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존심 '플스방'

게임만 하던 애가...

by 구독함

"나 그리고 내 친구들은 소박해. 밤새 놀기 위해 단지 두 가지가 필요해. 위닝일레븐 근처에 세븐 일레븐만 있으면 돼. 그 순간 우리는 livin' in heaven"


축구게임 위닝일레븐을 재밌게 한 사람이라면 이 가사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나의 학창 시절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까지 썼던 건 바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방(이하 플스방)에서 한 위닝일레븐이다.


정말 자주 간 Z플스방에 가면 사장님이 "미스타 구~"라면서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자주 같이 간 친구들이 있었는데도 나만 애칭으로 불러주신 건 나의 성이 특이해서인지, 나의 인상이 좋아서인지, 나의 리액션이 가장 컸던 것인지, 이유를 아직까지 모른다.


단골에서 알바생으로


카페 창업을 했던 자영업자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항상 알바생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면접 때 열심히 할 것처럼 말해놓고선 정작 일할 때는 불성실하게 일한다거나, 3개월마다 그만둔다고 해 매번 또 사람을 구해야 하는 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라고 했다.


군대 가기 전 사람을 구한다는 사장님의 말에 고민도 하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의욕을 드러냈다. 사장님은 10년 가까이 본 단골손님이 한다고 하기에 금방 채용시켜 줬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다니면서 얌전하게 게임만 한 미스터 구를 알바생으로 뽑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임을 할 줄만 알았지. 플레이스테이션에 대해 아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지금은 게임 CD가 없어도 게임이 되지만 15년 전에는 CD를 넣어야 게임 플레이가 됐다. 게임을 켜는 것, 게임을 바꾸는 것, 1:1이 아닌 2:2로 게임을 같이 할 수 있게 화면 세팅을 바꾸는 법 등 남들은 하루 만에 배워야 할걸 나는 일주일 정도 걸렸던 거 같다. 기계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자신을 반성했다.


서비스도 거절


챗GPT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플스방의 성수기와 비수기는 확실하다. 비수기는 유럽축구 비시즌이거나 박지성이 장기부상이거나 활약하지 못할 때이다. 플스방에 80% 이상이 위닝일레븐을 하려고 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수기에는 박지성이 활약하거나 해외축구 시즌 특히 유럽 축구 클럽 챔피언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가 막바지(4강전이나 결승전을 앞두고 있을때 혹은 월드컵 시즌)에는 손님이 엄청 몰렸다.


또 다른 성수기는 바로 시험기간이다. 나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힌다는 이유로 1~2시간 게임을 하러 왔었다가 사장님이 "그만하란"소리를 하기 전까지 계속 게임 패드를 놓지 않았다. (시간당 1500원이었는데 손님이 없으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계속 시켜줬다). 학교 시험이 끝나면 인근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나도 Z플스방 손님일 때 받았던 혜택을 학생 손님에게만 똑같이 베풀었다. 그런데 외고 교복을 입은 친구들은 1시간이 지나자 금방 자리를 일어나려고 했다.


"손님~ 게임 좀 더 하시고 가도 돼요"


라고 말을 해봤지만 그 친구들은 "괜찮아요! 저 공부하러 가봐야 돼요" 라면서 호의를 거절했다. 게임을 1시간만 할 수 있는 절제력. '저런 마인드여야 외고를 다닐 수 있는 거구나' 느꼈다. 혹시 남자친구나 남편이 게임을 딱 1시간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꼭 놓지 말아야 한다. 게임을 안하면 안했지, 1시간만 절제하는 건 더 대단한 거다.


이외에도 기억이 남는 사람은 양복을 입은 직장인 손님이다. 게임 한판이 끝날때마다 플스방에 있는 과자랑 컵라면을 계속 사가는 것이다. 아마 친구들끼리 게임 한 판마다 내기를 해서 지는 사람이 사오는 것이다. 나도 돈 버는 직장인이라면 꼭 친구들과 저렇게 위닝 내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밤샘 근무


평상시에 주간 근무였지만 사장님의 개인사정으로 밤샘 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근무를 해야 하니 당시 놀고 있는 친구 1명을 불렀다. (사장님한텐 말하지 않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심심해서 그 친구와 함께 위닝일레븐을 했다.


10시간 정도 근무를 했었는데 위닝일레븐만 하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위닝일레븐뿐 아니라 레슬링 게임, 비치발리볼, 철권 등 각종 게임을 다 해봤다. 학창시절 위닝일레븐만 하면서 보낸 시간들이 아까울 정도로 정말 많은 게임이 많았고 특히나 스노보드를 타는 게임이 재미있었다. 연인끼리는 격투게임을 해봐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아침이 되었고 나와 친구는 다크서클을 얻은 채 아침을 맞이했다. 밤새서 게임하고 놀았으면서 보상심리가 작동한 탓인지 찜질방에 가서 목욕 한번 하고 잠을 자고 싶었다. 친구에게 찜질방을 쏘겠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잠은 집에서 자야 된다"면서 거절당했다. 첫 밤샘근무는 피곤했다.


추억 속 한페이지


나의 추억 페이지에 위닝일레븐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친구 자취방에서 밤새 위닝을 했던 추억, 주말 오전 7시에 플스방에 가서 친구들과 위닝을 하고 점심 시간이 다돼서야 밥 먹고 도서관에 간 추억, 위닝 일레븐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반에서 일진이 집에 초대해 나랑 게임한 추억(일진이 너무 무서워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플스방 내 위닝일레븐 대회에 참가해 전패한 기억 등이 있다.


요새는 위닝일레븐 보다는 FC온라인(구 피파게임)을 더 많이 하는 추세다. 내가 단골손님이자 일했던 Z플스방은 사라졌고 24시간 무인탁구장으로 바뀌었다. 그곳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플스방도 많이 줄어든 거 같다. 가끔씩 친구들과 생각이 나서 찾아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위닝일레븐도, 플스방도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아쉬울 뿐이다. 당신의 추억 속 게임이나 장소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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