 거 같아?" 라며 묻기도 했다. 아무리 곱씹어도 내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자 "너 국어시간에 졸았지?" 라며 정곡을 찔렀다. 나에게 시는 너무 어렵다. 그냥 느끼는 감정이 중요한 건데 시 한 구절 한 구절 분석하기 어렵다면 나에게 와닿는 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한 번은 엄마가 "시 두 편이 있는데 뭐가 더 괜찮은 거 같아?"라고 묻길래 "엄마가 좋은 시로 해야지. 나한테 묻지 말고"라며 좀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엄마는 "난 다 괜찮은데 네가 좀 봐달라는 거지..." 라면서 서운해했다. 방송 끝나고 후회가 밀려 올라왔다. 엄마한테 좀 더 친절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나한테 자꾸 의지하려는 모습에서 나도 살짝 감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엄마가 좀 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새어 나올 때 꼭 감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리라.
슬로우~ 슬로우~
이번 방송을 녹음하면서 정말 힘들었던 적이 있다. 여러 시 정 내가 선택한 시 <토마토컵라면>을 시낭송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엄마가 진정하라는 의미로 손짓으로 천천히~ 천천히~ 하면서 진정시켰는데 그 모습이 너무 웃겼다. 정말 가까스로 웃음을 참긴 참은 거 같은데 자세히 듣다 보면 내 웃음이 아주 희미하게 새어 나온 거 같다.
방송 시작하기 전, 엄마에게 가장 와닿는 시는 어떤 것이며, 무슨 시가 좋은 시인지 물어봤다. 엄마는 "자연환경이나 사물을 보고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부분을 캐치하는 시. 세심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시"라고 대답했다. 남들이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세심하게 관찰해서 색다른 시선으로 표현한 시라고 정리하고 방송에 들어갔는데 엄마는 내 질문에 대답을 잘하지 못했다. 방송이 끝나고 내가 왜 그 대답 안 했냐고 물어보니
"질문이 너무 많아서 헷갈렸어"
동생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의 의지를 꺾이지 않게 하는 것도, 엄마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엄마의 멘트를 좋게 만드는 것도 오빠다". 기획하는 PD이자 엄마의 말을 이끌어내는 MC이다. 너무 많은 질문으로 엄마를 혼란하게 만든 것도 오로지 내 잘못이었다고 느꼈다. 정말 간단하게 "어떤 시가 좋은 시라고 느껴지나요?" 혹은 "어떤 시를 써보고 싶나요?" 등 직관적으로 질문했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어렵게 표현한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또 시집을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시에 대해 좀 더 많이 준비해서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조회수는 어떻게?
엄마가 방송을 시작한 이후 조회수를 크게 신경 쓰진 않지만 오픈발을 받은 이후로 점점 하향세다. 연극 불편한 편의점을 보고 영상 편집한 것만 100회를 넘었을 뿐 100회를 채 넘기지 못했다. 챗GPT에 의뢰를 한 결과 썸네일에 신경 써야 한다고 한다. 썸네일 뿐 아니라 청취자 참여형 이벤트를 해보라고 하는데 아무도 참여를 하지 않을까봐 이벤트하기도 두렵다.
어마와 아들이 함께 있는 <모자란독후감> 로고를 매번 썸네일로 썼었는데 이번에는 토마토컵라면 책 표지로 했다. 사실 많은 사람이 방송을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베스트셀러 시집을 선택한 것도 크다. 책이라도 사람들이 많이 좋아할 만한 걸 선택하고 싶은데 베스트셀러는 도서관에서 구하기가 어렵다.
<토마토컵라면>이라는 제목처럼 엄마가 토마토를 써는 장면도 영상에 넣었고 시낭송을 할 때에는 시를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엄마와 책 이야기를 나누는 콘셉트는 괜찮지만 어떤 식으로 개선해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